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대한민국 헌정회가 발행하는 헌정지 2014년 12월호에 발표된 글이다.

 

                               탈북민은 우리의 중요한 통일자산이다

 

                                                    이 영 일(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1. 탈북민을 보는 우리의 시각

 

2014년 현재 북한에서 한국으로 탈출해온 탈북민은 27,000명에 이른다. 탈북자와 탈북민은 동일하지만 탈북자 중에서 한국에 정착한 사람을 탈북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앞으로 탈북민의 수효는 더욱 늘어날 추세다. 북한을 탈출해서 아직 한국에 입국 못하고 중국대륙이나 몽골, 동남아 등지에 억류되어 있거나 떠도는 사람들이 전부 입국에 성공한다면 조만간 십 수만으로 늘어날 전망이며 북한의 경제난이 가중되면 탈북민의 대열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해방직후나 6.25전란이후에도 북한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사람들이 적잖았다. 이들에 대해서는 탈북자라는 표현대신 월남(越南)동포라고 부르거나 이북동포라고 불렀다. 이들은 북한태생이지만 북한지역이 공산체제로 개조되기 이전이나 과정에서 남하(南下)한 분들이어서 현재의 북한에는 지역적 연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유대를 갖는 분들이 드물다. 그러나 탈북민들은 대부분 북한지역이 공산화된 이후 거기서 태어나서 북한식 체제에서 성장했고 아직도 부모나 형제나 친지, 동료들이 북한 땅에 거주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의 세습정권 밑에서 살았고 김정은 시대까지를 충분히 의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탈북민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그간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 일반적인 태도는 탈북민들을 난민으로 간주, 난민구호정책차원에서 돌볼 대상으로 보았다. 물론 탈북민들은 고향과 부모형제나 친지를 모두 버리고 혈혈단신 한국을 찾아왔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에서는 난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탈북민은 난민이상의 의미를 갖는 분들이다. 모든 역경을 이기고 북한 정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대한을 찾아온 용기 있는 북한 동포들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북한 땅에서 배고픔과 굴종, 처참한 인권유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탈북밖에 없을 진데 목숨을 걸고 탈북을 결행한 것은 그 비상한 각오와 용기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노예적 삶, 농노적 삶에서 벗어난 용기와 결단에 우리는 뜨거운 박수를 보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상식적 평가를 외면하고 ‘탈북민을 배신자’라고 말한 새정치연합 소속의 임수경 국회의원 같은 유별난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탈북민들의 결단과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정부에서도 관계 법률에 따라 이들의 한국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지원이나 배려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이들이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도록(Koreanization Process) 돕자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정부의 정책시각은 탈북민을 난민으로 보는 관점에 맴돌고 있다. 탈북민을 지원하는 단체나 지원업무를 관장하는 관리들도 난민구호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탈북민은 결코 난민정책대상만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가에서의 탈북민은 난민구호대상임과 동시에 적극적으로는 통일정책대상으로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대통령이 통일을 대박이라고 말하는 시대상황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필자는 탈북민을 통일정책차원에서 대처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올바른 탈북민 정책이라고 보고 본고를 통해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과 현실성을 논하고자 한다.

 

2. 탈북자는 왜 통일정책차원의 대상인가.

 

