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과 독재정권

김기천 논설위원 이메일kckim@chosun.com2012.03.26 23:08

 

1942년 말 인도 벵골지역 논에 곰팡이병이 번지고 태풍과 해일까지 덮쳐 벼농사를 망쳤다. 흉년 들 때마다 쌀을 사들여 왔던 미얀마마저 일본에 점령당하면서 곡물 수입 길도 끊겼다. 벵골은 이듬해 사상 최악의 대기근을 겪었다. 추정하기 따라 적게는 150만명, 많게는 4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은 음식 쓰레기를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뼈만 남은 노인들이 길거리에 쓰러진 채 죽어갔다.

 

▶아마티야 센이라는 아홉 살 소년이 그 현장에 있었다. 센은 큰 충격을 받아 평생을 가난과 기아(饑餓) 연구에 바쳤고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센은 "당시 인도 전체적으로는 식량이 부족하지 않았다. 식민 통치를 하던 영국 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곳에서는 기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억압적 권력과 잘못된 정책이 자연 재해보다 무서운 재앙이라고 했다.

 

▶1930년대 초반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탈린의 소련 공산당은 농지를 국유화하는 집단농장 정책에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반발하자 식량은 물론 종자용 씨앗까지 빼앗아갔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식량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지도 못하게 막았다. 그 결과 500만~10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50년대 말 중국의 대약진운동,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고난의 행군', 2000년대 초반 짐바브웨의 대기근도 독재 정권이 빚어낸 참극으로 꼽힌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아홉 살 이하 북한 어린이 두 명 중 한 명꼴인 220만명이 영양결핍으로 성장 장애를 겪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 중 1만8000명은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이 배포한 사진에 등장하는 김정은과 지도층 인사들은 하나같이 비대한 체형이다. 북한 권력자들은 영양 과잉상태에 빠져있는데, 어린이와 노인들은 200만~300만명이 굶어죽었다는 '고난의 행군'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 김일성 탄생 100년 행사와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 3호 발사에 30억달러 가까운 돈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한다. 그 돈이면 국제 시세로 쳐서 쌀 475만t을 살 수 있다. 식량난을 단숨에 해결하고 수만 어린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북한은 3대 세습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전시·선전 행사와 미사일·핵무기 개발을 하느라 꺼져가는 어린이들 목숨은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흉년보다 무서운 것이 눈먼 독재정권이다. 지금 북한은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는 공자 말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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