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의 전망
이 영 일(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이글은 헌정지 2019년 1월호에 발표된 것이 초고이고 본고의 내용은 2019년 2월 14일 군산 모 공군기지에서 교양강좌로 행한 강의전문이다ㅣ.
목 차
1. 들어가기
2.중국이 먼저 시작한 도전
가. 도광양회에서 유소작위로
나. 신형대국관계 론을 주장
다. 아시아에서 미국몰아내기 시도
라. 중국 몽을 비전으로 제시
마. 남중국해 전역을 해양영토로 선언하고 군사기지건설
3.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전략
가. 브리튼 우즈(Bretton Woods)회의소집
나. 새로운 자유무역체제의 탄생
다. 미중관계의 개선
라. 소련방의 해체
마. 미중갈등의 시작
4. 현 단계 미국의 대 중국전략
가. 기본배경
나.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경대결선언
다. 쉐일가스(Shale Gas) 혁명과 미국의 새로운 전략구상
라.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찰이 아니다.
5. 양자관계의 전망
가. 중국내부의 갈등요인
나. 대외정책상의 문제
다. 공산당의 자정능력소멸
라. 한국학계의 일부견해
6. 한국의 선택
1. 들어가면서
바야흐로 미국과 중국 간에 무역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무역국가들 간에 일시적으로 일어났다가 곧 결말이 나는 경제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은 외견상으로는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거래에서 아주 큰 폭의 적자를 보고 있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양국이 부딪치는 갈등의 저변에는 세계정치에서 미국이 누리는 패권(覇權,Hegemon)에 중국이 도전하기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러면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데 무슨 전쟁을 패권전쟁이라고 부르는지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국제사회는 잘 아시다시피 정부가 없는 무정부상태이기 때문에 항상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약육강식이 지배해 왔다. 그러나 여러 국가 중에서 힘이 제일 강한 국가가 나서서 다른 국가들이 안전보장과 경제거래의 편의를 도모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규칙을 만들고 위반자를 다스려 국제질서를 유지해 나가는데 이 경우에 강한 국가를 패권국가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여 기존의 패권 국가를 누르고 새 패권국가가 등장하는데 역사적으로는 이러한 패권교체_세력교체가 16번 일어났고 이중 14번 전쟁을 통해서 패권이 교체되었고 오직 4번만이 전쟁 없이 패권을 신흥도전세력에게 물려주었다고 미국 하버드대학의 Graham Allison교수는 말하고 있다.
앨리슨 교수는 기존의 패권국들은 새로 부상하는 도전국가들이 자기의 지위를 넘보는 경향이 있음을 간파하고 거기에 대비하게 된다. 신흥 도전 국가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기존 패권국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반드시 양자 간에 갈등을 유발하는데 이를 투키디데스 함정(Thucidides Trap)이라고 한다. 투키디데스는 고대 희랍의 역사학자인데 당시 지중해 일대의 패권국인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의 새로운 부상에 위기를 느끼고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일으켜 그리스를 멸망시킨 고사를 인용하면서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을 역사에 남겼다. 그는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전사했지만 그가 쓴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는 기존패권국가와 새로 부상되는 신흥국가간에 패권을 다툴 전쟁이 예상될 때 튀어나오는 용어로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국제정치학의 명언을 남겼다.
그래함 엘리슨은 지금의 미국과 중국관계도 겉으로는 무역 갈등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세계정치의 패권을 겨루는 싸움이기 때문에 단순 무역경쟁이 아니고 투키디데스함정에 빠지는 패권경쟁으로 보아야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미중 양국 간 경쟁이나 갈등은 어느 일방이 타방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 장기에 걸쳐(30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승패를 겨루는 심각한 전쟁 그 자체로 보는 것이다.
핵 보유 강대국 간에는 서로 확증파괴력(MAD)이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에 군사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군사전쟁의 형태는 취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군사외적 방법으로 상대방의 패권도전의사가 완전히 꺾기거나 무력화될 때까지 경쟁과 대결이 이어지고 여기에는 무역, 시장, 식량, 에너지, 원자재, 기술력 등에 대한 접근 차단이나 방해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외교 및 동맹결속까지를 포함하는 다방면에 걸치는 대결이 양성화된다.
