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쉐퉁(閻學通)교수와의 대화
한중문화협회 회장 이 영 일
1.들어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상황이 요동치고 있다. 한중관계는 박 대통령의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계기로 모든 면에서 관계가 크게 개선되고 있는데 반해 한일관계는 영토문제, 종군위안부문제, 역사문제 등으로 갈등이 겪고 있다.
같은 시기에 일본과 중국 간에는 조어도(釣魚島)(센카쿠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날이 갈수록 그 강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은 조어도가 미일방위조약이 정하고 있는 일본영토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은 일본 아베(安培)정권이 추구하는 집단자위권행사를 지지,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맡아야 할 역할의 일정부분 일본에 내맡기는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시기에 필자는 한중문화협회 베이징지회 제4대지회장 취임식(10월 26일)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하는 기회에 10월 25일 중국 칭화대학(淸華大學)의 당대국제관계연구원(當代國際關係硏究院)의 옌쉐퉁(閻學通)원장을 사무실로 방문, 시국담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내가 옌 교수에게 흥미를 가진 것은 그가 발표한 논문들 속에 시진핑 주석이 추구하는 신형대국관계론의 주요관점이 포함되어 있었고 특히 중국정부의 중한(中韓)전문가위원회의 위원으로 중국의 대한반도정책결정에도 관여하는 인사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UC Berkley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얻은 석학으로도 알려져 있다.
2. 대화요지
필자와는 초면이었지만 편지로 면담의사를 전한 탓인지 자기 연구실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처음에는 말문 열기가 다소 어색했지만 그를 알게 된 배경이 그가 발표한 논문들을 통해서였고 특히 옌 교수의 국제관계를 보는 시각이 수백 개의 국가들이 명멸(明滅)했던 중국 춘추전국 시대와 그 때 출현했던 지도자들의 전략사상들을 오늘의 상황분석에 응용하고 발전시켜 현대국제관계를 설명하는 접근법을 제시한 점에 내가 흥미를 가졌다고 말하자 그의 말문도 자연스럽게 트였다.
① 한반도의 안정화 방안
필자는 대화의 모두에 한중문화협회의 탄생배경을 설명하면서 학창시절에 읽은 백범일지의 한 토막을 이야기했다. 백범 김구(白凡 金九)선생은 광복 후 그가 발표한 일지(日誌)에서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한국이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과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군사강국을 지향하지 말고 문화강국, 경제 강국, 과학기술 강국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도 그의 견해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고 현재 한국정부도 지정학적으로 보아 주변의 어느 국가와도 1대1로 맞설 만큼 강국이 아니기 때문에 핵이나 탄도 미사일, 항공모함 같이 주변국들의 안보우려를 유발할 전략무기의 보유를 자제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장과 탄도미사일 보유를 적극 추구함으로 해서 강대국들의 개입과 유엔안보리의 제재를 자초했고 북한이 핵을 버리지 않는 한 중국이 바라는 한반도의 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북 핵은 일본이 핵무장할 명분만을 제공, 동북아시아가 중일(中日)간의 핵 대결지역으로 변할 우려마저 있다면서 이에 대한 옌 교수의 생각을 물었다.
그도 나의 관점에 공감하면서 자기의 전략관점에서는 중국의 주변국가 중 한국과 파키스탄 양국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함께 동맹관계를 가질 수 있는 국가로 본다면서 한중동맹이 필요하다는 뜻밖의 견해를 표명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과의 방위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도 동맹관계를 맺어야 평화와 안정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이어 중국은 1961년 이래 북한과 동맹관계를 갖고 있지만 실상을 보면 “무늬만의 동맹(Quasi Alliance)일 뿐, 합동군사훈련 한번 없었고 군사무기거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간에 동맹이 체결되려면 그 조건으로 공동안보이익의 필요성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한중간에는 공동안보이익이 형성 중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 첫째 근거로 한중양국은 지금 일본과의 관계에서 영토문제를 위요하고 대결구도가 형성되어 있으며 또 한반도 안정을 위해 북한의 비핵화가 필요한데 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도 한중양국은 안보이익을 공유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둘째로는 한중간에는 수교이후 경제협력이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는데 이제 한중협력은 단순한 우호관계 차원을 넘어서서 공동발전관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으며 셋째로 동아시아국가들 간의 지역협력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이제는 일본이 아닌 한중양국의 협력만으로도 지역협력을 추동할 수 있다면서 그 실례로 1997년의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양국 협력의 효율성은 실증되었다고 말했다.
결론으로 그는 한중양국 간에는 공동의 전략적 이익이 존재하며 그 이익의 범위도 부단히 확대추세이기 때문에 한미동맹과 함께 한중동맹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옌 교수의 제안이 매우 새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런 발언의 내면에 담긴 전략관점이 무엇일까를 순간적이나마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이 미일의 대중국견제나 공격기지로 변화되는 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인지 아니면 최근 조성되고 있는 한미일 안보협력가능성을 보는 중국의 시각 속에 일본과 갈등관계인 한국을 가장 약한 고리로 보는 것은 아닌가하는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필자는 옌 교수에게 한중동맹론은 매우 의미 있는 제안이지만 당장 실천에 옮길 과제라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검토해 나갈 과제 같다고 평가하고 옌 교수가 동의한다면 내년 봄 서울에서 한중문화협회와 칭화대학의 당대국제관계연구원이 공동으로 “한중동맹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어 학자 간 토론을 갖자고 제안하였다. 옌 교수도 이를 흔쾌히 수락하였다.
