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국사대주의를 경계 한다

 

한국의 친 중국 인사들은 36년간의 일본지배에는 분개하면서도 1250년 동안 한국을 소국으로 짓밟아온 중국의 역사행태는 까맣게 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을 인식하는 내재적 접근방식을 중국에 적용하면서 중국의 미국비판에 맞장구치고 중국의 경제적 약진을 찬양한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중국의 세기가 왔으면 하는 기대도 넘치는 것 같다.

 

이들은 이제 강대국들 간의 세력전이도 그 시대의 핵심기술을 선점한 세력이 주도한다는 기술경쟁이론을 내세우면서 중국이 첨단기술면에서 미국을 앞선 것처럼 말한다. 또 어떤 한국학자는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가가 된 이후 미국 국력의 50% 이상까지 치고 올라온 국가가 없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 GDP3분의 2까지 따라왔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도 전혀 없다""기존의 대국 경쟁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국 편으로 기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1215일 중국방문 시 스스로 소국임을 자처하면서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몽 실현에 중견국가로서 일익을 맡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특보라는 문정인도 2019124일 비록 가상적 상황임을 전제하기는 했지만 미국이 나가면 중국의 핵우산을 쓰고라도 북과 비핵화협상을 벌일 수 있다고 발언, 말썽을 일으켰다. 중국에 대한 문정권의 3() 약속부터 현재까지 집권층 인사들의 언동을 보면 서울이 미중패권 전쟁 상황에서 친 중(親中)으로 기울고 있다는 미국 측 일부의 비판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중거리미사일(INF) 배치반대, 사드추가배치반대, ,,일 안보협력반대라는 등 중국의 내정 간섭적 요구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중국 특색적 사회주의는 중국의 최고부자 1000명중 중국공산당 간부가 160명에 이를 정도의 불평등한 중국현실을 제도화하고 선진투자기업들로 부터 기술, 경영 노하우를 강탈하거나 지적 재산권을 해킹해서라도 자국만 발전시키면 된다는 중상주의적 국가자본보주의적 논리다.

 

한국은 중국에 3불 약속(사드 추가 불배치, 미국의 MD에 불가입, 한미일 안보조약 불참여)를 스스로 약속했지만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풀리지 않고 있다. 관광, 문화예술교류는 철저히 닫혀있으며 학술교류의 문만 조금 열고 있는데 그것도 목적은 한국학계에 친 중 세력을 키우고 미중 패권싸움에서 중국 편을 들 선전요원확보용인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대륙세력의 끝자락에 붙어 중국에 끌려 다니느냐 아니면 해양세력의 대륙진출교두보가 되어 국력신장을 지속할 것이냐를 결단해야한다. 우리 한국을 3-5그룹(인구 5000만 이상에 1인당 GDP 3만 달러이상인 국가가 가입하는 국가그룹)의 멤버가 되게 한 것은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의 편이었기 때문임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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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은 중국에 강공책을 휘두르는가.

 

이 영 일 (대한민국 헌정회 통일연구위원장)

1. 들어가면서

 

바야흐로 미국과 중국 간에 무역 전쟁의 불이 붙었다. 우리가 미중 무역 분쟁을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현재 펼쳐지고 있는 양국갈등이 흔히 국가들 간에 일시적으로 시작되었다가 끝나는 분쟁차원을 넘어서서 군사 대결만을 피할 뿐 그 밖의 모든 차원에서 양국이 승패를 다투기 때문이다. 지구 최강자들 간에 무역거래를 앞세운 격전이기 때문에 일반전쟁과는 달리 다른 나라들의 중립조차 허용치 않는 상황이다. 양대 강국과 거래하는 모든 국가들은 선택의 딜레마를 피할 수 없다. 또 양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갈등의 직접 영향을 받는 약소국들은 상황에 따라 대리전쟁(Proxy War)에 휘말릴 수도 있다. 현재 미중갈등은 양자 간에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는 심리전차원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조치, 예컨대 관세부과, 물류와 자원이용, 기술의 이전까지의 통제를 포함한 봉쇄와 배제라는 심각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갈등도 본질적으로는 자원과 물류의 안전 확보라는 경제문제가 핵심이지만 이 해역에서 전개되는 미중갈등은 중국이 이 해역을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인공섬에 군사시설을 만들고 미국은 국제법상 중국영토가 아니라면서 항해 자유를 명분으로 해역침투를 강행한다.

한국은 미중 양대 강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다. 양국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도 쉽지 않을 만큼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처지다. 한국은 미국과는 군사동맹 국가이며 중국과는 이른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다. -이 관계의 정확한 의미는 중국만이 알뿐 한국인들은 잘 모른다. 이런 상황 하에서 한국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본고는 이하에서 왜 미국이 현시점에서 중국에 유례없이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이에 중국도 결사항전으로 맞대응하겠다고 나서는가를 총체적으로 개관하고 금후 한국의 진로를 검토코자 한다.

 

2. 미중간의 협력과 갈등

 

미국과 중국 간에 시작된 무역 갈등은 갈수록 확대되면서 양국 간의 패권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상호 협력적이던 양국관계가 이처럼 심각한 대립국면으로 치닫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미중 양국의 상대방에 대한 인식과 기대의 차이에 기인한다.

 

. 미국의 입장과 기대

우선 미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양성화되기 시작한 중소(中蘇)분쟁이 군사대결로 변해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냉전시대의 대 중국 봉쇄정책(Containment)을 포용(Engagement)정책으로 전환했다. 미국은 중소대립상황에서 중국을 옹호, 소련이 동유럽에서처럼 중국을 침공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면서 중국을 지원하였다. 미국은 대만을 외교적으로 희생시키면서 중국을 포용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에서 등소평(鄧小平)이 등장, 개혁개방정책을 펼치면서 경제발전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고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경제개혁에 상응하는 정치개혁이 이루어지고 인권상황도 개선될 것을 기대했다. 미국은 이러한 기대에서 중국경제발전에 필요한 두 가지의 특혜를 제공했다. 하나는 2001년 중국이 자유무역체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의 길을 터주었다. 다른 하나는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최혜국(最惠國)대우를 중국에 허용, 대미무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최근 미중 간에 관세전쟁이 불붙기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중국 수입 물자에 4%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은 미국상품에 10%관세를 매겼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적 배려에 힘입어 중국은 연 평균 10%를 상회하는 경제성장을 달성, 201071일자로 총량 GDP에서 일본을 앞지르고 G2의 고지에 올라섰다.

 

. 경제 분야에서의 갈등 시작

미국의 공화당은 민주당과는 달리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부터 중국의 발전이 필연적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중국의 실상을 치밀하게 분석, 중국제압전략을 준비해왔다. 미국공화당의 주류인 미국보수연합(ACU)의 이론가 Peter Navarro2011년 출간된 자기 저서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 Confronting the Dragon A Global Call to Action)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강경 노선을 뒷받침할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트럼프의 대선캠프에 뛰어들었다. 그는 트럼프 가 당선된 후 백악관에 신설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을 맡았다가 현재는 백악관 무역 제조업 정책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책의 요지는 중국 공산당이 불공정무역과 비관세장벽을 앞세운 보호주의로 미국의 산업과 취업 기회를 약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연간 무역적자 8000억 달러 가운데 절반이 넘는 5040억 달러가 중국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도 이 책에 담겨있다. 그는 중국을 불법적인 수출 보조와 불합리한 수입 관세 부과, 환율 조작, 짝퉁 생산, 사이버공격을 통한 지식재산권 침해, 외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제, 대규모 환경오염 등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국가로 묘사한다. 그는 이러한 중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불공정하게 취득한 재화로 만든 중국산 제품에 45% 수준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저지시키며 지식재산권 및 사업 기밀의 대중유출을 철저히 차단하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 등을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관세폭탄을 투척하고 정보통신 사업과 특히 G5사업에 대한 대중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ZTE, 화웨이(華爲) 등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에 강력한 제동을 걸어 Navarro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한다. Navarro는 중국처럼 국가자본주의와 중상주의로 나가는 세력이 세계시장에서 판치는 한 자유무역주의는 살길이 없다고 설파한다.

트럼프는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중국이 자유무역제도의 제반규칙-중국의 WTO 가입조건-을 준수하는 내부개혁을 단행하지 않는 한 고율관세를 계속 퍼붓겠다고 밝혔다. 서유럽을 비롯하여 G20국가들이 트럼프의 조치를 묵인하는 것은 그들 역시 중국과의 거래에서 유사한 아픔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 정치 분야의 갈등

중국공산당 제19차 당대표자대회는 미국이 중국을 정치차원에서 위협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진핑 주석은 당 대회 연설에서 중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민족주의 구호로서 중국몽(中國夢)을 슬로건으로 내놨다. 그는 국가주석이 되면서 즉각 국민통합을 강조하면서 내치외교의 모든 분야에서 자기 1인 영도(領導)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경제, 외사, 인터넷통제 등 주요결정을 만들어 내는 영도소조 중 여섯 개의 주요소조의 조장을 시진핑 자신이 직접 맡으면서 친정에 나섰다.

또 중국경제가 일본을 앞선 현실에 비추어 중국인들의 생각도 새로운 상황에 맞도록 바뀌어야 한다면서 등소평(鄧小平)이 제시한 도광양회(韜光養晦)노선에 중국이 더 이상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왕후닝((王滬寧)등 시진핑의 책사들이 시진핑이 영도하는 새 체제의 명칭을 도광양회를 넘어선 신시대 중국특색적 사회주의로 바꾼 까닭이다. 이들은 나아가 시진핑이 중국몽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공산당이 그의 지도력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면서 국가주석의 임기제한조항을 개헌을 통해 삭제했다. 미국이 기대했던 정치개혁이 아니라 중국정치를 모택동 시대로 역행시키는 것이었다. 동시에 시진핑은 대내통치에서 인터넷 통신망을 철저히 통제관리, 외국포탈(미국의 Google은 물론 한국의 Naver, Daum)의 진입을 차단하는가 하면 화웨이(華爲)를 통해 주민들에 대한 감시체제를 강화했다. 인민해방군예산보다 대내통치와 주민감시에 쓰이는 공안예산을 훨씬 증액했다. 경제가 발전될수록 인권과 자유가 신장되는 것이 아니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처럼 감시와 억제가 심화되었다. 또 시진핑은 중국내의 고질병으로 부정부패척결을 강력히 추진하지만 공산당원들 모두의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공산당원이 아닌 한 부정부패를 꿈꿀 수 없는 체제하에서 진행되는 반부패투쟁은 그것이 곧 정적(政敵)제거, 1인 독재강화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신징위구르 지역에서 회교도 주민들을 강압적으로 집단수용, 시진핑 주석이 강행한 중국공산당의 세뇌교육은 소수민족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로 지적되고 있다.

 

3. 미중 패권싸움의 시작

 

현재 미중의 싸움은 누가보아도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다. 미국은 패권싸움 아닌 공정무역을 향한 가치투쟁이라지만 그것은 명분이다.

 

가 중국의 선공(先攻)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고 본다. 시진핑은 집권 후 최초의 미국방문에서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론을 제안했다. 미중양국이 서로 간에 다툼 없이 공동패자(共同覇者)가 되자는 것이다. 태평양은 넓기 때문에 미중양국이 대등한 권한과 책임을 갖자면서 패권을 미중양국이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미국이 수용할리 없다. 이 주장이 먹히지 않자 시진핑은 20171018일에 열린 19차 중국공산당 당 대회에서 중국의 당장(黨章)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적 사회주의로 개정하는 한편 당 대회 보고를 통해 이른바 양 백년발전계획구상과 중국제조2025을 선포한다.

양 백년 발전계획은 중국공산당창당 100(1921~2021)과 건국100(1949~2049)중 창당 100년이 되는 2020년에는 중국사회가 더 높은 단계의 샤오캉(小康)사회를 완성, 완벽한 복지사회를 이룩한다는 것이고 건국100년이 되는 205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최강의 선진 국가를 완성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이르는 도정(道程)15년씩으로 나누어 2035년 까지 최고도로 완성된 샤오캉 사회를 이룩하면서 이 기간 중에 "중국제조 2025"의 과제로서 IT, AI, Robotics, Bio산업 등 10대 전략과제를 완성, 세계최강의 선진 국가건설의 토대를 다진다. 이어 2050년에는 지구 최강의 선진 복지국가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도발적 구상발표는 곧 모든 면에서 미국을 제압하겠다는 포부의 피력이다. 이것이 곧 시진핑의 정치상표(政治商標)가 된 중국 몽이며 1832년 세계 제1GNP국가였던 중국의 위상을 되찾자는 것이다. 이런 꿈을 이루도록 공산당이 시진핑을 밀어주는 힘이 임기제한철폐와 당장개정이다.

 

. 미국의 대응조치

미국은 이를 좌시할 리 없다. 하버드 대학교수 Graham Allison은 그의 예정된 전쟁이라는 책에서 고대 희랍전사(戰史)를 인용, Thucydides의 함정을 이론화하고 미중관계가 패권대결로 치달을 것인데 핵시대인 오늘날 대결이 양성화되면 지구파멸의 위기가 오기 때문에 긴 눈으로 양자관계를 조망하면서 협력의 방도를 안출해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2018104일 펜스 부통령의 미국 허드슨 연구소에서 행한 정책연설을 통해 누가 들어도 선전포고라고 할 만한 강도 높은 대 중국 비판연설을 했다. 연설 내용은 앞서 Navarro가 그의 저서에서 밝힌 중국공산당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낱낱이 예거했고 여기에 중국내 소수민족의 인권문제를 지적하였다. 또 시진핑 정권의 외교상표의 하나로 된 11(Belt and Road Initiative: 약칭 BRI)를 빈곤한 약소국에 외자제공이라는 함정을 파놓고 거기에 빠진 국가들이 채무불이행시 모든 이권을 빼앗아 가는 나쁜 행동을 한다고 지적하였다.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으로 수출된 중국 상품에 대해 25%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관세폭탄은 보호무역주의를 지향해서가 아니라 중국의 불공정 무역태도를 바로 잡자는 것이며 이는 자유무역의 포기가 아니라 공정한 자유무역질서 확립에 필요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자유무역주의 국제질서를 따르려면 외국투자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중국내부의 모든 제도를 개혁하고 체제내의 수많은 비과세 장벽을 제거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처럼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라는 것이다.

 

. 중국 측 대응

시진핑은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모두 개혁하라는 요구에 대해 2의 남경조약을 체결하자는 것이냐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미국에 대해 전당(全黨)과 전군(全軍)이 나서서 결사 항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무역관행이 거래당사자간의 합의에 의한 것인 만큼 이를 인정해야 하며 설사 기술을 강제로 이전시키거나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쟁송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도 1인당 GNP5000달러 미만이었을 때는 특허료나 기술료 등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선례가 많았다면서 유독 중국에 대해서만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또 중국이 외국원조에 메여 살기보다는 오늘날처럼 자생력을 길러 큰 발전을 이룬 것이야말로 IMF나 세계은행이 바라는 이상이 아니냐고 따진다.

