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략외교와 박근혜 독트린의 필요성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1. 들어가면서

 

지금 한국외교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중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잠재적 패권국(Potential Hegemon)으로 발돋움, 미중관계가 경쟁, 갈등관계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의 시작과 더불어 자국의 발전을 평화적 굴기(崛起)라고 설명하면서 GDP 총량규모에서 일본을 제치고 G2로 부상하였다.

 

이때부터 세계전략가들의 눈에는 중국이 금후 제2차 세계대전종전이래 지구최강자로 군림해온 미국에 맞서 패권(覇權)을 추구할 국가로 투사되면서 다만 그 접근방식과 전개양식이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국가주석에 취임함과 동시에 내치외교에서 중국의 본심을 드러냈다. 우선 내치 면에서는 개혁의 심화를 통해 고속성장의 역기능을 극복하면서 전면적인 부패척결을 겨냥하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을 강조, 내부권력 다잡기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동시에 대외정책으로는 미국을 상대로 신형대국관계를 주장, 미국이 중국을 대등한 강국으로 대접해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아시아안보는 아시아인들이 주도할 것을 강조하고 나아가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로 알려진 신 실크로드 정책을 발표했다.

또 신 실크로드 정책추진에 필요한 물질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거금을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sia Infra-Invest Bank:AIIB)과 신 브릭스 은행(New BRIGS Bank)설립에 투자하고 있다. 필자는 본고에서 중국의 내치보다는 중국의 새로운 대외정책, 그것도 전략가들의 눈에 중국식 패권추구로 평가될 일대일로로 불리는 신 실크로드 정책(New Silk Road Initiative)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한국외교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2.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이따이이루)정책

 

시진핑 주석은 취임과 동시에 중국의 대외노선을 덩샤오핑(鄧小平)이래의 도광양회(韜光養晦)에 머물지 않고 G2로 성장한 국력에 걸맞게 세계정치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이른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태세를 갖추는 한편, 가능한 한 미국과 충돌하는 것을 피하면서 중국을 장래의 잠재적 패권국으로 키워나갈 전략방침으로 신 실크로드 정책을 입안 추진하고 있다.

 

이 정책은 현재의 내치외교상 중국이 당면한 난국돌파를 위해 세 가지의 장점을 지닌다. 첫째 투자과잉과 내수부진, 수출 감소로 고속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중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경제는 현재 지역, 계층, 도농, 동서 간의 심각한 격차, 소수민족의 분란 등으로 대내적 위기가 심화되고 수출도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방도로 흔히 신창타이(新常態)라고 부르는 경제고속성장의 조정국면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간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격차해소를 목표로 유엔통상개발회의가 오랫동안 추진해온 개발도상국 인프라 개발의 새로운 기회를 중국이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즉 유엔의 목적과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그간 중국은 외교적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들의 비동맹 중립운동에 어께를 함께 하면서 이들의 맹주적 지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셋째로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은 이것이 성공할 경우 범지구적 규모로 미국과 경쟁을 벌이는 중국식 패권전략이 되면서도 국제사회에 투영되는 정책의 모습은 결코 반미(反美)가 아니다. 만일 일대일로 정책이 반미로 투영된다면 AIIB 창설에 가입할 국가는 많지 않거나 자칫 와해될 수도 있다. 중국 베이징 대학의 왕지스(王緝思)교수가 현시점에서 중국이 반미동맹을 전개한다면 여기에 가세할 국가는 지구상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 한 바 있다.

중국은 이제 중국 시안(西安)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를 경유, 유럽으로 뻗는 북방실크로드와 중국 쿤밍(昆明)에서 미얀마를 거쳐 인도, 중동,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남방실크로드의 넓은 지역에서 미국과 일본이 참가하지 않는 가운데 57개국이 참가하는 AIIB창립에 성공, 바야흐로 중국식 패권추구의 장정(長程)에 오르고 있다.

