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의 정치과정을 전망한다.

  이글은 헌정지 4월호에 기고되었으며 위키트리에 전재되었다(2014/03/20)

 

1.들어가면서

남북한관계가 대화모드로 바뀌고 있다. 2월 20일부터 24일까지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금강산에서 이루어졌다. 이에 앞서 남북한 간에는 판문점에서 고위급 접촉이 8년 만에 개시되었다. 북한 측의 선제의(先提議)로 열린 남북한의 고위급 만남은 남북한의 상호비방 중지를 합의하면서 이 모임을 이어가자는데 합의했다. 북한은 김정은의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개선의 의사를 밝혔고 박근혜 대통령도 금년 1월 6일 가진 신년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의 남북관계개선언급이 위장평화공세일 수 있다고 경계하면서도 북한의 남북관계 개선의지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기 위해서는 먼저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북한이 호응하라고 촉구했다. 북한은 그들의 제의가 위장공세가 아님을 행동으로서 보이겠다면서 남측이 내놓은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수락하고 서해인근에서의 대남비방과 삐라 살포를 중단하였다.

북한의 대남태도는 1년 전 이맘때와 비교하면 너무 큰 변화다. 2012년 12월 12일 탄도 미사일발사,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 3월 초에는 그들의 심리전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서울과 심지어 워싱턴까지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4월에는 휴전협정의 폐기까지를 호언하고 새로 출범한 박대통령정부를 향해 입에 올리기 힘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던 북한이 2014년에 들어오면서 태도를 갑자기 바꾸고 그들의 한국과의 관계 개선의지가 위장이 아니라면서 이산가족 상봉을 수용하고 고위급접촉에 나섰다. 더욱이 한미양국이 1994년 이래 연례적으로 실시해오는 키 리졸브 훈련과 독수리훈련이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이 훈련에 대해 구두로는 반대하면서도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실천에 옮겼다. 북한은 왜 태도를 바꾸었는가. 이하에서 그 원인과 배경을 살피기로 한다.

 

2. 날로 심화되는 북한의 고립과 딜레마

 

① 고립 자초한 긴장도발

북한은 현재 내치, 외교 양면에서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당초 김정은은 후계자로 옹립되자마자 그가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선군정치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위협적인 태도를 과시했다. 김정일이 발전시킨 선군의 “위업(偉業)”을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세계여론을 무시하고 미사일 발사와 제3차 핵실험을 자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였다. 북한이 우방으로 믿었던 중국까지 제재결의에 가세했다. 북한은 이 결의가 부당하다면서 강도 높은 대남위협공세를 펼치고 한반도정세를 긴장시켰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어떠한 공세에도 한국군 지휘부가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당당히 맞대응”할 것을 전군에 명령하고 일전불사의 태도를 밝혔다. 그간 한국정부는 항상 확전방지를 명분으로 수세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정부의 태도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와는 전혀 달랐다. 정면 맞대응의 자세를 보였다. 북한의 기대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②중국의 대북한 태도변화

이와 동시에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도 큰 변화가 발생했다. 북ㆍ중양국은 1961년이래 외부의 침략을 받을 경우 즉각 군사원조를 제공키로 하는 동맹조약(朝中相互援助및 友好協力條約-1961〜2021)을 체결한 관계다. 그러나 북한은 이 조약을 신뢰하지 않고 상호 협의 없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였다. 중국은 초기에는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하는 협상수단으로 핵과 미사일 공세를 취하는 것으로 낮게 평가하고 국제사회의 대북강경결의를 완화하면서 외교적 해결을 주선해주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은 중국의 이러한 북 핵 관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하였다. 특히 중국공산당 18차 당 대회에서 당서기로 선출된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2013년 3월 자기가 국가주석으로 정식 취임할 때까지 한반도에서의 긴장조성을 자제할 것을 당정(黨政)외교경로를 통해 북측에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이 요구를 묵살하고 미사일과 핵실험을 단행, 자기가 중국의 태도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존재임을 과시했다.

시진핑 주석은 국가부주석으로 취임한 후 제1차 해외방문지로 북한을 선택할 만큼 북한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었던 인물이었다. 시진핑 주석의 선친인 시중쉰(習仲勳)부수상은 김일성과 친밀한 사이였다. 그러나 김정은의 제3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시진핑의 대북관에 변화를 일으켰다. 북한의 핵개발이 대미협상용이 아닌 핵 무장력을 갖추자는데 있고 결국 북한은 중국과 맺은 동맹관계의 틀에서 벗어나려한다는 중국내부의 의구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제4차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에는 중국도 적극 참가했고 김정은의 중국초청도 아직까지 유보상태다. 2013년 5월 22일 김정은은 북한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최룡해를 중국에 특사로 파견, 시진핑 주석을 접견했는데 이때 시진핑 주석은 중국은 어느 경우에도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한반도의 비핵화가 중국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 핵 불용입장을 중국이 확실히 밝힌 것이다.