 

4. 금후의 전망과 한국의 선택

 

지금 세계여론은 미국 우세를 점친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제압하기에는 중국의 실력이 예상외로 강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 미국우세론

지금 미국은 역량 면에서 중국이 갖지 못한 두 가지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이다. 중국은 세계 석유에너지의 8분의 1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지만 미국은 세일가스혁명으로 에너지를 자급하게 되었다. 여기에 미국은 우수한 대학과 기술수준, 젊은 인구(Demographic Index), 민주정치체제로서 자기 정화(淨化)능력이 강하며 아직도 군사력은 중국에 대해 압도적으로 위위를 점하고 있다. 미국은 이제 석유 개발 기구(OPEC)들을 의식 않고 세계정치를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 중국우세론

영국의 사학자 Jaques Martin은 그가 쓴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When China Rules The World)' 를 발표한 데이어 이제 중국은 모방하는 나라가 아니라 창조하는 나라로 위상이 바뀌었으며 화웨이를 비롯한 첨단 산업분야에서 기술선도국가로서의 중국리더십은 미국을 앞서갈 뿐만 아니라 구매력가격(ppp)에서도 미국을 앞서갔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중국학자로서 옌쉐퉁(閻學通)은 그가 쓴 “2023년의 중국에서 바야흐로 중국은 세계재패를 도모할 모든 능력을 이미 비축했기 때문에 미중패권싸움은 지구전(持久戰)으로 버티면 미국은 중국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 한국의 선택

한국은 모든 여건에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론은 타당성을 잃고 있다. 지금 한국에는 세계 최강의 미군 28,500명이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주둔해 있다. 여기에 세계적 전략가의 한 사람인 해리 해리스(Harry Harrys)장군이 미국대사를 맡고 있다. 조선조 말기에 중국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용산 병영에 3000명의 청나라 군대를 가지고 조선왕정을 쥐락펴락 하던 때와 지금 사정은 다르지만 외국군이 국가의 중심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메시지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지금 중국은 우리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라는 중국식 표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한국제일의 무역파트너로서 우리의 대 중국무역의존도는 26%에 이르기 때문에 중국에 등 돌리기도 쉽잖다. 그렇다고 한국이 미중양국에 양다리를 걸치는 헤징(hedging)전략을 택할 수도 없다.

결국 한국은 정부와 기업이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데 정부로서는 한미동맹의 요구에 맞춰서 중국이 아닌 미국과의 협력에 중점을 두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의지를 명시적으로 밝혀 미국의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지난 20여 년간 중국기업들을 상대로 벌여온 거래실적을 감안할 때 기업들 간의 거래관행과 상도를 벗어난 선택을 해서는 안 될 것이며 미중관계의 변화를 내다보면서 교류와 협력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도리밖에 없다. 한국정부는 미국이 한국기업들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대미교섭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현재처럼 중 무역 갈등상황 속에서 선택의 문제는 기업들 문제라면서 두 손 놓는 정부가 되어서는 안 도리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중국의 내부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트럼프의 강공으로 시진핑의 권력유지의 핵심인 주민상대로 촘촘히 짜여진 감시 체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1인 독재와 정치개혁외면에 대한 중국지식인들의 반발이 갈수록 높아지고 등소평의 도광양회 지지 파들의 움직임도 시진핑 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시진핑 주석 1인의 시한없는 독재 통치는 개혁개방시대라는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미국정부가 소련해체연구로 명성을 얻은 Kiron Skinner박사를 미 국무성 정책기획국장으로 임명한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또 지난 6월 하순에 홍콩에서 들고 일어난 범죄인 송환법제정반대 시위는 중국공산당이 내세운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커다란 시련에 봉착하게 되었고 하나의 중국을 인정치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동과 이에 부응하려는 타이완의 태도역시 시진핑의 중국 몽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미중 양국 간의 승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구 최강들 간의 협상은 진행과 중단을 거듭하지만 내외정세에 비추어 중국은 미국의 공정거래요구를 끝까지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나름의 체면(面子)을 유지하는 선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공정무역절차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양자관계를 매듭지으면서 내일의 승리를 기약할 것이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수상이 미국은 상황이 바뀌면 언젠가 아시아를 떠날 터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그때에도 다시 만나야 할 상대가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는 항상 긴 호흡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견해에도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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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의 전망

이 영 일(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이글은 헌정지 2019년 1월호에 발표된 것이 초고이고 본고의 내용은 2019년 2월 14일 군산 모 공군기지에서 교양강좌로 행한 강의전문이다ㅣ.

목 차

1. 들어가기

2.중국이 먼저 시작한 도전

. 도광양회에서 유소작위로

. 신형대국관계 론을 주장

. 아시아에서 미국몰아내기 시도

. 중국 몽을 비전으로 제시

. 남중국해 전역을 해양영토로 선언하고 군사기지건설

3.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전략

. 브리튼 우즈(Bretton Woods)회의소집

. 새로운 자유무역체제의 탄생

. 미중관계의 개선

. 소련방의 해체

. 미중갈등의 시작

4. 현 단계 미국의 대 중국전략

. 기본배경

.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경대결선언

. 쉐일가스(Shale Gas) 혁명과 미국의 새로운 전략구상

.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찰이 아니다.

5. 양자관계의 전망

. 중국내부의 갈등요인

. 대외정책상의 문제

. 공산당의 자정능력소멸

. 한국학계의 일부견해

6. 한국의 선택

 

1. 들어가면서

 

바야흐로 미국과 중국 간에 무역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무역국가들 간에 일시적으로 일어났다가 곧 결말이 나는 경제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은 외견상으로는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거래에서 아주 큰 폭의 적자를 보고 있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양국이 부딪치는 갈등의 저변에는 세계정치에서 미국이 누리는 패권(覇權,Hegemon)에 중국이 도전하기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러면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데 무슨 전쟁을 패권전쟁이라고 부르는지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국제사회는 잘 아시다시피 정부가 없는 무정부상태이기 때문에 항상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약육강식이 지배해 왔다. 그러나 여러 국가 중에서 힘이 제일 강한 국가가 나서서 다른 국가들이 안전보장과 경제거래의 편의를 도모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규칙을 만들고 위반자를 다스려 국제질서를 유지해 나가는데 이 경우에 강한 국가를 패권국가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여 기존의 패권 국가를 누르고 새 패권국가가 등장하는데 역사적으로는 이러한 패권교체_세력교체가 16번 일어났고 이중 14번 전쟁을 통해서 패권이 교체되었고 오직 4번만이 전쟁 없이 패권을 신흥도전세력에게 물려주었다고 미국 하버드대학의 Graham Allison교수는 말하고 있다.

앨리슨 교수는 기존의 패권국들은 새로 부상하는 도전국가들이 자기의 지위를 넘보는 경향이 있음을 간파하고 거기에 대비하게 된다. 신흥 도전 국가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기존 패권국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반드시 양자 간에 갈등을 유발하는데 이를 투키디데스 함정(Thucidides Trap)이라고 한다. 투키디데스는 고대 희랍의 역사학자인데 당시 지중해 일대의 패권국인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의 새로운 부상에 위기를 느끼고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일으켜 그리스를 멸망시킨 고사를 인용하면서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을 역사에 남겼다. 그는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전사했지만 그가 쓴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는 기존패권국가와 새로 부상되는 신흥국가간에 패권을 다툴 전쟁이 예상될 때 튀어나오는 용어로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국제정치학의 명언을 남겼다.

 

그래함 엘리슨은 지금의 미국과 중국관계도 겉으로는 무역 갈등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세계정치의 패권을 겨루는 싸움이기 때문에 단순 무역경쟁이 아니고 투키디데스함정에 빠지는 패권경쟁으로 보아야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미중 양국 간 경쟁이나 갈등은 어느 일방이 타방에 무릎을 꿇을 때까지 장기에 걸쳐(30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승패를 겨루는 심각한 전쟁 그 자체로 보는 것이다.

 

핵 보유 강대국 간에는 서로 확증파괴력(MAD)이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에 군사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군사전쟁의 형태는 취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군사외적 방법으로 상대방의 패권도전의사가 완전히 꺾기거나 무력화될 때까지 경쟁과 대결이 이어지고 여기에는 무역, 시장, 식량, 에너지, 원자재, 기술력 등에 대한 접근 차단이나 방해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외교 및 동맹결속까지를 포함하는 다방면에 걸치는 대결이 양성화된다.

 

이러한 상황이 나타날 경우 한국처럼 지정학적으로 미중 양국의 영향권에 속하면서 동시에 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갈등의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선택해야할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고 선택이 잘못될 경우 국가존립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어느 경우에나 고래싸움에 새우 등터지는 상황을 피하기 힘들다. 오직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를 면밀히 타산, 승자 쪽을 택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하에서 우리의 선택과 진로를 모색할 상황들을 총체적으로 분석해보기로 한다.

 

2. 그러면 누가 먼저 이 전쟁을 시작했는가.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

 

.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

중국은 1820년까지 만해도 세계GDP33%를 차지하는 강대국으로서 경제력에서는 G2아닌 G1이었다. 그러나 아편전쟁에서 패한 후(1842)부터 내리막길을 걸어 중국에서는 해군력이 와해되고 공산당이 집권한 모택동(毛澤東)시절에도 죽()의 장막에 갇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가운데 총량 GDP는 세계 GDP2%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모택동 사후 등소평(鄧小平)이 집권한 후 13년 동안(1976~1989)개혁개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당의 역할과 정부의 역할을 구별하면서 정부주도로 경제개발에 주력한 결과 중국경제수준은 세계 GDP15%까지 올라섰다.

 

등소평은 이때 자본축적이 부족하고 기술력도 떨어지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견제를 피하면서 튼실한 국력을 배양하려면 발톱을 숨기고 힘을 기르는데 주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 백년 즉 중국공산당의 창당100(1921~2021)과 중국의 건국 100(1949-2049)이 끝나는 시점을 넘어 경제발전이 더 높은 단계에 오르기까지는 힘을 기르는데 만 충실해야 한다는 이른바 도광양회 노선을 따르도록 후대에게 유지를 남겼다. 등소평의 뒤를 이은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燾)는 도광양회의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그 정도에 맞게 국제문제에 중국의 목소리를 내자는 입장을 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주석이 등장하면서부터 중국의 대외정책노선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이렇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에 대한 미국의 지도력이 흔들리고 서구열강이 하나같이 경제적으로 휘청거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맞추어 중국은 2010730일을 기점으로 세계 GDP 총량에서 에서 일본을 재끼고 G2의 지위에 올랐다. 또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서구 선진국들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포퓰리즘에 약한 민주주의를 이용하여 포퓰리즘으로 정권을 잡겠다는 세력들이 등장하여 민주정치의 위기가 심화되었다. 이때 중국은 베이징 컨센서스가 워싱턴 컨센서스보다 보다 유효한 체제라는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은 자기들이 총량 GDP가 일본을 앞지르고 미국의 총량 GDP의 절반 수준까지 따라잡자 상황을 판단하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전략 참모들은 우리가 변화된 정세에 맞게 생각하는 방식만 바꾸면 중국도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신형 대국 관계론의 주창

 

중국의 리더십이 후진타오로부터 시진핑으로 바뀌면서 중국외교사상에서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신형대국관계 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중국도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세계문제에 대해 중국 나름의 발언권을 행사하면서 자국의 핵심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고 실력이 향상되면 상황을 보는 생각도 변해야 한다면서 중국외교는 이제 더 이상 도광양회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진핑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중 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을 피하려면 중국을 미국이 자국과 맞장을 트는 대국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리 없었다. 중국이 경제력에 알맞게 책임 있는 강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미국주도의 세계질서를 중국과 대등한 자격에서 논하자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거부했다.

 

. 아시아에서 미국몰아내기 시도

 

시진핑 주석은 2014520일 중국 샹하이에서 열린 제6차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Conference on Interaction an Confidence builing in Asia))에서 아시아 역내 국가들을 운명공동체라고 정의하면서 집단안보론을 주창,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들이 주축이 되어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아시아 집단안보구상에서 미국을 배제했다. 한마디로 아시아 대륙에서 미국을 몰아내자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영국의 The Economist지는 중국의 GDP가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했는가하면 미국의 금융회사들도 The Economist보다는 시기는 뒤로 잡았지만 2025년부터(JP.Morgan) 27(Goldman Sachs)사이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을 얻어 중국공산당 18차 당대회 예비회담에서는 미국인구는 중국에 한참 뒤지며 자원은 피차 비슷하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 중국 몽을 비전으로 제시

 

시진핑 주석은 그가 공산당 주석에 취임하면서 위대한 중국의 부흥을 강조하면서 자기의 비전으로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웠다. 아편전쟁패전이래 중국인민들이 겪었던 수모를 넘어서서 세계의 강자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민족주의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다.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제18차 공산당 대회까지 에서의 중국의 대미도전은 말로 하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은 중국몽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도를 시기별로 제시하면서 등소평이 말했던 양 백년의 중간단계인 2035년경이면 중국이 선진화를 완료한다고 선언했다. 특히 중국은 중국몽 실현의 수단으로 2025년까지 제조업분야, 특히 IT, 우주항공, 로봇, 바이오 의약 같은 첨단 분야에서 세계를 제패,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함으로써 미국을 앞서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대양해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첨단 항공모함 12척을 가진 미국에 맞서 중국도 세척이상의 항공모함을 만들어 해양 전력에서도 미국에 맞서겠다는 담대한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지도자가 자국의 목표를 수치로, 시간으로 외부에 공표한 것은 공산당의 전략에서 볼 때 지금까지 없었던 일인데 시진핑은 과감히 밝히고 나섰다.

 

. 남중국해 전역을 해양영토로 선언하고 군사기지건설

 

시진핑 주석은 중국본토에서 1000여마일 이상 떨어진 필리핀 북쪽부터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영역으로 펼쳐진 남중국해의 넓은 해역을 제1 구단선(九段線)에 속하는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해수에 잠긴 산호초들을 인공으로 개발, 군사기지를 설치하였다. 이에 대해 필리핀은 헤이그 국제상설재판소에 제소, 중국의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중국은 국제상설재판소의 판결에 무시하고 남중국해의 9단선내의 해역을 모두 자국의 핵심이익이 걸린 영토라면서 만패불청의 자세로 수호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석유에너지를 중동에서 수입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말라카 해협이 포함된 남중국해가 자기네들의 에너지확보를 위해 꼭 확보해야 할 해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 관련된 역사속의 우화(寓話)를 끌어내어 연고를 내세우면서 억지로 둘러대서라도 자기들의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항해자유의 원칙을 앞세우면서 중국의 영토주장을 무시하고 해상작전을 펼치는가하면 중국의 주장을 반대하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은 베트남의 캄란만에 정박할 권한을 얻었다.

 

3.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전략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회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영국과의 패권갈등 없이 영국이 누리던 패권을 자연스럽게 승계했다. 2차 세계 대전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전승국이나 전패국 할 것 없이 모두 폐허로 변했다. 소련이외의 연합국들은 전쟁에서 이겼을 뿐 전 국토와 군사력은 철저히 망가졌다. 더욱이 해군의 함대는 거의 멸종상태였다. 육군부대를 가지고 있는 내륙국가 소련도 해군병력은 사실상 존재치 않았다.

이런 상황 하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의 세계질서를 모색하기위해 독일항복을 1여년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의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에서 국제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는 미국과 동맹한 44개연합국과 이들의 식민지에서 온 730명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미국의 제안으로 3년간 이 회의를 준비해온 미국의 해리 덱스터 화이트(Harry Dexter White)와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3주에 걸쳐 회의를 주도한 끝에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개발부흥은행(IBRD)의 설립에 합의했다.

