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송년자치에 다녀와서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연말이기 때문에 요즈음 사람들은 여러 위치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송년모임에 참여하겠지만 나는 12월 27일 남한 출신들로는 다소 참석하기 힘든 송년잔치인 탈북민 송년잔치에 초대를 받고 참여하였다. 27,000에 이르는 탈북자 전체를 대표하는 모임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한국사회에 정착에 성공했거나 성공하기위해 활약 중인 인사들 40여명이 모여 조촐한 송년잔치를 벌이는 곳이었다.
탈북여성으로서 1호 박사학위를 받은 이애란 여사가 차린 능라밥상(낙원동 입구)에서 준비한 모임이기 때문에 북한 식 요리가 안주였고 음료는 맥주, 소주 막걸리였다. 모인 면면들도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진 사람들도 몇 있었고 탈북민 단체를 이끌고 있는 대표라는 분들도 있었다. 알 만한 사람으로는 시인 장진성씨, 아나운서 송지영씨(여), 아리랑 가수 백민영(여), 피아니스트 김철웅, 미술가 권오인 씨(NK데일리), 요즈음 종편에서 성가를 올리고 있는 강명도 교수, 안찬일 박사(세계북한연구센터)씨 등이고 그 밖의 분들은 나름대로 각 분야에 정착했거나 사업하거나 재학 중인 학생들도 있었다.
다 같이 돌아가면서 건배를 하면서 연회가 시작되었는데 건배사의 주류는 통일을 위한 건배였고 다 같이 행복하고 잘살자는 취지의 뜻을 담은 ‘위하여’를 연창하였다. 한 순배의 건배시리즈가 끝나면서부터 오가는 대화가운데 귀에 남는 대화는 “한국사회에 정착하기가 탈북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의 사업 실패담이 이어지면서 직장에서 받는 소외, 무슨 일을 당할 때 어디에 대고 말할 곳이 없다는 푸념들이 오갔다.
자리를 함께 한 필자와 박범진 전 의원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 메모하면서 유심히 들었다. 이때 돌연 장진성 시인이 탈북민들에게 전파되는 매체에서 금년에 탈북민들이 선정한 가장 나쁜 사람(Worst Person) 다섯 명을 골랐다면서 첫째가 한필수 둘째가 이석기, 셋째가 이정희 넷째가 새정치연합 소속의 박 모의원, 다섯 번째가 새누리당 소속의 전의원이었던 정모(여)씨 이름을 발표하면서 이런 선정에 동의하는지를 물었다. 나는 선정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내용은 잘 모르지만 모두 박수를 치는 것으로 보아 공감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필자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맨 첫째로 부른 한필수씨가 누구냐는 것이다. 분위기에는 안 어울리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좌중을 향하여 한필수가 누군데 최악의 인물 1호로 뽑느냐고 물었다. 한 사람이 일어나 설명했다. 그는 한때 탈북자로서 성공한 모델이라고 정부와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북한이탈주민 지원재단에서도 탈북자의 성공사례로 홍보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에 현혹된 탈북민들은 자기가 가진 돈을 몽땅 한필수가 세운 한성무역에 투자했는데 이 회사의 한필수 사장은 투자한 돈을 몽땅 털어먹고 중국으로 도망쳐서 지금 400여명의 탈북자들이 165억 원의 손해를 보고 투자 돈을 회수 못한 좌절감 때문에 세 사람이 자살했고 거지 신세로 전락한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이래서 탈북자가 뽑은 최악의 인물 1호가 한필수라는 것이다.
이 자리의 탈북민들은 한필수를 탈북자의 성공모델로 홍보한 정부도 결국 한필수에게 기만당한 셈이지만 정부의 홍보 때문에 손해를 입은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모른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적어도 경매를 통한 한성무역의 자산매각 때도 은행부채 정리보다도 우선해서 탈북자들의 손해를 줄이도록 배려해야 하는데 제1, 제2의 경매가 진행되었지만 은행부채만 우선시되었다면서 12억 남은 제3차 경매에서라도 탈북자를 배려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또 한필수를 성공한 탈북민 모델이라고 치켜세워 탈북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의 강사로도 활용한 통일부와 북한이탈주민재단은 피해탈북자들의 손실회복을 위해 최소한 변호인이라도 선임해줄 것을 기대했는데 이마져 외면하고 있다고 탈북자들은 울분을 토로했다.
이들의 피맺힌 호소가 귓전을 스칠 때 마다 먹는 안주와 마시는 술이 흥취를 돋구기 보다는 탈북세계에 대해 새로이 눈을 뜨게 하는 각성제로 느껴졌다. 이들의 공통된 하소연 “한국사회에 정착하기가 탈북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내 가슴속에 쓰라린 아픔으로 다가왔다. 탈북민 문제를 이렇게 놔두고 통일준비가 가능할 것인지 머리가 띵했다. 통일준비는 국내외 석 박사들을 모아 놓은 정부의 통일 준비위원회의 정책연구, 전략연구도 중요하겠지만 2만7000명의 탈북민들이 목숨 걸고 탈북한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하도록 관리하는 일이 어떤 면에서는 더 시급한 통일준비가 아니냐고 내마음속에서는 대통령에게 외치고 있었다.
통일이 구호가 아니고 실천이기 위해서는 탈북민들의 문제가 이처럼 허투루 다뤄져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떳떳이 지방자치단체의 일원으로 통합되어 당당히 대접받고 살아야 하고 어려울 때 돌봄을 받아야 한다.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탈북민을 돌볼 능력이나 조직도 없는 통일부가 탈북민 관리업무를 맡고 있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남북대화를 맡고 있는 부서는 탈북민문제를 맡아서는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주민등록증을 받은 탈북민 관리는 행정안전자치부가 맡아야 하고 이북5도청운영에도 탈북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필자는 여러 가지 새해 탈북민 관련 아젠다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송년장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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