양평 용문사 瞥見 有感

                                                                  (이글은 오늘자로 김승웅 글방에 떳다)

 

                                       이영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올 설은 설 전날을 포함해서 5일간 이어지는 휴가라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황금연휴이겠지만 나이든 우리 또래에게는 매일이 휴가인지라 휴가를 휴가 비슷하게라도 보낸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자식들이 경기도 양평의 콘도를 예약했다면서 나들이를 서두르는 바람에 우리 내외도 함께 집을 나섰다.

 양평의 블룸비스타라는 콘도에 여장을 푼 후 식구들과 같이 인근에 명성 높은 사찰인 용문사를 찾아 나섰다. 나는 용문사를 이름만 알뿐 어떻게 하다 보니 한번도 와 본 일이 없던 곳인지라 다소간의 호기심을 느끼면서 일행과 함께 용문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현란한 식당 간판들이 우리나라 전통식단의 메뉴들을 나열하면서 시야를 채웠다. 산길의 양옆에 즐비한 식당들을 지나치면서 30분 이상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프랑스의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되었다면 절대로 허가받지 못할 건물들이 난개발(亂開發)의 상징처럼 늘어서서 절로 들어가는 길목들의 전망을 어지럽혔다. 길에는 등산모를 쓴 중년 남녀들이 떼를 지어 오가는데 거기에는 탬플스테이로 이곳에 왔다는 외국인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사찰 입구에는 탬플스테이라는 간판이 내방객들을 영접하고 길 왼편에는 수령 1200년이나 되었다는 은행나무를 수호신처럼 모신다는 설명문과 더불어 은행나무를 먼발치로 바라볼 전망대가 놓여있었다.

 

용문사 경내는 여느 절이나 비슷했지만 기도꾼들이 몰려들어 대웅전 등 큰 사찰 건물에서 기도회를 열고 있었다. 야단법석(夜壇法席)이다. 그러나 불교사찰이 제단(祭壇)을 쌓는데서 생기는 신성함은 어느 곳에서도 느껴지거나 찾을 수가 없었다. 불심(佛心)과 무관한 중국관광객들의 나들이 장소로 변해버린 중국사찰들을 너무나 많이 닮아버렸다.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이 건물 저 건물로 몰려다니는 중국관광지 그대로의 모습이 우리 용문사에서 재연되고 있었다. 약수물이 좋은 것으로 소문이 났다지만 약수물을 관리하는 실태를 보면 영약(靈藥)을 마신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킬 정결함이나 신성함은 전무했다. 갈증을 달래는 쉼터에 불과했다.

사찰의 관광이 선교라는 문제의식과 연결되지 못하고 그냥 돈벌이에 역점을 두는 관광업으로 전락해버린 곳이 중국사찰들인데 그런 모습이 이 땅에서도 재연되고 있다는데 마음이 아팠다.

 

용문사 구경을 마치고 Moon River라는 간판을 단 식당에 들어갔다. 오리백숙으로 명성을 얻은 곳이라고 한다. 요리 맛은 환상적이었다. 밑반찬도 좋았다. 한때 카페를 하다가 안 되어 업종을 바꾸었다는 것이 주인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간판과 메뉴가 너무 다른 것은 부적절했다. 음식에 어울리는 간판과 그 간판에 합당한 맛을 전하는 레스토랑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함께 온 자식들은 휴대폰을 손에서 떼지 않고 무언가 열심히 전화하는데 바빴다. 함께 조용히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어 보였다. 어느 외국작가가 한국을 소재로 글을 쓰면서 책명을 “기적을 이룬 나라, 그러나 기쁨을 잃은 나라”라고 붙였다고 한다. 1인당 GDP 30,000 달러의 수준에 도달한 것은 기적이지만 그 수준을 지키기 위해 더 가치 있는 많은 것을 잃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기쁨 상실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요즘 전통적인 것이 거의 사라지고 그렇다고 모든 것이 서양화된 것도 아니다. 퓨전이 오늘날 한국문화의 현주소 같다. 퓨전화된 韓를 우리는 한류로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한류일지는 시간을 더 가지고 깊이 음미해야 할 것 같다. 기적을 이룸과 동시에 기적만한 기쁨이 우리의 소유가 될 길을 적극 모색해야겠다. 올 설은 그런대로 즐겁게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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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벤트 아닌 실질적인 남북대화가 바람직하다.

