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강성학 저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
(헌정지 2017년 3월호 기고)
이 영 일( 전 국회의원,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국제정치학자 강성학 박사가 급변하는 국내외정세속에서 우리 한국이 당면한 위기와 그 해법을 제시하는 귀한 저서를 펴냈다.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을 통해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 저서는 그의 34번째의 저술로 보인다. 필자는 지금까지 그가 발표했던 저서들의 일부 밖에 읽지 못했기 때문에 전체의 흐름을 놓고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는 못 되지만 이번에 출간된 책만큼 대한민국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쓴 책은 처음인 것 같다. 물론 학자를 규정하는 존재의 구속성 때문에 한국을 문제의식의 저변에 깔지 않은 연구나 저술은 없겠지만 그것이 내재율 아닌 외재율로 커밍아웃한 점에서 이번 강 박사의 저술은 시대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고려대(高麗大)에서 정년퇴임한 강 박사는 이번 저서를 통해 그간 농축시켜온 연구의 축적을 딛고 서서 우리나라가 처한 국내외 정치의 현실을 새롭게 조명, 분석하면서 민족적 출로에 관한 논구를 심화시키고 있다. 동서냉전의 해빙으로 진영논리에 압도되어 빛을 잃었다가 되돌아온 국제정치연구의 전통적 연구방법인 지정학(Return of Geopolitics)을 토대로 하여 오늘날 우리 한반도가 포함된 이 지역정세를 새롭게 조명하고 한국이 당면한 위기상황을 파헤치고 있다. 요즘 미국학계도 탈냉전시대의 국제관계를 지정학적 시각에서 다시 검토하는 추세다. 이들은 냉전의 종결과 더불어 제2차 세계 대전과 동서냉전이 그어 놓은 국경선과 세력범위를 현 수준에서 동결시키면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자는 것이 서방측의 입장이라면 이에 맞서 현상변경을 강력히 추구하는 수정주의 세력이 등장했는데 이들이 곧 유럽의 러시아, 중동의 이란, 동아시아의 중국이며 이들 중 중국의 부상(浮上)이 국제정치판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러시아나 이란이 현 상황에서 당해 지역의 패자가 되기는 힘들지만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아시아 재 균형전략(Rebalancing Strategy)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한국, 일본 등 자국의 동맹국들이 미국과 제휴, 책임을 분담하면서 현재의 아시아질서를 유지해 나가려고 한다. 강 박사는 미국의 재 균형전략을 지정학에서 말하는 역외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전략 하에서는 동맹국들 간에 협력적 조율이 잘 이루어지면 안정이 지속되지만 조율이 잘 안되거나 미국 국내에서 해외개입을 줄이려는 고립주의 경향이 등장하면 동맹조약과 공약은 있으나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트럼프시대에 한국과 일본이 당면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강 박사 역시 이번 저술에서 중국의 부상(Rise)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남중국해를 자국의 핵심이익으로 선언하고 아시아 집단안보를 역설하는 것은 이 지역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중국이 패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미중경쟁과 갈등상황 속에서 우리의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 할 가를 검토한다. 그간 우리 학계는 국력신장이 세계랭킹 10위를 넘나들면서 한국의 위상이 옛날과 달리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수준으로 커졌다고 자부하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균형자역할을 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강 박사는 대륙세력의 입장에서는 완충지역으로 보이고 해양세력의 입장에서는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보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현재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특히 중국의 부상은 한마디로 국제정치에서 항상 주목되던 세력전이(勢力轉移)를 가져올 가능성이 내포된 부상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외교안보에 중요할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서 깊이 있는 관찰과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역할을 시도하는 것은 “프라이팬에서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자멸행위”라면서 균형이라는 것은 모든 나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公共財)가 아니라 강대국들만이 사용하는 특권이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용미(用美)나 용중(用中)은 비현실적 환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한국에 안전한 전략이 있다면 그것은 균형자가 아니라 가장 강한 국가에 편승(Band wagoning)하는 것이며 이것이 오랜 역사동안 한민족이 생존해온 비결이라고 한다. 이점에서 THAAD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에 양다리 걸치기(Hedging)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현명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금세기안에 중국이 모든 면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 비추어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 한미동맹의 틀 내에서 미국의 재 균형전략과 발을 맞추면서 자강(自彊)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강 박사는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국내 상황은 미중간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정세 속에서 나라들마다 국가이익 챙기기에 몰두하는 상황인데도 우리는 국익보다는 당리, 공익보다는 사익이 판을 치면서 국가의 위기대응능력이 갈수록 약화되는 실정이라고 개탄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일관된 안보정책도, 군사전략도 마련치 못한 상태인데 국가를 통합하고 동원할 능력마저 상실한다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은 물론 자칫 치명적 고통을 받았던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이러한 내외정세분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적 목적과제를 달성하기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민통합을 이뤄낼 리더십의 구축이라면서 미국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국가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고 노예해방이라는 세기적 업적을 낳은 링컨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우리가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남북전쟁시기에 링컨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의 여러 측면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정책결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신중한 분별력(Political Prudence), 인사정책에서 정적(政敵)들 까지를 사심 없이 포용하면서 통합의 대도를 걷는 모습을 평가한다. 특히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의 대의를 추구하면서도 노예를 재산으로 보던 당시의 가치 관념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수용하는 현실주의의 입장에서 노예문제에 접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예해방의 결실을 얻어내는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모든 사람들과 두루 소통하면서도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결정의 확실한 준거로 삼아 도덕적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간 점을 높이 사고 있다. 링컨은 군사전략가가 아니면서도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정치가-장군(Statesman-General)이었다고 할 만큼 군통수권자로서도 탁월한 리더십을 보임으로써 미국정치에서 문민우위의 질서를 정착시켰다고 평가했다.
이 책은 지정학적 사고에 바탕을 둔 주변정세분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어 우리의 내외정세와 당면한 위기를 바로 깨닫게 해 준 점에서 큰 기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기여는 링컨의 리더십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해준 한국최초의 저술을 내놓은 점이다. 이 책을 완독하면서 가장 부끄럽게 느낀 점은 우리 정치권이 강국들에 둘러싸인 분단된 반도국가에 살면서도 지정학적 사고가 원천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또 역대대통령들의 협량한 인사정책이 국민통합을 얼마나 저해했던가를 되돌아보게 했다. 국가이익을 생각한다는 의식이 있는지 조차를 의심케 할 언동이 판을 치고 외교안보문제에서 초당적 협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라에서 그날 그 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꼭 이 시기에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워 위안부문제로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과연 우리의 보다 큰 국익실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짓일까.
아마 우리 국민들 중에 링컨 대통령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그에 관해서 실재로 가진 지식이란 고작 게티스버그 연설문 한 대목 정도뿐 아닐까. 필자는 강박사의 책을 독파한 후 링컨 리더십을 제대로 체득치 못하는 한 어려운 시기에 이 나라를 잘 이끌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요즘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정식을 갖는 인물가운데 안심하고 국정을 내맡길 ‘분별력 있고 포용력 있고 군사전략적 감각까지 갖춘’ 인물이 과연 있겠는가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큰 뜻이 있는 정치가나 기업인들에게 이 책만큼 강한 교훈을 줄 책은 없을 것 같다. 강호제현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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