지금부터 25년 전 동서독이 통일되었다. 독일역시 우리와 비슷하게 체제와 이념을 달리한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동서로 분단된 국제 형 분단국가다. 그런데 바로 그 독일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한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동독주민들이 서독과의 통일을 국민투표를 통해 확실히 지지하고 서독의 헌법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통일을 달성했다는 사실이다. 만일 동독주민들이 소련의 위성국가로 살지언정 서독과는 절대로 통일하지 않겠다고 버티었다면 동서독 통일이 가능했을까. 절대로 통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권국가로서 유엔에 가입한 동독(DDR)이 서독과의 통일을 거부한다면 독일을 둘러싸고 있는 4대국(미·소·영·불)은 통일반대 입장을 굳혔을 것이다. 그러나 동독을 이탈하여 서독으로 넘어와 정착한 동독인들이 서독과의 통일만이 동독인들이 자유와 인권을 누릴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유럽대륙에서 독일인이 제대로 대접받는 민족이 될 것임을 철저히 실감했고 이 사실을 동독주민들에게 확실히 알렸기 때문에 서독과의 통일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다수가 서독과의 통일을 지지했던 것이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확히 말하면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것이 아니라 동독이 서독에 합류(合流)한 통일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한국과 독일은 상황이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 동포들이 굶는 한이 있더라도 남한과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든가 인권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갈라진 채로 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통일을 이룰 수 없다. 민주화시대에 있어서는 통일의 주체는 정권이 아니고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탈북민 사회를 조심스럽게 관찰해보면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북한에 두고 온 친지, 가족, 옛날 동료들과 어떤 형태로던 연락을 주고받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기적으로 송금까지 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서 한국에 관한 소식과 정보가 전단보다 더 빨리 북한에 전달되고 있다. 무서운 감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친지를 돌보겠다는 한국거주 탈북민들의 사랑의 손길이 북한에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한 대로 “친절한 사랑은 철문을 뚫고 들어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탈북민들을 통해서 우리는 북한내부동향을 빨리 알 수 있으며 한국소식도 과거 어느 때 보다 빨리 북한주민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의 비디오가 북한 노동당 간부들의 집에 한 두 편 씩 있다는 이야기는 잘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라는 것이다. 요즈음 탈북민중에서는 한국사회에 정착, 성공한 사람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고 비례대표로 추천받아 국회의원도 1명이 배출되었고 대학교수로 진출한 사람도 더러 있다. 또 독자기업을 열어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다수는 아니다. 대부분은 아직도 삶에 만족에 느낄 만큼 안정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한국 기업인들 가운데는 탈북민 고용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탈북민을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을 대하듯 얕잡아 보거나 냉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특히 탈북민의 민원을 담당하는 통일부 관리들의 관료적 업무처리방식 역시 반발과 지탄을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탈북민에 대한 정책입안이 실정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탈북민의 참여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탈북민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고 탈북지원부서나 단체에서 하급직을 제외하고는 간부직에서 탈북민 출신은 배제되기 일 수라고 한다. 최근 탈북민들을 상대로 하는 정책세미나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는 북한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직 공무원들이 하나원을 운영함으로 인해서 많은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통일부 공무원 구성이 초창기와는 달리 전문직 중심에서 일반직 중심으로 전환되는데 따른 문제점 같다. 이북 5도청 운영에서도 탈북민은 배제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어느 때 쯤 탈북자관리가 통일정책차원에서 부담이 아닌 자산으로서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

 

3. 효과적인 대책

 

                                                       < 일반적인 방향>

 

지금 우리 정부에 탈북민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탈북민 정착을 위한 지원이나 직업알선 등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것이 통일정책차원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다. 탈북민 대책이 통일정책차원의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독일의 연방정치교육본부처럼 탈북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맞춤형 지원정책을 입안, 한국사회에 대한 적응과정을 용이하게 하면서 목숨을 걸고 탈북한 것이 옳은 결단이었음을 실감케 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성공한 탈북민이 많아져야 한다. 국회의원에도 뽑히고 장관으로도 발탁되어야 한다. 기업가나 학자나 예술인이나 의사나 변호사로서도 성공한 분이 많이 나와야 하고 또 나오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탈북민 정책입안이나 지원단체에는 탈북민이 반드시 참여하여 주요정책결정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이북5도청 운영에도 탈북민들의 참여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동포들에게 주어졌던 기회가 이젠 탈북자들에게로 옮겨져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또 교육지원에 있어서도 만학(晩學)으로라도 진학할 기회를 보장해주고 좋은 스펙을 쌓도록 지원하는 장학제도를 적극 확대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탈북민 특혜라는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탈북민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강화되어 탈북민을 부러워하는 사회 분위기가 진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조성될 때 비로소 북한동포들 속에 탈북민을 동경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한국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대가 북한동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통일이 우리 한국인들에게보다는 오히려 북한동포들에게 대박이 될 것이라는 꿈이 싹트게 해야 한다. 우리가 독일의 통일정책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탈동독민 지원정책일 것이다.