이러한 상황이 나타날 경우 한국처럼 지정학적으로 미중 양국의 영향권에 속하면서 동시에 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갈등의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선택해야할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고 선택이 잘못될 경우 국가존립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어느 경우에나 고래싸움에 새우 등터지는 상황을 피하기 힘들다. 오직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를 면밀히 타산, 승자 쪽을 택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하에서 우리의 선택과 진로를 모색할 상황들을 총체적으로 분석해보기로 한다.
2. 그러면 누가 먼저 이 전쟁을 시작했는가.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
가.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로
중국은 1820년까지 만해도 세계GDP의 33%를 차지하는 강대국으로서 경제력에서는 G2아닌 G1이었다. 그러나 아편전쟁에서 패한 후(1842)부터 내리막길을 걸어 중국에서는 해군력이 와해되고 공산당이 집권한 모택동(毛澤東)시절에도 죽(竹)의 장막에 갇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가운데 총량 GDP는 세계 GDP의 2%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모택동 사후 등소평(鄧小平)이 집권한 후 13년 동안(1976~1989)개혁개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당의 역할과 정부의 역할을 구별하면서 정부주도로 경제개발에 주력한 결과 중국경제수준은 세계 GDP의 15%까지 올라섰다.
등소평은 이때 자본축적이 부족하고 기술력도 떨어지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견제를 피하면서 튼실한 국력을 배양하려면 “발톱을 숨기고 힘을 기르는데 주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 백년 즉 중국공산당의 창당100년(1921~2021)과 중국의 건국 100년(1949-2049)이 끝나는 시점을 넘어 경제발전이 더 높은 단계에 오르기까지는 힘을 기르는데 만 충실해야 한다는 이른바 도광양회 노선을 따르도록 후대에게 유지를 남겼다. 등소평의 뒤를 이은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燾)는 도광양회의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그 정도에 맞게 국제문제에 ‘중국의 목소리를 내자’는 입장을 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주석이 등장하면서부터 중국의 대외정책노선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이렇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에 대한 미국의 지도력이 흔들리고 서구열강이 하나같이 경제적으로 휘청거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맞추어 중국은 2010년 7월 30일을 기점으로 세계 GDP 총량에서 에서 일본을 재끼고 G2의 지위에 올랐다. ➁ 또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서구 선진국들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포퓰리즘에 약한 민주주의를 이용하여 포퓰리즘으로 정권을 잡겠다는 세력들이 등장하여 민주정치의 위기가 심화되었다. 이때 중국은 베이징 컨센서스가 워싱턴 컨센서스보다 보다 유효한 체제라는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은 자기들이 총량 GDP가 일본을 앞지르고 미국의 총량 GDP의 절반 수준까지 따라잡자 상황을 판단하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전략 참모들은 우리가 변화된 정세에 맞게 생각하는 방식만 바꾸면 중국도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 신형 대국 관계론의 주창
중국의 리더십이 후진타오로부터 시진핑으로 바뀌면서 중국외교사상에서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신형대국관계 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중국도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세계문제에 대해 중국 나름의 발언권을 행사하면서 자국의 핵심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고 실력이 향상되면 상황을 보는 생각도 변해야 한다면서 중국외교는 이제 더 이상 도광양회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진핑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중 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을 피하려면 중국을 미국이 자국과 맞장을 트는 대국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리 없었다. 중국이 경제력에 알맞게 책임 있는 강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미국주도의 세계질서를 중국과 대등한 자격에서 논하자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거부했다.