 

. 새로운 자유무역 경제체제의 탄생

 

이 당시까지 만해도 세계는 경제문제에서는 약육강식의 무정부 상태였고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경제 질서였는데 이 회의에서 미국은 전후세계의 부흥문제를 놓고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구상을 발표하면서 참가국대표들의 동의를 구했다. 첫째 전승국으로서 미국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영토나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할 욕심이 없으며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미국의 시장을 차별 없이 개방한다. 둘째로 미국은 자국의 해군력을 통해서 다른 나라들이 해군력 없이도 전후복구와 재건에 필요한 원자재를 확보하고 원자재에 접근하고 물자를 수송할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선언했다. 셋째로 미국은 기축통화로서 달러를 유지하면서 세계경찰로서의 군사력을 가지고 국제무역질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 제안을 모든 참가국들이 받아들임으로써 흔히 말하는 자유무역질서의 대명사가 된 브레튼우즈 체제가 탄생하였다. 미국이 세계정치의 패자로서 세계의 경찰이 되어 수송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시장을 개방해준다는 것은 실로 기쁜 소식이었다. 미국의 브레튼우즈 체제로 말미암아 세계 각국은 미국의 협력을 얻으면서 군사력에 투자할 부담을 덜고 전후복구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또 군사력에 의해 지탱되던 전승국들이나 전패국들의 식민지들도 식민모국의 힘이 약화됨과 동시에 거의 모두 식민지 굴레를 벗고 해방독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 맞서 세계재패를 꿈꾸는 소련과 소련의 지원으로 내전에 승리, 중국본토를 장악한 모택동의 중국은 브레튼 우즈체제에 참가하기를 거부했다. 이 결과 전후세계는 소련, 중국과 동구라파제국을 일방으로 하고 미국을 맹주로 하는 자유세계 간에 철의 장막이 펼쳐진 가운데 모든 협력과 교류가 단절되는 냉전적 대치의 시대가 출현했다.

 

. 미중관계의 개선

 

소련에서 스탈린이 사망한 후 중국과 소련 간에는 겉으로는 이념논쟁이라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공산세계의 리더십을 둘러싸고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소련은 중국을 자국의 위성국가로 만들려고 하지만 중국은 이를 거부했다. 소련의 위성국가들이 소련으로 부터 당하는 주권행사의 제한 즉 제한주권론을 중국은 결코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양자관계는 1968년 전쟁 일보 즉전까지 사태가 악화되었다. 미국은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몰리는 중국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1972년 키신저를 앞세우고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모택동과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양국관계는 신속히 개선의 길로 들어섰다.

모택동 사망 후 등소평이 등장하면서 미중 양국 간에는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고 중국은 경제발전의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브레튼 우즈 체제의 정신에 걸맞게 미국시장을 중국에 폭넓게 개방하고 2001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원국으로 중국을 받아들임으로써 중국이 G2수준으로 발전할 여건을 제공하였다. 이때 미국지도자들은 중국을 견제가 아닌 지원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게 해준다면 중국도 체질이 변화하여 미국주도의 자유무역체제의 규칙을 지키면서 정치민주화의 길을 내딛게 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 소련방의 해체.

 

한편 소련은 미국과 중국관계가 개선되면서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 대신에 자국이 생산하는 석유를 밑 자본으로 하여 석유수입국인 미국을 상대로 신예무기개발에 역점을 두는 군비경쟁에 나섰다. 미국보다 한 때 앞서 나갔던 우주과학 분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륙 간 탄도미사일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유럽을 압박할 중거리 미사일(INF)까지 개발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소련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도 높은 무기경쟁을 벌이면서 사우디아라비아를 포용, 석유 값 인하에 주력함으로써 소련의 석유무기화를 막았다. 우선 키신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 미국의 달러화를 석유대금 결제수단으로 합의함으로써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석유생산량을 크게 늘리게 하여 석유 값의 국제시세를 대폭으로 떨어뜨렸다. 석유 판매수익으로 국가재정을 충당하던 소련의 수익은 급락했다. 이러한 상황이 길어지자 미소간의 전개된 군비경쟁에서 소련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다가 결국 1991년 볼세비키 혁명 74년 만에 소련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해체되고 말았다. 소련이 해체됨으로 해서 미국과 중국을 서로 협력하게 했던 공동의 적은 사라졌다. 결국 세계정치상황은 미국이 제압하려고 했던 소련의 위치에 중국이 올라서는 형국으로 변하게 되었다.

 

. 미중갈등의 시작

 

미국이 자유무역국가의 대열에 참여시켜 줌으로써 경제발전에 크게 성공한 중국은 미국이 기대했던 만큼 정치가 민주화되지도 않았고 자유무역질서의 규칙에도 따르지 않았다. 중국은 G2의 반열에 오르면서 미국이 이끌어왔던 국제질서의 수정을 요구했고 스스로 국제질서의 규칙을 자기 필요에 맞게 고치겠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갖겠다면서 양국관계를 신형대국관계로 고치자고 요구했다. 오늘날 미중대결의 본질은 한마디로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4. 현 단계 미국의 대중국전략

 

. 기본배경

 

미국의 국제정치전문가들은 유럽에서는 러시아, 중동에서는 이란,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세력이라고 정의하고 미국의 대외정책의 중점은 이들이 미국에 맞서지 못하도록 선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시점에서는 러시아나 이란보다는 중국이 앞으로 미국과 패권을 겨루려는 실질세력으로 간주하고 대 중국견제를 미국대외정책의 핵심과제로 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중국 측 로비스트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진 Kissinger는 그의 유명한 저서 중국이야기(On China)세계질서(World Order)에서 미중관계가 대서양동맹(Trans-Atlantic Alliance)처럼 앞으로는 미중양국이 태평양을 공유하는 협력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는 키신저와는 달리 G2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해오기 때문에 미중간의 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18년 여름 한국을 방문한 그래함 엘리슨(Graham Allison)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관계에 적용된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론을 들고 나와 도전세력으로서의 중국과 방어세력으로서의 미국 간에 충돌은 불가피하지만 가능한 한 양국은 상호간에 이해를 더욱 증진하고 신뢰를 회복,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학계의 예견과 더불어 201712월 트럼프가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중국을 미국에 대한 경쟁자,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을 이렇게 규정하기는 미중관계 40년의 역사상 처음이었다. 결국 냉전시기에 소련을 규정했던 미국의 전략논리가 이제는 그 목표(Target)를 중국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 중국에 대한 미국의 강경대결선언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가 발표된 다음해인 2018104일 마이크 펜스(Michael Richard pence)부통령은 미국의 허드슨 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이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강도 높게 중국의 내정과 외교를 비판했다. 중국은 해킹으로 미국의 첨단기술을 불법으로 탈취하고 중국에 투자하는 미국기업들에게 시장제공의 대가로 기술이전과 지적재산권을 강탈하는가 하면 국가가 보조하는 국영기업을 무역경쟁에 앞세우는 등 불공정 무역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국가라고 규정했다. 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제시된 국제사회의 모든 요구를 하나도 준수하지 않으면서 자유무역의 혜택만 누려왔다고 비판했다. 또 약소국에 인프라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국영기업들을 내세워 차관을 제공하고 차관의 상환이 불가능해질 때 약소국의 내정에 개입, 이권을 빼앗으려는 함정을 파는 것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라고 규탄했다. 또 신장 위구르 지역과 티베트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을 구체적으로 비판하면서 국내정치에서도 인터넷 통제를 갈수록 강화, 언론자유를 철저히 차단하는 독재국가라고 규탄했다. 양국 간에는 새로운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트럼프는 자기만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만든 것처럼 미국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전략적으로 견제하기에 앞장선 대통령으로 인정받겠다는 태세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정책에 관한 한 미국의 정계는 물론이거니와 학계, 언론계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 시기에 중국에 대한 전략적 견제를 늦춘다면 결국 중국에 밀릴 수도 있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현재 미국여론은 중국의 성장이나 영향력확대가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넘볼 수 없도록 견제하자는데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 쉐일(Shale)가스혁명과 미국의 새로운 전략구상

 

미국은 트럼프 집권을 전후한 시기에 오래 동안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던 에너지 굴레와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2019년부터 미국은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에서 세계 1위가 되었으며 에너지 수출국 1위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쉐일 가스 개발기술이 향상되어 국제경쟁력을 갖는 석유와 가스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자국의 석유안보 즉 에너지 안보를 위해 중동해역에 함대를 파견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간 소련의 천연가스에 의존 했던 유럽 국가들도 미국으로부터 더 싸고 안전하게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일본과 한국도 중동이 아닌 미국으로부터 석유와 가스를 직수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세계유가를 오르고 내리게 하는데 미국의 영향력은 훨씬 커졌다. 지금의 미국은 금융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여전히 세계 GDP4분의 1을 장악하고 있으며 앞으로 200년 이상 에너지 걱정 없는 나라가 되었다.

 

.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찰이 아니다.

이런 에너지 혁명과 때를 같이하여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찰로서의 역할을 축소해나가면서 미국의 안보지원을 받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자국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부담을 미국과 공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지원에 의존하는 안보를 안보무임승차라고 비판하면서 동맹이나 우방들과의 부담공유를 세계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간 미국은 세계경찰로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하여 지구의 도처에서 일러나는 분쟁에 직접 개입했다가 재정적자와 일반 예산적자라는 쌍둥이 적자가 해년마다 늘어나 온 국민들이 해외 개입에 피로감을 나타낸 지 오래되었다. 미국 국민여론이 이렇게 변해감에 따라 미국의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을 축소하겠다는 정책은 트럼프 아닌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나왔다. 앞으로 이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이 설사 재선에 실패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달라질 가능성은 적다.

2차 세계대전이후 유럽의 EUNATO 제국은 전후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일본이나 한국도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을 제압할 만큼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따라서 미국은 더 이상 적자에 시달리지 않고 미국자신의 이익, 즉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주장이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또 미국과 협력을 원하는 국가와는 협력하지만 미국을 제압하겠다는 중국의 편을 드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협력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또 트럼프는 2019년 연두교서에서 중국 측에 타국의 원천기술의 강탈이나 지적재산권의 해킹 같은 반칙적인 경제발전방식까지를 포함한 경제운용구조의 총체적인 개혁을 강도높이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시진핑이 중국 몽에 집착하고 이를 관철하기위해 중국제조 2025를 계속 추구하는 한 미중간의 무역 전쟁이 쉽사리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진핑도 자기의 비전이나 비전달성을 위해 짜놓은 구조를 변경하거나 포기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전무하기 때문에 미중대결은 당분간 불가피할 추세다.

5. 양자관계의 전망

 

지금 중국의 시진핑은 미국에 대해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히면서 군에 대해서는 전쟁준비를 명령해 놓고 경제에서도 미국의 관세공세에 맞대응하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중무역 갈등에서 중국이 얻는 대미흑자는 미국인들의 소비성향이 큰데 원인이 있을 뿐 중국 측에는 하등의 귀책사유가 없다고 한다. 중국의 이러한 도발적 대응에 미국이 물러선다면 미국은 스스로 패권적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수정주의로 규정하고 펜스 부통령의 정책연설을 통해 강력히 대처할 것을 밝힌 것은 중국의 도전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시진핑의 결사항전주장에 대해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들의 상당수는 시진핑을 지지하면서 대결노선에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중국의 한 군 장성은 미사일로 미국항공모함 2척을 파괴, 만 명의 미군장병을 죽여서 미국을 겁주자는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도기도 했다.

. 내부의 갈등 요인

중국공산당내부의 모든 세력들이 시진핑의 주장이나 입장에 공감, 지지할 것으로만 기대할 수는 없다.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우려가 지적되고 있다.

첫째 우려는 우선 이론적으로 시진핑이 도광양회라는 등소평 노선을 너무 서둘러 폐기함으로써 미국의 반발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등소평은 공산당 창건 100주년(1921~2021)과 중국건국 100(1949~2049)이라는 양 백년이 끝나는 시점까지 사회주의 초기단계(자본축적단계)를 끌고 나가야 중국의 안정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중국경제가 G2로 성장함과 때를 같이하여 시진핑은 신시대이론을 내세워 등소평 노선을 이탈한 결과 오늘과 같은 미국공세를 불렀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파리나 호랑이도 모두 때려잡는다는 반부패투쟁이 인민들에게는 박수를 받지만 공산당원이 아니고는 누구도 부패를 할 수 없는 중국의 당 국가체제(黨國家體制)하에서는 반부패투쟁이 정적(政敵)제거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당내에서 일고 있다.

 

셋째로는 시진핑이 중국공산당을 마르크스주의에 가장 충직한 정당임을 강조함으로써(19차당대회 결의사항) 중국의 민주개혁을 기대하던 서방측을 낙담시켰고 중국내부에서도 당내 수직적 민주주의를 통한 체제의 자정(自淨)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난이 세를 얻고 있다.

 

넷째로 강도 높은 방화벽(Great Fire-Wall)을 통한 인터넷이나 매스컴의 단속통제가 민주화개혁에 근본적으로 역행한다는 비판이 대내외적으로 연일 쏟아져 나온다.

 

다섯째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시진핑 체제하에서 갈수록 부실화해가는 국영기업이 몰고 올 금융파탄의 위험성이다. 중국의 큰 은행들은 국영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사업의 효율성을 묻지 않고 당 방침에 따라 무조건 융자하기 때문에 대출회수전망이 없는 금융부실화가 해가 갈수록 누적된다는 것이다.

 

. 대외정책상의 문제

 

또 외교 면에서도 우려가 튀어나오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사업의 경우 치밀한 준비 없이 국영기업들이 나서서 약소국에 차관을 제공한 후 중국의 인력과 기술로 해당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보잘 것 없고 또 차관상환이 어려워지면 약소국가들의 내정에 간섭, 이권을 챙기기 때문에 펜스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중국이 차관함정(借款陷穽)을 판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부가해서 중국외교의 오랜 흐름인 원교근공(遠交近攻) 때문에 주변 국가들은 중국이 말하는 아시아 운명공동체 론에 동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과의 협력을 외면하려든다.

 

또 시진핑이 펼치는 남중국해역에 인공섬을 만들어 군사기지를 만드는 조치도 21세기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행보라면서 지금은 통신 무기체계의 발달로 해외기지무용론이 일반화 되었고 기지(基地)보다는 가치 확산에 기반을 둔 동맹확보를 중시한다고 말하면서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몽(中國夢)도 결국은 19세기형 강대국 모형에 사로잡혀 정치에 경제를 예속시키는 전시대적 근대국가 패러다임을 모방하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을 가한다.

이와 같은 내치외교에 대한 비판 때문에 지금 시진핑의 중국은 미국의 공세라는 외환(外患)으로 말미암아 내우(內憂)를 초래할 리스크에 걸려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 공산당의 자정(自淨)능력 소멸

 

특히 시진핑 체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공산당의 대내외정책에서 나타나는 이상과 같은 오류나 실책을 스스로 정화(淨化)하거나 시정(是正)할 능력이 시진핑 체제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중국몽이라는 큰 꿈을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시진핑 주석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당이 그에게 힘을 실어줄 것을 요청, 중국공산당은 제 19차 당 대회의 결의로 중국 국가주석의 임기제한조항을 헌법에서 폐지했다. 이 결과 5년에 한번 씩 중국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8500만 당원 중에서 엄선된 150여명의 당 최고전략가들이 모여 무제한 토론을 통해 당 주석을 선출하고 오도된 정책을 바로잡던 당의 자정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수직적 민주주의가 후퇴한 결과 시진핑 1인 독재만 강화되고 정치개혁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6

. 한국학계의 일부견해

 

그러나 한국의 중국연구가들 가운데는 트럼프 방식으로는 시진핑을 이길 수 없는 여섯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중국은 미국에 거래로 접근할 것이다. 거래의 미끼로서 트럼프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미국 제품을 많이 수입해준다. 트럼프는 좋아라하고 중국에 대한 압박을 푼다. 트럼프에게는 '이번에야 말로 중국 성장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단호한 전략적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시장(市場)'은 중국의 '()'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위기가 닥치면 당이 국가의 전면에 나서서 자원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하고, 동원한다. 8000만 엘리트로 구성된 당 권력은 선전을 통해 민의를 모으고, 일사분란하게 외부공세에 대응한다. 시장의 눈치를 봐가며 선거를 치러야 하는 트럼프의 미국이 결코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시진핑은 지구전(持久戰)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Lincicomb).

