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헌정지 2016년 4월호에 게재)

김정은의 퇴출이 한반도 비핵화의 첩경이다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전 국회의원)

 

                                                         1.

 

북한지역에서 김정은이 3대에 걸친 세습독재 권력을 승계하면서부터 오늘의 한반도를 생존무대로 하는 한민족의 우리 세대는 이 땅에서 열핵(熱核)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굳히면서 한반도비핵화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을 전면 거부함으로써 핵문제의 비군사적, 외교적 해결가능성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정은은 그의 선대(先代)인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달리 외교의 중요성을 거의 외면하거나 의식하지 않는 모양새다. 김일성은 6.25동란을 일으킨 전쟁범죄자였지만 북한정권을 지켜 내기위해 중국과 소련사이에서 줄타기외교를 하는 전술적 교활성과 전략적 신중성을 보이면서 정권과 체제를 지탱했다.

김정일도 김일성에 못지않게 외교의 중요성을 터득하고 생존수단으로 때로는 중국에 밀착, 중국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남북대화를 열거나 대미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도발 같은 군사공세도 펼치고 은밀히 핵무기 개발도 추진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김정일은 미국의 대북압살정책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한 억제력확보수단으로 핵개발에 나섰다고 주장, 수세적 입장을 취하면서 미국이 북한의 생존을 확실히 보장한다면 핵무기 비확산(NPT)질서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그의 선대들과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그는 권력을 잡자마자 곧바로 2012년 제3차 핵실험과 제5차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한데 이어 금년 1월 6일에는 제4차 핵 실험과 제6차 광명성 4호로 위장한 장거리미사일발사를 자행했다. 국외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행동이 몰고 올 후과(後果)에 대해 김정은이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충분히 고려했다는 증거는 없다. 김정은은 그간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4회에 걸쳐 통과시킨 북한제재결의를 철저히 무시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우방국으로 행세해온 중국의 권고나 자제요구에도 귀를 닫았다.

 

금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에 대해 유엔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내용을 담은 결의 2270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도 김정은은 이러한 제재도 의식 하지 않는 듯 오히려 본인이 직접 전 세계로 방영되는 TV에 나와서 “핵탄두를 경량화, 규격화할 것이며 서울은 물론 워싱턴·뉴욕도 사정권 안에 들어 있다”는 등 도발적 언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을 향해 핵과 미사일발사를 계속하고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 공격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마치 북한이 G2에 맞서는 G3같은 강대국이나 된 것처럼 핵무기의 비확산(NPT)이나 미사일통제체제(MTCR)라는 국제규범을 사그리 무시하면서 비핵화거부와 핵 무력증강을 공공연히 주장한다. 북한 내부에는 김정은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견제세력이 있을 수 없다. 반론을 제기하는 자는 이유의 타당성과는 관계없이 잔인한 처형이 뒤따르는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를 자행, 집권기반을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제사회에 비친 김정은은 21세기 국제사회의 무법자, 난폭한 질서 파괴자다. 이미 죽은 독일 제3제국의 아돌프 히틀러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망령이 북한 땅에 되살아 난 것 같다.

 이제 국제사회는 한반도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비외교적(非外交的) 대안으로 우선 김정은이라는 폭군을 권자에서 내려오게 하거나 핵과 미사일 시설을 군사적으로 점령, 강제해체하는 응징적 해결을 시도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졌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경계하면서 피해 가야 할 열핵(熱核)전쟁의 위기가 배태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추진을 한반도 문제해결의 대안으로 합의했다지만 김정은의 북한이 현재의 자세를 바꾸지 않는 한 군사충돌의 위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하 김정은의 언행이 몰고 오는 위기상항을 개관키로 한다.

 

                                                          2.

 

 김정은이 그의 언행으로 조성하는 한반도위기는 첫째 한반도 비핵화거부와 핵 무력증강정책을 공세적으로, 명시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시대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비핵화목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2012년 미국과 북한 간에는 2. 29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김정은은 이 합의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 공공연히 비핵화거부입장을 밝혔고 2012년 4월에는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했다. 이어 7월에는 핵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 선언한 후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2013년 3월 31일 핵·경제 병진노선을 내외에 선포했다.