다. 아시아에서 미국몰아내기 시도
시진핑 주석은 2014년 5월 20일 중국 샹하이에서 열린 제6차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Conference on Interaction an Confidence builing in Asia))에서 아시아 역내 국가들을 운명공동체라고 정의하면서 집단안보론을 주창,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들이 주축이 되어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아시아 집단안보구상에서 미국을 배제했다. 한마디로 아시아 대륙에서 미국을 몰아내자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영국의 The Economist지는 중국의 GDP가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했는가하면 미국의 금융회사들도 The Economist보다는 시기는 뒤로 잡았지만 2025년부터(JP.Morgan) 27년 (Goldman Sachs)사이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을 얻어 중국공산당 18차 당대회 예비회담에서는 미국인구는 중국에 한참 뒤지며 자원은 피차 비슷하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라. 중국 몽을 비전으로 제시
시진핑 주석은 그가 공산당 주석에 취임하면서 위대한 중국의 부흥을 강조하면서 자기의 비전으로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웠다. 아편전쟁패전이래 중국인민들이 겪었던 수모를 넘어서서 세계의 강자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민족주의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다.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제18차 공산당 대회까지 에서의 중국의 대미도전은 말로 하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은 중국몽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도를 시기별로 제시하면서 등소평이 말했던 양 백년의 중간단계인 2035년경이면 중국이 선진화를 완료한다고 선언했다. 특히 중국은 중국몽 실현의 수단으로 2025년까지 제조업분야, 특히 IT, 우주항공, 로봇, 바이오 의약 같은 첨단 분야에서 세계를 제패,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함으로써 미국을 앞서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대양해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첨단 항공모함 12척을 가진 미국에 맞서 중국도 세척이상의 항공모함을 만들어 해양 전력에서도 미국에 맞서겠다는 담대한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지도자가 자국의 목표를 수치로, 시간으로 외부에 공표한 것은 공산당의 전략에서 볼 때 지금까지 없었던 일인데 시진핑은 과감히 밝히고 나섰다.
마. 남중국해 전역을 해양영토로 선언하고 군사기지건설
시진핑 주석은 중국본토에서 1000여마일 이상 떨어진 필리핀 북쪽부터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영역으로 펼쳐진 남중국해의 넓은 해역을 제1 구단선(九段線)에 속하는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해수에 잠긴 산호초들을 인공으로 개발, 군사기지를 설치하였다. 이에 대해 필리핀은 헤이그 국제상설재판소에 제소, 중국의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중국은 국제상설재판소의 판결에 무시하고 남중국해의 9단선내의 해역을 모두 자국의 핵심이익이 걸린 영토라면서 만패불청의 자세로 수호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석유에너지를 중동에서 수입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말라카 해협이 포함된 남중국해가 자기네들의 에너지확보를 위해 꼭 확보해야 할 해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 관련된 역사속의 우화(寓話)를 끌어내어 연고를 내세우면서 억지로 둘러대서라도 자기들의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항해자유의 원칙을 앞세우면서 중국의 영토주장을 무시하고 해상작전을 펼치는가하면 중국의 주장을 반대하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은 베트남의 캄란만에 정박할 권한을 얻었다.
3.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전략
가.브레튼 우즈(Bretton Woods)회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영국과의 패권갈등 없이 영국이 누리던 패권을 자연스럽게 승계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전승국이나 전패국 할 것 없이 모두 폐허로 변했다. 소련이외의 연합국들은 전쟁에서 이겼을 뿐 전 국토와 군사력은 철저히 망가졌다. 더욱이 해군의 함대는 거의 멸종상태였다. 육군부대를 가지고 있는 내륙국가 소련도 해군병력은 사실상 존재치 않았다.
이런 상황 하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의 세계질서를 모색하기위해 독일항복을 1여년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의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에서 국제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는 미국과 동맹한 44개연합국과 이들의 식민지에서 온 730명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미국의 제안으로 3년간 이 회의를 준비해온 미국의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와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3주에 걸쳐 회의를 주도한 끝에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개발부흥은행(IBRD)의 설립에 합의했다.