                                      

                                                                          이 영 일(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1. 남북대화의 새로운 국면

 

남북대화가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새해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형식의 연설에서 남북한 최고위급 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반면 박근혜 대통령역시 연두기자회견에서 아무 조건 없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한 고위층의 대화긍정발언으로 남북대화가 올해 재개되리라는 기대가 싹트는 상황에서 남북한 관계를 다시 후퇴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발표, 자기의 대북정책이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와는 달리 원칙을 지키고 북한의 대화공세에 대처했다고 자랑하면서 그간 김정일이 중국지도부를 통해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제의해왔지만 그때마다 거액의 금품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국내 좌파단체들은 남북관계를 단절함으로 해서 천안함 사태나 연평도 포격 사태 등 군사적 긴장상태를 조성한 정권이 반성은커녕 자기의 대화실패정책을 정치적 성과로 자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우파진영에서는 남북 대화나 교류 때마다 뒷돈을 집어주던 악습(대화나 교류매입정책)을 차단한 것은 잘했지만 원칙 있는 대화를 주도적으로 열지 못하고 오히려 대화를 주선해준 중국지도자를 실속 없이 거명한 것은 부적절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권은 집권 이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캐치플레이스로 하여 그간의 왜곡된 남북대화를 바로잡으면서 핵문제를 포함한 남북한의 제반 현안에 대해 한국이 당사자로서 대화와 협상의 주체적 지위를 되찾으려고 모든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왔다. 특히 중국정부의 협력유도에도 많은 공을 드려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비록 단기적이긴 하지만 정부의 새로운 대북접근 노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발표로 의외의 복병을 만난 셈이다. 일방적 주장만을 담은 회고록의 시효는 결코 길지 않아 조만간 수습이 되겠지만 한국정부의 협상평판, 신뢰평판에 남긴 상처는 쉽게 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의 남북한관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한국으로서는 금년이 분단 70년과 광복 70년이 맞닿는 해라는 시점임을 감안, 작년 12월 29일 통일을 위한 남북당국 간 대화에 북한이 응해올 것을 통일준비위원회의 이름으로 제의한 바 있기 때문에 김정은의 신년사의 대화언급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1월 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 론을 제기, 통일문제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제고했고, 작년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행한 연설에서 자기가 주창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에 남북한 당국 간 대화를 여는 것은 금년 정치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 주제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남북대화는 단절되었다가 다시 이어지고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면서 4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우리가 지난 대화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대화를 위한 대화, 이벤트 성 대화에서는 아무런 결실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하 현재의 한반도 내외상황을 남북대화라는 측면에서 재구성하면서 바람직한 대화의 향방을 모색하기로 한다.

 

2. 북한에 대화수요가 있는가.

 

금년은 김정은이 김정일의 유훈통치 3년을 벗어나 자기 스타일의 북한 통치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김정은은 작년도 신년사에서 들고 나온 ‘위대한 변혁의 시대’는 내부숙청만 되풀이하는 가운데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났고 경제도 민중들에게 끌려가는 시장화추세를 때로는 긍정, 때로는 활용, 때로는 규제하면서 근근이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관계가 냉랭해 짐으로 해서 북한내부에서 조차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이 흔들리고 있으며 특히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5개항에 걸친 대북제재는 아직도 효력이 발효 중이다.

 

친중파인 고모부 장성택에 대한 반인륜적, 반민주적 처형과 탈북자들의 국제적 호소가 도화선이 되어 제기된 북한인권 문제는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의제로 채택되어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ICC)에 회부해야할 대상으로 결의하는 등 국제적 고립이 북한정권 성립이후 가장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은 바야흐로 이 처절한 고립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립의 위기’(Viability Crisis)에 직면하고 있다.

