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2.0을 모색해야 할 때다(헌정지 2017년 5월호)

                          

이 영 일(11, 12, 15대 국회의원)

 

1. 들어가면서

 

우리는 201759일 탄핵으로 궐위된 대통령을 새로 선출한다. 우리는 그간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을 하나씩 지켜보면서 이런 불행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가 조속히 개혁되어야 할 필요성을 너나없이 절감했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70여년의 역사가 흘렀다. 이 기간 동안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선진화를 향한 변화가 끝없이 이어졌다. 특히 경제 분야의 발전은 경이로웠다. 시쳇말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로 지목될 만큼 우리나라의 발전은 놀라웠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러한 발전과는 거리가 먼 예외지대가 있다. 정치 분야다. 정치는 조금치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간 대한민국에서 시행된 대통령제는 그것이 단임제이건 중임제이건 간에 예외 없이 제왕적 대통령제로 변질되어 권력의 사유화 현상을 가져왔고 임기 말로 접어들면 레임덕과 비리, 부패에 휘말려 비극적으로 종말을 고했다. 1987년부터 실시된 여섯 번 선거에서 후세에 귀감이 될 대통령이 한 분도 나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번 대선은 현행 헌법에 따른 일곱 번째 선거인데 새 대통령도 현행 헌법에 그대로 따른다면 실패한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정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원내안정의석을 갖지 못한 4당체제하의 소수파정권이기 때문에 국정능률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약체 정권이 될 것이다. 국가상황도 험난하다. 안보위기가 심화되어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감돈다. 경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한 가운데 경기침체와 실업으로 한국경제의 장래를 너나없이 걱정하고 있다. 따라서 새 대통령은 앞선 대통령들의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정치개혁을 단행, 원내안정의석을 갖는 정당이 집권, 내외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즉 제7공화국을 만드는 길을 여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그간 정치개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개혁은 있었으나 그 목표는 권력구조를 대통령중심으로 강화하거나 대통령임기를 연장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같이 대통령의 권력 강화나 임기조정에 목표를 둔 개혁을 정치개혁 1.0’이라고 한다면 국정을 안정시키고 권력의 사유화를 방지, 정치행태를 민주적으로 바로 잡는 개혁을 정치개혁2.0”이라고 정의하면서 지금 당장 한국에서 필요한 정치개혁 2.0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2.정치개혁 2.0의 세 가지 당면과제

 

필자는 현시점에서 한국정치가 당면한 정치개혁 2.0의 과제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 상황에 조명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로 패거리 정치의 적폐가 갈수록 심해져서 정당이 사당화(私黨化)하고 있다. 둘째 전무(全無) 아니면 전부(全部)를 요구하는 비타협의 정치가 한국의회의 정치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셋째로는 5년 단임제 헌법이 이상 두 가지의 병폐와 결합되면서 국가발전의 걸림돌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패거리정치의 적폐

패거리정치의 적폐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잘 알다시피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오랜 파쟁은 정권교체의 기회를 놓쳐 한국 민주화의 달성을 지연시키기도 했지만 더 심각한 부작용은 그것이 정당의 사당화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이들 양파의 갈등은 5년 단임제 헌법덕분에 양파의 보스가 각각 대통령에 당선되어 시들해졌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정당의 패거리 화, 사당화현상을 고착시킨 것이다. 예컨대 김대중은 민주당을 뛰쳐나와 평화민주당을 만들었고 이를 다시 새정치국민회의로, 또 이를 개편, 새천년 민주당으로 바꾸었는가하면 김영삼도 신민당에서 3당 합당으로 신한국당을, 다시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당이라는 간판을 달았을 뿐 그것은 다름 아닌 패거리정치의 수식어였다. 민주당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도 민주당을 열린우리당으로 바꾸었다. 열린우리당은 한마디로 말해서 노무현당이다. 이명박의 한나라당도 몰락직전에 박근혜가 당권을 장악,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후 공천갈등이 심화되면서 친 박 대 비박으로 갈등을 벌이다가 탄핵정국을 맞이해서 자유 한국당바른정당으로 갈라섰고 민주당도 국민의 당더불어 민주당으로 분열했다.