중국은 미국이 지금까지 꺾는데 성공했던 소련이 아니고, 일본도 아니다. 트럼프는 동맹을 끌어들여 중국을 봉쇄하고, 중국 기업을 국제 분업체계에서 몰아내려 한다. 소련과 일본에 했던 그대로다. 그러나 소련과는 달리 중국은 미국 경제와 너무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본은 미국에 안보를 의존했지만, 중국은 안보적으로 미국과 별개다. 일본이야 '미국을 자칫 잘못 건드리면 경제가 파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혔지만, 중국에는 봉쇄와 압박이 통하지 않는다.

미국도 중국과의 무역대결이 지속될 경우 미국경제가 입는 손실도 크기 때문에 그 수준은 미국경제가 감당할 정도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또 미국이 중국을 아무리 견제하려고 해도 중국은 이미 기술 조작, 개발 등에서 굴기에 진입했기 때문에 이미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니다. (옌쉐퉁(閻學通) 교수 주장)

따라서 내우(內憂)가 심각히 확산되지 않는 한 미국이 대결에서 궁극적인 승자가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한다.

6. 한국의 선택

 

미국은 새해 국방예산을 6860억 달러로 책정, 작년대비 13%를 증액시키고 있다. 이 규모는 군사력 제2위에서 9위까지를 포함하는 국가들의 군사예산을 합친 총액을 상회한다. 트럼프의 대중 공세는 레이건 대통령이 마치 소련을 상대로 벌이는 군비경쟁(Star War)을 연상시킨다. 미국은 대양해군건설과 중장거리 미사일 배치에 힘을 쏟고 있는 중국을 제압하는데 모자람이 없을 만큼 강도 높게 군비를 증강한다. 군사력, 기술력, 외교력, 소프트 파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중국견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석유의 8분의 1을 소비하고 미국은 3분의 2를 소비하는데 미국은 이제 자급단계를 넘어서서 수출단계에 진입했다.

 

시진핑은 트럼프의 일방주의가 갖는 약점을 이용, EU와 미국의 이간, 일본과 미국의 간극확대 등을 획책하지만 21세기에도 마르크스주의 노선에 가장 충직하겠다는 시진핑의 중국에 선뜻 동조할 유럽 국가들은 거의 없다. 유럽은 사상사적으로 마르크시즘을 극복한지 오래고 또 중국이 지금까지 서방측 기업들에게 강탈적으로 요구해온 기술이전이나 지식재산권탈취에 관한 적대적 태도에서는 미국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공세이외에도 경제건설에 필요한 자원, 시장, 에너지의 확보에 미국의 견제정책때문에 갈수록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시진핑은 최근 신형대국관계라는 말도 신형국제관계로 표현을 바꾸고 주변국들에 대해서도 포용적 자세를 취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사드(THAAD)파동을 겪으면서 중국의 민낯을 본 후부터는 그동안 역사 속에서 당해온 중국의 갑 질을 되새기면서 중국에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다. 현시점에서 시진핑의 대미도전은 중국이 소성(小成)에 도취, 미국이 지닌 엄청난 강점을 과소평가한데 기인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러한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한국정부가 외교적 문맹(文盲)이 아니라면 우리는 당연히 통상 면에서 미국으로부터 불리(不利)를 당하지 않도록 실리를 챙기는 한편 한국 땅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안보우방을 가장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주둔 미군기지 중에서 가장 큰 평택기지를 가진 우리로서는 선택의 폭이나 여지가 별로 없다. 지금 우리는 미국의 군사동맹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지정학적인 근접국가로서 우리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맺고 있다. 미중 양국과 불편한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바람지하지만 국제정치에서 등거리 외교는 쉽지 않다. 특히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1500억 달러 규모의 무역을 하는데 비해 중국과는 3000억 달러 규모의 무역거래를 하고 있는 점에서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숙제를 풀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국가적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미중관계는 빨리 결론이 나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휴전과 갈등을 되풀이하는 지루한 과정이 연출될 것이다. 우리는 한 치의 방심도 없이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일이 없도록 국민적 단합과 지혜의 발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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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남북공동성명 45주년의 교훈

 

 이 영 일 (전 국회의원)

 

 7.4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45년이 지났다. 그 당시 통일을 갈망하던 국민들은 마냥 불가능하게만 느껴

졌던 평화통일이 남북대화를 통해 혹시라도 가능할 수 있지 않을 가하는 기대를 가져봄직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북이 분단된 지 27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남북한이 서로 통일을 불가능한 것으로 느낄 만큼 갈등의 양과 질도 지금보다는 덜 했었다. 물론 체제와 이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질화가 진행 중이긴 했지만 이질화로 변한 것은 정치교육이 먹힌 의식의 표면이었을 뿐 같은 민족으로서 역사와 함께 형성되어 온 집단무의식에 까지 변화가 미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당시에는 국제사회가 한반도통일을 확실히 반대할 이유가 되는 핵과 미사일을 남북한의 어느 측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의 법적 지위는 무엇인가>

 

7.4공동성명 발표에 이어 남북한 간에는 고위층 간의 상호방문이 이어졌고 남북한 관계를 7.4공동성명정신에 부합하도록 바꿔나가는 협력의 틀을 만들기 위한 협상이 심도 있게 진행되었다. 남북조절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남북조절위원회의 운영과 구성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또 북한 측에서는 큰 문제가 안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7.4공동성명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의 법적 지위에 미칠 영향을 두고 국회 내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정통정부에서 분리된 반란단체로서 괴뢰라고 부르는 북한의 지위에 7.4성명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두고 심각한 법리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국토통일원의 정치외교담당관이었던 필자는 김종필 국무총리의 국회질의 답변 자료준비에 협력하기위해 실무자로서 국회본회의 국무총리 석 뒷자리의 보조 의자에 대기해야했다. 7.4공동성명이 발표됨으로 해서 북한을 한국이 별개의 국가로 법적 승인을 한 것이냐 여부를 놓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당시 서독에서는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한 후 동독에 “그러한 정부가 실재로 존재함을 인정한다”는 이른바 “실재승인”(Die Faktishe recognition)이라는 독특한 이론을 만들어 발표하면서 실재승인은 법률적(De jure)승인도, 사실상의 승인(De Facto)도 아니라는 식으로 양독 관계를 정리했다. 당시 김종필 총리는 북한을 유효하게 지배하는 정치체가 존재함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북한을 국제법상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질의에 답했다. 이 당시 필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 것은 서독이 동독과 협상할 때 협상이 몰고 올 법적 상황을 꼼꼼히 예상하고 거기에 합당한 법 이론을 준비, 협상에 임했던 것에 비해 우리는 너무 엉성하거나 대비가 부족했다는 사실이었다.

 

                               <대외적 비 반공과 대내적 반공 사상 강화>

 

우리의 7.4공동성명은 최고 지도자의 결단으로 일단 성명을 만들어 발표해놓고 이를 사후에 합리화하는 조치들을 다소 무리하게 강구하면서 국회와 언론의 동의를 얻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납득시킬 대상은 국회만이 아니었다. 반공정신으로 세뇌된 국민을 대상으로 설득작업을 병행해야 했다. 7.4공동 성명의 정신에 비추어 반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힘들게 되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비반공(非反共)”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반공을 지향하게 하는 상황의 조절이 북한에 비해 한국 체제가 훨씬 더 힘들었다. 또 이 당시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대화를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으로 보기보다는 형태를 달리하는 전쟁으로 보았기 때문에 남북한 간의 사상전(思想戰)은 오히려 더 치열해졌다.

 

돌이켜 보건데 7.4공동성명은 민족적 차원에서 대화에 대한 간절한 수요가 오래 동안 배태, 숙성된 토대위에서 싹이 트고 성숙한 결과로서 도출된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를 에워싼 내외정세변화 속에서 남북한 지도층들이 자기들의 필요에 적합한 대처방식으로 돌출된 것이 7.4공동성명이었고 남북대화였다. 따라서 겉으로는 대화를 내세우지만 내면적으로는 남북한의 이해가 항상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남북한은 7.4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고 해서 그간 쌓인 모순과 갈등과 적개심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화해와 협력으로 바뀐다는 것은 애당초부터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결구조의 대화구조로의 전환>

 

그러나 당시 한반도 내외정세 속에는 남북한이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었다. 우선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조선노동당 제5차 전당대회에서 김일성이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군장비의 현대화, 전군의 간부화라는 4대군사노선의 완료를 선언하면서 한반도를 제2의 베트남으로 만들려는 공세를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세에 대처,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일단 남북한의 대결구조를 대화구조로 바꾸어야 할 필요에 직면했다.

이러한 필요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비밀리에 북한에 파견, 김일성을 만나게 함으로써 7.4공동성명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한편 북한의 김일성 역시 미국과 중국이 소련견제를 위해 관계를 개선하는 조짐을 보면서 이러한 데탕트 정세에 편승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간의 대결상황을 데탕트 상황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양측 지도부의 정세판단에서 남북한 간의 데탕트가 7.4공동성명 발표로 현실화되었다. 공동성명 발표의 배경이 이러할 진데 이 성명으로 남북한 간의 모든 갈등과 긴장이 일거에 해소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민족적 대단결을 이룩하여 자주통일을 달성하자는 7.4공동성명의 문항들은 남북한의 어느 측도 제대로 수용하거나 실천할 수 없는 구호였다. 결국 대화과정에서 서로간의 차이가 들어나면서부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합의를 이룩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고 대화는 계속 지지부진하다가 대화동력을 상실했다.

결국 7.4공동성명 발표 2년 후인 74년 북한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이유로 남한정부를 상대로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낱 남북한 간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이벤트의 하나에 불과했다.

 

                            <남북대화는 그것을 북한이 필요로 할 때만 열린다.>

 

7.4성명이후에도 이런 저런 명분으로 남북한 간에 대화는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들은 대체로 북한이 대화를 필요로 할 때 열렸을 뿐 한국 측이 주도해서 대화가 열린 일은 거의 없었다. 북한이 대화를 필요로 하는 시기는 소련과 동구라파가 몰락, 정권의 위기가 닥쳐올 때 그들은 자기체제의 위기관리수단으로 대화를 이용했다.

1990년도에 개시된 남북한의 총리회담과 남북한 간의 기본합의서 채택(1990)이나 한반도 비핵화선언(1992)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서 이루어졌다. 오히려 이 때는 노태우정부가 북한과의 실효 없는 문서상의 합의서 작성보다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서울과 평양에 연락대표부를 설치할 것을 요구했어야 옳았다. 또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도 북한의 심각한 경제위기 때 이루어졌다. 한국으로 부터의 경제제원이 절실히 필요할 때 북한은 대화를 이용했다.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북한이 식량난, 의료난, 에너지난에 허덕이는 시기였기 때문에 6.15선언이나 10.4합의 같은 문서상의 합의보다는 개혁개방을 강력히 요구함으로써 북한의 체제개혁을 적극 유도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자기가 노벨 평화상을 얻는데 필요한 조치만 강구했을 뿐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아무런 업적을 만들지 않았다.

 

중국은 2000만 달러로 북한에 유리공장을 만들어 주고 줄곧 생색을 내고 있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들은 북한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이렇다 할 공장하나도 북한 땅에 세워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김대중·노무현 양 정권은 북한이 핵무장으로 출구를 열 밑천만 제공했다는 비난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남북대화 강조>

 

지난 5월 9일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촛불혁명정신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탈미자주”노선을 표방한다. 동시에 이명박·박근혜 정권들의 대북압박정책을 실패한 정책으로 폄하하면서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 달성을 주도하겠다고 말한다. 지난 6월말과 7월초에 있은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의 강력한 대북압박정책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압박과 대화병행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현시점은 정책의 중점을 대화 아닌 압박에 두어야 한다.

 

지금 김정은 정권은 민생은 인민들이 알아서 하라고 내팽개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달한 자금을 몽땅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쏟아 붓고 있기 때문에 압박이 앞으로 더 가중, 심화되면 핵과 미사일의 실험개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한계점에 봉착할 것이다. 이런 전망 하에 미국 하원은 북한을 압박하는 법안을 490대 1로 가결했으며 유엔안보리도 기왕의 제재결의를 유엔회원국들이 모두 준수하도록 구속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물론 촛불민심가운데 탈미 자주 요구가 포함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국민 모두의 뜻은 아니다. 오늘과 같은 시기와 상황에서 촛불민심이라고 내세우는 탈미 자주노선은 결코 적실성이 없으며 그것의 정책적 표현인 북한과의 대화강조보다는 강도 높은 대북압박을 통한 비핵화추구가 더 현실적인 선택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전역이 북한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갔고 이제는 주일 미군기지와 심지어 괌까지 북한미사일의 사거리에 들어갈 만큼 안보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북을 상대로 대화에 응해주도록 호소하거나 바야흐로 남북관계 변화의 운전석에 앉았다는 등의 허무한 주장을 늘어놓는 것은 시의에 맞지 않다.

 

 오히려 핵 공포이라는 더 큰 위험을 예방하기위하여 필요한 희생과 손실을 부담할 각오를 다져야 해답이 나오는 상황이다. 여기에 부합하는 처방은 비핵화를 촉구하는 대화뿐이다. 비핵화에 직결되지 않는 대화강조는 무의미하다. 또 국방을 자주할 능력도 없으면서 탈미 자주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탈미 자주정권이기 때문에 무조건 북한의 김정은 패당과 대화해야겠다는 것은 국제적인 고립으로 나날이 숨통이 조여들고 조만간 경제적 빈사상태로 빠져 들어가는 북한정권에 한국이 또다시 구원투수가 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 탈미 자주한다고 해서 북한의 모든 공세를 단독으로 막을 자신과 준비 없이 전시작전권의 이전만 부르짖는다면 그것 역시 대한민국을 심각한 안보위기에 몰아넣을 것이다.