 

                                             <탈북자 관할 부서를 바꾸자>

 

그러나 현시점에서 시급히 강구되어야 할 과제는 탈북민의 지원, 정착, 관리업무를 주관하는 부처로서 통일부가 부적합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통일부가 탈북자업무를 맡게 된 것은 다른 행정부처에 비해 북한문제에 전문적인 능력을 갖는 부서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통일부가 종래 국가정보원이 사실상 주도해온 남북대화업무를 맡게 되면서부터 북한문제를 다루는 전문 인력은 대화파트로 이관되고 탈북민을 관장하는 업무는 북한문제에 전혀 이해가 없거나 전문성을 결여한 일반직 공무원들이 맡게 됨으로 해서 탈북민을 통일의 주요한 자산 아닌 부담으로 여기면서 그냥 조용히 문제없이 관리하는데만 치중한다. 

 

하나원의 교육프로그램이 탈북민으로 하여금 대한민국 체제의 우월성을 알게 하고 동시에 한국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정치사회화(Political Socialization)적 관점을 크게 결여하고 모든 탈북민을 일반화하여 합숙교육으로 때우는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1대1의 맞춤형교육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친 형식주의, 관료적 처리방식이 탈북민들의 한국사회적응과정의 어려움해소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통일부가 남북대화를 주도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탈북자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부서로 변하고 있다. 통일부장관이 기자회견이나 정책보고에서 탈북자문제를 공개거론하기를 피하는 것이 대표적 예이다. 때문에 탈북자문제는 통일부자체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산이 아닌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방치해서는 탈북민이 결코 통일의 유용한 자산으로 관리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런 견지에서 필자는 안전행정부와 이북5도청을 중심으로 탈북자관리의 운영주체를 바꾸고 아울러 탈북민정착과 지원에 기여할 탈북민 중심의 구심체를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탈북자의 교육, 정착지원 및 관리업무에 탈북자로서 한국정착에 성공한 인사들을 대폭 참여시켜야 하여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탈북민의 통일자산화를 실질적으로 추진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통일대박시대의 실질적 준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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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 부완혁 선생 서거 30주년 추도식을 다녀와서

 

이 영 일 (3선 국회의원,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이날 추도식에서

2014년 12월 30일 부완혁(夫玩爀) 선생 서거 30주년 추도식이 서울 매리어트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그분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이리저리 인연이 닿는 분들이 봉래(蓬萊)부완혁 선생의 유일한 혈육인 부정애(夫貞愛) 여사와 그 부군 되시는 신선호 회장이 차린 추도식장을 가득 메웠다.

 

 

이날 추도식에서  눈길을 끄는 캐치플레이스는 인문의 샘, 시대의 좌표, 지성의 빛 이었다. 봉래선생이 사상계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가치였고 일생을 두고 추구했던 지향(志向)인 것 같다. 이 모임에는 이인호 KBS이사장(전 러시아 대사)을 비롯하여 학계, 언론계, 정계, 경제계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봉래선생이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 장군을 모시고 족청(族靑)계 활동을 함께 했던 당시의 동지였던 김정례(金正禮) 전 보사부 장관 이 금년 89세의 고령인데도 참석하셔서 헌화했고 미국유학중으로 생전에 부완혁 선생을 만난 일이 없다고 본인 스스로 고백한 노재봉(盧在鳳)전 국무총리가 한국 지성인을 대표하여 추도사를 맡아주셨다. 노 총리는 추도사에서 오늘의 한국만큼 부완혁 선생 같은 인물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기에 그런 분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시대의 안타까움이라고 설파, 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필자는 196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10년 동안 사상계에서 부완혁 선생이 맡겨주는 좋은 논문을 번역해서 사상계에 게재도 하고 몇 편의 논문도 발표하여 부완혁 선생으로부터 정치평론가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당시 필자 나이 27~28세의 청년운동가였는데 봉래선생의 심사를 통과하여 사상계에 글을 싣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어떻든 필자는 그 시기에 봉래선생에게 필력을 인정받아 사상계에 글을 기고한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나게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재학중 학생운동으로 당시 두 차례 감옥을 갔다가 나와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운동권의 낭인이었는데 선생은 사상계를 통해서 나 같은 젊은 사람에게 글 쓸 기회를 줘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해주었다. 정말 나에게 삶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준 큰 선물이었다. 그때 사상계에 필자가 발표한 ‘한국정치사상의 메타볼리즘’이나 ‘개발독재발상법 서설’은 선생에게 크게 칭찬받은 글이었다. 그러나 시국을 평가하는 논쟁 중에는 통렬한 독설과 시니컬한 비판도 감수해야했다.