 

3.동북아시아의 전략상황평가.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중에서 공격적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존 미어세이머(John J. Mearsheimer)교수는 그의 명저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미국은 미국에 맞설 잠재적 패권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미국과 지역적으로 연접되지 않은 유럽전쟁에 두 차례나 참전, 독일의 패권추구를 저지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냉전적 대치상황 속에서도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고수, 소련의 해체를 주도한 미국대외정책의 역사를 분석하고 이 정책은 중국의 패권추구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는 미국의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를 강조하는 재 균형 전략(Re-balancing Strategy)역시 중국의 패권도전에 대비한 포석이라면서 1945년 이래 세계정치의 패권을 유지해온 미국이 국제정치에서 자기가 누리는 지위를 흔들리게 할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이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가로서 세계정치에서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에 역행하는 균형파괴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이를 위한 여건으로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기왕의 안보동맹국으로서 한국이 일본과 더불어 미국이 추구하는 재 균형체제추진의 일원으로 역할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맞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구성함과 동시에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새롭게 강화하는 추세다. 이런 가파른 전략상황 하에서 박근혜 정부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에 투자국으로 참가를 결정한 것은 실로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정부가 일대일로나 AIIB에 가지고 있는 잠재적 의도에 구태여 개의(介意)하기보다는 중국이 AIIB를 통해 추진하는 개발도상국들의 인프라 개발사업을 남달리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국은 그간 중동이나 아프리카, 특히 리비아 등지에서 수로 공사나 발전설비 등 이른바 인프라 분야에서 가장 많은 노하우를 축적한 대표적인 아시아 국가라는 사실이다.

 

둘째로 그간 박근혜정부가 추진해온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나 유라시안 이니셔티브(Eurasian Initiative)도 중국이 말하는 북방실크로드와 정책방향을 거의 같이하거나 겹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로는 역사적으로 보아도 실크로드의 동쪽 출발지점은 7세기경부터 신라의 수도 경주(慶州)였으며 신라 승려 혜초(慧超)가 왕오천축국전을 기술한 여행경로가 바로 실크로드였기 때문에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실크로드 정책에 한국이 편승할 역사적 정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통일문제를 안고 있는 분단국가로서 인프라 개발과 건설이 시급히 필요한 곳은 한국이 아닌 북한이기 때문에 한국의 참여는 한반도 전체의 AIIB 참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은 현재 유엔의 제재와 더불어 AIIB에 참여할 조건의 미비로 참여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4. 맺으면서

 

박근혜 정부는 어느 경우에나 AIIB 참여가 전통적인 안보동맹국인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역행하는 선택이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한국, 중국과 더불어 동북아시아 3국 중의 하나인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선택이어서도 안 된다. 한국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라는 목적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가들 모두와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지리(地理)가 곧 운명이다”(Geography is destiny)는 국제정치의 격률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이 시점에서 국가안보와 경제정책을 분리해서 주변정세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이것은 급변하는 내외정세 속에서 우리의 입장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해를 구할 명분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세력전이(勢力轉移)가 진행되는 기간을 긴 호흡으로 내다보면서 안보와 경제를 분리, 대처하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일 진데 이런 입장을 확고한 한국의 외교원칙으로 세우고 이를 「박근혜 독트린」으로 발표하는 것은 시급히 결단을 필요로 하는 과제로 보인다.

 

오늘날 한반도 정세는 북한핵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주변국가 모두를 만족시킬 외교정책의 대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북한의 핵 고집으로 유엔의 제재결의가 시행중인데다가 핵문제 해결을 주도할 국가들의 입장도 미국과 중국 간에 책임 전가논쟁만 진행될 뿐 실질적 해결을 밀고나갈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갈수록 불분명해지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얽힐 경우 결국 핵문제 해결도 해결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당사자에게 맡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의 도래에도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이점에서 AIIB의 한국참여는 북한과의 대화협상을 위해서도 필요한 결단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때그때 당면한 문제를 적당히 때우는 것만을 능사로 여기는 외교가 아니라 한국을 주변국들 모두에게 적극 협력할 주체로 만드는 능동적이고 지혜로운 통일외교다. 여기에 즉응할 통일외교리더십의 구축이 진실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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