이렇게 패거리정치는 공천 때마다 자기파 중심의 공천을 통해 권력 나눠먹기 경쟁을 하기 때문에 항상 이합집산을 거듭하기 때문에 흔히 정치학에서 말하는 당의 법통(Legitimacy)이나 정통성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고 당 나름의 역사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념과 강령상의 큰 차이도 없었다. 정치인들은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결정하는 정책과 강령에 맹종함으로써 정치생명을 이어가거나 존립했다.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당을 떠나면 되었다. 이 때문에 탈당이나 당적 옮김이 변절(變節)이라거나 지조(志操)를 버렸다는 식의 도덕적 비난이 아예 성립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영미(英美)세계에서는 이념이나 정책선택의 흐름을 공유하면서 수백 년의 당사(黨史)를 이어오는 정당이 많다. 2차 대전이후 민주적 정당제도가 실현된 독일의 경우에도 기독교민주당이 70년의 당사(黨史)를 갖는 반면 사회민주당도 우파만을 기준으로 할 때도 1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의미의 역사가 있는 정당은 존재치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패거리 정치를 극복, 청산하기 위해서는 현존 정당을 본위로 개혁의 물꼬를 트기보다는 개혁의 목표를 공유하는 인물중심의 정계개편을 통해 패거리가 아닌 정책과 이념을 공유하는 진정한 정당의 출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 전무(全無)냐 전부(全部)냐의 비타협정치의 지속

한국정치에서는 All or Nothing의 비타협의 정치가 의회정치의 전면을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외교안보분야에서 까지 비타협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안보외교에 여야가 없다거나 한 때 프러시아 국회에서 이룩되었던 '성내(城內)평화'(Buerger Frieden)도 우리는 기대할 수 없다. 요즈음 THAAD배치 문제를 놓고 보이는 여야대립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지금 당장에라도 야당이 THAAD 배치를 찬성한다고 발표, 여야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빤히 결론이 보이는 상황 하에서도 타협이 못 이루어지는 것은 정치체질가운데 침윤된 비타협적 DNA탓도 있겠지만 북한의 대남작동에도 한 원인이 있을 것 같다.

한국은 조선시대 이래 사회윤리의 기조로 지조의 윤리(Gesinnungs-Ethik)가 지배적 추세였으며 책임의 윤리(Verantwortungs-Ethik)는 외면되었다. 책임의 윤리는 흥정의 윤리와도 맥을 같이 하는데 유럽에서는 한자 동맹이래 상응하는 대가를 주고받는 거래의 윤리가 흥정의 윤리로, 책임의 윤리로 발전해왔다. 흥정의 윤리가 없기 때문에 국내정치에서도 타협의 정치가 숨 쉴 여지가 없다. 타협의 여지를 만들어 낼 결선투표제도 없으며 제왕적 대통령제로 흐르는 대통령 단임제를 국정운영의 틀로 하기 때문에 내각책임제에서와 같은 정당연합을 통한 연립정부나 협치(協治)가 성립할 여지도 없다. 현행 헌법 하에서는 원내안정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누가 집권하더라도 정치 불안은 계속되고 국정능률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국론이 크게 양분되었다. 촛불시위와 태극기 시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촛불과 태극기 시위대의 등장은 국민의 통합이 아닌 분열을 의미하고 더욱이 정부와 국민이 아닌 국민 대 국민의 분열이기 때문에 이를 하나로 통합하기위해서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연정(聯政)의 필요성을 절감케 한다. 비타협의 정치를 타협의 정치로 바꾸기 위해서는 각종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광범위하게 채택 실시, 타협이 모든 정치에서 필수적 절차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유럽과 중남미에서도 결선투표는 일반적 관행이 되고 있다.