 

 이때 김정은은 핵 선제공격을 노골적으로 거론하면서 자신들의 “첫 타격에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가 녹아나고 남조선 주둔 미군기지는 물론 청와대와 괴뢰군 기지도 동시에 초토화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김정은의 선대들 같으면 감히 입 밖에도 꺼낼 수 없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떠벌린 것이다. 곧이어 2012년 미사일과 핵을 결합시킨 전략군을 창설하고 2015년 노동미사일 고각발사(高角發射)실험을 감행하면서 2015년에는 동해상에서 잠수함 발사탄도미사일(SLBM)실험을 단행했다. 이어 금년에는 핵무기를 「개발단계에서 생산 배치단계」로 격상시킨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 북한의 핵능력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전환시키고 있다.

 

 지금 김정은의 심중에는 북한이 ‘핵 국가 상호간에는 공포의 균형으로 서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이론’이 적용될 핵보유국만 된다면 세상에 아무 것도 무서울 것이 없고 미국도 꼼짝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나 핵전략 면에서 핵 국가들끼리 인정하는 공포의 균형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지역이라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현재 김정은의 군사전략이 체제유지와 생존차원을 넘어서서 보다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결국 경제제재를 넘어서서 군사제재로 변할 것이 확실하다. 한미양국이 작계(作計)5015를 준비하는 소이(所以)다.

 

 한반도의 운명이 김정은 때문에 자칫 전쟁에 휘말릴 수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금년 미국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항상 대립하기 일쑤인 공화·민주양당의 상하 양원도 북한을 강력히 제재하자는 데서 놀랄 만큼 국론을 하나로 모았다. 미국 학계나 군사전문가들도 북한은 “위협행동에서 가장 적대적이며 위협능력에서는 두 번째로 심각, 미국의 핵심이익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북한 핵을 추적하는 웹사이트 38 North'운영자인 조엘 위트도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하면 2020년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통일도 요원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4차 핵 실험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회원국들이 대북 제재안을 전원일치로 가결시킨 것도 김정은의 핵전략을 위험스러운 것으로 평가한데 기인한다.

 

 국내일각에서는 중국이 제재에 소극적이어서 제재효과가 감소될 것을 우려하지만 중국도 미국이 독자적으로 취할 군사적 자위조치의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과거처럼 제재에 소극적일 수 없다. 더욱이 미국 국회가 대통령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한 행정명령이 요긴하게 발동될 경우 북한의 고립은 심화될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도 북 핵의 초기단계에는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단호한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북 핵에 대한 제재가 견문발검(見蚊拔劍)아닌 적극적 대처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3.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2270호가 집행되면서부터 북한의 국제고립은 심화되고 대외활동과 외화벌이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김정은 체제가 안고 있는 여러 형태의 내부모순과 갈등이 조만간 현실문제로 표출될 것이다. 우선 김 씨 왕조3대에 걸친 독재권력 유지의 근간이었던 북한엘리트층의 강고한 지배동맹이 김정은의 무원칙하고 자의적이며 잔인무도한 처형위주의 공포정치로 간부숙청이 진행됨에 따라 공동운명체체로서의 일체감은 줄어들고 면종복배가 생존의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점차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 외화벌이감소로 통치자금 마저 고갈된다면 채찍만 있고 당근조차 없는 공포정치에 북한 엘리트층들이 더 이상 배겨날 수 없을 것이다.

둘째로는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세력과 김정은의 선당(先黨)정치세력간의 권력투쟁이 심화될 것이다. 현재는 군복을 입은 민간인들이 군을 지배하고 있지만(황병서가 군총정치국장) 선군세력들이 아직도 확고히 군부 내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양자 간의 모순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셋째로 군부 내에서도 김정은이 핵미사일 부대를 전략군으로 재편성, 우대하기 때문에 재래식 군대와 신형 미사일, 로켓, 핵탄두를 다루는 전략군 간에 암투가 발생, 북한 판 임오군란(壬午軍亂) 같은 사태도 예상된다.