김정은의 권력은 쟁취 아닌 세습이기 때문에 선대(先代)인 김일성, 김정일이 지속해온 핵과 미사일 개발만은 내외사정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를 승계해야할 숙명이다. 이 때문에 경제개발에 전력을 투구해도 모자랄 판에 핵·경제병진(竝進)노선을 고수하겟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경제개발에 필수적인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그간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끈질기게 요구했지만 핵 없는 세계건설을 집권의 캐치플레이스로 내놓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가 핵개발을 계속하겠다는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일 리 없다. 여기서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고립탈출을 기도했지만 핵 포기가 전제되지 않는 한 안보전략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종속시키고 있는 일본이 납치문제하나만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쉽게 호응할리 없다. 최근 김정은은 최룡해를 러시아에 파견, 러시아를 통한 고립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 문제로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유가(油價)하락으로 경제마저 어려워졌기 때문에 친북(親北)정책에 적극 나설 형편이 아니다. 그러면 김정은이 검토할 대안은 무엇일까.

 

현재 북한정권은 두 가지 대안을 검토할 것이다. 하나는 한미연합방위전력을 상대로 1대1의 전면전을 도발하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능력이 너무 모자란다. 전쟁에 필요한 에너지도, 자재도, 뒷받침해줄 우방도, 군대의 사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결과가 정권붕괴를 몰고 올 값비싼 대가를 치루더라도 비대칭 전력으로서의 핵 공갈과 미사일 발사, 특수군 부대를 이용한 테러 형 공격 등을 구사하는 것이다. 알카에다나 이슬람 국가(IS)의 대미투쟁은 그들에게 좋은 본보기다.

다른 하나는 남북대화를 통해 위기와 고립에서 탈출하면서 시간을 버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난 기간 그러한 대화전술로 성공한 선대들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하 북한이 구사한 대화전략을 살펴보자

 

3. 남북정상회담의 회고와 반성

 

1990년 동구라파가 몰락하고 소련이 붕괴되는 상황은 북한체제의 존폐를 위협할 정세였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김일성은 남북대화전략을 채택했다. 노태우정권은 이를 그가 추구한 북방정책의 성과로 평가, 당국 간 회담을 환영하고 남북총리회담을 여는 등 남북한 관계 개선에 필요한 합의도출에 주력했다.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 남북한 기본관계합의서이고 한반도 비핵화선언이었다. 북한은 이같은 대화 쇼를 통해 대내외적으로 몰려오는 체제위기를 극복하면서 한국의 핵 개발저지와 미군보유 핵무기의 완전철수를 못 박는 비핵화선언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 후 언제 그러한 합의가 있었느냐는 듯이 한국과의 모든 합의를 유린, 외면했다. 남북대화가 북한의 체제위기극복 수단으로 이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김일성은 1994년에도 북핵문제로 미국이 대북폭격을 검토할 때 카터 전 미국대통령을 평양에 초청,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 회담은 김일성의 사망으로 성사되지 못했지만 미국의 북 핵 기지 폭격계획은 없었던 일로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 후 김정일을 상대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각각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통일문제해결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방문 대가로 거액의 현찰을 용처(用處)나 용도(用途)를 묻지 않고 김정일에 제공했다. 핵실험 한 번 하는데 3억 달러가 쓰이는데 여러 차례 핵실험에 필요한 현찰을 제공하고 그 비용을 국민의 혈세로 갚은 것으로 알려졌다. 6.15선언도 가장 중요한 대목인 김정일의 답방약속은 없었던 것이 되었고 “통일 후까지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김정일이 동의했다”거나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귀국 후의 대국민 보고는 전혀 사실이 아닌 국민기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갈 무렵 NLL카드를 미끼로 정상회담을 실현한 후 거액의 대북지원을 국회의 동의 없이 혼자서 약속하는 등 정상적 의미의 정상회담의 범주에 넣기 힘든 허무 황당한 회담을 연출했다. 이 두 회담은 한반도통일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상회담이라기보다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분단 상황을 이용해서 자기 업적을 과시하려 연출한 일종의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했던 것이다.

