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미중관계와 한중협력의 전망(이글은 국제문제 2015년 2월호에 발표되었다)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1.들어가면서
오늘의 한반도를 생활무대로 하는 한민족의 우리 세대에게 미국과 중국처럼 중요한 국가도 없을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지정(地政)학적으로나 지경(地經)학적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국가들이며 양국 모두와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달성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평화와 통일이 우리의 민족적 목적과제일진데 양국 모두의 협력을 우리는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러나 미중 양국관계는 부단히 변화한다.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한다. 우리는 양국 모두와 협력하고 있지만 양국관계의 변화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양국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할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고 양국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중도적 입장을 선택하거나 요구받을 상황도 올 수 있다. 여기에 미중관계의 변화를 예측하고 전망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2015년의 벽두에 미중관계를 전망하면서 우리의 진로를 생각해본다.
2. 중국을 보는 국내학계의 시각
2014년을 마치면서 우리 국내의 중국전문가들 간에는 서로 비슷하지만 중점을 달리하는 두 가지 견해가 등장하고 있다. 하나는 중국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중국도 개발도상국의 하나라는 기왕의 입장을 털어버리고 이제 당당한 대국으로서 세계정치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대국외교로 대외노선을 재정립(Reorientation)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후진타오(胡錦燾)시절에 흔히 쓰이던 중국도 ‘개발도상국의 하나’라는 주장은 사라지고 조심스럽게 모색되던 신형대국(新型大國)관계론이 강력히 대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이 강대국의 하나라는 자기정체성을 모든 대외표현에서 확실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시진핑(習近平)주석이 추구하는 대외노선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간 미국학자들은 중국이 역내(域內)의 지역패권을 추구한다고 말해왔는데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도 시진핑의 답은 NO다. 시진핑의 대국 외교노선은 그 목표가 지역이 아닌 전 지구를 무대로 겨냥한다. 그 예로 시진핑이 말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정책을 보자. 그는 중국의 쿤밍으로부터 미얀마, 하노이를 거쳐 인도양을 지나 중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남방 실크로드를 추구한다고 밝혔는데 이 지역을 경제회랑(回廊)으로 보면 일대(一帶)지만 수송로로 보면 일로(一路)다. 또 시안(西安)으로부터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치닫는 북방실크로드 건설도 추진한다.
일대일로라는 표현은 지역별로 범세계적인 경제회랑을 만들자는 것이지만 이 전략이 포괄하는 범위는 지구적(Global)이다. 중국은 바야흐로 세계적인 대국에로의 도약에 나선 것이다. 특히 남방실크로드사업을 촉진하기 위해서 시진핑은 이미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국지향론과는 달리 국내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통설은 중국이 미국 등 서방측이 만들어 놓은 국제규범과 질서를 존중하면서 그 태두리 내에서 자국의 실리가 보장될 수 있는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나간다는 현상개혁론이다. 이들은 중국이 경제면에서는 G2로 성장했지만 이는 서방의 자본도입, 서방의 기술학습, 서방의 경영을 벤치마킹하였고 세계무역기구(WTO)가입으로 얻은 혜택의 결과다. 따라서 지금 중국은 강대국으로 컸지만 새로운 국제질서를 주도하거나 창설할 만큼 강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베이징대학의 왕지스(王緝思)교수는 중국이 강해졌지만 중국이 반미동맹결성을 주창할 때 선뜻 합류하거나 가세할 나라가 아직은 없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점에서 중국외교는 앞으로도 현재의 국제질서를 긍정하면서 그 틀 안에서 개혁을 추구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다른 것 같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강조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국이 암묵하는 내재적인 욕구에서 보면 중국은 결코 현상개혁에 만족하거나 안주하려는 것 같지 않다. 류밍푸(劉明福)로 부터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강조하는 중국몽(中國夢)은 궁극적으로 역사적인 중국의 회복을 목표로 세계적인 대국건설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3. 2015년의 전망
오늘날 국제정세를 분석하는 중국학자들은 지금 미국과 중국 간에 세력전이(勢力轉移)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러나 과거 역사에서 본 것처럼 세력전이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었던 전쟁을 막으려면 쇠락하는 미국(Declining America)이 신흥중국(Rising China)을 대등한 강대국으로 인정, 세계문제에 대등한 발언권을 갖게 해주고 서로 간에 핵심이익을 존중하는 국제관계로 양자관계를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이른바 신형대국관계론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의사표시로 시진핑은 작년 5월 21일 샹하이에서 열린 아시아지역교류회의(CICA)에서 아시아 집단안보론과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설립 안을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표현은 자제했지만 내심으로는 중국의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국제통화가 되기를 희구하고 IMF나 세계은행을 대체할 국제금융기구창설도 꿈꾸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학자들이 말하는 미국쇠퇴론과 이를 근거로 한 세력전이론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작년 12월 10일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특강에서 조지프 나이(Joseph Nye)교수는 미국은 절대적 기준으로나 상대적 기준의 어느 척도를 적용해도 전혀 쇠퇴하는 국가가 아니며 앞으로 세계경제의 미래를 판가름할 에너지, 인구, 창의력의 면에서 미국의 위상에 영향을 줄만큼 중국의 능력이 결코 따라올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중국이 현재 누리는 7.5%의 성장률이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며 앞으로 3.8%대로 내려오는 것이 중국경제가 정상화되는 시점이라고 전망하고 중국의 1인당 GDP가 1만 달러 정도로 올라가도 1당 독재가 통하겠느냐고 물었다.
