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대한민국 헌정회가 발행하는 헌정지 2014년 12월호에 발표된 글이다.
탈북민은 우리의 중요한 통일자산이다
이 영 일(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1. 탈북민을 보는 우리의 시각
2014년 현재 북한에서 한국으로 탈출해온 탈북민은 27,000명에 이른다. 탈북자와 탈북민은 동일하지만 탈북자 중에서 한국에 정착한 사람을 탈북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앞으로 탈북민의 수효는 더욱 늘어날 추세다. 북한을 탈출해서 아직 한국에 입국 못하고 중국대륙이나 몽골, 동남아 등지에 억류되어 있거나 떠도는 사람들이 전부 입국에 성공한다면 조만간 십 수만으로 늘어날 전망이며 북한의 경제난이 가중되면 탈북민의 대열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해방직후나 6.25전란이후에도 북한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사람들이 적잖았다. 이들에 대해서는 탈북자라는 표현대신 월남(越南)동포라고 부르거나 이북동포라고 불렀다. 이들은 북한태생이지만 북한지역이 공산체제로 개조되기 이전이나 과정에서 남하(南下)한 분들이어서 현재의 북한에는 지역적 연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유대를 갖는 분들이 드물다. 그러나 탈북민들은 대부분 북한지역이 공산화된 이후 거기서 태어나서 북한식 체제에서 성장했고 아직도 부모나 형제나 친지, 동료들이 북한 땅에 거주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의 세습정권 밑에서 살았고 김정은 시대까지를 충분히 의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탈북민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그간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 일반적인 태도는 탈북민들을 난민으로 간주, 난민구호정책차원에서 돌볼 대상으로 보았다. 물론 탈북민들은 고향과 부모형제나 친지를 모두 버리고 혈혈단신 한국을 찾아왔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에서는 난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탈북민은 난민이상의 의미를 갖는 분들이다. 모든 역경을 이기고 북한 정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대한을 찾아온 용기 있는 북한 동포들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북한 땅에서 배고픔과 굴종, 처참한 인권유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탈북밖에 없을 진데 목숨을 걸고 탈북을 결행한 것은 그 비상한 각오와 용기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노예적 삶, 농노적 삶에서 벗어난 용기와 결단에 우리는 뜨거운 박수를 보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상식적 평가를 외면하고 ‘탈북민을 배신자’라고 말한 새정치연합 소속의 임수경 국회의원 같은 유별난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탈북민들의 결단과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정부에서도 관계 법률에 따라 이들의 한국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지원이나 배려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이들이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도록(Koreanization Process) 돕자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정부의 정책시각은 탈북민을 난민으로 보는 관점에 맴돌고 있다. 탈북민을 지원하는 단체나 지원업무를 관장하는 관리들도 난민구호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탈북민은 결코 난민정책대상만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가에서의 탈북민은 난민구호대상임과 동시에 적극적으로는 통일정책대상으로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대통령이 통일을 대박이라고 말하는 시대상황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필자는 탈북민을 통일정책차원에서 대처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올바른 탈북민 정책이라고 보고 본고를 통해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과 현실성을 논하고자 한다.
2. 탈북자는 왜 통일정책차원의 대상인가.
지금부터 25년 전 동서독이 통일되었다. 독일역시 우리와 비슷하게 체제와 이념을 달리한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동서로 분단된 국제 형 분단국가다. 그런데 바로 그 독일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동독주민들이 서독과의 통일을 국민투표를 통해 확실히 지지하고 서독의 헌법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통일을 달성했다는 사실이다. 만일 동독주민들이 소련의 위성국가로 살지언정 서독과는 절대로 통일하지 않겠다고 버티었다면 동서독 통일이 가능했을까. 절대로 통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권국가로서 유엔에 가입한 동독(DDR)이 서독과의 통일을 거부한다면 독일을 둘러싸고 있는 4대국(미·소·영·불)은 통일반대 입장을 굳혔을 것이다. 그러나 동독을 이탈하여 서독으로 넘어와 정착한 동독인들이 서독과의 통일만이 동독인들이 자유와 인권을 누릴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유럽대륙에서 독일인이 제대로 대접받는 민족이 될 것임을 철저히 실감했고 이 사실을 동독주민들에게 확실히 알렸기 때문에 서독과의 통일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다수가 서독과의 통일을 지지했던 것이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확히 말하면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것이 아니라 동독이 서독에 합류(合流)한 통일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한국과 독일은 상황이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 동포들이 굶는 한이 있더라도 남한과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든가 인권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갈라진 채로 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통일을 이룰 수 없다. 민주화시대에 있어서는 통일의 주체는 정권이 아니고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탈북민 사회를 조심스럽게 관찰해보면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북한에 두고 온 친지, 가족, 옛날 동료들과 어떤 형태로던 연락을 주고받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기적으로 송금까지 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서 한국에 관한 소식과 정보가 전단보다 더 빨리 북한에 전달되고 있다. 무서운 감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친지를 돌보겠다는 한국거주 탈북민들의 사랑의 손길이 북한에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한 대로 “친절한 사랑은 철문을 뚫고 들어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탈북민들을 통해서 우리는 북한내부동향을 빨리 알 수 있으며 한국소식도 과거 어느 때 보다 빨리 북한주민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의 비디오가 북한 노동당 간부들의 집에 한 두 편 씩 있다는 이야기는 잘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라는 것이다. 