 

지금은 7.4공동성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라 총화단결로 위기에 대처해야 할 때이다. 남북대화를 향한 국민들의 진지한 수요 없이 정권만의 필요에서 시작되는 대화는 어느 경우에도 민족적 화해와 통일의 도관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하나의 이벤트로 끝난다는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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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강성학 저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

         (헌정지 2017년 3월호 기고) 

이 영 일( 전 국회의원,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국제정치학자 강성학 박사가 급변하는 국내외정세속에서 우리 한국이 당면한 위기와 그 해법을 제시하는 귀한 저서를 펴냈다.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을 통해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 저서는 그의 34번째의 저술로 보인다. 필자는 지금까지 그가 발표했던 저서들의 일부 밖에 읽지 못했기 때문에 전체의 흐름을 놓고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는 못 되지만 이번에 출간된 책만큼 대한민국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쓴 책은 처음인 것 같다. 물론 학자를 규정하는 존재의 구속성 때문에 한국을 문제의식의 저변에 깔지 않은 연구나 저술은 없겠지만 그것이 내재율 아닌 외재율로 커밍아웃한 점에서 이번 강 박사의 저술은 시대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고려대(高麗大)에서 정년퇴임한 강 박사는 이번 저서를 통해 그간 농축시켜온 연구의 축적을 딛고 서서 우리나라가 처한 국내외 정치의 현실을 새롭게 조명, 분석하면서 민족적 출로에 관한 논구를 심화시키고 있다. 동서냉전의 해빙으로 진영논리에 압도되어 빛을 잃었다가 되돌아온 국제정치연구의 전통적 연구방법인 지정학(Return of Geopolitics)을 토대로 하여 오늘날 우리 한반도가 포함된 이 지역정세를 새롭게 조명하고 한국이 당면한 위기상황을 파헤치고 있다. 요즘 미국학계도 탈냉전시대의 국제관계를 지정학적 시각에서 다시 검토하는 추세다. 이들은 냉전의 종결과 더불어 제2차 세계 대전과 동서냉전이 그어 놓은 국경선과 세력범위를 현 수준에서 동결시키면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자는 것이 서방측의 입장이라면 이에 맞서 현상변경을 강력히 추구하는 수정주의 세력이 등장했는데 이들이 곧 유럽의 러시아, 중동의 이란, 동아시아의 중국이며 이들 중 중국의 부상(浮上)이 국제정치판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러시아나 이란이 현 상황에서 당해 지역의 패자가 되기는 힘들지만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아시아 재 균형전략(Rebalancing Strategy)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한국, 일본 등 자국의 동맹국들이 미국과 제휴, 책임을 분담하면서 현재의 아시아질서를 유지해 나가려고 한다. 강 박사는 미국의 재 균형전략을 지정학에서 말하는 역외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전략 하에서는 동맹국들 간에 협력적 조율이 잘 이루어지면 안정이 지속되지만 조율이 잘 안되거나 미국 국내에서 해외개입을 줄이려는 고립주의 경향이 등장하면 동맹조약과 공약은 있으나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트럼프시대에 한국과 일본이 당면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강 박사 역시 이번 저술에서 중국의 부상(Rise)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남중국해를 자국의 핵심이익으로 선언하고 아시아 집단안보를 역설하는 것은 이 지역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중국이 패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미중경쟁과 갈등상황 속에서 우리의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 할 가를 검토한다. 그간 우리 학계는 국력신장이 세계랭킹 10위를 넘나들면서 한국의 위상이 옛날과 달리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수준으로 커졌다고 자부하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균형자역할을 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강 박사는 대륙세력의 입장에서는 완충지역으로 보이고 해양세력의 입장에서는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보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현재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특히 중국의 부상은 한마디로 국제정치에서 항상 주목되던 세력전이(勢力轉移)를 가져올 가능성이 내포된 부상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외교안보에 중요할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서 깊이 있는 관찰과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역할을 시도하는 것은 프라이팬에서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자멸행위라면서 균형이라는 것은 모든 나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公共財)가 아니라 강대국들만이 사용하는 특권이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용미(用美)나 용중(用中)은 비현실적 환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한국에 안전한 전략이 있다면 그것은 균형자가 아니라 가장 강한 국가에 편승(Band wagoning)하는 것이며 이것이 오랜 역사동안 한민족이 생존해온 비결이라고 한다. 이점에서 THAAD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에 양다리 걸치기(Hedging)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현명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금세기안에 중국이 모든 면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 비추어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 한미동맹의 틀 내에서 미국의 재 균형전략과 발을 맞추면서 자강(自彊)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강 박사는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국내 상황은 미중간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정세 속에서 나라들마다 국가이익 챙기기에 몰두하는 상황인데도 우리는 국익보다는 당리, 공익보다는 사익이 판을 치면서 국가의 위기대응능력이 갈수록 약화되는 실정이라고 개탄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일관된 안보정책도, 군사전략도 마련치 못한 상태인데 국가를 통합하고 동원할 능력마저 상실한다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은 물론 자칫 치명적 고통을 받았던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이러한 내외정세분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적 목적과제를 달성하기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민통합을 이뤄낼 리더십의 구축이라면서 미국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국가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고 노예해방이라는 세기적 업적을 낳은 링컨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우리가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남북전쟁시기에 링컨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의 여러 측면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정책결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신중한 분별력(Political Prudence), 인사정책에서 정적(政敵)들 까지를 사심 없이 포용하면서 통합의 대도를 걷는 모습을 평가한다. 특히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의 대의를 추구하면서도 노예를 재산으로 보던 당시의 가치 관념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수용하는 현실주의의 입장에서 노예문제에 접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예해방의 결실을 얻어내는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모든 사람들과 두루 소통하면서도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결정의 확실한 준거로 삼아 도덕적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간 점을 높이 사고 있다. 링컨은 군사전략가가 아니면서도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정치가-장군(Statesman-General)이었다고 할 만큼 군통수권자로서도 탁월한 리더십을 보임으로써 미국정치에서 문민우위의 질서를 정착시켰다고 평가했다.

 

이 책은 지정학적 사고에 바탕을 둔 주변정세분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어 우리의 내외정세와 당면한 위기를 바로 깨닫게 해 준 점에서 큰 기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기여는 링컨의 리더십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해준 한국최초의 저술을 내놓은 점이다. 이 책을 완독하면서 가장 부끄럽게 느낀 점은 우리 정치권이 강국들에 둘러싸인 분단된 반도국가에 살면서도 지정학적 사고가 원천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또 역대대통령들의 협량한 인사정책이 국민통합을 얼마나 저해했던가를 되돌아보게 했다. 국가이익을 생각한다는 의식이 있는지 조차를 의심케 할 언동이 판을 치고 외교안보문제에서 초당적 협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라에서 그날 그 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꼭 이 시기에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워 위안부문제로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과연 우리의 보다 큰 국익실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짓일까.

 

아마 우리 국민들 중에 링컨 대통령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그에 관해서 실재로 가진 지식이란 고작 게티스버그 연설문 한 대목 정도뿐 아닐까. 필자는 강박사의 책을 독파한 후 링컨 리더십을 제대로 체득치 못하는 한 어려운 시기에 이 나라를 잘 이끌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요즘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정식을 갖는 인물가운데 안심하고 국정을 내맡길 분별력 있고 포용력 있고 군사전략적 감각까지 갖춘인물이 과연 있겠는가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큰 뜻이 있는 정치가나 기업인들에게 이 책만큼 강한 교훈을 줄 책은 없을 것 같다. 강호제현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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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심리전 공세에 휘둘리지 말자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1. 시진핑 시대와 한중관계 
 2013년 시진핑이 중국의 국가주석에 취임하면서부터 중국의 내치외교에 새바람이 일어났다. 우선 외교에서는 덩샤오핑(鄧小平)이래 표방했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기조가 유소작위(有所作爲)로 바뀌었다. 국제관계에서 영향력을 휘두르기보다는 조용히 힘을 기르면서 때를 기다리자는 정책을 지양하고 국력에 상응하는 발언권을 행사하고 서구(西歐)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규범이나 규제에 얽매이기보다는 세계인구의 5분의 1을 갖는 대국으로서 중국이 국가발전에 유리한 규범이나 규칙을 만드는 국가로서 발돋움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진핑 주석은 주변국을 상대로 하는 외교에서는 후진타오(胡錦燾)시대의 3린(睦隣, 安隣, 富隣)보다 진일보한 덕치(德治)를 강조하면서 친성혜용(親誠惠容)을 자기의 외교정책으로 내세웠다. 친선혜용이 적용되는 주변국들에게 대해서는 운명공동체라면서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동시에 일로일대(一路一帶)정책과 이를 물질적으로 뒷받침할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설립은 중국이 표방한 주변국외교정책의 실천적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취임과 동시에 한국에 대해 우호적 조치를 취했다. 앞서의 정권들과는 달리 한국임시정부를 항일전쟁당시의 한중협력의 파트너로 공인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요청한 안중근 의사기념관을 설립 해주는가하면 시안(西安)의 광복군 기념비석, 샹하이 임시정부 청사보수, 충칭(重慶)의 광복군사령부 복원 등을 지원해 준 것은 한중관계를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도 시진핑 외교의 이러한 흐름에 주목하면서 한중간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한층 더 성숙시키는 한편, 한중FTA를 체결하였고 AIIB에도 적극 참여하였으며 또 서방의 어느 국가도 참석하지 않는 항일전쟁승리 70주년 행사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 천안문 광장의 사열대에 섰다. 한국은 1941년 12월 9일 한국이 그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당시 중국정부에 뒤이어 대일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더불어 항일전쟁승리 70주년행사에 참가할 명분이 있다. 

 2. THAAD배치허가와 한중관계의 풍파 
 그러나 지난 7월 8일 한국정부가 미국의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설치를 허용한다고 발표한 것과 동시에 한중관계에는 큰 풍파가 일어났다. 중국은 한국정부가 미국에 설치 허가를 해준 THAAD가 이 지역의 전략균형을 중국에게 불리하게 변경시키는 조치-중국의 왕이(王毅)외교부장의 표현을 빌면 THAAD가 한국방위의 범위를 넘어서는 조치라고 규정하고 THAAD설치의 재고(再考)를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물론 인접국가간에 안보상의 이해관계 때문에 분쟁이나 대립이 야기될 수도 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외교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THAAD설치허용에 대한 중국 측의 반응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지나친 기우(杞憂)거나 과잉반응이다. 우선 THAAD는 공격무기가 아닌 방어무기이다. THAAD체계에 부수된 AN/TPY-2 X-Band 레이더의 경우 통상적인 운용범위는 600여 ㎞에 불과하고, 인공위성 등으로부터 받은 정보에 근거하여 공격해오는 상대의 미사일을 ‘추적’,요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레이더가 CCTV처럼 중국의 모든 군사 활동을 탐지할 수 있는 것으로 호도하였으나, 레이더는 점(点)으로 나타난 정보를 해석하여 대상물체를 파악하는 장비로서 CCTV처럼 다른 일반적 군사정보를 파악할 수는 없음은 중국의 군사전문가들도 잘 알고 있다. 

 현시점에서 THAAD를 한국에 배치하도록 허용한 것은 중국의 공격위협 때문이 아니다. 북한이 증강시키고 있는 미사일위협 때문이다. 주한미군을 타격목표로 해서 북한이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과 잠수함 발사 미사일실험을 강행, 임의의 시간에 공격을 가해올지 모를 상황을 조성하는 것에 주목할 때 미국정부가 주한미군의 안전을 위해 북한의 미사일공격으로부터 자국군대를 지키기 위해 미국정부가 발주, 제작한 THAAD를 한국에 설치하도록 한국정부에 허가를 요청해왔고 군사동맹국가로서의 한국이 동맹관계를 깨지 않는 한 이를 허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면서도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방어무기인 사드배치를 허가하지 말라고 한국에게만 일방적으로 압박을 가한다.

 한국정부는 사드문제가 제기된 이래 지난 2년간 중국과의 ‘성숙한 전략동반자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THAAD를 배치하지 않고도 안보위협을 극복할 방법을 안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는데 주력, 2020년 상반기에야 한국의 독자적인 미사일 방어망이 갖추어질 전망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미사일 방어망이 구축될 때까지의 안보 공백을 메울 방도의 하나로 THAAD를 검토하게 된 것이다. 중국은 창(槍)을 휘두르는 북한에는 침묵하면서 방패를 갖추려는 한국의 THAAD배치허용만을 자국안보에 불리하다면서 반발하는 것은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갑(甲)질로 보일 뿐이다. 

 3. 중국의 일부학자와 언론들의 심리전 공세 
사드 배치허용과 때를 같이하여 중국의 일부 언론이나 한국을 자주 들락거린 이른바 지한(知韓)파 학자들이 한국에 대해 강력히 보복할 것을 중국정부에 촉구하는 언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이들의 주장이나 중국네티즌들의 반응이 시진핑 정부의 정책이 된 것은 전혀 아니다. 다분히 심리전적 목표를 지닌 언동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의 환쥐스바오(環球時報)가 7월 14일자 보도에서 성주군(星州郡)에 대한 제재를 거론했다. 성주군이 THAAD배치결정이나 허가와 아무 관련이 없는 지방자치단체인데도 마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지적하면서 군민들의 반대로도 설치가 저지되지 않는다면 중국정부는 성주군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G2로 불리는 강대국의 저명한 언론기관이 벌이는 논설치고는 그 품위와 수준 낮음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중국의 일부 언론이나 학자들이 이런 보복선동발언을 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한국의 여론을 흔들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다양성이 허용된 한국사회의 여론은 국익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논리적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군사기지의 설치문제가 나올 때마다 집단적 저항과 여론분열이 일어나는 상황에 그들은 주목했을 것이다. 또 역사적인 사대의식 탓인지 일부 중국 언론이나 학자들의 위협언동 등 심리전 공세에 항상 취약했다. 

여기에 중국전문가로 행세하는 한국학자들이나 언론들도 한중관계가 어려워질 때 그들의 전문성을 어려움을 극복 타개할 방도로 쓰기 보다는 중국의 한국에 대한 심리전공세에 동조하거나 걱정하는 체 하면서 중국 측 편을 드는 경우도 눈에 띤다. THAAD허가여부가 검토단계일 때는 여러 가지 득실을 따질 논의가 필요하지만 정부가 최종적으로 허가결론을 내렸을 때부터는 정부결정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이 정치권이나 학계가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한 저명한 언론인 가운데는 자기가 마치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나 된 것처럼 THAAD의 포기를 감히 자기만의 이유로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4. 한국은 추호도 휘둘릴 필요가 없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중국의 심리전 공세에 추호도 흔들릴 필요가 없다. THAAD배치로 중국이 느끼는 안보위협이나 전략적 균형의 불리한 변화라는 것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상상적이고 단기적이기 보다는 중장기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한미관계를 놓고 중국이 한국에 거는 변화의 기대 역시 현실적이기 보다는 희망론적(Wishful)이다. THAAD의 위협성 여부는 한미중(韓美中)3국 군사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토의한다면 저절로 해답이 나올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중국을 추호도 적(敵)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박근혜 대통령취임과 더불어 다져진 ‘성숙한 전략동반자관계’를 유지, 발전시킨다는 것이 한국외교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 있다. 중국의 일부언론들이 제기하는 한국에 대한 보복주장은 어느 경우에나 결코 심리전 수준을 넘지 못한다. 만일 보복적 제재가 중국정부의 현실정책이 된다면 중국은 북한과 한국을 동시에 제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북한은 유엔을 통한 경제제재 대상이고 한국은 THAAD에서 비롯된 독자제재대상이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책임 있는 강대국반열에 오른 중국이 유엔결의에 맞서는 북한의 미사일공세에 대한 방위강화조치의 하나로 THAAD배치를 허용했다고 해서 그간 한중(韓中)간에 형성된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희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주변국을 상대로 하는 외교노선인 친성혜용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면서까지 한국에 대해 보복정책을 취할 리 없으며 더욱이 한중FTA나 AIIB에 대한 양국협력을 약화시키거나 포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 할진 데 우리는 일부 중국 언론이나 학자들의 언동에서 나오는 심리전 공세에 조금치도 휘둘릴 필요도 없고 휘둘려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나 국력 면에서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 을(乙)일 수 있다. 이것은 지정학에서 비롯된 우리들의 숙명일지 모른다. 따라서 乙이라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비극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비극적인 것은 ‘乙’ 자체가 분열되어 乙의 몸값마저 제대로 챙기지 못하게 되는 경우이다. 내적 분열의 극복이 초미의 과제다. 이제 외교안보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는 경구(警句)를 우리 모두가 생활화하지 않고는 나라를 위기에서 지킬 수 없다. 정치인이나 학자, 언론인, 교육자들이 모두 이러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당면한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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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16년 7월 18일 하오 2시부터 5시까지 부산시청 대회의장에서 통일과 나눔 재단법인이 조선일보사와 부산일보사가 후원하는 가운데 열린 제1회 통일준비강연회에서 행한 이영일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의 연설전문입니다 

 한반도 정세와 통일 준비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이 영 일 

 1.들어가면서 

 우리는 20세기가 끝나가는 1990년대에 역사의 큰 흐름을 바꿀 두개의 큰 사건을 목도했습니다. 하나는 소련제국의 붕괴이며 다른 하나는 독일의 통일이었습니다. 1917년에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세워졌던 거대한 소련제국이 허망하게 무너졌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동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하나로 통일된 것입니다. 누구도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시기에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소련과 독일문제를 연구한 수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금성철벽 같았던 소련제국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줄 누가 감히 예측했겠습니까. 심지어 독일의 통일을 주도했던 당시 서독의 헬무트 콜 수상 자신도 독일이 이렇게 빨리 통일될지 몰랐다고 회고록에서 밝혔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조국광복도 아무도 예측 못한 가운데 도둑처럼 우리를 찾아왔었습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오매불만 기다리던 조국 통일도 누구의 예측이나 전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가 흘러가는 큰 섭리 속에서 갑자기 찾아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통일과 나눔 재단의 안병훈 이사장은 통일모금에 착수하던 바로 그 때 매우 인상적인 말씀을 남겼습니다. 한사람이 꾸는 꿈은 그 개인의 꿈으로 끝나지만 많은 사람이 같은 꿈을 꾼다면 그 꿈은 마침내 현실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5천만이 통일의 꿈을 함께 꾼다면 그 꿈은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저는 오늘 우리 한반도의 내외정세 속에서 나날이 성숙하고 있는 평화통일의 전망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통일의 그 날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고 바로 지금 우리가 성취해야 하고 또 성취할 수 있는 통일기회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통일기회는 어떤 것일까요? 