 

그러나 봉래선생은 그때뿐 뒤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대로 끝이었다. 매일 혼자 사는 봉래선생은 회색의 황혼이 오면 으레 젊은 후배들을 데리고 중국식당에 가서 백주(白酒)를 사주시거나 냉천동 집으로 데리고 가서 혼자 즐기는 양주를 꺼내 함께 마시기도 했다. 그때 안주는 따님인 부정애 여사가 내온 것으로 기억된다. 사상계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공판타자기로 책을 찍을 때는 원고료 없이 글 쓴 분들을 많아 근근이 잡지사의 명맥을 유지할 때도 있었다.

 

그때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김성우 형의 ‘만세(萬歲) 반만세(反萬歲)’ 같은 당대의 명 칼럼이 공판인쇄본에 실렸다. 다행히 김세영씨의 후원으로 사상계가 정상을 되찾아 가는 중에 김지하(金芝河)의 5賊사건으로 폐간되었고 기때 봉래 선생은 투옥되기도 했다. 필자는 추도식장에서 부정애 여사 내외분을 만나 40년 전에도 봉래 선생은 나에게 술을 사주셨는데 돌아가신지 30년이 지난 후에도 그분 덕에 다시 맛있는 식사와 와인을 마신다고 술회했다.

이날 부정애 여사는 유족대표인사말을 통해 ‘일찍이 혼자 되셨고 또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지만 아버지는 항상 의연하셨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밖에 들어나지 않은 외로운 시간도 적잖았을 것으로 생각 한다‘면서 울먹였다. 이어 선친 생전에 독설이나 씨니시즘 때문에 상처를 입은 분이 혹 계신다면 모든 것을 추억으로 승화시키자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모든 분들은 유일한 혈육인 부정애 여사가 부군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대한 추도식을 마련한데 대해 그 효성을 평가했다. 이날 추도식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해방 후의 그 혼란, 건국과 동란,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 민주화투쟁 시대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 속을 방청인으로서가 아니라 때로는 정치인으로, 때로는 학자로, 때로는 언론인으로 직접 참여하여 현실과 맞서면서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분이신 봉래 부완혁 선생의 족적을 기리고 우리의 금후의 진로를 새삼 돌이켜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값진 추도식에 참여한 것이 올해를 마감하는 뜻 있는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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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 송년자치에 다녀와서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연말이기 때문에 요즈음 사람들은 여러 위치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송년모임에 참여하겠지만 나는 12월 27일 남한 출신들로는 다소 참석하기 힘든 송년잔치인 탈북민 송년잔치에 초대를 받고 참여하였다. 27,000에 이르는 탈북자 전체를 대표하는 모임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한국사회에 정착에 성공했거나 성공하기위해 활약 중인 인사들 40여명이 모여 조촐한 송년잔치를 벌이는 곳이었다.

 

탈북여성으로서 1호 박사학위를 받은 이애란 여사가 차린 능라밥상(낙원동 입구)에서 준비한 모임이기 때문에 북한 식 요리가 안주였고 음료는 맥주, 소주 막걸리였다. 모인 면면들도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진 사람들도 몇 있었고 탈북민 단체를 이끌고 있는 대표라는 분들도 있었다. 알 만한 사람으로는 시인 장진성씨, 아나운서 송지영씨(여), 아리랑 가수 백민영(여), 피아니스트 김철웅, 미술가 권오인 씨(NK데일리), 요즈음 종편에서 성가를 올리고 있는 강명도 교수, 안찬일 박사(세계북한연구센터)씨 등이고 그 밖의 분들은 나름대로 각 분야에 정착했거나 사업하거나 재학 중인 학생들도 있었다.

 

다 같이 돌아가면서 건배를 하면서 연회가 시작되었는데 건배사의 주류는 통일을 위한 건배였고 다 같이 행복하고 잘살자는 취지의 뜻을 담은 ‘위하여’를 연창하였다. 한 순배의 건배시리즈가 끝나면서부터 오가는 대화가운데 귀에 남는 대화는 “한국사회에 정착하기가 탈북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의 사업 실패담이 이어지면서 직장에서 받는 소외, 무슨 일을 당할 때 어디에 대고 말할 곳이 없다는 푸념들이 오갔다.

