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이후의 북한과 중국 관계를 생각한다.
한중문화협회 회장 이영일
1.
북한정권의 제2인자로 알려졌던 장성택(張成澤)이 12월 12일 총살형을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앞으로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놓고 국내외에서 많은 논의가 흘러나오고 있다. 현시점에서 밝혀진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외교부 대변인 발언을 통해 간단히 표현되었다. 내용인즉 “장성택 문제는 북한의 내부문제이고 중국은 북한의 내정에 관여치 않으며 중국과 북한관계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네티즌들은 웨이보(微博)나 일간지에 실린 댓글을 통해 대체로 북한의 장성택 처형을 독재체제유지를 위한 필연적 결과라면서 매우 부정적이고 냉소적으로 평가한다. 또 주목되는 글로는 장성택의 사형선고 판결문에 외국에 지하자원을 헐값으로 팔아넘긴 것을 비난한 것과 관련하여 판결문이 말한 외국은 바로 중국이 아니냐면서 중국에 에너지와 식량을 신세지는 나라가 그런 말을 내뱉는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과는 달리 장성택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의 고위층 대화에서도 거론될 만큼 파장이 크게 일고 있다. 존 케리 미국무장관과 중국의 왕이(王毅)외교부장은 12월 15일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의 내부문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매우 이례적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미ㆍ중대화에서는 북한의 대외행동을 문제 삼았을 뿐 양국 간에 북한정권의 내부문제를 소재로 삼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장성택 사건을 계기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신설하고 한반도에서 야기될지도 모를 유사시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
북한은 장성택 사건이후 유일영도체제를 공고히 했을 뿐 북한의 대내외정책이나 노선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문제전문가들 간에는 이번 장성택 처형문제가 북ㆍ중 관계를 바꾸는 결정적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점치는가하면 중국은 전략적 관점에서 북한을 보기 때문에 장성택 문제가 북ㆍ중 관계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보수적 관점도 그대로 살아있다.
그러나 장성택이 그간 북한과 중국 관계에서 수행해온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고 장성택을 둘러싼 중국의 정치문제도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대북한 정책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속단일 것 같다. 물론 누구도 현시점에서 앞으로 북ㆍ중 양국관계를 정확히 전망할 수는 없다. 중국인들은 속내를 잘 내비치는 일이 드물고 또 속내를 말한다고 해도 대개의 경우 애드벌룬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가능한 것은 장성택 사건의 전후관계를 북ㆍ중 양국관계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토대로 재구성해보면서 현 상황의 맥점(脈点)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하에서 북ㆍ중 관계의 금후의 진로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장성택은 김정일 사후 2012년 북한 대표단을 인솔하고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 주석을 접견하였다. 이 방문은 김정일 사후와 김정은 집권이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전달하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의 소통창구였고 이와 동시에 중국과 북한간의 경제협력을 다시금 활성화시키는 기회이기도 했다. 장성택은 방중을 계기로 압록강변의 황금평 개발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얻어냈고 양국을 연결하는 철교와 고속도로 건설, 나진ㆍ선봉지구개발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얻어냈다. 뿐만 아니라 지하자원을 중심으로 대중국 수출을 늘리는 데도 성공, 양국 간의 무역량도 늘리게 되었다. 그간 장성택의 행보를 미루어 보면 북한정권 지도층 가운데서 중국이 북한에 바라는 정책으로서의 개혁개방과 한반도 비핵화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정확히 통보받았고 여기에 긍정적 화답을 한 인물이었다.
그는 한국 실정이나 세계경제정세를 살피는 안목도 지녔다. 그가 2002년 북한경제고찰단을 이끌고 단장으로서 한국을 방문, 주요공장과 산업시설을 돌아보았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그는 중국의 권고를 받아들여 신의주 공단 대신에 개성공단을 창설하는데도 큰 역할을 수행했다. 선군(先軍)정치가 김정일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장성택은 김정은에게 선군에 못지않게 경제발전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한 후 인민들이 더 이상 배고프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외자유치를 위한 시설투자에 나선 배경에는 장성택의 건의가 깔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의 이러한 태도를 선군정치와 구별되는 선경(先經)정치라고 학자들은 표현했다. 중국에서 볼 때 김정은 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장성택이 추진하는 선경정책은 중국이 1980년대부터 북한에 권고해온 개혁개방정책과 궤를 같이하고 한반도의 안정이라는 중국의 정책목표구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사이의 인적 소통창구(疏通窓口)였던 장성택이 하루아침에 체포되고 군사재판을 통해 속전속결로 잔인하게 처형당했다. 미국 국무성은 장성택의 처형방식을 이례적으로 '잔인의 극치'(Extreme Brutality)라고 표현했는데 중국정부와는 달리 중국의 네티즌들은 한결같이 김정은의 무도한 숙청정치에 쓰디쓴 냉소를 보냈다. 장성택의 처형(處刑)을 보는 전 세계는 너나없이 치를 떨었고 넬슨 만델라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 김정은을 21세기 판 최악의 독재자로 만들었다. 김정은에게는 살인마로서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이제 전 세계에 비친 2400만 북한 동포는 인권의 주체, 생명의 주체가 아니라 독재권력 앞에 목숨을 초개(草芥)같이 내맡기고 살아가는 불행한 존재였다.
3.