2. 핵무기의 역설(逆說)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북한이 핵무장을 하겠다는 것만큼 우리의 통일전망을 어둡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 일은 없습니다. 북한이 매번 핵실험을 할 때마다 우리는 너나없이 걱정과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제 북한의 핵무장은 단순한 연구나 시도 단계가 아닙니다. 우리 온 겨레를 열핵(熱核)전쟁의 나락으로 몰고 갈 위험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제 4차 핵실험은 핵무장이 실전 배치될 바로 직전 단계에 왔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파키스탄도 5차 핵실험에 성공하면서부터 핵 국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김정은 정권도 파키스탄의 선례를 보면서 이제 핵보유국이 되었다고 헌법에 명기했습니다. 자기 나라 헌법에 핵무기를 가졌다고 표시하는 나라가 북한 말고 지구상에 또 있겠습니까. 이제는 핵을 가졌으니 국제사회는 김정은 정권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는 다른 선진 강대국들처럼 자국안보를 위한 억지력으로 개발해서 보유하는 정치무기가 아닙니다. 미국의 빅터 차(Victor Cha)교수가 증언한대로 한국을 향한 침략전쟁에 써먹기 위한 무기입니다. 통일의 미명하에 6.25동란을 일으켜 500만 이상의 동포를 죽거나 부상당하게 하고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던 바로 그 김일성의 피, 그 DNA를 어어 받은 김정은이 이제는 핵 무력으로 통일을 달성하겠다고 핵무장을 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핵무기가 미국의 북한압살정책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지구상에 북한을 침략할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북한이 1990년대 중엽 식량난으로 3백만 주민이 아사(餓死)하는 위기상황 하에서도 북한을 넘보거나 침략하는 나라는 아예 없었습니다. 오히려 식량과 의약품을 보내 북한을 지원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고 미국이었습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것은 침략자를 막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3대에 걸친 세습독재정권을 유지하고 핵무장을 앞세워 군사적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핵무장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북한 동포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영양실조의 밑바닥을 허덕이게 하면서 핵무장과 탄도미사일 실험 발사에 모든 자원을 털어 붓는 나라가 바로 김정은 정권입니다. 김정은은 지난 5월에 36년 만에 열린 북한노동당 대회에서 핵무장과 경제발전을 함께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소위 핵·경제병진정책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세습독재세력이 선택한 핵무장의 길은 한마디로 북한의 살길이 아니라 죽을 길입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자는 전 세계 인류의 열망을 외면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핵을 가진 나라도 핵무기를 줄이기 위해 군축협상을 벌이는 판에 핵무기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시대역행입니다. 소련이 망한 것은 핵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핵탄두가 미국 보다 많아도 소련은 핵무기를 안고 해체되었습니다. 경제가 파탄 났기 때문입니다. 핵무기만으로는 결코 한나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경제력의 뒷받침 없는 핵무장은 모래위에 세운 집 같습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인민들의 배고픔위에 세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습니까. 

지금 지구상 198개국가중에서 핵무기를 공식적으로 갖는 나라는 5개국이며 여기에 비공인 핵 보유 국가를 합해도 8개국정도입니다. 그 밖의 모든 나라들은 핵과 미사일 없이도 잘 살고 있습니다. 독일은 핵무기 없이도 잘 살고 있습니다. 핵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습니다. 만일 독일이 핵무기를 가졌더라면, 핵탄두를 실어 날릴 탄도미사일을 가졌더라면 독일 통일은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주변강대국들이 독일 통일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과 베트남은 서로 전쟁했던 과거를 씻고 수교했습니다. 베트남에 핵무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인접해있으면서도 미국과 58년 동안 담쌓고 살았던 쿠바와 미국 간에도 올해 국교가 열렸습니다. 쿠바에 핵무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한손에 핵무기를 쥐고 있으면서 다른 손으로 미국과 수교할 수는 없습니다. 또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반도 주변의 어느 강대국도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지난번 당 대회에서 남북한의 연방제통일을 주장했습니다. 6.15공동선언에서도 남북한의 연합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핵이 있고 남한에 핵이 없다면 안전보장상의 불균형 때문에 절대로 연합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북한의 핵 포기 없이 우리는 결코 통일을 성취할 수 없는 지정학적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주변 대국들이 갑(甲)이라면 우리는 항상 을(乙)의 신세를 못 면하는 것이 우리나라 역사의 과거였고 현재입니다. 지금 갑(甲)의 입장에 선 주변강대국들이 하나같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북한의 핵무장이야말로 한마디로 우리의 통일을 가로막는 반통일 노선이라고 규탄하고 싶은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3. 강도 높은 대북제재 

지금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다섯 차례에 걸쳐 북한제재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금년 3월에 안전보장이사회가 다시 통과시킨 제재 결의안 2270호는 안보리가 통과시킨 제재가운데 군사적 제재 바로 직전단계라고 평할 만큼 강도 높은 제재결의입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의 한 때 동맹국이었던 러시아도 이 결의안에 찬성했습니다. 북한의 형식상 동맹국인 중국도 이 결의안 채택에 찬성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 이 결의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버티면서 무수단 미사일실험 발사를 강행하고 핵·경제병진을 밀고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김정은은 유엔제재가 없을 때도 못 먹고 못 살았는데 제재가 있다고 해서 더 특별히 나빠질 것도 없다고 뱃장을 부립니다. 무역규모도 연간 76억 달러 수준 밖에 안 되기 때문에 국제적인 고립이 두렵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란(Iran)에는 제재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정부를 향하여 제재에서 벗어날 조치를 취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중산층이 있는데 북한에는 이러한 중산층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앞으로 안보리 결의를 각 회원국들이 수용하고 준수하기 시작하면 날이 갈수록 안팎으로 좁혀드는 고립과 제약에 막혀 국가적 존립이 어려워 질 것입니다. 우선 북한의 외교망이 세계도처에서 붕괴될 것입니다. 특히 미국이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함으로 해서 북한을 상대로 거래하는 외국은행 특히 중국은행들도 북한과의 거래를 중단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북한의 대외무역의 길도 전면 차단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재가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유엔회원국들의 단합된 행동(Coalition Building)이 요구됩니다. 동시에 제재로 고통 받는 북한주민들 내부에서도 김정은의 세습, 폭력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훨씬 더 가시화 되어야 합니다. 산골짜기에 세워진 허름한 초가집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두면 백년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예전처럼 외면하거나 소홀히 한다면 제재의 효과는 약해집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미국과 중국은 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많은 면에서 갈등과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만은 양국의 생각이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아시아대륙에서 유엔이 핵보유를 공인한 유일한 국가입니다. 중국이 누리는 핵독점적 지위는 지금 북한의 핵무장으로 도전받고 있습니다. 더우기 북한의 핵보유는 한국, 일본, 대만의 핵무장을 유발하여 동북아시아 일대가 핵 대결상황으로 변할 우려를 낳습니다.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반대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대북제재를 놓고 국제사회의 단합된 행동(building of Coalition)을 기대할 수 있는 중요한 여건의 하나입니다. 

 4. 흔들리는 북한 내부사정 

 다음으로 북한내부사정을 보면 두 가지 사실이 크게 보입니다. 첫째 김정은의 잔인하기 짝이 없는 간부숙청(幹部肅淸)이 북한의 오늘을 지탱케 해온 북한 지배동맹내부의 결속을 허물고 일체감을 와해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고모부를 시신(屍身)조차 찾을 수 없도록 잔인하게 포살하는 인권모독의 극치를 보면서 북한 간부들의 마음속에 김정은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과 존경심이 생겨날까요? 자기에게 닥칠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북한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 장마당 세력들의 태도가 나날이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유엔의 경제제재가 자기들에게 밀어닥칠 불이익을 민감하게 느끼고 김정은 정권의 핵·경제 병진노선이 살길이 아니라 경제적 재앙을 몰고 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이 밥도, 돈도 될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의 장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면서 충성을 접고 있습니다. 식량난, 에너지난, 의료난이라는 3대 난관 속에서도 인민들의 삶을 지탱시켜온 장마당 세력들이 이젠 김정은 정권에 대해 더 이상 희망이 없어지기 때문에 충성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장마당 꾼들은 남한 사정을 북한의 어느 계층보다도 잘 알고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들의 심중은 지금 탈북이냐 저항이냐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장마당 세력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미사일과 로켓을 중시하는 김정은이 전략군(戰略軍)부대를 우대하고 재래식군대를 홀대하는 데서 오는 군내부의 갈등도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북한판 임오군란(壬午軍亂)을 연상하게 하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에 곁들어 김정은의 달러 박스도 얇아져서 북한 지배층의 충성요구를 위해 뿌리던 정치자금마저 줄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은은 제2의 고난을 감수하자고 하지만 배고픔에 사무친 인민들이나 군부가 김정은의 말에 그대로 호응할 리 없습니다. 저항이나 탈출이 대안이 되고 있습니다, 

 5.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여러 분야에서 김정은 정권이 몰락할 조짐을 보고 있습니다. 몰락은 거의 예측할 수 있는 단계 이르고 있습니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유념할 것은 ‘봄꽃의 비유’입니다. 봄꽃은 반드시 온도가 15도가 될 때(Critical Mass)핍니다. 14도나 14.5도도 아닌 꼭 15도가 되어야 핍니다. 그러면 지금 북한에서 자유의 꽃이 피고 개혁개방의 꽃이 필 북한의 온도는 지금 몇도 쯤으로 보입니까. 저는 지금 북한에서 자유가 꽃피는데 필요한 온도는 15도에서 약간 밑도는 13도가량에 머물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2도를 더 올려야 비로소 북한에도 자유의 꽃이, 개혁개방의 꽃이 필 것입니다. 북한을 15도까지 끌어 올리려면 우리 한국사회가 통일 준비를 적극 서둘러야 합니다. 

저는 이 길에는 네 가지 방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국론통일입니다. 통일에 대한 꿈과 비전을 온 국민이 너나없이 공유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우려하고 경계하는 마음에서도 국론이 통일되어야 합니다. 미세먼지나 황사에는 민감하면서도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가장 무섭고 위험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태도가 오늘의 우리 국민들의 행태여서는 안됩니다. 이런 태도로는 북한에 자유의 꽃이 필 온도를 더 이상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김정은의 잔학성과 핵무장을 단호히 규탄하면서 응징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국민적 경각심을 높이고 단합하도록 국민 모두의 생각을 하나로 통일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통일준비의 첫걸음인 국론통일입니다. 

둘째로는 우리의 통일이 민족공동체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시키는 것 일진데 현재 북한을 탈출, 우리와 함께 살게 된 탈북자들을 우리는 통일을 위한 자산으로 소중히 우대하고 보살피자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자유대한을 찾아온 결단이 옳은 길이었음을 본인들이 확신하고 긍지를 느낄 만큼 탈북자들을 민족공동체 구성원으로 보호하고 우대하는 태도를 전 국민이 함께 나눠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북한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눈에도 남한으로 내려간 탈북인들이 한국에서 정말 사랑받고 대접받으면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이것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통일준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셋째로 남북관계는 통일이전단계라도 교류, 협력, 대화는 항상 필요하고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제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민족공동체의 다른 부분인 북한동포들의 식량부족, 의료부족, 이산가족상봉 같은 인도적 문제에 대해서만은 지원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에 핵무장이나 미사일발사에 소요되는 자금이나 물자는 철저히 차단해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도 높은 제재 속에서도 인도적 지원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대북제재와 인도적 지원을 병행하자는 것입니다. 민족공동체를 유지할 끈은 끝까지 이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북한의 대남정책을 옹호하거나 편승하는 종북 친북세력들을 국민의 힘으로 철저히 거세해야 합니다. 탈북동포를 한국 국정원이 납치했다는 북한의 모략에 동조하는 세력, 민주주의 이름아래 대한민국의 강점을 약화시키고 약점을 확대시키는 세력들을 척결하는데, 무력화하는데 국민들의 뜻을 모으는 일입니다. 

