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심리전 공세에 휘둘리지 말자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1. 시진핑 시대와 한중관계
2013년 시진핑이 중국의 국가주석에 취임하면서부터 중국의 내치외교에 새바람이 일어났다. 우선 외교에서는 덩샤오핑(鄧小平)이래 표방했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기조가 유소작위(有所作爲)로 바뀌었다. 국제관계에서 영향력을 휘두르기보다는 조용히 힘을 기르면서 때를 기다리자는 정책을 지양하고 국력에 상응하는 발언권을 행사하고 서구(西歐)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규범이나 규제에 얽매이기보다는 세계인구의 5분의 1을 갖는 대국으로서 중국이 국가발전에 유리한 규범이나 규칙을 만드는 국가로서 발돋움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진핑 주석은 주변국을 상대로 하는 외교에서는 후진타오(胡錦燾)시대의 3린(睦隣, 安隣, 富隣)보다 진일보한 덕치(德治)를 강조하면서 친성혜용(親誠惠容)을 자기의 외교정책으로 내세웠다. 친선혜용이 적용되는 주변국들에게 대해서는 운명공동체라면서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동시에 일로일대(一路一帶)정책과 이를 물질적으로 뒷받침할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설립은 중국이 표방한 주변국외교정책의 실천적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취임과 동시에 한국에 대해 우호적 조치를 취했다. 앞서의 정권들과는 달리 한국임시정부를 항일전쟁당시의 한중협력의 파트너로 공인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요청한 안중근 의사기념관을 설립 해주는가하면 시안(西安)의 광복군 기념비석, 샹하이 임시정부 청사보수, 충칭(重慶)의 광복군사령부 복원 등을 지원해 준 것은 한중관계를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도 시진핑 외교의 이러한 흐름에 주목하면서 한중간의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한층 더 성숙시키는 한편, 한중FTA를 체결하였고 AIIB에도 적극 참여하였으며 또 서방의 어느 국가도 참석하지 않는 항일전쟁승리 70주년 행사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 천안문 광장의 사열대에 섰다. 한국은 1941년 12월 9일 한국이 그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당시 중국정부에 뒤이어 대일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더불어 항일전쟁승리 70주년행사에 참가할 명분이 있다.
2. THAAD배치허가와 한중관계의 풍파
그러나 지난 7월 8일 한국정부가 미국의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설치를 허용한다고 발표한 것과 동시에 한중관계에는 큰 풍파가 일어났다. 중국은 한국정부가 미국에 설치 허가를 해준 THAAD가 이 지역의 전략균형을 중국에게 불리하게 변경시키는 조치-중국의 왕이(王毅)외교부장의 표현을 빌면 THAAD가 한국방위의 범위를 넘어서는 조치라고 규정하고 THAAD설치의 재고(再考)를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물론 인접국가간에 안보상의 이해관계 때문에 분쟁이나 대립이 야기될 수도 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외교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THAAD설치허용에 대한 중국 측의 반응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지나친 기우(杞憂)거나 과잉반응이다. 우선 THAAD는 공격무기가 아닌 방어무기이다. THAAD체계에 부수된 AN/TPY-2 X-Band 레이더의 경우 통상적인 운용범위는 600여 ㎞에 불과하고, 인공위성 등으로부터 받은 정보에 근거하여 공격해오는 상대의 미사일을 ‘추적’,요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레이더가 CCTV처럼 중국의 모든 군사 활동을 탐지할 수 있는 것으로 호도하였으나, 레이더는 점(点)으로 나타난 정보를 해석하여 대상물체를 파악하는 장비로서 CCTV처럼 다른 일반적 군사정보를 파악할 수는 없음은 중국의 군사전문가들도 잘 알고 있다.
현시점에서 THAAD를 한국에 배치하도록 허용한 것은 중국의 공격위협 때문이 아니다. 북한이 증강시키고 있는 미사일위협 때문이다. 주한미군을 타격목표로 해서 북한이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과 잠수함 발사 미사일실험을 강행, 임의의 시간에 공격을 가해올지 모를 상황을 조성하는 것에 주목할 때 미국정부가 주한미군의 안전을 위해 북한의 미사일공격으로부터 자국군대를 지키기 위해 미국정부가 발주, 제작한 THAAD를 한국에 설치하도록 한국정부에 허가를 요청해왔고 군사동맹국가로서의 한국이 동맹관계를 깨지 않는 한 이를 허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면서도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방어무기인 사드배치를 허가하지 말라고 한국에게만 일방적으로 압박을 가한다.