넷째로는 북·중 관계의 악화가 북한 경제의 생존능력을 극도로 약화시킬 것이다. 북한의 대 중국무역의존도는 공식적으로는 69%지만 실제로는 90%를 상회하기 때문에 중국이 가하는 경제제재는 북한 정권에게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다만 유엔결의가운데 포함된 민생 등 인도적 문제에 대해서는 제재가 다소 약하기 때문에 북한의 민생에 직결되는 장마당 경제에는 영향이 크지는 않겠지만 북한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인민군경제가 받는 타격은 심각할 것이다. 특히 광물자원에 대한 유엔의 제재부과와 인력수출을 견제하는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북한 경제의 숨통을 결정적으로 조일 것이다.

다섯째로 심각한 문제는 북한 고위지도층의 탈북행렬이 줄을 잇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의 탈북자들이 실권 없는 엘리트들이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체제 핵심들의 탈북이 증가하고 이들 중 남북군사회담에 대표로 참석했던 박재경 같은 인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도 집권과 동시에 인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민을 더 이상 배고프지 않게 할 것임을 다짐하였지만 핵·경제병진정책을 버리지 않는 한 식량 난, 자원 난, 에너지난은 갈수록 가중될 것이며 경제의 회생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 김정은이 추진하겠다던 19개의 개발특구도 유엔안보리의 초강경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한 한 건(件)도 성사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제 국제사회는 핵 무력의 환상에 사로잡혀 무모한 도발을 일삼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면서 자기 인민들을 극도의 궁핍으로 몰아넣는 공포정치의 폭군 김정은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할 시점에 당도했다. 그를 권좌에서 몰아냄으로써 지역의 안전을 보장하고 북한이 가난에서 벗어날 개혁개방을 이루도록 지혜를 짜내야 한다. 이 기반위에서 국제사회는 필요한 공조를

통해 한반도 통일의 새 시대를 열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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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 폐기의 국제정치학

                                                 (이글은 2016년 헌정지 3월호에 발표되었다)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이 영 일(전 국회의원)

 

1. 2016년은 북한 핵무장여부가 판가름 날 마지막 시기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은 한반도를 위요한 안보지형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북한이 수소폭탄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한 4차 핵실험과 인공위성이라고 포장한 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실전배치의 직전단계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도발이다. 이 때문에 북 핵과 미사일의 직접 피해 당사자인 한국을 포함하여 북 핵과 미사일발사를 좌시할 수 없는 주변국들은 하나같이 긴장하고 있다.

 

특히 ‘2016’년은 북한 핵문제를 연구해온 국제정치학자들이나 전략연구가들이 기술적 견지에서나 시점의 축적에 비추어 북한은 국제사회의 공인과 관계없이 핵 국가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북한의 2차 핵 실험이 끝난 후 한국을 방문한 재미국제정치학자 김영진 박사(전 미 국무성 고문)는 2012년 11월 26일 사단법인 4월회 초청강연에서 2016년이 북한핵무장의 저지냐 용인이냐를 판가름할 마지막의 해가 될 것이라면서 북 핵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정리해서 발표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을 수소탄 급으로 단행했다고 발표한데 이어 2월 7일에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바야흐로 북한의 핵무장은 그 최종단계에 근접하고 있다.

 

2. 북 핵을 보는 한·미·중의 태도평가

 

가. 한국의 대응

한국은 북한과 1992년 한반도비핵화선언을 발표한 이래 한국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 핵까지도 철수시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면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아닌 군사적 이용을 배제하는 비핵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북한은 1992년부터 IAEA의 미신고핵시설에 대한 특수사찰을 거부하면서 급기야는 1993년 핵확산 금지조약을 탈퇴하고 공공연히 핵개발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북 핵 저지에 당사자로서 직접 대응에 나서기보다는 핵무기비확산질서를 관장하는 미국, 중국 등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에게 주된 책임을 맡겼다. 동시에 IAEA등 핵확산금지조약(NPT) 감시기구를 통한 조치나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가안보의 방편으로 미국의 핵우산이나 확장된 억지를 통한 북 핵 대응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수교 이래 경제협력이 확대되고 있는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서도 핵문제해결을 모색했다.

 

그러나 상황은 한국의 기대에 너무 못 미쳤다. 한국은 결국 북한의 4차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확고한 대비 없이 맞게 된 것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강대국들은 북한의 핵을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모든 도발을 응징할 충분한 핵탄두를 비축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만큼 절실하게 북 핵 저지를 서두르지 않았다.