나. 새로운 자유무역 경제체제의 탄생
이 당시까지 만해도 세계는 경제문제에서는 약육강식의 무정부 상태였고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경제 질서였는데 이 회의에서 미국은 전후세계의 부흥문제를 놓고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구상을 발표하면서 참가국대표들의 동의를 구했다. 첫째 전승국으로서 미국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영토나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할 욕심이 없으며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미국의 시장을 차별 없이 개방한다. 둘째로 미국은 자국의 해군력을 통해서 다른 나라들이 해군력 없이도 전후복구와 재건에 필요한 원자재를 확보하고 원자재에 접근하고 물자를 수송할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선언했다. 셋째로 미국은 기축통화로서 달러를 유지하면서 세계경찰로서의 군사력을 가지고 국제무역질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 제안을 모든 참가국들이 받아들임으로써 흔히 말하는 자유무역질서의 대명사가 된 브레튼우즈 체제가 탄생하였다. 미국이 세계정치의 패자로서 세계의 경찰이 되어 수송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시장을 개방해준다는 것은 실로 기쁜 소식이었다. 미국의 브레튼우즈 체제로 말미암아 세계 각국은 미국의 협력을 얻으면서 군사력에 투자할 부담을 덜고 전후복구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또 군사력에 의해 지탱되던 전승국들이나 전패국들의 식민지들도 식민모국의 힘이 약화됨과 동시에 거의 모두 식민지 굴레를 벗고 해방독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 맞서 세계재패를 꿈꾸는 소련과 소련의 지원으로 내전에 승리, 중국본토를 장악한 모택동의 중국은 브레튼 우즈체제에 참가하기를 거부했다. 이 결과 전후세계는 소련, 중국과 동구라파제국을 일방으로 하고 미국을 맹주로 하는 자유세계 간에 철의 장막이 펼쳐진 가운데 모든 협력과 교류가 단절되는 냉전적 대치의 시대가 출현했다.
다. 미중관계의 개선
소련에서 스탈린이 사망한 후 중국과 소련 간에는 겉으로는 이념논쟁이라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공산세계의 리더십을 둘러싸고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소련은 중국을 자국의 위성국가로 만들려고 하지만 중국은 이를 거부했다. 소련의 위성국가들이 소련으로 부터 당하는 주권행사의 제한 즉 제한주권론을 중국은 결코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양자관계는 1968년 전쟁 일보 즉전까지 사태가 악화되었다. 미국은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몰리는 중국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1972년 키신저를 앞세우고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모택동과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양국관계는 신속히 개선의 길로 들어섰다.
모택동 사망 후 등소평이 등장하면서 미중 양국 간에는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고 중국은 경제발전의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브레튼 우즈 체제의 정신에 걸맞게 미국시장을 중국에 폭넓게 개방하고 2001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원국으로 중국을 받아들임으로써 중국이 G2수준으로 발전할 여건을 제공하였다. 이때 미국지도자들은 중국을 견제가 아닌 지원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게 해준다면 중국도 체질이 변화하여 미국주도의 자유무역체제의 규칙을 지키면서 정치민주화의 길을 내딛게 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라. 소련방의 해체.
한편 소련은 미국과 중국관계가 개선되면서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 대신에 자국이 생산하는 석유를 밑 자본으로 하여 석유수입국인 미국을 상대로 신예무기개발에 역점을 두는 군비경쟁에 나섰다. 미국보다 한 때 앞서 나갔던 우주과학 분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륙 간 탄도미사일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유럽을 압박할 중거리 미사일(INF)까지 개발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소련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도 높은 무기경쟁을 벌이면서 사우디아라비아를 포용, 석유 값 인하에 주력함으로써 소련의 석유무기화를 막았다. 우선 키신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 미국의 달러화를 석유대금 결제수단으로 합의함으로써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석유생산량을 크게 늘리게 하여 석유 값의 국제시세를 대폭으로 떨어뜨렸다. 석유 판매수익으로 국가재정을 충당하던 소련의 수익은 급락했다. 이러한 상황이 길어지자 미소간의 전개된 군비경쟁에서 소련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다가 결국 1991년 볼세비키 혁명 74년 만에 소련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해체되고 말았다. 소련이 해체됨으로 해서 미국과 중국을 서로 협력하게 했던 공동의 적은 사라졌다. 결국 세계정치상황은 미국이 제압하려고 했던 소련의 위치에 중국이 올라서는 형국으로 변하게 되었다.
