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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의 조속한 정상화를 기대한다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2차 회의가 끝났다. 북측은 이 회의에서 남측에 경공업건설에 필요한 자제, 비료, 지하자원 및 시베리아 벌목, 석탄채굴사업을 위한 투자지원 등을 요구했다. 그간 남북협력은 1995년 말 북한이 엄청난 수재로 식량난에 봉착했다면서 유엔에 식량 원조를 호소한 이래 인도적 차원의 대북경협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 단계 남북협력의 과제는 인도적 차원을 넘어서서 북한산업의 재건지원으로 그 중점이 대폭 옮겨지고 있다. 작년 5월 북경에서 열린 북한지원NGO세계대회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북한에서 인도적 지원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활동해 왔던 각국의 NGO들이 오늘날 북한상황은 인도차원을 넘어선 개발협력단계에 접어들었다면서 인도적 지원 단체들의 임무는 사실상 종료되었다고 보고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도지원사업과 개발 협력 사업은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도 지원 사업은 무조건적이며 지원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를 요구하지 않지만 개발 협력 사업은 보상과 상환계획을 수반한 개발계획위에서 국가간 협력을 실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되고 이 원칙이 준수될 때 비로소 협력의 실효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합의는 남북경협이 시작된 이후 인도적 차원의 일방적 지원 형식이 아닌 개발협력차원의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하다. 남북한은 이번  제주(
濟州)회담에서 경공업·지하자원개발 협력 합의서를 채택하고 남측이 북측의 신발, 비누, 옷 등을 만들 수 있도록 8000만 달러(800억원)상당의 원자재를 지원하기로 하고 여기에 상환기일과 연체이자에 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개발협력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남측에 협력을 요구하는 북측의 태도이다. 북측이 한국에 대하여 개발협력을 요구하는 태도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북측은 처음부 터 대남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한 가운데 남측에 대해 마치 맡겨놓은 물건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협력을 요청하고 남측은 개발차관공여에 서 반드시 요구되는 상대방 측 사업계획의 타당성이나 실현가능성을 검토할 기초자료조차 변변히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북측은 비록 경제지원을 받더라도 어떠한 내정간섭적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자료제출요구를 묵살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지금까지 북측의 이러한 태도를 그대로 수용해 왔고 이를 대북포용정책이라고 정의했다. 이 결과 북측은 작년도에 국회에서 통과된 1조원이상의 남북협력기금을 마치 자기네들 예산인 것처럼 내용을 소상히 파악하고 경추위(經推委)를 통해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대북경협에 임하는 남측의 태도가 이러하기 때문에 북측은 언제나 협상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남북 간에 이루어진 합의들을 자기들 편의에 따라 수시로 파기했다. 남북철도시험운행약속을 북측 이 하루아침에 취소한 것은 그 대표적 실례이다. 당초 남북철도연결사업은 북한 쪽이 맡아야 할 공사지역의 원자재, 공사비까지를 남측이 사실상 전액 부담함으로써 성사되어 시험운행이 합의된 것인데 북측은 철도운행과 전혀 무관한 문제를 들고 나와 남측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물론 정부가 항의했다지만 그 항의는 일방적 약속파기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북측이 실감할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태도까지를 포용해야만 남북 간에 전쟁을 막고 북한의 변화도 촉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현재의 남북관계는 남측이 북측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저자세를 취하지 않고 협상의 주도권을 쥐더라 도 남북관계가 단절되거나 안보 위기가 조성될 상황이 결코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은 지금 북한체제의 급작스런 붕괴를 바라지 않 는 남한과 중국의 협력과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는 정권을 지탱하기 힘든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제주합의는 비록 문서로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남북철도시험운행을  북한에 대한 경협발효의 중요한 선행조건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기왕의 합의들보다는 진일보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북측이 또다시 군부의 반발을 핑계 삼아 시험운행약속을 지연시킬  경우 현 정부가 과연 이에 단호히 맞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남측이 이럴 경우 북측에 언제나 양보해왔기 때문 이다. 

그러나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의 조소나 울분을 유발할 편무적 대북포용정책을 지양하고 약속준수라는 상식차원의 경협관(
經協觀)을 정착시켜 남북협력을  정상화해야 한다.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보가 위태로워진다는 주장은 시효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06/6/15일자 이영일 칼럼과 이영일 홈페이지 www.rep201.or.kr 통일꾼 이야기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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