강대국들은 핵무기확산저지라는 국제적 대의 때문에 북핵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면서도 그때그때의 자국의 실리에 얽매어 북 핵의 적극저지를 소홀히 한 결과 20년의 세월을 허송했고 북한이 핵능력만 키울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 시점에 이르러 한국은 북핵문제를 더 이상 강대국에만 맡겨둬서는 해결전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지난 2월 10일 개성공단의 운영중단을 결정함과 동시에 북 핵 저지와 폐기에 능동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16일 국회보고연설을 통해 핵 포기냐, 체제붕괴냐의 양자택일을 북한에 요구하면서 북 핵 저지를 국가의 사활적 과제로 설정했다. 동시에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에 대한 제재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면서 북 핵 저지에 국가총력을 경주할 것임을 밝혔다. 북핵문제가 비로소 우리의 실존적 과제로 결정된 것이다

 

나. 미국의 대응

미국은 북핵문제가 제기될 당초에는 북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검토했지만 동족상잔의 재발을 피하려는 한국 김영삼 정부의 완강한 반대와 폭격의 실효성에 대한 엇갈린 평가로 군사적 해결을 유보한 가운데 북미양자간 대화를 개시, 1994년 제네바합의를 도출함으로써 핵개발을 동결시키면서 대북지원을 통해 핵무장 포기를 유도하려고 하였다. 이때 미국은 북한의 전력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경수로건설에 착수했고 수십만 톤의 중유를 북측에 무상으로 공급했다.

이때 북한은 겉으로는 대화에 호응하고 6자회담을 통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전망을 주는 청신호를 보내면서도(9.19합의) 이면에서는 파키스탄을 통해 원심분리기를 도입, 핵개발 수준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사실상 외면하고 경수로 건설과 중유지원을 중단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내세우는 한국의 좌파정권과 중국이 북한을 계속 지원함으로 해서 북한의 핵개발 노력은 진전되었다. 이 와중에 이란의 핵개발사태가 발생했고 아울러 북한도 6자회담을 보이콧하면서 핵개발노선을 가속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북 핵 저지”에서 “이란핵 개발저지”로 옮기고 대북 정책도 ‘전략적 인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호도하면서 북한이 핵 포기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한 북한의 기만정책에 놀아나는 대화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이것도 북한의 4차 핵실험의 길을 열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 중국의 대응

중국은 북한 핵문제가 등장하던 1992년 IAEA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북핵문제는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입장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이 갖는 거부권 때문에 모든 국제회의에서 북 핵 저지를 위한 다른 수단의 선택을 어렵게 했다. 이로써 중국은 사실상 북한이 4차에 걸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추진, 성공시킬 시간과 여건을 조성해주었던 것이다.

중국의 당과 정부는 북핵문제가 등장하던 초기부터 북 핵을 중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기필코 저지해야할 과제로 보지도 않았다. 중국학자들의 대다수는 북한의 2차 핵 실험을 전후한 시기까지만 해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14개 국가들 중 여러 나라들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에 북한 하나가 더 추가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2013년 한중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언명이 있은 후부터는 중국학계의 공공연한 북 핵 긍정론은 사라졌다.

 

그러나 대화와 협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중국의 주장은 지난 22년 동안 계속되어왔다. 지난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왕이(王毅)중국외교부장은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했다. 윤병세 외교장관에게, 또 1월 27일 베이징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에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 포기를 내용으로 하는 어떠한 협상에도 불응한다는 입장을 중국 측에 분명히 밝혔고 또 핵 보유를 헌법에까지 못 박고 있는 실정을 알면서도 중국은 핵문제해결수단으로 대화와 협상만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일견 황당해 보이는 주장 같지만 여기에는 중국 나름의 전략적 고려가 담겨있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갖는 영향력을 배제하고 중국우위의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명분으로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열어 평화협정을 협상케 하고 이 협상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 미국의 한반도 개입명분을 약화시키거나 주한미군의 지위를 흔들겠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강도 높게 요구하는 사드(THAAD)배치 반대도 맥락은 같다. 사드는 공격무기가 아닌 방어무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부지(敷地)를 제공하는 사드가 주한미군에 배치될 경우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편입되어 중국에 대한 견제세력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간 한국은 사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주한미군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미군 사령관의 건의를 반대할 명분이 약했지만 중국의 우려를 배려,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다.