마. 미중갈등의 시작
미국이 자유무역국가의 대열에 참여시켜 줌으로써 경제발전에 크게 성공한 중국은 미국이 기대했던 만큼 정치가 민주화되지도 않았고 자유무역질서의 규칙에도 따르지 않았다. 중국은 G2의 반열에 오르면서 미국이 이끌어왔던 국제질서의 수정을 요구했고 스스로 국제질서의 규칙을 자기 필요에 맞게 고치겠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갖겠다면서 양국관계를 신형대국관계로 고치자고 요구했다. 오늘날 미중대결의 본질은 한마디로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4. 현 단계 미국의 대중국전략
가. 기본배경
미국의 국제정치전문가들은 유럽에서는 러시아, 중동에서는 이란,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세력이라고 정의하고 미국의 대외정책의 중점은 이들이 미국에 맞서지 못하도록 선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시점에서는 러시아나 이란보다는 중국이 앞으로 미국과 패권을 겨루려는 실질세력으로 간주하고 대 중국견제를 미국대외정책의 핵심과제로 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중국 측 로비스트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진 Kissinger는 그의 유명한 저서 ❮중국이야기❯(On China)와 ❮세계질서❯(World Order)에서 미중관계가 대서양동맹(Trans-Atlantic Alliance)처럼 앞으로는 미중양국이 태평양을 공유하는 협력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는 키신저와는 달리 G2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해오기 때문에 미중간의 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18년 여름 한국을 방문한 그래함 엘리슨(Graham Allison)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관계에 적용된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론을 들고 나와 도전세력으로서의 중국과 방어세력으로서의 미국 간에 충돌은 불가피하지만 가능한 한 양국은 상호간에 이해를 더욱 증진하고 신뢰를 회복,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학계의 예견과 더불어 2017년 12월 트럼프가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중국을 미국에 대한 경쟁자,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을 이렇게 규정하기는 미중관계 40년의 역사상 처음이었다. 결국 냉전시기에 소련을 규정했던 미국의 전략논리가 이제는 그 목표(Target)를 중국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나.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경대결선언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가 발표된 다음해인 2018년 10월 4일 마이크 펜스(Michael Richard pence)부통령은 미국의 허드슨 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이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강도 높게 중국의 내정과 외교를 비판했다. 중국은 해킹으로 미국의 첨단기술을 불법으로 탈취하고 중국에 투자하는 미국기업들에게 시장제공의 대가로 기술이전과 지적재산권을 강탈하는가 하면 국가가 보조하는 국영기업을 무역경쟁에 앞세우는 등 불공정 무역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국가라고 규정했다. 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제시된 국제사회의 모든 요구를 하나도 준수하지 않으면서 자유무역의 혜택만 누려왔다고 비판했다. 또 약소국에 인프라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국영기업들을 내세워 차관을 제공하고 차관의 상환이 불가능해질 때 약소국의 내정에 개입, 이권을 빼앗으려는 함정을 파는 것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라고 규탄했다. 또 신장 위구르 지역과 티베트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을 구체적으로 비판하면서 국내정치에서도 인터넷 통제를 갈수록 강화, 언론자유를 철저히 차단하는 독재국가라고 규탄했다. 양국 간에는 새로운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트럼프는 자기만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만든 것처럼 미국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전략적으로 견제하기에 앞장선 대통령으로 인정받겠다는 태세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정책에 관한 한 미국의 정계는 물론이거니와 학계, 언론계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 시기에 중국에 대한 전략적 견제를 늦춘다면 결국 중국에 밀릴 수도 있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현재 미국여론은 중국의 성장이나 영향력확대가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넘볼 수 없도록 견제하자는데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다. 쉐일(Shale)가스혁명과 미국의 새로운 전략구상
미국은 트럼프 집권을 전후한 시기에 오래 동안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던 에너지 굴레와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2019년부터 미국은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에서 세계 1위가 되었으며 에너지 수출국 1위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쉐일 가스 개발기술이 향상되어 국제경쟁력을 갖는 석유와 가스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자국의 석유안보 즉 에너지 안보를 위해 중동해역에 함대를 파견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간 소련의 천연가스에 의존 했던 유럽 국가들도 미국으로부터 더 싸고 안전하게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일본과 한국도 중동이 아닌 미국으로부터 석유와 가스를 직수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세계유가를 오르고 내리게 하는데 미국의 영향력은 훨씬 커졌다. 지금의 미국은 금융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여전히 세계 GDP의 4분의 1을 장악하고 있으며 앞으로 200년 이상 에너지 걱정 없는 나라가 되었다.