현재 시진핑 정부의 공안통치예산이 인민해방군 예산을 능가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 말에 담긴 뜻을 한번쯤은 깊이 음미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이 자리에서 나이교수는 설사 아베노믹스가 실패해도 미일 간의 협력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는 대목도 필자에게는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조지프 나이 교수는 이날의 특강에서 미국국방비가 의회의 결정으로 금후 점차 줄어가야 하고 미국국내정치에서 여야 간의 극한대결 같은 미국체제내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총론차원에서 보면 중국에 대한 나이 교수의 평가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시사(示唆)하는 바가 컸다.
작년 하반기부터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벌인 신형대국관계 공세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일본과의 관계도 정치안보 면에서 원만하지 않기 때문에 외교의 중점을 점차 동북아시아 보다는 동남아시아의 아세안지역과 인도를 포함한 서남아시아지역으로 옮기고 있다. 남방실크로드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포용하는 북방실크로드건설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에서 우리는 전 지구적 규모의 대국을 지향하는 중국 측의 야심도 엿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실크로드 정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주변국 다독이는 정책에 역점을 두는 측면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시진핑 주석은 친성혜용(親誠惠容)을 대주변국 외교의 캐치플레이스로 내세우고 주변국들이 자국의 정책에 협력하도록 유도하는 외교를 중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국을 안보와의 연계에서 동북아중심에서만 보던 기왕의 관점에만 머물지 말고 시진핑의 새로운 외교노선과 한중협력을 접목시킬 새로운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4. 우리의 대응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대응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와 같은 강소국은 내치외교에서 철저히 현실주의(realism)노선을 추구해야한다.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위협이 해소되지 않는 안보상황 하에서는 한미동맹을 굳건히 강화하면서 일본과의 관계도 안보와 역사문제를 분리해서 대처하는 지혜가 발현되어야 한다. 한일 간의 역사문제는 양국이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이나 역사문제에 묶여 안보협력 상의 손실이 수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지난해 말 추궈홍(邱國洪)주한 중국대사는 미국이 주한미군 부대에 사드(THAAD)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한국이 이 방침을 수용하면 그것은 한중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흡사 한말의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연상시키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국방예산이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위협을 머리에 얹고 사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자국군대의 안전을 위해 자국 부대에 사드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이것이 대한방위공약이행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때 이를 정면으로 반대할 수는 없다.
한국은 중국에 대해 주한미군은 조약상 중국을 반대하기 위한 군사력이 아니며 북한의 남침저지에 목적을 둔 것임을 재삼 설득하고 강조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한중관계는 박근혜 정부성립과 더불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앞선 정권들과는 달리 북한 핵에 대한 반대를 말과 행동으로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한중FTA를 체결함과 동시에 중국대륙에서 벌인 한국 측의 항일독립투쟁의 족적(足跡)을 중국정부가 자국 예산을 들여 복원해 주는 성의도 보여주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중국 측의 선의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거나 한국안보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대중외교는 철저히 현실주의의 원칙에 서서 경제와 안보를 조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점에서 중국이 주창하는 지역경제협력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필요한 지분(持分)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등 실질적 협력조치를 가시화해야 한다. 특히 경제문제로서 구체화되고 있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설립에도 적극 참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무역결제수단의 하나가 된 위안화의 활용성도 높여줘야 할 것이다. 특히 한중FTA가 체결된 만큼 양국 간의 경제협력도 한층 더 수준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안보협력과 경제협력을 분리해서 대처하는 안경(安經)분리정책을 한국외교의 확고한 원칙으로 정립해야 한다.
또한 시진핑의 중국이 거국적으로 추진하는 실크로드 정책에는 그것이 북방이건 남방이건 간에 단순히 방관하기 보다는 투자를 통한 편승(Bandwagon)을 통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나 유라시안 이니셔티브와 연계되도록 경협외교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내적으로는 6만 명을 상회하는 중국유학생들에 대해서도 이들을 맡는 대학당국들이 친한 인재(親韓 人材), 지한 인재(知韓 人材)로 육성하도록 협의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 중국외교는 정부만이 아니고 민간외교를 폭넓게 활용할 때 더욱 효과적이다. 3000억 달러를 육박하는 경제교류와 1천만인의 인적교류의 한중협력시대에 정부만의 힘으로는 필요한 외교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민간외교를 한층 더 중시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안보외교에 중점을 둔다면 경제, 문화, 인문분야에서는 민간외교가 큰 역할을 하도록 적극 권장해야 할 것이다. 외교는 직업외교관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인습적 사고를 버리고 민간 속에 잠재되어있는 자원을 폭넓게 개발 활용하는 열린 외교가 한중외교로부터 시작되는 2015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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