 

. 87년 체제의 청산극복

5년 단임제 헌법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정치의 오랜 병폐의 하나인 1인 장기집권을 막고 나아가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의 길을 터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착에 기여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부작용이 기여를 넘어설 만큼 컸다. 이제 87년 체제도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함께 역사 속에 파묻고 원내안정의석을 확보한 당이 권력을 장악 운영하는 내각제 내지 2원집정부제로 고쳐야 할 도전에 직면했다.

회고컨대 87년 체제는 1인장기집권의 폐해를 막는 데는 분명히 기여했다. 그러나 아직도 발전과 변화의 속도를 늦출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5년에 한번 씩 국민직선으로 대통령이 바뀜에 따라 국가발전의 견인에 꼭 필요한 장기적 국정과제 추진이 어렵게 되어왔다. 또 포퓰리즘이 선거의 주 무기가 되고 당선되는 대통령마다 전 정권이 추진한 정책의 승계발전보다는 이를 무시하거나 부인하고 새 정책을 추구하기 때문에 국가정책의 지속성, 일관성도 유지하기 어려웠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은 집권3년차부터 시작되는 대통령 리더십의 레임덕 화, 여기에서 비롯되는 공무원 집단의 복지부동, 대통령임기 후반에 예외 없이 나타나는 정치부패는 우리 모두가 경험했다. 이러한 국정상황 때문에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 선에 묶여 더 치솟지 못하고 있다. 침체와 답보상태의 지속은 국제 경제 환경의 탓도 있겠지만 대내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 가운데 87년 체제에 포함된 비능률과 불안정, 비리와 부패에도 큰 원인이 있다.

이 시스템에 패거리정치와 비타협의 정치가 결합됨으로 말미암아 한국정치는 발전이 아닌 후퇴의 늪에 빠져 버렸다. 더 이상 국민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지 못할 정도로 정치기능이 마비상태에 빠진 것이다.

 

3. 맺는 말

 

이러한 정치 병리를 극복하고 앞으로의 정치가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우선 국정의 틀을 개헌을 통해 대통령 단임제(87년 체제)에서 내각책임제나 2원집정부제로 바꾸어 원내안정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국정을 주도케 해야 한다. 이러한 개헌은 제7공화국의 탄생을 의미할진데 새로운 내각제나 2원적 집정부제 정부형태 하에서는 패거리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한 정당을 정책과 이념중심의 정당으로 새롭게 탄생시키고 엄격한 당규 하에 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원내안정의석을 획득한 정당이 없을 경우에는 연립정부를 모색하고 운영함으로써 정치에서의 타협이 정당존립과 정권유지의 필수조건이 되도록 정치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한국은 현재 180석이상의 원내의석을 갖지 않으면 원만한 국정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협치(協治)를 위해서는 연립정부는 필연적 선택이 될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 제도적으로 제7공화국이 탄생할 여건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주도한 박 대통령의 탄핵은 정치사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안정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출범한 약체정권이 대통령의 직권으로 임명 가능한 감투만 나눠 쓰는 정부가 된다면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위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동시에 국가의 안보위기, 경제위기는 더 한층 심화되고 새 대통령도 정치실패의 늪에 빠지는 불행한 전철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끝으로 한국은 금년으로 57주년을 맞는 4.19혁명이 성공한 나라다. 국민들의 주권의식도 팽배하다. 핵전쟁의 우려를 안고 있는 분단국가다. 이러한 나라에서 국정을 안정시키고 국민통합을 이루고 능률을 올릴 정치개혁은 촌분의 여유를 허용치 않을 만큼 시급한 과제다. 정치인들도 이 나라를 자기의 권력욕 충족대상으로만 보는 미망을 버리고 국민들도 이 나라의 내일을 걱정하면서 정치개혁 2.0의 성공을 위해 뜻과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정치개혁 2.0을 모색해야 할 때다.