라.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찰이 아니다.
이런 에너지 혁명과 때를 같이하여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찰로서의 역할을 축소해나가면서 미국의 안보지원을 받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자국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부담을 미국과 공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지원에 의존하는 안보를 안보무임승차라고 비판하면서 동맹이나 우방들과의 부담공유를 세계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간 미국은 세계경찰로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하여 지구의 도처에서 일러나는 분쟁에 직접 개입했다가 재정적자와 일반 예산적자라는 쌍둥이 적자가 해년마다 늘어나 온 국민들이 해외 개입에 피로감을 나타낸 지 오래되었다. 미국 국민여론이 이렇게 변해감에 따라 미국의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을 축소하겠다는 정책은 트럼프 아닌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나왔다. 앞으로 이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이 설사 재선에 실패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달라질 가능성은 적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유럽의 EU나 NATO 제국은 전후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일본이나 한국도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을 제압할 만큼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따라서 미국은 더 이상 적자에 시달리지 않고 미국자신의 이익, 즉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주장이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또 미국과 협력을 원하는 국가와는 협력하지만 미국을 제압하겠다는 중국의 편을 드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협력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또 트럼프는 2019년 연두교서에서 중국 측에 타국의 원천기술의 강탈이나 지적재산권의 해킹 같은 반칙적인 경제발전방식까지를 포함한 경제운용구조의 총체적인 개혁을 강도높이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시진핑이 중국 몽에 집착하고 이를 관철하기위해 중국제조 2025를 계속 추구하는 한 미중간의 무역 전쟁이 쉽사리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진핑도 자기의 비전이나 비전달성을 위해 짜놓은 구조를 변경하거나 포기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전무하기 때문에 미중대결은 당분간 불가피할 추세다.
5. 양자관계의 전망
지금 중국의 시진핑은 미국에 대해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히면서 군에 대해서는 전쟁준비를 명령해 놓고 경제에서도 미국의 관세공세에 맞대응하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중무역 갈등에서 중국이 얻는 대미흑자는 미국인들의 소비성향이 큰데 원인이 있을 뿐 중국 측에는 하등의 귀책사유가 없다고 한다. 중국의 이러한 도발적 대응에 미국이 물러선다면 미국은 스스로 패권적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수정주의로 규정하고 펜스 부통령의 정책연설을 통해 강력히 대처할 것을 밝힌 것은 중국의 도전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시진핑의 결사항전주장에 대해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들의 상당수는 시진핑을 지지하면서 대결노선에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중국의 한 군 장성은 미사일로 미국항공모함 2척을 파괴, 만 명의 미군장병을 죽여서 미국을 겁주자는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도기도 했다.
가. 내부의 갈등 요인
중국공산당내부의 모든 세력들이 시진핑의 주장이나 입장에 공감, 지지할 것으로만 기대할 수는 없다.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우려가 지적되고 있다.
첫째 우려는 우선 이론적으로 시진핑이 도광양회라는 등소평 노선을 너무 서둘러 폐기함으로써 미국의 반발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등소평은 공산당 창건 100주년(1921~2021)과 중국건국 100년(1949~2049)이라는 양 백년이 끝나는 시점까지 사회주의 초기단계(자본축적단계)를 끌고 나가야 중국의 안정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중국경제가 G2로 성장함과 때를 같이하여 시진핑은 신시대이론을 내세워 등소평 노선을 이탈한 결과 오늘과 같은 미국공세를 불렀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파리나 호랑이도 모두 때려잡는다는 반부패투쟁이 인민들에게는 박수를 받지만 공산당원이 아니고는 누구도 부패를 할 수 없는 중국의 당 국가체제(黨國家體制)하에서는 반부패투쟁이 정적(政敵)제거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일고 있다.