 

4. 결론

 

지금 박근혜 정권은 집권 3년차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 측면에서 남북대화를 열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큰 공감을 얻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이를 실천하기 위한 드레스덴 제안, 동북아시아 정세를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협력가능한 공동체로 변화시킬 것을 겨냥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한반도와 유럽을 연결하기 위한 유라시안 이니셔티브 등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앞서도 지적했지만 북한이 감행할 가능성이 있고 그 선례가 있는(1968년의 1.21사태나 연평도 도발, 원전에 대한 도발 우려 등)테러적 도발가능성을 방치(放置)하기보다는 이를 예방 관리하는데도 일정한 수준의 대화는 필요하고 유지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비대칭적 도발을 유발할 궁구물박(窮寇勿迫)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재 건강한 국민들은 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인 퍼주기나 뒷돈 주는 형식의 대화매입에는 반대한다. 동시에 대화를 위한 대화라도 안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회담만능주의도 필요한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북한보다 훨씬 앞서있다는 현실에서 대화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대화이익이 북한과의 대결이나 압박보다 항상 더 크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 북한은 도발이냐? 남북대화를 통한 위기 극복이냐? 의 양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다.

형식적으로는 대화에 이러저러한 조건을 달고 있지만 그들의 본심은 대화재개다. 테러적 도발도 그들의 예비계획(Contingency Plan)에는 포함되겠지만 그것을 실행할 경우 지불해야할 대가가 자칫 체제몰락을 가져올 만큼 크기 때문에 이판사판에만 가능 할 것이다. 따라서 현 정세는 당국 간이나 민간수준에서 다양한 대화와 교류를 터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대화내용과 방식은 달라져야한다. 우선 인도주의 사업으로서 이산가족문제도 만났다가 헤어지는 회담이 아니라 고령자들이 가족 품에 안겨 여생을 마칠 수 있는 재결합(Reunion)을 의제로 삼고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군포로 송환문제도 해결해야할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 북한은 강도 높은 유엔인권결의가 몰고 오는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고령자들의 가족 재결합문제나 고령의 국군포로송환정도에는 능히 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이 성사되려면 국제적십자연맹을 비롯한 세계인권단체들의 일치된 요구가 국제여론으로 동원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북한의 핵 포기가 가시화되지 않는 조건에서 우리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정책 때문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의지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앞으로 재개되는 남북대화에서는 한국이 당사자로서 의제에 핵문제를 반드시 포함시키고 핵문제에서 진전이 있어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완화와 한국의 대북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조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올해 대화정책이 실패로 끝났던 과거의 되풀이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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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의 미중관계와 한중협력의 전망(이글은 국제문제 2015년 2월호에 발표되었다)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1.들어가면서

 

오늘의 한반도를 생활무대로 하는 한민족의 우리 세대에게 미국과 중국처럼 중요한 국가도 없을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지정(地政)학적으로나 지경(地經)학적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국가들이며 양국 모두와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달성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평화와 통일이 우리의 민족적 목적과제일진데 양국 모두의 협력을 우리는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러나 미중 양국관계는 부단히 변화한다.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한다. 우리는 양국 모두와 협력하고 있지만 양국관계의 변화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양국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할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고 양국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중도적 입장을 선택하거나 요구받을 상황도 올 수 있다. 여기에 미중관계의 변화를 예측하고 전망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2015년의 벽두에 미중관계를 전망하면서 우리의 진로를 생각해본다.

 

2. 중국을 보는 국내학계의 시각

 

2014년을 마치면서 우리 국내의 중국전문가들 간에는 서로 비슷하지만 중점을 달리하는 두 가지 견해가 등장하고 있다. 하나는 중국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중국도 개발도상국의 하나라는 기왕의 입장을 털어버리고 이제 당당한 대국으로서 세계정치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대국외교로 대외노선을 재정립(Reorientation)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후진타오(胡錦燾)시절에 흔히 쓰이던 중국도 ‘개발도상국의 하나’라는 주장은 사라지고 조심스럽게 모색되던 신형대국(新型大國)관계론이 강력히 대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이 강대국의 하나라는 자기정체성을 모든 대외표현에서 확실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시진핑(習近平)주석이 추구하는 대외노선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간 미국학자들은 중국이 역내(域內)의 지역패권을 추구한다고 말해왔는데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도 시진핑의 답은 NO다. 시진핑의 대국 외교노선은 그 목표가 지역이 아닌 전 지구를 무대로 겨냥한다. 그 예로 시진핑이 말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정책을 보자. 그는 중국의 쿤밍으로부터 미얀마, 하노이를 거쳐 인도양을 지나 중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남방 실크로드를 추구한다고 밝혔는데 이 지역을 경제회랑(回廊)으로 보면 일대(一帶)지만 수송로로 보면 일로(一路)다. 또 시안(西安)으로부터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치닫는 북방실크로드 건설도 추진한다.