 

③ 경제적 궁핍의 지속

한편 내치에서도 북한의 경제난은 계속되었다. 유엔제재로 정상적인 대외무역이 사실상 어려워진 가운데 배급체제의 붕괴과정에서 기형적으로 발생한 시장경제는 갈수록 그 영향력을 북한내부에서 확대해 가고 있다. 북한의 도시주민들은 먹고 살기위해서는 당이나 정부보다는 시장에 더 의존했다. 주민을 굶기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약속은 지켜지기 않고 있다. 박봉주 총리 등 이른바 개혁파들을 실무부서에 배치했지만 자금, 자재, 기술,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뾰쪽한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시장화의 확산에 발맞춰 중국인들이나 화교가 중심이 되어 소비시장으로서의 마트나 큰 상점을 평양에 세우고 기타 도시에도 유사한 시장이 들어서고 있지만 주민들의 빈곤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시골이나 농촌 주민들의 식량난, 의료, 에너지의 부족은 조금치도 나아지지 않았고 탈북행렬도 끊이지 않았다. 장성택의 처형이 공개되면서 세계에 비친 김정은의 이미지는 21세기 최악의 독재자, 살인마로 투영되었다. 이런 정권을 상대로 어느 나라가 투자하겠으며 경제협력을 시도하겠는가.

또 정권유지에 필요한 외화자금 조달문제를 놓고 조선노동당 행정부와 조직부간의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김정은은 조연준 부부장을 필두로 하는 조직부의 책략에 휘둘려 장성택 숙청이라는 희대의 살인극을 연출하였다.

3. 신 6자회담론의 등장

 

북한이 내치, 외교상의 난국을 푸는 방법은 우선 핵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이른바 핵ㆍ경제 병진정책을 포기하고 비핵ㆍ개방의 길을 택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장을 추구하는 한 북한에 대한 외세의 개입은 끊일 날이 없으며 한반도 통일에도 난관을 조성하게 된다. 한반도 주변의 어느 강대국도 전략무기로서의 핵과 미사일을 보유한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에는 남북한이 1대1로 맞서 제압할 국가가 하나도 없다. 지구 최강국들로만 둘러 쌓여있는 우리 한반도는 항상 외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즉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지정학적 저주”(Geopolitical Curse)를 감수해야할 운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은 2003년부터 10개년동안 개최되었지만 북한이 보이콧함으로써 아무 성과 없이 끝났다. 유엔안보리는 4차에 걸친 대북제재결의를 단행하였고 그 효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재작년부터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는 6자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한미양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6자회담이 중단된 상황 하에서도 한국의 주도하에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6자회담 참가국들 간에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이다.

작년 초부터 중국은 이른바 표본겸치(表本兼治)를 명분으로 6자회담재개를 제안하고 나왔다. 즉 북ㆍ핵 폐기라는 겉에 나오는 상태를 표(表)로 하고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안보체제형성이라는 기본토대를 본(本)-여기에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포함 한다-으로 하는 협상을 한꺼번에 다루어 해결하자(兼治)는 주장을 내놓고 6자회담재개(필자는 신6자회담이라 하자)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2월초 중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중국과의 대화에서 북한이 2005년 6자회담에서 도출된 9.19합의를 수용, 이행토록 할 만큼 중국이 현재 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북한에 행사할 용의가 있는지를 타진, 긍정적 반응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북 핵 포기를 위한 신6자회담의 정치과정이 조만간 가시권(可視圈)에 들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변화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한관계가 북한의 도발에 의한 긴장국면에서 벗어나 대화와 협력국면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즉 대결구조에서 대화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9.19합의는 북한이 핵 무장을 하나 씩 해체하는 단계에 연동하여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제공하고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개선을 추진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 합의를 진정성 있게 수용하고 실천할 의지를 보일 때 비로소 중단된 6자회담이 새롭게 재개될 수 있다. 결국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는 북한이 9.19합의를 제대로 이행하고 한국과 주변국들이 북한의 조치에 상응하는 정치․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때 비로소 정상궤도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 길을 트는 첫 단계가 남북한 관계의 개선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이 최근에 벌이는 대남평화공세의 이면에 이러한 주변정세가 깔려 있음은 주목해야 한다.

 

4. 북한의 살길은 핵무장의 포기다

 

북한의 비핵개방은 주변국 모두의 바람이다. 북한이 핵 포기에 나서면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6자회담 다른 참가국들도 상응하는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는데 협력할 것이고 북한 인권개선에 큰 관심을 보여 온 유럽 국가들도 지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진정성 있는 핵 포기가 가시화되고 행동화된다면 금강산 관광문제나 5.24제재조치도 긍정적으로 재검토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인 한국의 발의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한 제재도 해제의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따라 북한 경제재건을 위한 동북아 개발은행 창설도 모색될 수 있다.

이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시작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첫 단추는 끼워졌다. 앞으로 상봉행사의 정례화와 이산가족 재결합도 진행되어야 한다. 남북한 고위급 접촉이 정례화 되어 고위급 회담으로 발전하면 비무장지대의 평화공원화, 제2, 제3의 개성공단도 가능하며 북ㆍ중 합작으로 추진되는 황금평 개발이나 나선지구 개발 사업에도 한국이 참가할 수 있다. 또 김정은이 현지지도로 만들었다는 마식령 스키장도 한국의 스키 메니아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안 이니셔티브(Eurasian Initiative)에 따라 시베리아 가스의 한반도 관통 파이프라인 건설도 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북한 지도자들이 선군의 위업으로 떠받치는 핵과 미사일은 북한주민들에게 공포와 굶주림, 그리고 탈북의 아픔을 주었지만 비핵개방은 경제발전과 삶의 풍요, 생활안정을 주게 될 것이다. 이제 선택은 북한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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