그러나 북한의 4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는 한국이 더 이상 사드 배치요구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중국도 북 핵을 감싸면서 오랫동안 공들여온 전략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발사에 성공, 대량살상무기들이 실전에 배치될 단계에 진입하면 중국은 오히려 양호유환(養虎遺患)의 난국에 빠지게 될 것이다. 특히 한중수교이래 오랫동안 북한내부에서 들끓어온 중국불신감을 상기할 때 북한의 핵무장은 중국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4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의 성공은 그 역설로서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또 한국이 핵문제의 당사자로서 직접 행동에 나서게 했다. 물론 제재의 수준을 놓고 강대국 간에 견해차이가 있지만 “국제여론에 맞선 북한에게 필요한 대가를 지불케 해야 한다”는 왕이 중국외교부장의 발언도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원하는 것은 제재로서 북한이 비핵개방정권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제 우리 외교는 북 핵에 대한 직접대응을 소홀히 했던 구태를 털고 모든 형태의 재제를 강화, 2016년을 북 핵 저지의 결정적 해로 만들어야 할 도전을 맞고 있다.

 

3. 고려할 수 있는 정책대안

 

가. 이스라엘의 교훈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에게 둘러싸인 고립된 나라다. 따라서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요소를 철저히 조사차단하는 점에서 세계적인 수범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1981년 이라크가 핵개발을 시도할 때 오시라크의 원자로 공사장을 기습 폭격하여 이라크 핵무장을 저지했다. 2007년에는 북한과 제휴하여 시리아의 알키바에 건설 중인 다이르 알주르 원자로 공사 현장을 정확히 파악, F-15 편대를 터어키 국경을 몰래 넘어가 기습 폭격함으로써 시리아의 핵무장을 선제 차단했다.

이때 미국은 폭격 아닌 외교적 해결을 추구했지만 이스라엘은 미국의 입장에 구애받지 않고 직접 폭격을 통해 자국의 안보위기를 극복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스라엘의 모사드 같이 기민, 정확한 정보기관도 없고 북 핵을 직접 행동으로 폭격, 저지할 마음의 태세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이 실로 아쉽다. 뒤늦게나마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가동을 중단하면서 국민들에게 햇볕정책의 미몽을 버리고 단결을 촉구, 북 핵 저지를 국가안보의 제1의 과제로 설정한 것은 만 번 다행한 일이다.

 

나.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대처하자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도는 북한이 핵무장하지 않고 탄도미사일 없이도 잘 살아가는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을 제외한 나머지 193개회원국들이 걷는 바로 그 길을 택하게 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선택을 하도록 미국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북한과 여러 기회에 대화도 나누고 필요한 지원도 제공했고 북한이 가장 곤궁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군사적으로 위협한 바 없었다. 중국이 미국의 북한과의 대화가 북핵문제해결의 관건이라는 주장은 경험상으로 보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도 식량, 의료, 비료 등 수 십억 달러 상당의 원조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핵과 미사일개발에만 매달리면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동북아 정세를 긴장 시키고 특히 4차 핵실험과 6차에 걸친 미사일 도발로 동북아시아의 안보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유엔회원국인 북한의 정체(政體)는 그대로 존속시키더라도 현재 북한을 잘못 이끄는 3대세습독재자 김정은을 권자에서 물러나게 하는 북한정권의 운전수 교체(Driver Change)를 진지하게 추구해야 한다. 오늘날 북한 내에서 비핵개방을 원하면서 자생하는 장마당 세력이 보다 큰 힘을 갖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 작업은 한반도 주변 5개국이 한국과 긴밀히 공조하는 가운데 은밀히 추진해야 하며 특히 한국은 북한 지도자 교체에 영향력이 큰 중국을 상대로 공식, 비공식 교섭을 적극 추진하고 여기에 미국과 러시아가 가세 협력토록 해야 할 것이다. 이 길이 순탄치 않을 경우에는 미국과의 협력을 통한 참수(斬首)계획도 선택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와 동시에 유엔안보리에서는 가장 강력한 제재결의를 끌어내야 한다. 우리는 김정은이 전 세계로 방영되는 TV를 통해 “미사일 발사! 핵실험 단행!”을 육성으로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지도자 교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특히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지금 미국은 북한의 사실상의 선전포고 앞에 자위조치를 취할 명분이 충분하다.