한국정부는 사드문제가 제기된 이래 지난 2년간 중국과의 ‘성숙한 전략동반자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THAAD를 배치하지 않고도 안보위협을 극복할 방법을 안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는데 주력, 2020년 상반기에야 한국의 독자적인 미사일 방어망이 갖추어질 전망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미사일 방어망이 구축될 때까지의 안보 공백을 메울 방도의 하나로 THAAD를 검토하게 된 것이다. 중국은 창(槍)을 휘두르는 북한에는 침묵하면서 방패를 갖추려는 한국의 THAAD배치허용만을 자국안보에 불리하다면서 반발하는 것은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갑(甲)질로 보일 뿐이다.
3. 중국의 일부학자와 언론들의 심리전 공세
사드 배치허용과 때를 같이하여 중국의 일부 언론이나 한국을 자주 들락거린 이른바 지한(知韓)파 학자들이 한국에 대해 강력히 보복할 것을 중국정부에 촉구하는 언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이들의 주장이나 중국네티즌들의 반응이 시진핑 정부의 정책이 된 것은 전혀 아니다. 다분히 심리전적 목표를 지닌 언동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의 환쥐스바오(環球時報)가 7월 14일자 보도에서 성주군(星州郡)에 대한 제재를 거론했다. 성주군이 THAAD배치결정이나 허가와 아무 관련이 없는 지방자치단체인데도 마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지적하면서 군민들의 반대로도 설치가 저지되지 않는다면 중국정부는 성주군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G2로 불리는 강대국의 저명한 언론기관이 벌이는 논설치고는 그 품위와 수준 낮음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중국의 일부 언론이나 학자들이 이런 보복선동발언을 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한국의 여론을 흔들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다양성이 허용된 한국사회의 여론은 국익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논리적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군사기지의 설치문제가 나올 때마다 집단적 저항과 여론분열이 일어나는 상황에 그들은 주목했을 것이다. 또 역사적인 사대의식 탓인지 일부 중국 언론이나 학자들의 위협언동 등 심리전 공세에 항상 취약했다.
여기에 중국전문가로 행세하는 한국학자들이나 언론들도 한중관계가 어려워질 때 그들의 전문성을 어려움을 극복 타개할 방도로 쓰기 보다는 중국의 한국에 대한 심리전공세에 동조하거나 걱정하는 체 하면서 중국 측 편을 드는 경우도 눈에 띤다.
THAAD허가여부가 검토단계일 때는 여러 가지 득실을 따질 논의가 필요하지만 정부가 최종적으로 허가결론을 내렸을 때부터는 정부결정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이 정치권이나 학계가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한 저명한 언론인 가운데는 자기가 마치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나 된 것처럼 THAAD의 포기를 감히 자기만의 이유로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4. 한국은 추호도 휘둘릴 필요가 없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중국의 심리전 공세에 추호도 흔들릴 필요가 없다. THAAD배치로 중국이 느끼는 안보위협이나 전략적 균형의 불리한 변화라는 것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상상적이고 단기적이기 보다는 중장기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한미관계를 놓고 중국이 한국에 거는 변화의 기대 역시 현실적이기 보다는 희망론적(Wishful)이다. THAAD의 위협성 여부는 한미중(韓美中)3국 군사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토의한다면 저절로 해답이 나올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중국을 추호도 적(敵)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박근혜 대통령취임과 더불어 다져진 ‘성숙한 전략동반자관계’를 유지, 발전시킨다는 것이 한국외교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 있다. 중국의 일부언론들이 제기하는 한국에 대한 보복주장은 어느 경우에나 결코 심리전 수준을 넘지 못한다. 만일 보복적 제재가 중국정부의 현실정책이 된다면 중국은 북한과 한국을 동시에 제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북한은 유엔을 통한 경제제재 대상이고 한국은 THAAD에서 비롯된 독자제재대상이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책임 있는 강대국반열에 오른 중국이 유엔결의에 맞서는 북한의 미사일공세에 대한 방위강화조치의 하나로 THAAD배치를 허용했다고 해서 그간 한중(韓中)간에 형성된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희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주변국을 상대로 하는 외교노선인 친성혜용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면서까지 한국에 대해 보복정책을 취할 리 없으며 더욱이 한중FTA나 AIIB에 대한 양국협력을 약화시키거나 포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 할진 데 우리는 일부 중국 언론이나 학자들의 언동에서 나오는 심리전 공세에 조금치도 휘둘릴 필요도 없고 휘둘려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나 국력 면에서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 을(乙)일 수 있다. 이것은 지정학에서 비롯된 우리들의 숙명일지 모른다. 따라서 乙이라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비극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비극적인 것은 ‘乙’ 자체가 분열되어 乙의 몸값마저 제대로 챙기지 못하게 되는 경우이다.
내적 분열의 극복이 초미의 과제다. 이제 외교안보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는 경구(警句)를 우리 모두가 생활화하지 않고는 나라를 위기에서 지킬 수 없다. 정치인이나 학자, 언론인, 교육자들이 모두 이러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당면한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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