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헌정지 2016년 4월호에 게재)
김정은의 퇴출이 한반도 비핵화의 첩경이다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전 국회의원)
1.
북한지역에서 김정은이 3대에 걸친 세습독재 권력을 승계하면서부터 오늘의 한반도를 생존무대로 하는 한민족의 우리 세대는 이 땅에서 열핵(熱核)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굳히면서 한반도비핵화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을 전면 거부함으로써 핵문제의 비군사적, 외교적 해결가능성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정은은 그의 선대(先代)인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달리 외교의 중요성을 거의 외면하거나 의식하지 않는 모양새다. 김일성은 6.25동란을 일으킨 전쟁범죄자였지만 북한정권을 지켜 내기위해 중국과 소련사이에서 줄타기외교를 하는 전술적 교활성과 전략적 신중성을 보이면서 정권과 체제를 지탱했다.
김정일도 김일성에 못지않게 외교의 중요성을 터득하고 생존수단으로 때로는 중국에 밀착, 중국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남북대화를 열거나 대미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도발 같은 군사공세도 펼치고 은밀히 핵무기 개발도 추진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김정일은 미국의 대북압살정책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한 억제력확보수단으로 핵개발에 나섰다고 주장, 수세적 입장을 취하면서 미국이 북한의 생존을 확실히 보장한다면 핵무기 비확산(NPT)질서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그의 선대들과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그는 권력을 잡자마자 곧바로 2012년 제3차 핵실험과 제5차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한데 이어 금년 1월 6일에는 제4차 핵 실험과 제6차 광명성 4호로 위장한 장거리미사일발사를 자행했다. 국외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행동이 몰고 올 후과(後果)에 대해 김정은이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충분히 고려했다는 증거는 없다. 김정은은 그간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4회에 걸쳐 통과시킨 북한제재결의를 철저히 무시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우방국으로 행세해온 중국의 권고나 자제요구에도 귀를 닫았다.
금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에 대해 유엔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내용을 담은 결의 2270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도 김정은은 이러한 제재도 의식 하지 않는 듯 오히려 본인이 직접 전 세계로 방영되는 TV에 나와서 “핵탄두를 경량화, 규격화할 것이며 서울은 물론 워싱턴·뉴욕도 사정권 안에 들어 있다”는 등 도발적 언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을 향해 핵과 미사일발사를 계속하고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 공격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마치 북한이 G2에 맞서는 G3같은 강대국이나 된 것처럼 핵무기의 비확산(NPT)이나 미사일통제체제(MTCR)라는 국제규범을 사그리 무시하면서 비핵화거부와 핵 무력증강을 공공연히 주장한다. 북한 내부에는 김정은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견제세력이 있을 수 없다. 반론을 제기하는 자는 이유의 타당성과는 관계없이 잔인한 처형이 뒤따르는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를 자행, 집권기반을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제사회에 비친 김정은은 21세기 국제사회의 무법자, 난폭한 질서 파괴자다. 이미 죽은 독일 제3제국의 아돌프 히틀러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망령이 북한 땅에 되살아 난 것 같다.
이제 국제사회는 한반도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비외교적(非外交的) 대안으로 우선 김정은이라는 폭군을 권자에서 내려오게 하거나 핵과 미사일 시설을 군사적으로 점령, 강제해체하는 응징적 해결을 시도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졌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경계하면서 피해 가야 할 열핵(熱核)전쟁의 위기가 배태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추진을 한반도 문제해결의 대안으로 합의했다지만 김정은의 북한이 현재의 자세를 바꾸지 않는 한 군사충돌의 위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하 김정은의 언행이 몰고 오는 위기상항을 개관키로 한다.
2.
김정은이 그의 언행으로 조성하는 한반도위기는 첫째 한반도 비핵화거부와 핵 무력증강정책을 공세적으로, 명시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시대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비핵화목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2012년 미국과 북한 간에는 2. 29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김정은은 이 합의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 공공연히 비핵화거부입장을 밝혔고 2012년 4월에는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했다. 이어 7월에는 핵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 선언한 후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2013년 3월 31일 핵·경제 병진노선을 내외에 선포했다.
이때 김정은은 핵 선제공격을 노골적으로 거론하면서 자신들의 “첫 타격에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가 녹아나고 남조선 주둔 미군기지는 물론 청와대와 괴뢰군 기지도 동시에 초토화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정은의 선대들 같으면 감히 입 밖에도 꺼낼 수 없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떠벌린 것이다. 곧이어 2012년 미사일과 핵을 결합시킨 전략군을 창설하고 2015년 노동미사일 고각발사(高角發射)실험을 감행하면서 2015년에는 동해상에서 잠수함 발사탄도미사일(SLBM)실험을 단행했다. 이어 금년에는 핵무기를 「개발단계에서 생산 배치단계」로 격상시킨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 북한의 핵능력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전환시키고 있다.