이상의 노력과 더불어 우리는 온 국민이 함께 통일시대를 앞당기는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찾아 탈북한 동포들이 대한민국으로 넘어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긴급하고도 중요한 통일준비일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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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국제문제 5월호에 기고된 글임 

 

                       한·미·중 3국학자들의 북 핵 대처방안 토론 참관기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한국고등교육재단은 4월 15일 09시 30분부터 12시30분까지 4시간 동안 韓美中 3국 정치학자들을 초청,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주제(Options for Dealing with North Korea)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미국 측에서는 로버트 아인혼(Robert Einhorn)박사(전 미 국무성 비확산 및 군축 차관보)와 다글러스 팔(Douglas H. Pall)박사(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부소장)가, 중국 측에서는 옌쉬퉁(Yan Xuetong)교수(중국외교부 자문위원 및 청화대학 세계 평화포럼 사무총장)와 순쉐핑(Sun Xuefeng)교수(중국청화대학 국제학부 교수)사 참가했고 한국 측에서는 김성한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전 외교부 제2차관)와 정재호 교수(서울대학교 미중관계연구소장)가 발제 및 토론자로 나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1. 미국은 제재와 외교협상의 병행이라는 양면궤도전략을 강조

 

이 날의 토론은 UN안보리의 대북제재가 과연 비핵화에 얼마만큼 효력을 가질 수 있는지, 제재이외의 다른 방안은 없는지를 놓고 전개되었다. 미국 측의 R. Einhorn과 D. Paal은 최근 북한이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를 진척시켰다고 하고 또 탄도 미사일기술개발에서도 큰 진전이 이뤄졌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특히 미사일 발사 시에 기술이 진일보한 고체연료사용을 실험했고 탄도미사일의 대기권 재 진입 실험에도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까지 공격할 능력을 북한이 갖춘 셈이라면서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국제사회는 현재 과장이라거나 진실이라거나 허위라는 등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된 것은 북한의 행동을 이대로 좌시한다면 앞으로 국제사회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유엔제재보다도 더 강도 높은 제재가 요구된다고 말하고 이번 유엔안보리의 북한제재 2270호는 고강도 제제라고 평가했다. 한국도 개성공단을 폐쇄함으로써 단호한 제재에 나서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의 위협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한데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하고 제제의 성패는 중국이 얼마만큼 협조하느냐에 달려있는데 현재 중국은 안보리 결의이행을 다짐하고 있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제재의 강도를 지켜봐야 중국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학자들은 현재 한미동맹관계는 잘 유지되는 가운데 강력한 제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제재만으로는 북핵문제가 풀리지 않기 때문에 제재와 외교협상의 병행이라는 양면궤도전략(Dual Track)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우선 북한이 핵무기의 완전동결은 아니더라도 잠정적인 동결 안이라도 내놓으면 평화협정문제와 함께 비핵화문제를 다루는 외교협상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않겠다면서 다만 한미양국이 실시하는 군사연습(Key Resolve같은)을 중지한다면 현재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중지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놓고 있는데 이는 한미양측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잘라 말했다 .

 

2. 제재보다는 협상에 중점을 두는 것이 현실적이다

 

중국에서 외교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옌쉐퉁(Yan Xetong)교수((Ph.D U.C. Berkley)와 순쉐펑(Sun Xuefeng)교수는 아래와 같이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했다. 이들은 북핵문제는 미중간의 수많은 현안중의 하나이며 중국입장에서는 남중국해의 미중갈등이 북·핵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위한 6자회담 등 다자접근이 행해졌지만 효과는 없었다. 중국과 미국이 협력한다고 해도 북핵문제해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며 만일 미중협력이 효과가 컸다면 북핵문제는 진즉 해결되었을 것인데 그렇지 못했음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6자회담에 일본과 러시아를 끼여 넣은 것은 실익이 없었다.

 

그간 여러 차례 유엔중심의 제재가 있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는데 앞으로도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제정치의 현실주의 학파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회의적이다. 북 핵은 정치안보문제인데 제재는 주로 경제문제이기 때문에 양자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현재 미국이 북핵문제를 못 푼다면 중국도 못 풀 것이며 미국보다 중국이 북한을 다루는 입장이 좀 더 나을 수 있다고 하지만 미국의 정책이나 중국의 대북정책도 비핵화라는 면에서 서로 같아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중국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중국의 영향력도 줄어들 것이다.

 

다만 미중협력이 가져온 가장 큰 효과는 이 지역에서 큰 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고 그 효과는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이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제재보다는 동북아시아 안보의 큰 틀에서 외교협상을 추진하는 것이 그나마 바람직한 방법인데 꼭 6자회담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볼 때 미중간의 협력이 있어도 이 지역의 긴장은 지속되겠지만 안정은 유지될 것이고 미중관계나 한미관계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며 미·북 관계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이나 일본이 핵무장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한일 양국은 핵 불 보유이익과 핵 확산이익을 비교해보면 스스로 무엇이 정답인지 알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다자회담이 그들에게 불공정할 것이기 때문에 택하지 않을 것이며 다자 아닌 양자회담을 선호할 것이다. 미중은 다른 문제에서는 서로 이해가 엇갈려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북핵문제에서만은 협력을 지속할 것이다. 미중관계는 남중국해문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양국이 취하는 조치들이 투명하기 때문에 갈수록 악화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이 다른 이슈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과 중국관계는 중국이 제재를 계속하는 한 갈수록 악화될 것이고 이미 악화된 상태가 개선될 가능성도 적다. 현 상황은 북 핵으로 말미암아 긴장은 높아지지만 전쟁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북한은 앞으로도 추가적인 실험을 포함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모든 조치를 그대로 밀고 나갈 것으로 보인다.

 

3. 북한 정권전환압박 없이는 비핵화 이루기는 힘들 것이다.

 

김성한 교수와 정재호 교수는 김정은은 장기적으로 북한정권을 유지하기위해 핵·경제 병진정책을 추구할 것인데 ① 미국본토까지 공격할 능력을 갖겠다는 뜻으로 핵무기의 소량화, 경량화를 추구하며 ② 국제사회의 제재를 경감해 나가는 수단으로 전술적 차원의 대화를 시도할 것이고 ③ 북한에 대한 압박이 완화되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재개하며 ④ 핵과 미사일에 대한 나름의 전략목표가 달성되면 실험중단을 선언한 후 ⑤ 주도권을 가진 협상을 추구하면서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면서 현시점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한층 더 강화할 때라고 말했다.

 

두 교수는 북한의 김정은은 국가안보보다 자기의 정권유지, 즉 집권안보를 더 중시하고 그 수단으로 핵을 선택했기 때문에 정권을 뺏겠다고 압박해야 비핵화를 수용할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북한의 행동을 바꾸고 핵에 집착하는 태도를 바꾸는 방도는 정권에 대한 위협이 가장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하고 유엔제재와 더불어 정권을 위협할 Plan B, C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미국의 아인혼(Einhorn)이 북 핵의 잠정적 동결화를 대북협상개시의 조건이라고 앞서 말한데 대해 한국이 바라는 것은 <제재-동결화-비핵화>라는 틀 내에서의 동결화이며 대화를 위한 대화는 북한에게 시간만 벌어주었기 때문에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중국이 지금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를 성실히 이행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북한에 대한 단순한 전술변화 아닌 전략적 변화로 발전하기위해서는 북한이 앞으로 5차 핵실험을 자행할 경우 석유공급을 전면 차단한다는 신호를 명시적으로 북한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과 북한 관계는 핵실험 이후 양국관계가 악화되고, 대북제재에 동참을 선언하고 있지만 북한과 거래를 해오던 동북3성은 북한과의 거래제한이나 중지로 현실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 한국정부는 동북 3성을 상대로 하는 경제협력을 정책적으로 강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제재가 차질 없이 이행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북한의 국영회사들이 중국기업인 것처럼 위장하여 대중무역을 실시하는데 이들을 적발, 강력히 단속하도록 외교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평화조약과 평화체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 미국이나 중국은 평화협정과 비핵화협상의 병행추진에 합의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재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평화조약이 아닌 평화체제라고 말하고 평화협정이란 현재의 정전협정을 미국과 북한이 당사자가 되어 양자 간에 전쟁종결을 선언하고 이를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한국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견해라고 못 박았다.

이어 평화체제는 비핵화의 바탕위에서 남북한의 군축과 교류, 협력 그리고 미일의 북한승인을 포함한 포괄적인 한반도 평화조건을 정하는 바탕위에서 1953년의 정전협정을 한반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미 간에 평화체제문제에 견해차이가 없다>

이에 대해 Robert Einhorn도 미국이 생각하는 평화협정이 바로 한국 측이 말하는 평화체제와 개념이 같은 것이라면서 미국의 목표는 제재만으로는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비핵화의 수단으로서 평화협정을 함께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현재 북한은 어떤 형태의 대화도 준비된 것 같지 않다면서 북한이 적어도 2005년의 9.19선언수준의 비핵화의지의 표명과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중지, 핵시설의 동경과 IAEA의 사찰 수용, 영변 밖에서 비공식으로 진행 중인 핵 프로그램중지 등 비공식 시설문제도 협상대상으로 삼겠다는 입장이 분명해질 때 미국은 북한과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를 나란히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 양자 간의 평화협정 체결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앞으로 논의할 평화체제 문제 속에는 양측 간의 신뢰회복, 군축, 경제문화교류와 함께 미·북 관계의 정상화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미 간에는 아무런 견해차이가 평화협정문제도 비핵화의 최종단계에서 논의될 과제라고 답했다.

 

한국 측은 대북제재가 진행될 경우 무고한 인민들의 희생이 따른 다는데 여기에는 비례원칙에 따라 인민들의 희생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복숭아를 키우려면 자두나무가 희생한다”는 중국의 속담이 있듯이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내심을 시험하면서 강경하게 나올 경우 여기에 수반하는 최소한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4. 토론의 결론

 

최종토론에서 참가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중국 측은 중국이 말하는 협상적 해결은 지금까지 비핵화의 실적이 없는 6자회담을 반드시 재개하자는 것은 아니며 동북아시아 안보의 큰 틀 속에서 남북한과 중국, 미국의 입장을 포괄하는 통합적 해결방도를 찾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 학자들도 한반도 핵문제는 지난 25년간 잠간씩의 성과는 있었지만 지속적인 성공이 없는 가운데 계속되어 오다가 김정은이 등장하면서 취하는 공격적 핵정책 때문에 전 세계는 경각심을 가지고 제재에 나섰다면서 이번에는 김정은도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측은 현 상황은 주요 이해당사자간에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하며 전술적 도구로서의 제재가 협상을 수반하는 전략적 도구로 발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현시점에는 제재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정권의 변환에 역점을 두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관자로서 아쉬웠던 것은 북한의 진의가 적화통일을 위해 핵무장을 추진하면서도 동족을 상대로 핵 공격을 준비한다는 말을 안 듣기 위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나 핵 공격의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조작하고 있는 본질을 파헤치지 못한 점이다. 앞으로는 북핵문제의 이러한 본질적 측면을 좀 더 심도 있게 파헤쳐 국론통일의 기반을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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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헌정지 2016년 4월호에 게재)

김정은의 퇴출이 한반도 비핵화의 첩경이다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전 국회의원)

 

                                                         1.

 

북한지역에서 김정은이 3대에 걸친 세습독재 권력을 승계하면서부터 오늘의 한반도를 생존무대로 하는 한민족의 우리 세대는 이 땅에서 열핵(熱核)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굳히면서 한반도비핵화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을 전면 거부함으로써 핵문제의 비군사적, 외교적 해결가능성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정은은 그의 선대(先代)인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달리 외교의 중요성을 거의 외면하거나 의식하지 않는 모양새다. 김일성은 6.25동란을 일으킨 전쟁범죄자였지만 북한정권을 지켜 내기위해 중국과 소련사이에서 줄타기외교를 하는 전술적 교활성과 전략적 신중성을 보이면서 정권과 체제를 지탱했다.

김정일도 김일성에 못지않게 외교의 중요성을 터득하고 생존수단으로 때로는 중국에 밀착, 중국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남북대화를 열거나 대미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도발 같은 군사공세도 펼치고 은밀히 핵무기 개발도 추진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김정일은 미국의 대북압살정책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한 억제력확보수단으로 핵개발에 나섰다고 주장, 수세적 입장을 취하면서 미국이 북한의 생존을 확실히 보장한다면 핵무기 비확산(NPT)질서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그의 선대들과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그는 권력을 잡자마자 곧바로 2012년 제3차 핵실험과 제5차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한데 이어 금년 1월 6일에는 제4차 핵 실험과 제6차 광명성 4호로 위장한 장거리미사일발사를 자행했다. 국외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행동이 몰고 올 후과(後果)에 대해 김정은이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충분히 고려했다는 증거는 없다. 김정은은 그간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4회에 걸쳐 통과시킨 북한제재결의를 철저히 무시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우방국으로 행세해온 중국의 권고나 자제요구에도 귀를 닫았다.

 

금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에 대해 유엔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내용을 담은 결의 2270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도 김정은은 이러한 제재도 의식 하지 않는 듯 오히려 본인이 직접 전 세계로 방영되는 TV에 나와서 “핵탄두를 경량화, 규격화할 것이며 서울은 물론 워싱턴·뉴욕도 사정권 안에 들어 있다”는 등 도발적 언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을 향해 핵과 미사일발사를 계속하고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 공격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마치 북한이 G2에 맞서는 G3같은 강대국이나 된 것처럼 핵무기의 비확산(NPT)이나 미사일통제체제(MTCR)라는 국제규범을 사그리 무시하면서 비핵화거부와 핵 무력증강을 공공연히 주장한다. 북한 내부에는 김정은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견제세력이 있을 수 없다. 반론을 제기하는 자는 이유의 타당성과는 관계없이 잔인한 처형이 뒤따르는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를 자행, 집권기반을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제사회에 비친 김정은은 21세기 국제사회의 무법자, 난폭한 질서 파괴자다. 이미 죽은 독일 제3제국의 아돌프 히틀러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망령이 북한 땅에 되살아 난 것 같다.

 이제 국제사회는 한반도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비외교적(非外交的) 대안으로 우선 김정은이라는 폭군을 권자에서 내려오게 하거나 핵과 미사일 시설을 군사적으로 점령, 강제해체하는 응징적 해결을 시도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졌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경계하면서 피해 가야 할 열핵(熱核)전쟁의 위기가 배태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추진을 한반도 문제해결의 대안으로 합의했다지만 김정은의 북한이 현재의 자세를 바꾸지 않는 한 군사충돌의 위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하 김정은의 언행이 몰고 오는 위기상항을 개관키로 한다.

 

                                                          2.

 

 김정은이 그의 언행으로 조성하는 한반도위기는 첫째 한반도 비핵화거부와 핵 무력증강정책을 공세적으로, 명시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시대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비핵화목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2012년 미국과 북한 간에는 2. 29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김정은은 이 합의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 공공연히 비핵화거부입장을 밝혔고 2012년 4월에는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했다. 이어 7월에는 핵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 선언한 후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2013년 3월 31일 핵·경제 병진노선을 내외에 선포했다.

 

 이때 김정은은 핵 선제공격을 노골적으로 거론하면서 자신들의 “첫 타격에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가 녹아나고 남조선 주둔 미군기지는 물론 청와대와 괴뢰군 기지도 동시에 초토화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정은의 선대들 같으면 감히 입 밖에도 꺼낼 수 없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떠벌린 것이다. 곧이어 2012년 미사일과 핵을 결합시킨 전략군을 창설하고 2015년 노동미사일 고각발사(高角發射)실험을 감행하면서 2015년에는 동해상에서 잠수함 발사탄도미사일(SLBM)실험을 단행했다. 이어 금년에는 핵무기를 「개발단계에서 생산 배치단계」로 격상시킨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 북한의 핵능력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전환시키고 있다.

 

 지금 김정은의 심중에는 북한이 ‘핵 국가 상호간에는 공포의 균형으로 서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이론’이 적용될 핵보유국만 된다면 세상에 아무 것도 무서울 것이 없고 미국도 꼼짝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나 핵전략 면에서 핵 국가들끼리 인정하는 공포의 균형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지역이라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현재 김정은의 군사전략이 체제유지와 생존차원을 넘어서서 보다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결국 경제제재를 넘어서서 군사제재로 변할 것이 확실하다. 한미양국이 작계(作計)5015를 준비하는 소이(所以)다.