셋째로는 시진핑이 중국공산당을 마르크스주의에 가장 충직한 정당임을 강조함으로써(제19차당대회 결의사항) 중국의 민주개혁을 기대하던 서방측을 낙담시켰고 중국내부에서도 당내 수직적 민주주의를 통한 체제의 자정(自淨)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난이 세를 얻고 있다.
넷째로 강도 높은 방화벽(Great Fire-Wall)을 통한 인터넷이나 매스컴의 단속통제가 민주화개혁에 근본적으로 역행한다는 비판이 대내외적으로 연일 쏟아져 나온다.
다섯째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시진핑 체제하에서 갈수록 부실화해가는 국영기업이 몰고 올 금융파탄의 위험성이다. 중국의 큰 은행들은 국영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사업의 효율성을 묻지 않고 당 방침에 따라 무조건 융자하기 때문에 대출회수전망이 없는 금융부실화가 해가 갈수록 누적된다는 것이다.
나. 대외정책상의 문제
또 외교 면에서도 우려가 튀어나오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사업의 경우 치밀한 준비 없이 국영기업들이 나서서 약소국에 차관을 제공한 후 중국의 인력과 기술로 해당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보잘 것 없고 또 차관상환이 어려워지면 약소국가들의 내정에 간섭, 이권을 챙기기 때문에 펜스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중국이 차관함정(借款陷穽)을 판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부가해서 중국외교의 오랜 흐름인 원교근공(遠交近攻) 때문에 주변 국가들은 중국이 말하는 아시아 운명공동체 론에 동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과의 협력을 외면하려든다.
또 시진핑이 펼치는 남중국해역에 인공섬을 만들어 군사기지를 만드는 조치도 21세기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행보라면서 지금은 통신 무기체계의 발달로 해외기지무용론이 일반화 되었고 기지(基地)보다는 가치 확산에 기반을 둔 동맹확보를 중시한다고 말하면서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몽(中國夢)도 결국은 19세기형 강대국 모형에 사로잡혀 정치에 경제를 예속시키는 전시대적 근대국가 패러다임을 모방하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을 가한다.
이와 같은 내치외교에 대한 비판 때문에 지금 시진핑의 중국은 미국의 공세라는 외환(外患)으로 말미암아 내우(內憂)를 초래할 리스크에 걸려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 공산당의 자정(自淨)능력 소멸
특히 시진핑 체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공산당의 대내외정책에서 나타나는 이상과 같은 오류나 실책을 스스로 정화(淨化)하거나 시정(是正)할 능력이 시진핑 체제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중국몽이라는 큰 꿈을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시진핑 주석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당이 그에게 힘을 실어줄 것을 요청, 중국공산당은 제 19차 당 대회의 결의로 중국 국가주석의 임기제한조항을 헌법에서 폐지했다. 이 결과 5년에 한번 씩 중국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8500만 당원 중에서 엄선된 150여명의 당 최고전략가들이 모여 무제한 토론을 통해 당 주석을 선출하고 오도된 정책을 바로잡던 당의 자정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수직적 민주주의가 후퇴한 결과 시진핑 1인 독재만 강화되고 정치개혁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6ㅅ
라. 한국학계의 일부견해
그러나 한국의 중국연구가들 가운데는 트럼프 방식으로는 시진핑을 이길 수 없는 여섯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➀ 중국은 미국에 거래로 접근할 것이다. 거래의 미끼로서 트럼프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미국 제품을 많이 수입해준다. 트럼프는 좋아라하고 중국에 대한 압박을 푼다. 트럼프에게는 '이번에야 말로 중국 성장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단호한 전략적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➁미국의 '시장(市場)'은 중국의 '당(黨)'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위기가 닥치면 당이 국가의 전면에 나서서 자원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하고, 동원한다. 8000만 엘리트로 구성된 당 권력은 선전을 통해 민의를 모으고, 일사분란하게 외부공세에 대응한다. 시장의 눈치를 봐가며 선거를 치러야 하는 트럼프의 미국이 결코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시진핑은 지구전(持久戰)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Lincicomb).