미국의 자위조치에는 중국의 거부권행사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유엔안보리 제재결의보다도 더 실효성 있는 효과적인 제재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한다. 시진핑 주석이 약속한바 북한의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언급이 중국의 정책으로 구체화하기 까지 우리는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강도 높은 대북제재와 권력교체를 병행추진하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국론통일의 바탕에서만 꽃필 수 있으며 지금이 바로 안보에 여야가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우리 정치권이 수범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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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중국의 선택

                                                  (이글은 2016년 憲政誌 2월호에 기고된 것임)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1. 4차 핵실험의 상황평가

 

북한정권은 지난 1월 6일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서 제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간 주변국들은 김정은이 조만간 이런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중국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처럼 수소폭탄실험에 성공했다는 발표와 더불어 제4차 핵실험을 감행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주지하는 바이지만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작년 9월 오바마 미국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그에 앞선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북 핵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중국은 작년 10월 10일 시진핑 주석의 친서를 휴대한 류윈샨(劉雲山)중국공산당 상임위원을 조선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식에 파견, 이 기회에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 측의 견해를 김정은에게 직접 전달했다.

 

 소식통들에 의하면 류윈샨은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필요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6자회담을 통한 북 핵의 평화적 해결만이 북·중간의 전통적 우의, 협력관계를 복원하는 방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도 이런 중국 측의 태도에 호응, 김정은의 연설에서 핵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것으로 보였다. 국제여론은 이러한 동향을 주목하면서 그간 냉랭했던 북·중관계가 회복될 기미가 보인다고까지 예상했다.

그러나 1월 6일 단행된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중국의 입장을 철저히 무시함과 동시에 그간 펼쳐진 한반도 핵문제의 외교적, 평화적 해결에 대한 모든 기대를 일거에 무산시키고 오직 한층 더 강화된 제재만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시키는 유일한 방도라는 쪽으로 세계여론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이런 여론에 맞서 수소폭탄급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지속되는 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핵실험 추진이유를 밝혔다.

 

북한은 항상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을 핵실험이유로 내놓았다. 1차 핵실험이나 2차 핵실험에서도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들고 나왔으며 제3차나 4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핵실험이 실시되는 상황의 전후관계(Context)를 살펴보면 각 실험 때마다 북한이 겨냥하는 주안점은 달랐다. 2013년 2월 12일의 3차 핵 실험의 경우 중국공산당의 대외연락부가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의 국가주석 취임을 앞두고 한반도의 안정에 북측이 협력할 것을 당부했는데도 김정은은 권자를 이어받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지만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김정은임을 과시하겠다는 심산에서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에 앞선 2012년 12월의 미사일 실험 발사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중 관계는 악화되었으며 유엔안보리의 북한제재에 중국이 적극 참여함과 동시에 시진핑 주석은 지난 4년 동안 한국을 먼저 방문하면서 북한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김정은을 아직까지 만나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이번 4차 핵실험도 상황논리에서 보면 중국이 제시하는 비핵개방노선이 김정은의 생존전략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북한 나름의 결기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미국과 중국 간의 4차 핵실험을 둘러싼 논쟁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미중 간에는 열띤 책임공방이 이어졌다. 북한의 핵실험 다음날인 1월 6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왕이(王毅)외교부장과 전화통화한 후 공개적으로 "중국식 북핵저지방식은 이미 실패했다"고 비판했고 이에 대해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한반도 핵문제의 원인과 문제점은 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며 문제 해결의 관건에도 중국이 있지 않고 미국의 대북한 정책이 오늘의 사태를 몰고 온 원인“이라고 반박했다.