② 남북대화에 대한 중국의 태도
뒤이어 나는 오늘날 북한이 일방적으로 패쇄 했던 개성공단은 재개되었지만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북한이 돌연 일방적으로 거부함으로써 남북관계의 개선전망은 현재 매우 어두운 실정인데 북한에 대해 가장 영향력이 큰 중국이 6자회담재개를 위한 외교노력은 강화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 문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옌 교수는 현재 북한은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나날이 긴밀해지고 유엔안보리에서 대북제재결의를 중국이 찬동하면서부터 중국의 외교적 권고에 대해 매우 경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예로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는 아직도 중국을 방문치 못하고 있다. 한국의 외상은 수시로 중국외상과 대화하고 있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이 때문에 지금 중국이 남북한 관계에 끼여들 여지가 적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면 정부수준에서는 어렵더라도 중국의 홍십자(紅十字)가 민간단체입장에서 남북한적십자단체들과 함께 만나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상봉문제, 대북식량이나 의료지원문제를 해결하도록 주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는가.”고 물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남북한 간의 인도적 문제해결을 시작으로 점차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더 큰 협력으로 남북한관계를 발전시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옌 교수는 “홍십자 역할론은 매우 의미 있는 제안으로 본다.
자기도 중한전문가위원회 위원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정부당국에 제기, 실현성을 타진해 보겠다.”고 답했다.
③ 일본의 집단자위권문제
Ⓐ 일본의 집단자위권과 미국문제
옌 교수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주장을 미국이 지지했는데 이를 필자는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나는 미국이 유엔헌장의 집단안보조항을 인용,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내심으로는 현재 모든 면에서 중국에 앞서는 미국에 대해 신형대국관계를 들고 나오면서 미중 양국 관계를 대등관계로 간주, 국제문제에서 양국이 동등한 발언권을 갖자고 요구하는데 대한 미국의 전략적 대응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명분으로 비무장헌법을 개정, 군대를 보유한 정상국가로 되면 머지않아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높은데 미국의 선택이 현명한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덧붙였다.
나의 견해에 대해 옌 교수는 중국역사에서 성공한 군주가 갖는 덕목으로서 "시혜(施惠benevolence), 인의(仁義 righteousness), 의례(儀禮 rite)라는 사상적 전통을 오늘에 계승하고 있는 중국은 앞으로 미국과의 경쟁에서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가치문제에서도 앞설 것이라고 말하고 “중국이 떠오르는 대국이라면 미국은 쇠퇴하는 대국”인데 전자(前者)가 왕도(王道)를 걷고 후자(後者)가 패도(覇道)를 추구한다면 중국고대전략사상의 귀결로 보아 중국이 필승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정치문제에서 리얼리스트(Realist)인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미국에 대한 신형대국관계 요구는 가장 현실적이라고 강조하고 한중협력도 이러한 상황변동과 연관된다고 말했다.
Ⓑ 인구는 자원인가 재앙인가
옌 교수는 일본은 인구의 고령화, 인구의 감소로 앞으로의 발전에 한계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나는 한국도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중국의 가장 큰 자원은 인구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옌 교수는 먹을 것과 일자리는 줄 수 없는데 인구만 불어나면 그것은 곧 국가적 재앙이 된다는 관자(管子)의 이론에 비추어 중국은 1가정 1자녀 정책을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이어 소말리아 같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인구가 불어나면 그것은 자원이 아니라 곧 재앙이 된다고 지적하고 인구를 감당할 생산기반확충이 국력의 가장 중요한 기초라고 말했다.
3. 맺으면서
옌 교수와의 대화는 오찬까지 이어졌다. 나는 10월 25일 이 날이 중국인민의용군이 63년 전 한국전에 참전한 날이어서 중국정부나 언론이 이 날의 의의를 되새기는 행사를 갖는가를 눈 여겨 보았다. 내가 점검한 범위 내에서는 중국의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TV 방송이나 신문의 한 구석에서도 중공군의 참전을 지나가는 뉴스로도 보도하지 않았다. 한편 이날 평양에서는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은 공동명의로 평양의 북·중 우의탑(友誼塔)에 헌화하고 고위 인사들이 중국지원군 전사자들을 추모했다고 보도했다.
한중문화협회가 지난 8월 한국휴전60주년 행사의 하나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군 사병을 초청, 파주의 중국군 묘지를 참배토록 주선한 바 있는데 이 행사는 비록 조그마한 일이었지만 한중간에 있었던 전쟁의 상처를 넘어서서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상징성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한중관계는 어려운 구석들이 많고 중국지도층이 갖는 전략관점도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중국은 북한편이라는 선입견에 더 이상 묶여서는 안 된다. 중국이 우리의 실리-한반도의 평화, 통일, 번영-의 파트너가 되도록 양국관계를 다방면에 걸쳐 증진시키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중관계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우리의 버팀목은 튼튼한 한미동맹임은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정세변화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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