일대일로라는 표현은 지역별로 범세계적인 경제회랑을 만들자는 것이지만 이 전략이 포괄하는 범위는 지구적(Global)이다. 중국은 바야흐로 세계적인 대국에로의 도약에 나선 것이다. 특히 남방실크로드사업을 촉진하기 위해서 시진핑은 이미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국지향론과는 달리 국내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통설은 중국이 미국 등 서방측이 만들어 놓은 국제규범과 질서를 존중하면서 그 태두리 내에서 자국의 실리가 보장될 수 있는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나간다는 현상개혁론이다. 이들은 중국이 경제면에서는 G2로 성장했지만 이는 서방의 자본도입, 서방의 기술학습, 서방의 경영을 벤치마킹하였고 세계무역기구(WTO)가입으로 얻은 혜택의 결과다. 따라서 지금 중국은 강대국으로 컸지만 새로운 국제질서를 주도하거나 창설할 만큼 강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베이징대학의 왕지스(王緝思)교수는 중국이 강해졌지만 중국이 반미동맹결성을 주창할 때 선뜻 합류하거나 가세할 나라가 아직은 없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점에서 중국외교는 앞으로도 현재의 국제질서를 긍정하면서 그 틀 안에서 개혁을 추구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다른 것 같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강조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국이 암묵하는 내재적인 욕구에서 보면 중국은 결코 현상개혁에 만족하거나 안주하려는 것 같지 않다. 류밍푸(劉明福)로 부터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강조하는 중국몽(中國夢)은 궁극적으로 역사적인 중국의 회복을 목표로 세계적인 대국건설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3. 2015년의 전망

 

오늘날 국제정세를 분석하는 중국학자들은 지금 미국과 중국 간에 세력전이(勢力轉移)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러나 과거 역사에서 본 것처럼 세력전이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었던 전쟁을 막으려면 쇠락하는 미국(Declining America)이 신흥중국(Rising China)을 대등한 강대국으로 인정, 세계문제에 대등한 발언권을 갖게 해주고 서로 간에 핵심이익을 존중하는 국제관계로 양자관계를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이른바 신형대국관계론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의사표시로 시진핑은 작년 5월 21일 샹하이에서 열린 아시아지역교류회의(CICA)에서 아시아 집단안보론과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설립 안을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표현은 자제했지만 내심으로는 중국의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국제통화가 되기를 희구하고 IMF나 세계은행을 대체할 국제금융기구창설도 꿈꾸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학자들이 말하는 미국쇠퇴론과 이를 근거로 한 세력전이론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작년 12월 10일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특강에서 조지프 나이(Joseph Nye)교수는 미국은 절대적 기준으로나 상대적 기준의 어느 척도를 적용해도 전혀 쇠퇴하는 국가가 아니며 앞으로 세계경제의 미래를 판가름할 에너지, 인구, 창의력의 면에서 미국의 위상에 영향을 줄만큼 중국의 능력이 결코 따라올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중국이 현재 누리는 7.5%의 성장률이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며 앞으로 3.8%대로 내려오는 것이 중국경제가 정상화되는 시점이라고 전망하고 중국의 1인당 GDP가 1만 달러 정도로 올라가도 1당 독재가 통하겠느냐고 물었다.

현재 시진핑 정부의 공안통치예산이 인민해방군 예산을 능가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 말에 담긴 뜻을 한번쯤은 깊이 음미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이 자리에서 나이교수는 설사 아베노믹스가 실패해도 미일 간의 협력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는 대목도 필자에게는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조지프 나이 교수는 이날의 특강에서 미국국방비가 의회의 결정으로 금후 점차 줄어가야 하고 미국국내정치에서 여야 간의 극한대결 같은 미국체제내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총론차원에서 보면 중국에 대한 나이 교수의 평가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시사(示唆)하는 바가 컸다.