 


top


<서평>: 강성학 저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

         (헌정지 2017년 3월호 기고) 

이 영 일( 전 국회의원, 한중정치외교포럼회장)

 

국제정치학자 강성학 박사가 급변하는 국내외정세속에서 우리 한국이 당면한 위기와 그 해법을 제시하는 귀한 저서를 펴냈다.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을 통해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이 저서는 그의 34번째의 저술로 보인다. 필자는 지금까지 그가 발표했던 저서들의 일부 밖에 읽지 못했기 때문에 전체의 흐름을 놓고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는 못 되지만 이번에 출간된 책만큼 대한민국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쓴 책은 처음인 것 같다. 물론 학자를 규정하는 존재의 구속성 때문에 한국을 문제의식의 저변에 깔지 않은 연구나 저술은 없겠지만 그것이 내재율 아닌 외재율로 커밍아웃한 점에서 이번 강 박사의 저술은 시대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고려대(高麗大)에서 정년퇴임한 강 박사는 이번 저서를 통해 그간 농축시켜온 연구의 축적을 딛고 서서 우리나라가 처한 국내외 정치의 현실을 새롭게 조명, 분석하면서 민족적 출로에 관한 논구를 심화시키고 있다. 동서냉전의 해빙으로 진영논리에 압도되어 빛을 잃었다가 되돌아온 국제정치연구의 전통적 연구방법인 지정학(Return of Geopolitics)을 토대로 하여 오늘날 우리 한반도가 포함된 이 지역정세를 새롭게 조명하고 한국이 당면한 위기상황을 파헤치고 있다. 요즘 미국학계도 탈냉전시대의 국제관계를 지정학적 시각에서 다시 검토하는 추세다. 이들은 냉전의 종결과 더불어 제2차 세계 대전과 동서냉전이 그어 놓은 국경선과 세력범위를 현 수준에서 동결시키면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자는 것이 서방측의 입장이라면 이에 맞서 현상변경을 강력히 추구하는 수정주의 세력이 등장했는데 이들이 곧 유럽의 러시아, 중동의 이란, 동아시아의 중국이며 이들 중 중국의 부상(浮上)이 국제정치판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러시아나 이란이 현 상황에서 당해 지역의 패자가 되기는 힘들지만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아시아 재 균형전략(Rebalancing Strategy)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한국, 일본 등 자국의 동맹국들이 미국과 제휴, 책임을 분담하면서 현재의 아시아질서를 유지해 나가려고 한다. 강 박사는 미국의 재 균형전략을 지정학에서 말하는 역외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전략 하에서는 동맹국들 간에 협력적 조율이 잘 이루어지면 안정이 지속되지만 조율이 잘 안되거나 미국 국내에서 해외개입을 줄이려는 고립주의 경향이 등장하면 동맹조약과 공약은 있으나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트럼프시대에 한국과 일본이 당면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강 박사 역시 이번 저술에서 중국의 부상(Rise)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남중국해를 자국의 핵심이익으로 선언하고 아시아 집단안보를 역설하는 것은 이 지역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중국이 패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미중경쟁과 갈등상황 속에서 우리의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 할 가를 검토한다. 그간 우리 학계는 국력신장이 세계랭킹 10위를 넘나들면서 한국의 위상이 옛날과 달리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수준으로 커졌다고 자부하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균형자역할을 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강 박사는 대륙세력의 입장에서는 완충지역으로 보이고 해양세력의 입장에서는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보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현재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특히 중국의 부상은 한마디로 국제정치에서 항상 주목되던 세력전이(勢力轉移)를 가져올 가능성이 내포된 부상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외교안보에 중요할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서 깊이 있는 관찰과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역할을 시도하는 것은 프라이팬에서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자멸행위라면서 균형이라는 것은 모든 나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公共財)가 아니라 강대국들만이 사용하는 특권이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용미(用美)나 용중(用中)은 비현실적 환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한국에 안전한 전략이 있다면 그것은 균형자가 아니라 가장 강한 국가에 편승(Band wagoning)하는 것이며 이것이 오랜 역사동안 한민족이 생존해온 비결이라고 한다. 이점에서 THAAD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에 양다리 걸치기(Hedging)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현명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금세기안에 중국이 모든 면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 비추어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 한미동맹의 틀 내에서 미국의 재 균형전략과 발을 맞추면서 자강(自彊)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강 박사는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국내 상황은 미중간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정세 속에서 나라들마다 국가이익 챙기기에 몰두하는 상황인데도 우리는 국익보다는 당리, 공익보다는 사익이 판을 치면서 국가의 위기대응능력이 갈수록 약화되는 실정이라고 개탄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일관된 안보정책도, 군사전략도 마련치 못한 상태인데 국가를 통합하고 동원할 능력마저 상실한다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은 물론 자칫 치명적 고통을 받았던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이러한 내외정세분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적 목적과제를 달성하기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민통합을 이뤄낼 리더십의 구축이라면서 미국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국가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고 노예해방이라는 세기적 업적을 낳은 링컨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우리가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남북전쟁시기에 링컨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의 여러 측면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정책결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신중한 분별력(Political Prudence), 인사정책에서 정적(政敵)들 까지를 사심 없이 포용하면서 통합의 대도를 걷는 모습을 평가한다. 특히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의 대의를 추구하면서도 노예를 재산으로 보던 당시의 가치 관념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수용하는 현실주의의 입장에서 노예문제에 접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예해방의 결실을 얻어내는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모든 사람들과 두루 소통하면서도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결정의 확실한 준거로 삼아 도덕적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간 점을 높이 사고 있다. 링컨은 군사전략가가 아니면서도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정치가-장군(Statesman-General)이었다고 할 만큼 군통수권자로서도 탁월한 리더십을 보임으로써 미국정치에서 문민우위의 질서를 정착시켰다고 평가했다.