지금 김정은의 심중에는 북한이 ‘핵 국가 상호간에는 공포의 균형으로 서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이론’이 적용될 핵보유국만 된다면 세상에 아무 것도 무서울 것이 없고 미국도 꼼짝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나 핵전략 면에서 핵 국가들끼리 인정하는 공포의 균형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지역이라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현재 김정은의 군사전략이 체제유지와 생존차원을 넘어서서 보다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결국 경제제재를 넘어서서 군사제재로 변할 것이 확실하다. 한미양국이 작계(作計)5015를 준비하는 소이(所以)다.
한반도의 운명이 김정은 때문에 자칫 전쟁에 휘말릴 수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금년 미국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항상 대립하기 일쑤인 공화·민주양당의 상하 양원도 북한을 강력히 제재하자는 데서 놀랄 만큼 국론을 하나로 모았다. 미국 학계나 군사전문가들도 북한은 “위협행동에서 가장 적대적이며 위협능력에서는 두 번째로 심각, 미국의 핵심이익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북한 핵을 추적하는 웹사이트 38 North'운영자인 조엘 위트도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하면 2020년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통일도 요원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4차 핵 실험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회원국들이 대북 제재안을 전원일치로 가결시킨 것도 김정은의 핵전략을 위험스러운 것으로 평가한데 기인한다.
국내일각에서는 중국이 제재에 소극적이어서 제재효과가 감소될 것을 우려하지만 중국도 미국이 독자적으로 취할 군사적 자위조치의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과거처럼 제재에 소극적일 수 없다. 더욱이 미국 국회가 대통령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한 행정명령이 요긴하게 발동될 경우 북한의 고립은 심화될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도 북 핵의 초기단계에는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단호한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북 핵에 대한 제재가 견문발검(見蚊拔劍)아닌 적극적 대처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3.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2270호가 집행되면서부터 북한의 국제고립은 심화되고 대외활동과 외화벌이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김정은 체제가 안고 있는 여러 형태의 내부모순과 갈등이 조만간 현실문제로 표출될 것이다. 우선 김 씨 왕조3대에 걸친 독재권력 유지의 근간이었던 북한엘리트층의 강고한 지배동맹이 김정은의 무원칙하고 자의적이며 잔인무도한 처형위주의 공포정치로 간부숙청이 진행됨에 따라 공동운명체체로서의 일체감은 줄어들고 면종복배가 생존의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점차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 외화벌이감소로 통치자금 마저 고갈된다면 채찍만 있고 당근조차 없는 공포정치에 북한 엘리트층들이 더 이상 배겨날 수 없을 것이다.
둘째로는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세력과 김정은의 선당(先黨)정치세력간의 권력투쟁이 심화될 것이다. 현재는 군복을 입은 민간인들이 군을 지배하고 있지만(황병서가 군총정치국장) 선군세력들이 아직도 확고히 군부 내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양자 간의 모순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셋째로 군부 내에서도 김정은이 핵미사일 부대를 전략군으로 재편성, 우대하기 때문에 재래식 군대와 신형 미사일, 로켓, 핵탄두를 다루는 전략군 간에 암투가 발생, 북한 판 임오군란(壬午軍亂) 같은 사태도 예상된다.
넷째로는 북·중 관계의 악화가 북한 경제의 생존능력을 극도로 약화시킬 것이다. 북한의 대 중국무역의존도는 공식적으로는 69%지만 실제로는 90%를 상회하기 때문에 중국이 가하는 경제제재는 북한 정권에게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다만 유엔결의가운데 포함된 민생 등 인도적 문제에 대해서는 제재가 다소 약하기 때문에 북한의 민생에 직결되는 장마당 경제에는 영향이 크지는 않겠지만 북한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인민군경제가 받는 타격은 심각할 것이다. 특히 광물자원에 대한 유엔의 제재부과와 인력수출을 견제하는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북한 경제의 숨통을 결정적으로 조일 것이다.
다섯째로 심각한 문제는 북한 고위지도층의 탈북행렬이 줄을 잇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의 탈북자들이 실권 없는 엘리트들이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체제 핵심들의 탈북이 증가하고 이들 중 남북군사회담에 대표로 참석했던 박재경 같은 인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도 집권과 동시에 인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민을 더 이상 배고프지 않게 할 것임을 다짐하였지만 핵·경제병진정책을 버리지 않는 한 식량 난, 자원 난, 에너지난은 갈수록 가중될 것이며 경제의 회생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 김정은이 추진하겠다던 19개의 개발특구도 유엔안보리의 초강경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한 한 건(件)도 성사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제 국제사회는 핵 무력의 환상에 사로잡혀 무모한 도발을 일삼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면서 자기 인민들을 극도의 궁핍으로 몰아넣는 공포정치의 폭군 김정은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할 시점에 당도했다. 그를 권좌에서 몰아냄으로써 지역의 안전을 보장하고 북한이 가난에서 벗어날 개혁개방을 이루도록 지혜를 짜내야 한다. 이 기반위에서 국제사회는 필요한 공조를
통해 한반도 통일의 새 시대를 열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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