➂ 중국은 미국이 지금까지 꺾는데 성공했던 소련이 아니고, 일본도 아니다. 트럼프는 동맹을 끌어들여 중국을 봉쇄하고, 중국 기업을 국제 분업체계에서 몰아내려 한다. 소련과 일본에 했던 그대로다. 그러나 소련과는 달리 중국은 미국 경제와 너무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다.
➃ 일본은 미국에 안보를 의존했지만, 중국은 안보적으로 미국과 별개다. 일본이야 '미국을 자칫 잘못 건드리면 경제가 파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혔지만, 중국에는 봉쇄와 압박이 통하지 않는다.
➄미국도 중국과의 무역대결이 지속될 경우 미국경제가 입는 손실도 크기 때문에 그 수준은 미국경제가 감당할 정도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⑥또 미국이 중국을 아무리 견제하려고 해도 중국은 이미 기술 조작, 개발 등에서 굴기에 진입했기 때문에 이미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니다. (옌쉐퉁(閻學通) 교수 주장)
따라서 내우(內憂)가 심각히 확산되지 않는 한 미국이 대결에서 궁극적인 승자가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한다.
6. 한국의 선택
미국은 새해 국방예산을 6860억 달러로 책정, 작년대비 13%를 증액시키고 있다. 이 규모는 군사력 제2위에서 9위까지를 포함하는 국가들의 군사예산을 합친 총액을 상회한다. 트럼프의 대중 공세는 레이건 대통령이 마치 소련을 상대로 벌이는 군비경쟁(Star War)을 연상시킨다. 미국은 대양해군건설과 중장거리 미사일 배치에 힘을 쏟고 있는 중국을 제압하는데 모자람이 없을 만큼 강도 높게 군비를 증강한다. 군사력, 기술력, 외교력, 소프트 파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중국견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석유의 8분의 1을 소비하고 미국은 3분의 2ㅣ를 소비하는데 미국은 이제 자급단계를 넘어서서 수출단계에 진입했다.
시진핑은 트럼프의 일방주의가 갖는 약점을 이용, EU와 미국의 이간, 일본과 미국의 간극확대 등을 획책하지만 21세기에도 마르크스주의 노선에 가장 충직하겠다는 시진핑의 중국에 선뜻 동조할 유럽 국가들은 거의 없다. 유럽은 사상사적으로 마르크시즘을 극복한지 오래고 또 중국이 지금까지 서방측 기업들에게 강탈적으로 요구해온 기술이전이나 지식재산권탈취에 관한 적대적 태도에서는 미국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공세이외에도 경제건설에 필요한 자원, 시장, 에너지의 확보에 미국의 견제정책때문에 갈수록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시진핑은 최근 신형대국관계라는 말도 신형국제관계로 표현을 바꾸고 주변국들에 대해서도 포용적 자세를 취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사드(THAAD)파동을 겪으면서 중국의 민낯을 본 후부터는 그동안 역사 속에서 당해온 중국의 갑 질을 되새기면서 중국에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다. 현시점에서 시진핑의 대미도전은 중국이 소성(小成)에 도취, 미국이 지닌 엄청난 강점을 과소평가한데 기인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러한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한국정부가 외교적 문맹(文盲)이 아니라면 우리는 당연히 통상 면에서 미국으로부터 불리(不利)를 당하지 않도록 실리를 챙기는 한편 한국 땅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안보우방을 가장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주둔 미군기지 중에서 가장 큰 평택기지를 가진 우리로서는 선택의 폭이나 여지가 별로 없다. 지금 우리는 미국의 군사동맹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지정학적인 근접국가로서 우리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맺고 있다. 미중 양국과 불편한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바람지하지만 국제정치에서 등거리 외교는 쉽지 않다. 특히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1500억 달러 규모의 무역을 하는데 비해 중국과는 3000억 달러 규모의 무역거래를 하고 있는 점에서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숙제를 풀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국가적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미중관계는 빨리 결론이 나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휴전과 갈등을 되풀이하는 지루한 과정이 연출될 것이다. 우리는 한 치의 방심도 없이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일이 없도록 국민적 단합과 지혜의 발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