 

작년 하반기부터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벌인 신형대국관계 공세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일본과의 관계도 정치안보 면에서 원만하지 않기 때문에 외교의 중점을 점차 동북아시아 보다는 동남아시아의 아세안지역과 인도를 포함한 서남아시아지역으로 옮기고 있다. 남방실크로드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포용하는 북방실크로드건설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에서 우리는 전 지구적 규모의 대국을 지향하는 중국 측의 야심도 엿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실크로드 정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주변국 다독이는 정책에 역점을 두는 측면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친성혜용(親誠惠容)을 대주변국 외교의 캐치플레이스로 내세우고 주변국들이 자국의 정책에 협력하도록 유도하는 외교를 중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국을 안보와의 연계에서 동북아중심에서만 보던 기왕의 관점에만 머물지 말고 시진핑의 새로운 외교노선과 한중협력을 접목시킬 새로운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4. 우리의 대응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대응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와 같은 강소국은 내치외교에서 철저히 현실주의(realism)노선을 추구해야한다.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위협이 해소되지 않는 안보상황 하에서는 한미동맹을 굳건히 강화하면서 일본과의 관계도 안보와 역사문제를 분리해서 대처하는 지혜가 발현되어야 한다. 한일 간의 역사문제는 양국이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이나 역사문제에 묶여 안보협력 상의 손실이 수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지난해 말 추궈홍(邱國洪)주한 중국대사는 미국이 주한미군 부대에 사드(THAAD)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한국이 이 방침을 수용하면 그것은 한중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흡사 한말의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연상시키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국방예산이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위협을 머리에 얹고 사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자국군대의 안전을 위해 자국 부대에 사드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이것이 대한방위공약이행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때 이를 정면으로 반대할 수는 없다.

한국은 중국에 대해 주한미군은 조약상 중국을 반대하기 위한 군사력이 아니며 북한의 남침저지에 목적을 둔 것임을 재삼 설득하고 강조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한중관계는 박근혜 정부성립과 더불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앞선 정권들과는 달리 북한 핵에 대한 반대를 말과 행동으로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한중FTA를 체결함과 동시에 중국대륙에서 벌인 한국 측의 항일독립투쟁의 족적(足跡)을 중국정부가 자국 예산을 들여 복원해 주는 성의도 보여주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중국 측의 선의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거나 한국안보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대중외교는 철저히 현실주의의 원칙에 서서 경제와 안보를 조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점에서 중국이 주창하는 지역경제협력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필요한 지분(持分)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등 실질적 협력조치를 가시화해야 한다. 특히 경제문제로서 구체화되고 있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설립에도 적극 참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무역결제수단의 하나가 된 위안화의 활용성도 높여줘야 할 것이다. 특히 한중FTA가 체결된 만큼 양국 간의 경제협력도 한층 더 수준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안보협력과 경제협력을 분리해서 대처하는 안경(安經)분리정책을 한국외교의 확고한 원칙으로 정립해야 한다.

또한 시진핑의 중국이 거국적으로 추진하는 실크로드 정책에는 그것이 북방이건 남방이건 간에 단순히 방관하기 보다는 투자를 통한 편승(Bandwagon)을 통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나 유라시안 이니셔티브와 연계되도록 경협외교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내적으로는 6만 명을 상회하는 중국유학생들에 대해서도 이들을 맡는 대학당국들이 친한 인재(親韓 人材), 지한 인재(知韓 人材)로 육성하도록 협의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 중국외교는 정부만이 아니고 민간외교를 폭넓게 활용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3000억 달러를 육박하는 경제교류와 1천만인의 인적교류의 한중협력시대에 정부만의 힘으로는 필요한 외교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민간외교를 한층 더 중시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안보외교에 중점을 둔다면 경제, 문화, 인문분야에서는 민간외교가 큰 역할을 하도록 적극 권장해야 할 것이다. 외교는 직업외교관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인습적 사고를 버리고 민간 속에 잠재되어있는 자원을 폭넓게 개발 활용하는 열린 외교가 한중외교로부터 시작되는 2015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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