 

 한반도의 운명이 김정은 때문에 자칫 전쟁에 휘말릴 수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금년 미국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항상 대립하기 일쑤인 공화·민주양당의 상하 양원도 북한을 강력히 제재하자는 데서 놀랄 만큼 국론을 하나로 모았다. 미국 학계나 군사전문가들도 북한은 “위협행동에서 가장 적대적이며 위협능력에서는 두 번째로 심각, 미국의 핵심이익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북한 핵을 추적하는 웹사이트 38 North'운영자인 조엘 위트도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하면 2020년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통일도 요원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4차 핵 실험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회원국들이 대북 제재안을 전원일치로 가결시킨 것도 김정은의 핵전략을 위험스러운 것으로 평가한데 기인한다.

 

 국내일각에서는 중국이 제재에 소극적이어서 제재효과가 감소될 것을 우려하지만 중국도 미국이 독자적으로 취할 군사적 자위조치의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과거처럼 제재에 소극적일 수 없다. 더욱이 미국 국회가 대통령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한 행정명령이 요긴하게 발동될 경우 북한의 고립은 심화될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도 북 핵의 초기단계에는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단호한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북 핵에 대한 제재가 견문발검(見蚊拔劍)아닌 적극적 대처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3.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2270호가 집행되면서부터 북한의 국제고립은 심화되고 대외활동과 외화벌이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김정은 체제가 안고 있는 여러 형태의 내부모순과 갈등이 조만간 현실문제로 표출될 것이다. 우선 김 씨 왕조3대에 걸친 독재권력 유지의 근간이었던 북한엘리트층의 강고한 지배동맹이 김정은의 무원칙하고 자의적이며 잔인무도한 처형위주의 공포정치로 간부숙청이 진행됨에 따라 공동운명체체로서의 일체감은 줄어들고 면종복배가 생존의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점차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 외화벌이감소로 통치자금 마저 고갈된다면 채찍만 있고 당근조차 없는 공포정치에 북한 엘리트층들이 더 이상 배겨날 수 없을 것이다.

둘째로는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세력과 김정은의 선당(先黨)정치세력간의 권력투쟁이 심화될 것이다. 현재는 군복을 입은 민간인들이 군을 지배하고 있지만(황병서가 군총정치국장) 선군세력들이 아직도 확고히 군부 내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양자 간의 모순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셋째로 군부 내에서도 김정은이 핵미사일 부대를 전략군으로 재편성, 우대하기 때문에 재래식 군대와 신형 미사일, 로켓, 핵탄두를 다루는 전략군 간에 암투가 발생, 북한 판 임오군란(壬午軍亂) 같은 사태도 예상된다.

넷째로는 북·중 관계의 악화가 북한 경제의 생존능력을 극도로 약화시킬 것이다. 북한의 대 중국무역의존도는 공식적으로는 69%지만 실제로는 90%를 상회하기 때문에 중국이 가하는 경제제재는 북한 정권에게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다만 유엔결의가운데 포함된 민생 등 인도적 문제에 대해서는 제재가 다소 약하기 때문에 북한의 민생에 직결되는 장마당 경제에는 영향이 크지는 않겠지만 북한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인민군경제가 받는 타격은 심각할 것이다. 특히 광물자원에 대한 유엔의 제재부과와 인력수출을 견제하는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북한 경제의 숨통을 결정적으로 조일 것이다.

다섯째로 심각한 문제는 북한 고위지도층의 탈북행렬이 줄을 잇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의 탈북자들이 실권 없는 엘리트들이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체제 핵심들의 탈북이 증가하고 이들 중 남북군사회담에 대표로 참석했던 박재경 같은 인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도 집권과 동시에 인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민을 더 이상 배고프지 않게 할 것임을 다짐하였지만 핵·경제병진정책을 버리지 않는 한 식량 난, 자원 난, 에너지난은 갈수록 가중될 것이며 경제의 회생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 김정은이 추진하겠다던 19개의 개발특구도 유엔안보리의 초강경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한 한 건(件)도 성사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제 국제사회는 핵 무력의 환상에 사로잡혀 무모한 도발을 일삼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면서 자기 인민들을 극도의 궁핍으로 몰아넣는 공포정치의 폭군 김정은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할 시점에 당도했다. 그를 권좌에서 몰아냄으로써 지역의 안전을 보장하고 북한이 가난에서 벗어날 개혁개방을 이루도록 지혜를 짜내야 한다. 이 기반위에서 국제사회는 필요한 공조를

통해 한반도 통일의 새 시대를 열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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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중국의 선택

                                                  (이글은 2016년 憲政誌 2월호에 기고된 것임)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1. 4차 핵실험의 상황평가

 

북한정권은 지난 1월 6일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서 제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간 주변국들은 김정은이 조만간 이런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중국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처럼 수소폭탄실험에 성공했다는 발표와 더불어 제4차 핵실험을 감행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주지하는 바이지만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작년 9월 오바마 미국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그에 앞선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북 핵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중국은 작년 10월 10일 시진핑 주석의 친서를 휴대한 류윈샨(劉雲山)중국공산당 상임위원을 조선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식에 파견, 이 기회에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 측의 견해를 김정은에게 직접 전달했다.

 

 소식통들에 의하면 류윈샨은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필요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6자회담을 통한 북 핵의 평화적 해결만이 북·중간의 전통적 우의, 협력관계를 복원하는 방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도 이런 중국 측의 태도에 호응, 김정은의 연설에서 핵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것으로 보였다. 국제여론은 이러한 동향을 주목하면서 그간 냉랭했던 북·중관계가 회복될 기미가 보인다고까지 예상했다.

그러나 1월 6일 단행된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중국의 입장을 철저히 무시함과 동시에 그간 펼쳐진 한반도 핵문제의 외교적, 평화적 해결에 대한 모든 기대를 일거에 무산시키고 오직 한층 더 강화된 제재만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시키는 유일한 방도라는 쪽으로 세계여론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이런 여론에 맞서 수소폭탄급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지속되는 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핵실험 추진이유를 밝혔다.

 

북한은 항상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을 핵실험이유로 내놓았다. 1차 핵실험이나 2차 핵실험에서도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들고 나왔으며 제3차나 4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핵실험이 실시되는 상황의 전후관계(Context)를 살펴보면 각 실험 때마다 북한이 겨냥하는 주안점은 달랐다. 2013년 2월 12일의 3차 핵 실험의 경우 중국공산당의 대외연락부가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의 국가주석 취임을 앞두고 한반도의 안정에 북측이 협력할 것을 당부했는데도 김정은은 권자를 이어받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지만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김정은임을 과시하겠다는 심산에서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에 앞선 2012년 12월의 미사일 실험 발사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중 관계는 악화되었으며 유엔안보리의 북한제재에 중국이 적극 참여함과 동시에 시진핑 주석은 지난 4년 동안 한국을 먼저 방문하면서 북한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김정은을 아직까지 만나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이번 4차 핵실험도 상황논리에서 보면 중국이 제시하는 비핵개방노선이 김정은의 생존전략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북한 나름의 결기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미국과 중국 간의 4차 핵실험을 둘러싼 논쟁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미중 간에는 열띤 책임공방이 이어졌다. 북한의 핵실험 다음날인 1월 6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왕이(王毅)외교부장과 전화통화한 후 공개적으로 "중국식 북핵저지방식은 이미 실패했다"고 비판했고 이에 대해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한반도 핵문제의 원인과 문제점은 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며 문제 해결의 관건에도 중국이 있지 않고 미국의 대북한 정책이 오늘의 사태를 몰고 온 원인“이라고 반박했다.

 

그간 미국은 존 케리 국무장관 취임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미국보다는 중국의 안보에 더 관련이 깊다면서 북핵문제의 해결에 중국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핵문제는 당초 미 북 양자 간의 문제처럼 인식되었지만 북한의 핵무장은 미 북한간의 양자문제를 넘어서서 북 핵의 영향을 받는 관련국 모두의 문제라는 키신저의 주장이 반영되어 북 핵을 다루는 외교무대가 6자회담으로 확대되었고 중국이 의장국이 되어 6자회담을 주도했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면서부터 미국은 북한정권의 안보 동맹국이고 북한의 존립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이 아니라 북 핵이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중국이 북핵문제해결에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이 반면 미국은 자국의 입장을 전략적 인내라고 표현하면서 북핵문제해결의 전면에서 한걸음 물러서는 태세를 보였다. 이에 대해 중국학자들은 미국이 화전양면의 어느 공세로도 북핵문제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데다가 2008년 국제금융위기이후 침체를 보이는 자국의 경제사정 때문에 북 핵을 다루는 자국의 입장을 전략적 인내로 호도하면서 북 핵 해결의 모든 책임을 중국에 떠넘긴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두 가지 면에서 정당하다. 중국이 북 핵의 외교적 해결장인 6자회담을 북한이 박차고 나가는 현실을 막지 못하는 한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은 불가능하며 둘째로 유엔안보리의 어떠한 대북제재도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 한 실효를 얻을 수 없다는 현실에 비추어 중국책임론을 강조하는 미국의 주장은 타당하다.

결국 6자회담 실패 후 한국이 중국과의 접근 외교 강화를 통해 북핵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려고 하는 것도 미국의 이러한 대 중국 정책과 본질적으로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중국도 이제 G2라는 국제정치적 지위에 비추어 핵 비확산에 대한 국제책임을 수용하고 북한을 핵보유국가로 인정치 않을 것임을 중국지도부의 대외적 발언을 통해 밝힘과 동시에 4차례에 걸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해 왔다. 또 중국역시 모든 강대국들이 그러한 것처럼 국경에 인접한 약소국이 핵무장으로 대드는 상황을 용납하기는 더더욱 힘들 것이다. 물론 중국학자들 가운데는 한 때 북한의 핵문제를 대수롭게 생각지 않으면서 중국주변에 핵 가진 여러 국가 중에 북한이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당 지도부가 북한의 핵 보유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결정, 발표하면서부터 일거에 사라졌다. 따라서 북한의 핵 처리 논의는 사실상 북 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공산당 지도부의 입장이 어떻게 현실정책으로 구체화될 것인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중국의 비핵개방권고를 거부하고 중국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겠다면서 핵실험을 강행, 동북아시아 대륙에서의 핵도미노 현상(일본과 중국 간의 핵 대결상황)을 몰고 올 가능성을 중국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 한편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진행되는 미국과의 갈등상황도 한반도 정세와의 연관 속에서 심도 있게 검토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고려가 구체적으로는 유엔안보리의 북한 제재수준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중국자체의 독자적 제재구상에도 반영될 것이다.

 

3. 중국과 북한관계의 재조명

 

북한의 핵무장 기도는 당초 6.25 사변에서의 처절한 패배에 대한 반성에서 김일성이 꿈꾸었던 일이지만 구체적 실천에 박차를 가한 것은 중국이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과의 수교를 단행한데서 부터 자위책강화수단으로 시도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 핵무장의 배경에는 중국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있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은 상황마다 겨냥하는 목표가 다르다. 금년 5월에 36년 만에 실시할 노동당 전당 대회를 앞두고 자신들의 업적을 과시, 주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데도 큰 목적이 있겠지만 더 비중을 둔 것은 앞서도 지적했지만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주축으로 하는 자위노선에 어떠한 영향력도 미칠 수 없음을 과시하는데 더 큰 뜻을 두었다.

 

북한은 류윈산의 북한 방문이후 중국과의 관계조정을 놓고 심각한 내부토론을 거쳤다고 한다. 북한의 원로장성들은 중국이 제시한 비핵개방의 길이나 남북대화가 북한 김정은의 세습 독재권력 유지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으며 여기에 곁들여 모란봉 예술단의 안무(按舞)가운데 담겨진 미사일 발사장면에 대한 중국지도부의 부정적인 반응 등을 종합한 끝에 김정은은 더 이상 중국에 끌려 다니지 않는 자주정권임을 과시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수소폭탄실험으로 명명된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번 4차실험이 3차와 다른 것은 사전에 중국 측에 전혀 통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핵실험 직전에 발표된 대남협상을 주도하던 김양건의 돌연사도 북한지배체제의 내부흐름의 일단을 말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동맹국이긴 하지만 안보 면에서 믿을 수 없는 동맹국이다. 중·북간에 조약은 있지만 양자 간에는 한번도 합동군사훈련이 없었고 새로운 군사무기거래나 안보전략협의마저 없었으며 유엔안보리의 북한제제결의에 중국은 찬성했다. 동맹조약의 시효는 2021년까지지만 사문화된 지 오래다. 또 최근 시진핑 정권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경제협력기구인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개발은행)에 북한 측은 참여자격이 부정되었으며 그에 앞서 결성된 샹하이 협력기구나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기구(CICA)에도 북한의 참여는 배제되었다.

이 반면 중국의 한국과의 관계는 다방면적으로 개선되었다. 한중간에는 FTA의 체결로 경제면에서는 동맹국에 준하는 협력관계가 정립되었으며 시진핑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 간에는 5차에 걸친 정상회담이 열렸다. 특히 중국의 시진핑 정부는 항일투쟁시의 한중공동투쟁의 파트너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한국으로 인정하면서 하얼빈의 안중근(安重根)의사 동상건립, 시안(西安)의 광복군 표지석 복원, 샹하이 임시정부 청사복원, 충칭의 광복군 사령부 복원(예정)등을 적극 지원하고 항일전쟁승리 70주년기념식의 천안문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하는 친한(親韓)적 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정황을 놓고 볼 때 김정은은 적어도 중국공산당이 오늘날 한국을 상대로 펼치는 정책이나 노선이 전혀 달갑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게 취하라고 제시하는 권고도 김정은의 3대에 걸친 세습독재정권의 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핵강성(强盛)대국만이 자기의 살길이라는 보수적 결론에서 4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의 중국불신은 심각의 극을 넘어섰다. 북한은 핵실험이 감당하기 힘든 부작용을 몰고 올 것을 예상하면서도 고난을 이겨낸다는 자신감과 중국이 지정학 상 순치관계에 있는 북한을 끝내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론을 깔고 버틸 것이다.

 

4. 맺는 말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우리 사회의 일각에는 북핵문제 해결에서 중국은 어느 경우에도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거나 박근혜 정부의 중국친화정책도 아무 성과가 없다는 중국불신론이 번지고 있다. 설사 중국이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에 참가하지만 북한이 핵을 실질적으로 포기하게 만들 강경제재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의 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신이나 비관에 앞서 신중하고 지혜로운 전략적 사고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중국정부는 북핵문제처리원칙으로 이른바 ①한반도 비핵화, ②한반도 안정, ③대화에 의한 해결의 3원칙을 들고 나오면서 이 중 어느 한 요소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缺一不可)고 말하지만 이것이 중국의 본심이라면 우리는 북핵문제에 관련해서 중국에 어떤 기대도 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핵개발 강경론에 매달리는 김정은이 북한을 틀어쥐고 있는 한 중국이 말하는 3원칙에 의한 한반도 문제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중국 또한 이것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와 같이 앞으로도 북한정권의 존속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존속과 북한의 존속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지금 김정은은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달리 카리스마도 없고 그런 수준의 인물대안은 북한내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또 비핵개방만을 살길로 믿는 장마당 세력이 북한 각지에서 나날이 강성해지고 있는데 이런 현실을 중국이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김정은을 권력에서 배제하는 공조를 조용히 추진한다면 노동당 내부의 궁중정변과 같은 방식으로도 김정은 제거가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이러한 접근(Plan B)을 추진할 능력을 충분히 비축하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중국에 대한 불신이나 비관에 앞서 이러한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중국을 움직이게 할 공식, 비공식의 전략카드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이를 서둘러야 할 이유는 북한의 핵무장은 앞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 번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재앙의 근원이기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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