요즈음 탈북민중에서는 한국사회에 정착,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고 비례대표로 추천받아 국회의원도 1명이 배출되었고 대학교수로 진출한 사람도 더러 있다. 또 독자기업을 열어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다수는 아니다. 대부분은 아직도 삶에 만족에 느낄 만큼 안정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한국 기업인들 가운데는 탈북민 고용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탈북민을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을 대하듯 얕잡아 보거나 냉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특히 탈북민의 민원을 담당하는 통일부 관리들의 관료적 업무처리방식 역시 반발과 지탄을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탈북민에 대한 정책입안이 실정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탈북민의 참여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탈북민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고 탈북지원부서나 단체에서 하급직을 제외하고는 간부직에서 탈북민 출신은 배제되기 일 수라고 한다. 최근 탈북민들을 상대로 하는 정책세미나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는 북한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직 공무원들이 하나원을 운영함으로 인해서 많은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통일부 공무원 구성이 초창기와는 달리 전문직 중심에서 일반직 중심으로 전환되는데 따른 문제점 같다. 이북 5도청 운영에서도 탈북민은 배제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어느 때 쯤 탈북자관리가 통일정책차원에서 부담이 아닌 자산으로서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
3. 효과적인 대책
< 일반적인 방향>
지금 우리 정부에 탈북민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탈북민 정착을 위한 지원이나 직업알선 등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것이 통일정책차원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다. 탈북민 대책이 통일정책차원의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독일의 연방정치교육본부처럼 탈북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맞춤형 지원정책을 입안, 한국사회에 대한 적응과정을 용이하게 하면서 목숨을 걸고 탈북한 것이 옳은 결단이었음을 실감케 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성공한 탈북민이 많아져야 한다. 국회의원에도 뽑히고 장관으로도 발탁되어야 한다. 기업가나 학자나 예술인이나 의사나 변호사로서도 성공한 분이 많이 나와야 하고 또 나오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탈북민 정책입안이나 지원단체에는 탈북민이 반드시 참여하여 주요정책결정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이북5도청 운영에도 탈북민들의 참여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동포들에게 주어졌던 기회가 이젠 탈북자들에게로 옮겨져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또 교육지원에 있어서도 만학(晩學)으로라도 진학할 기회를 보장해주고 좋은 스펙을 쌓도록 지원하는 장학제도를 적극 확대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탈북민 특혜라는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탈북민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강화되어 탈북민을 부러워하는 사회 분위기가 진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조성될 때 비로소 북한동포들 속에 탈북민을 동경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한국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대가 북한동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통일이 우리 한국인들에게보다는 오히려 북한동포들에게 대박이 될 것이라는 꿈이 싹트게 해야 한다. 우리가 독일의 통일정책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탈동독민 지원정책일 것이다.
<탈북자 관할 부서를 바꾸자>
그러나 현시점에서 시급히 강구되어야 할 과제는 탈북민의 지원, 정착, 관리업무를 주관하는 부처로서 통일부가 부적합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통일부가 탈북자업무를 맡게 된 것은 다른 행정부처에 비해 북한문제에 전문적인 능력을 갖는 부서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통일부가 종래 국가정보원이 사실상 주도해온 남북대화업무를 맡게 되면서부터 북한문제를 다루는 전문 인력은 대화파트로 이관되고 탈북민을 관장하는 업무는 북한문제에 전혀 이해가 없거나 전문성을 결여한 일반직 공무원들이 맡게 됨으로 해서 탈북민을 통일의 주요한 자산 아닌 부담으로 여기면서 그냥 조용히 문제없이 관리하는데만 치중한다.
하나원의 교육프로그램이 탈북민으로 하여금 대한민국 체제의 우월성을 알게 하고 동시에 한국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정치사회화(Political Socialization)적 관점을 크게 결여하고 모든 탈북민을 일반화하여 합숙교육으로 때우는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1대1의 맞춤형교육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친 형식주의, 관료적 처리방식이 탈북민들의 한국사회적응과정의 어려움해소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통일부가 남북대화를 주도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탈북자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부서로 변하고 있다. 통일부장관이 기자회견이나 정책보고에서 탈북자문제를 공개거론하기를 피하는 것이 대표적 예이다. 때문에 탈북자문제는 통일부자체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산이 아닌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방치해서는 탈북민이 결코 통일의 유용한 자산으로 관리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런 견지에서 필자는 안전행정부와 이북5도청을 중심으로 탈북자관리의 운영주체를 바꾸고 아울러 탈북민정착과 지원에 기여할 탈북민 중심의 구심체를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탈북자의 교육, 정착지원 및 관리업무에 탈북자로서 한국정착에 성공한 인사들을 대폭 참여시켜야 하여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탈북민의 통일자산화를 실질적으로 추진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통일대박시대의 실질적 준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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