장성택 죽음의 원인을 그의 판결문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한사람들은 김정은을 향한 충성맹세대회에서 장성택을 “이 땅에 묻힐 자격조차 없는 인간”이라고 철저히 규탄하고 증오했지만 그것이 북한주민들의 본심으로 볼 수는 없다. 중국의 한 네티즌은 북한인들은 공포에 짓눌려 눈물을 흘린 것(我相信痛哭流涕的朝鮮人有一部分原因是恐懼)이라고 바로 지적했다. 장성택은 북한 김정은의 가장 중요한 지지기반이고 중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창구인데 그가 반당 반혁명을 획책할리도 없고 그러한 증거도 밝혀지지 않았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죽인 것은 장성택 반대세력들의 반간계(反間計)가 작용한 결과로 보아야 할 여러 가지 증거가 있다.
우선 김정은의 권력승계를 주도한 장성택은 김정일 시대 북한정권유지의 중심축을 이룬 선군정치를 당 중심 정치로 바꿔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선군정치의 물질적 기초를 군에서 당으로 이관하는 조치를 취했다. 김정일 시대의 북한경제는 인민군 경제와 인민경제로 이원화되어 있었고 인민군 경제가 인민경제의 우위를 차지하였다.
인민군경제는 산에서 채취되는 것과 바다에서 채취되는 것을 물질적 기초로 하여 실물경제에서 무역을 통한 외화벌이를 추구했다. 지하자원과 수산자원이 주된 수출품인데 여기에는 아편이나 버섯, 인삼, 한국에서 수요가 높은 해사(海沙)도 인민군 경제 소관이었다. 장성택은 군에서 주도하는 이러한 사업을 당으로 이관하면서 외화벌이의 주도권을 하나씩 군에서 자기가 주도하는 당으로 이관시키고 대중국 무역을 통하여 외화벌이를 장악하는 한편 외국공관을 이용한 외화벌이도 자기 수중에 장악했다. 선군이 아닌 선경정치의 기초를 하나씩 다져나갔다. 장성택의 주도와 박봉주 총리의 지휘능력이 결합됨으로 해서 북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에서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장성택의 선경정치로 입지가 약화된 선군정치세력이 당 내외에서 단합, 反장성택 전선을 형성해 나갔다. 이 당시 이영호 참모총장의 장성택에 대한 도전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당내 조직지도부를 중심으로 하는 선군정치지원세력은 ‘백두혈통에 의한 유일영도체제확립’과 핵과 미사일이라는 ‘선군의 위업’수호를 내걸고 장성택이 중국과 제휴하면서 경제권을 장악하고 김정은의 유일지도체제 확립에 역행하는 노선을 걸을 뿐 아니라 선군의 위업을 승계하기도 꺼려한다고 모략하는 반간계에 착수했다. 장성택의 일거수 일투족을 조사하여 장성택의 제거 없이는 유일영도체제 확립이 어려울 뿐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말하는 중국과 제휴하여 선군위업의 승계마저 어렵게 한다고 김정은을 설득하였다.
김정은과 장성택 간의 모순조작은 의외로 쉽게 이루어졌다. 김정은은 반간계를 간파 하지 못하고 자기의 가장 주요한 지지기반인 장성택을 버리고 중국의 개입을 꺼려 속전속결로 장성택을 처형해버렸다. 반간계의 주축세력이 김정은에게 추호라도 애정이 있었다면 장성택 제거과정에서 김정은의 이미지를 지구최악의 독재자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장성택의 죽음은 김정은 지지기반의 약화를 의미하며 북한정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배제를 겨냥한 쿠데타의 성공을 의미했다. 형식은 친위쿠데타 같지만 본질은 김정은의 지위가 선군정치세력의 괴뢰로 전락하는 길이었다. 12월 17일 김정일 사망2주년 추도식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진다는 백두혈통은 김정은 이외에는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도, 그의 형인 김정철도, 그의 여동생도 금수산 태양궁의 김정일 영령안치소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중국고사에 반간계에 걸린 자는 예외 없이 반간계를 건자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김정은은 백두혈통의 용도가 있을 동안은 버티겠지만 자기의 구체적 지지기반이 사라진 김정은이 앞으로 자기를 표현할 방도가 무엇일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4.
북ㆍ중 관계는 현시점에서 무어라고 속단할 수 없다. 북한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중국을 대하지만 김정은의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앞으로 2021년까지 북한과 중국 간에 체결된 이른바 조중(朝中)상호원조 및 우호협력조약은 형식적으로 유효하지만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지 오래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전제로 추진하는 중국의 6자회담 재개구상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안이 되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지구최악의 독재자로 인상 지워진 김정은을 옹호하기도 매우 어렵게 되었다. 중국인민들의 지지를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성택 사후 북한을 엄습할 경제난과 내부갈등의 돌파구로 북한이 추구할 대남긴장고조정책은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엄청난 난관을 조성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연대할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북한 정책은 이제 바야흐로 그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준다. 중국은 그간 북한이 지니는 전략적 가치를 고려하여 북한과 김일성, 북한과 김정일을 동일체로 보는 관점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앞으로 북한과 김정은을 하나의 동일체로 간주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북한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겠지만 중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선택이다. 중국의 대안은 미국이 오랫동안 주장했던 정권교체(Regime Change)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비핵개방을 지향하는 정권으로의 북한정권의 변환을 중국은 바랄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북한의 백두혈통중심의 유일영도체제도 아니고 선군정치도 아닌 비핵, 비세습 개방정권일 것이다. 물론 미일관계나 한미일 3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전망에 따라 중국의 선택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지구최악의 독재자로 변한 북한의 대변인이 되는 길을 중국이 과연 선택할 것인가. 그길 이외의 대안을 찾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외교의 당면과제가 있지 않을까. 함께 고민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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