 

그간 미국은 존 케리 국무장관 취임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미국보다는 중국의 안보에 더 관련이 깊다면서 북핵문제의 해결에 중국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핵문제는 당초 미 북 양자 간의 문제처럼 인식되었지만 북한의 핵무장은 미 북한간의 양자문제를 넘어서서 북 핵의 영향을 받는 관련국 모두의 문제라는 키신저의 주장이 반영되어 북 핵을 다루는 외교무대가 6자회담으로 확대되었고 중국이 의장국이 되어 6자회담을 주도했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면서부터 미국은 북한정권의 안보 동맹국이고 북한의 존립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이 아니라 북 핵이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중국이 북핵문제해결에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이 반면 미국은 자국의 입장을 전략적 인내라고 표현하면서 북핵문제해결의 전면에서 한걸음 물러서는 태세를 보였다. 이에 대해 중국학자들은 미국이 화전양면의 어느 공세로도 북핵문제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데다가 2008년 국제금융위기이후 침체를 보이는 자국의 경제사정 때문에 북 핵을 다루는 자국의 입장을 전략적 인내로 호도하면서 북 핵 해결의 모든 책임을 중국에 떠넘긴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두 가지 면에서 정당하다. 중국이 북 핵의 외교적 해결장인 6자회담을 북한이 박차고 나가는 현실을 막지 못하는 한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은 불가능하며 둘째로 유엔안보리의 어떠한 대북제재도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 한 실효를 얻을 수 없다는 현실에 비추어 중국책임론을 강조하는 미국의 주장은 타당하다.

결국 6자회담 실패 후 한국이 중국과의 접근 외교 강화를 통해 북핵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려고 하는 것도 미국의 이러한 대 중국 정책과 본질적으로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중국도 이제 G2라는 국제정치적 지위에 비추어 핵 비확산에 대한 국제책임을 수용하고 북한을 핵보유국가로 인정치 않을 것임을 중국지도부의 대외적 발언을 통해 밝힘과 동시에 4차례에 걸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해 왔다. 또 중국역시 모든 강대국들이 그러한 것처럼 국경에 인접한 약소국이 핵무장으로 대드는 상황을 용납하기는 더더욱 힘들 것이다. 물론 중국학자들 가운데는 한 때 북한의 핵문제를 대수롭게 생각지 않으면서 중국주변에 핵 가진 여러 국가 중에 북한이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당 지도부가 북한의 핵 보유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결정, 발표하면서부터 일거에 사라졌다. 따라서 북한의 핵 처리 논의는 사실상 북 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공산당 지도부의 입장이 어떻게 현실정책으로 구체화될 것인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중국의 비핵개방권고를 거부하고 중국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겠다면서 핵실험을 강행, 동북아시아 대륙에서의 핵도미노 현상(일본과 중국 간의 핵 대결상황)을 몰고 올 가능성을 중국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 한편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진행되는 미국과의 갈등상황도 한반도 정세와의 연관 속에서 심도 있게 검토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고려가 구체적으로는 유엔안보리의 북한 제재수준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중국자체의 독자적 제재구상에도 반영될 것이다.

 

3. 중국과 북한관계의 재조명

 

북한의 핵무장 기도는 당초 6.25 사변에서의 처절한 패배에 대한 반성에서 김일성이 꿈꾸었던 일이지만 구체적 실천에 박차를 가한 것은 중국이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과의 수교를 단행한데서 부터 자위책강화수단으로 시도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 핵무장의 배경에는 중국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있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은 상황마다 겨냥하는 목표가 다르다. 금년 5월에 36년 만에 실시할 노동당 전당 대회를 앞두고 자신들의 업적을 과시, 주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데도 큰 목적이 있겠지만 더 비중을 둔 것은 앞서도 지적했지만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주축으로 하는 자위노선에 어떠한 영향력도 미칠 수 없음을 과시하는데 더 큰 뜻을 두었다.