 

자리를 함께 한 필자와 박범진 전 의원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 메모하면서 유심히 들었다. 이때 돌연 장진성 시인이 탈북민들에게 전파되는 매체에서 금년에 탈북민들이 선정한 가장 나쁜 사람(Worst Person) 다섯 명을 골랐다면서 첫째가 한필수 둘째가 이석기, 셋째가 이정희 넷째가 새정치연합 소속의 박 모의원, 다섯 번째가 새누리당 소속의 전의원이었던 정모(여)씨 이름을 발표하면서 이런 선정에 동의하는지를 물었다. 나는 선정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내용은 잘 모르지만 모두 박수를 치는 것으로 보아 공감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필자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맨 첫째로 부른 한필수씨가 누구냐는 것이다. 분위기에는 안 어울리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좌중을 향하여 한필수가 누군데 최악의 인물 1호로 뽑느냐고 물었다. 한 사람이 일어나 설명했다. 그는 한때 탈북자로서 성공한 모델이라고 정부와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북한이탈주민 지원재단에서도 탈북자의 성공사례로 홍보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에 현혹된 탈북민들은 자기가 가진 돈을 몽땅 한필수가 세운 한성무역에 투자했는데 이 회사의 한필수 사장은 투자한 돈을 몽땅 털어먹고 중국으로 도망쳐서 지금 400여명의 탈북자들이 165억 원의 손해를 보고 투자 돈을 회수 못한 좌절감 때문에 세 사람이 자살했고 거지 신세로 전락한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이래서 탈북자가 뽑은 최악의 인물 1호가 한필수라는 것이다.

 

이 자리의 탈북민들은 한필수를 탈북자의 성공모델로 홍보한 정부도 결국 한필수에게 기만당한 셈이지만 정부의 홍보 때문에 손해를 입은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모른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적어도 경매를 통한 한성무역의 자산매각 때도 은행부채 정리보다도 우선해서 탈북자들의 손해를 줄이도록 배려해야 하는데 제1, 제2의 경매가 진행되었지만 은행부채만 우선시되었다면서 12억 남은 제3차 경매에서라도 탈북자를 배려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또 한필수를 성공한 탈북민 모델이라고 치켜세워 탈북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의 강사로도 활용한 통일부와 북한이탈주민재단은 피해탈북자들의 손실회복을 위해 최소한 변호인이라도 선임해줄 것을 기대했는데 이마져 외면하고 있다고 탈북자들은 울분을 토로했다.

 

이들의 피맺힌 호소가 귓전을 스칠 때 마다 먹는 안주와 마시는 술이 흥취를 돋구기 보다는 탈북세계에 대해 새로이 눈을 뜨게 하는 각성제로 느껴졌다. 이들의 공통된 하소연 “한국사회에 정착하기가 탈북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내 가슴속에 쓰라린 아픔으로 다가왔다. 탈북민 문제를 이렇게 놔두고 통일준비가 가능할 것인지 머리가 띵했다. 통일준비는 국내외 석 박사들을 모아 놓은 정부의 통일 준비위원회의 정책연구, 전략연구도 중요하겠지만 2만7000명의 탈북민들이 목숨 걸고 탈북한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하도록 관리하는 일이 어떤 면에서는 더 시급한 통일준비가 아니냐고 내마음속에서는 대통령에게 외치고 있었다.

 

통일이 구호가 아니고 실천이기 위해서는 탈북민들의 문제가 이처럼 허투루 다뤄져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떳떳이 지방자치단체의 일원으로 통합되어 당당히 대접받고 살아야 하고 어려울 때 돌봄을 받아야 한다.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탈북민을 돌볼 능력이나 조직도 없는 통일부가 탈북민 관리업무를 맡고 있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남북대화를 맡고 있는 부서는 탈북민문제를 맡아서는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주민등록증을 받은 탈북민 관리는 행정안전자치부가 맡아야 하고 이북5도청운영에도 탈북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필자는 여러 가지 새해 탈북민 관련 아젠다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송년장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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