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6자회담의 방관자인가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겨냥하여 열린 6자회담이 지난 9월 열린 4차 회담을 끝으로 3년 반 만에 성과 없이 침몰하는 것 같다.
당초 미국은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으나 2002년 부시대통령이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가진 후 중국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면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3년 이상 끌어온 6자회담의 기간 중 북한에 대해 미국이 기대하는 만큼의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았다. 국제위기관리기구의 전문가 피터 백(Peter Beck) 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중국이 스스로 인정하는 것 보다는 크고 외부에서 믿는 것보다는 작다”면서 그러나 중국은
지금까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의 외교위상을 세우는데 필요한 정도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북한이 강행하겠다는 핵실험을 막는다거나 6자회담을 보이콧하는 행동만 자제시켰을 뿐 실질적으로 핵무기를 포기시키는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6자회담에 대한 최신의 점검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미국과는 달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이 자율적으로 핵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이상의 행동을 취할 전망이 없다고 단정하고 6자회담을
통한 북 핵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태도는 그간 잠재화되었던 김정일 정권교체론을 다시 들고 나오고 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
스티븐 해들리의 정권변형론(Regime Transformation)이나 미 국무성 부장관 로버트 죌릭의
정권변화론(Regime Evolution)은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본질은 동일하다.
부시 대통령은 인민을 굶기면서 핵무기개발을 추진하는 김정일 정권을 도덕적으로 최악의 정권이라고 비판하면서 위폐문제, 마약문제, 인권문제를 강력히 제기,
북한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납치공세, 유럽의
인권공세가 가중되고 미국의 PSI(비확산안전조치구상)를 통한
대북봉쇄망은 한층 더 좁혀지고 있다.
이러한 공세로 북한이 존립의 위기에 처하자 중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늘리는 한편 대북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북한의 대중국 경제의존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중국은 그간 북한정권의 연명에 필요한 만큼만 지원해오던 식량과 에너지를 모두 대북투자로 전환하면서 북한지역을 자원조달, 상품시장, 물류기지로 변환시키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중국은 그들의 개혁개방을 경제면에서 사실상 북한에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현시점에서 자국경제가 중국동북경제권에 빨려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중국에 매달리는 이외의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는 처지이다.
미국은 김정일 정권의 교체가 한국이나 중국이 큰 재앙(災殃)으로 받아들이는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보지 않고 김정일 정권만 퇴진시키면 북한도
다른 동구의 공산국가들처럼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정권의 구조와 속성에 관한 비경험적 가설에 근거한다. 현재 체제붕괴를 수반하지 않는 북한정권의 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한국이나 중국의 북한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이처럼 와해의 국면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외교는 심각한 갈등의 국면을 맞고
있다. 동맹국인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맞장구를 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국처럼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할 만큼 북한에 대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민족공조의 이름하에 북한에 식량, 비료, 생필품을 지원하는 뒷바라지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현재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 남북한 간에 이른바 “정상회담”이 거론되지만 실효성 있는 현안타결을 기대할 수 없다. 또 정상회담을 통해 양자간에 어떠한
합의를 이룬다고 해도 그것이 유효한 것이 되려면 주변국들의 양해와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현재의 한미관계, 한일관계가 너 무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 시점에서 한국외교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한미일 공조체제를 신속히 복원하는 것이다. 이 기반위에서 한국은 한반도 비핵
화의 촉진요소로서 북한의 안전보장과 북한경제의 회생 및 산업재건비용을 국제사회가 분담, 실천할 새로운 방안을 제안해야 한다. 개성 공단 제품의 출로보장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한다.
한국은 먼저 이러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미국, 일본, 중국 등이 수용토록 협상을 벌인 후 그 성과를 바탕으로 남북정상간 대화를 추
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효율적인 노력 없이 미군이 입주할 평택 부지를 사실상의 내전상태에 방치해 놓고 미국의 대북압박공세에 어 깃장을 놓는 언동과 대북물자지원으로 한국의 외교정책이 표현된다면 우리는 또다시 북 핵 외교에서 방청객의 위치로 밀려날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되는 한국외교를 한말외교만도 못한 것으로 평가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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