 

북한은 류윈산의 북한 방문이후 중국과의 관계조정을 놓고 심각한 내부토론을 거쳤다고 한다. 북한의 원로장성들은 중국이 제시한 비핵개방의 길이나 남북대화가 북한 김정은의 세습 독재권력 유지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으며 여기에 곁들여 모란봉 예술단의 안무(按舞)가운데 담겨진 미사일 발사장면에 대한 중국지도부의 부정적인 반응 등을 종합한 끝에 김정은은 더 이상 중국에 끌려 다니지 않는 자주정권임을 과시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수소폭탄실험으로 명명된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번 4차실험이 3차와 다른 것은 사전에 중국 측에 전혀 통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핵실험 직전에 발표된 대남협상을 주도하던 김양건의 돌연사도 북한지배체제의 내부흐름의 일단을 말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동맹국이긴 하지만 안보 면에서 믿을 수 없는 동맹국이다. 중·북간에 조약은 있지만 양자 간에는 한번도 합동군사훈련이 없었고 새로운 군사무기거래나 안보전략협의마저 없었으며 유엔안보리의 북한제제결의에 중국은 찬성했다. 동맹조약의 시효는 2021년까지지만 사문화된 지 오래다. 또 최근 시진핑 정권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경제협력기구인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개발은행)에 북한 측은 참여자격이 부정되었으며 그에 앞서 결성된 샹하이 협력기구나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기구(CICA)에도 북한의 참여는 배제되었다.

이 반면 중국의 한국과의 관계는 다방면적으로 개선되었다. 한중간에는 FTA의 체결로 경제면에서는 동맹국에 준하는 협력관계가 정립되었으며 시진핑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 간에는 5차에 걸친 정상회담이 열렸다. 특히 중국의 시진핑 정부는 항일투쟁시의 한중공동투쟁의 파트너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한국으로 인정하면서 하얼빈의 안중근(安重根)의사 동상건립, 시안(西安)의 광복군 표지석 복원, 샹하이 임시정부 청사복원, 충칭의 광복군 사령부 복원(예정)등을 적극 지원하고 항일전쟁승리 70주년기념식의 천안문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하는 친한(親韓)적 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정황을 놓고 볼 때 김정은은 적어도 중국공산당이 오늘날 한국을 상대로 펼치는 정책이나 노선이 전혀 달갑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게 취하라고 제시하는 권고도 김정은의 3대에 걸친 세습독재정권의 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핵강성(强盛)대국만이 자기의 살길이라는 보수적 결론에서 4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의 중국불신은 심각의 극을 넘어섰다. 북한은 핵실험이 감당하기 힘든 부작용을 몰고 올 것을 예상하면서도 고난을 이겨낸다는 자신감과 중국이 지정학 상 순치관계에 있는 북한을 끝내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론을 깔고 버틸 것이다.

 

4. 맺는 말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우리 사회의 일각에는 북핵문제 해결에서 중국은 어느 경우에도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거나 박근혜 정부의 중국친화정책도 아무 성과가 없다는 중국불신론이 번지고 있다. 설사 중국이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에 참가하지만 북한이 핵을 실질적으로 포기하게 만들 강경제재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의 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신이나 비관에 앞서 신중하고 지혜로운 전략적 사고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중국정부는 북핵문제처리원칙으로 이른바 ①한반도 비핵화, ②한반도 안정, ③대화에 의한 해결의 3원칙을 들고 나오면서 이 중 어느 한 요소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缺一不可)고 말하지만 이것이 중국의 본심이라면 우리는 북핵문제에 관련해서 중국에 어떤 기대도 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핵개발 강경론에 매달리는 김정은이 북한을 틀어쥐고 있는 한 중국이 말하는 3원칙에 의한 한반도 문제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중국 또한 이것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와 같이 앞으로도 북한정권의 존속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존속과 북한의 존속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지금 김정은은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달리 카리스마도 없고 그런 수준의 인물대안은 북한내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또 비핵개방만을 살길로 믿는 장마당 세력이 북한 각지에서 나날이 강성해지고 있는데 이런 현실을 중국이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김정은을 권력에서 배제하는 공조를 조용히 추진한다면 노동당 내부의 궁중정변과 같은 방식으로도 김정은 제거가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이러한 접근(Plan B)을 추진할 능력을 충분히 비축하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중국에 대한 불신이나 비관에 앞서 이러한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중국을 움직이게 할 공식, 비공식의 전략카드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이를 서둘러야 할 이유는 북한의 핵무장은 앞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 번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재앙의 근원이기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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