 

이 책은 지정학적 사고에 바탕을 둔 주변정세분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어 우리의 내외정세와 당면한 위기를 바로 깨닫게 해 준 점에서 큰 기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기여는 링컨의 리더십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해준 한국최초의 저술을 내놓은 점이다. 이 책을 완독하면서 가장 부끄럽게 느낀 점은 우리 정치권이 강국들에 둘러싸인 분단된 반도국가에 살면서도 지정학적 사고가 원천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또 역대대통령들의 협량한 인사정책이 국민통합을 얼마나 저해했던가를 되돌아보게 했다. 국가이익을 생각한다는 의식이 있는지 조차를 의심케 할 언동이 판을 치고 외교안보문제에서 초당적 협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라에서 그날 그 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꼭 이 시기에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워 위안부문제로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과연 우리의 보다 큰 국익실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짓일까.

 

아마 우리 국민들 중에 링컨 대통령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그에 관해서 실재로 가진 지식이란 고작 게티스버그 연설문 한 대목 정도뿐 아닐까. 필자는 강박사의 책을 독파한 후 링컨 리더십을 제대로 체득치 못하는 한 어려운 시기에 이 나라를 잘 이끌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요즘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정식을 갖는 인물가운데 안심하고 국정을 내맡길 분별력 있고 포용력 있고 군사전략적 감각까지 갖춘인물이 과연 있겠는가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큰 뜻이 있는 정치가나 기업인들에게 이 책만큼 강한 교훈을 줄 책은 없을 것 같다. 강호제현에게 일독을 권한다.

 


top

<탄핵심판 기각만이 헌법재판소가 사는 길이다>

 이영일의 밴드 칼럼(2017년 3월 8일)

 국회가 정치공세의 일환으로 결의한 탄핵심판의 판결을 앞두고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건 기각하건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국민들을 승복시키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위반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스컴의 고발과 선동이 부추겨 일으킨 촛불시위에 겁먹고 국회가 황망 중에 탄핵을 결의하고 헌재의 판결을 구한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탄핵을 결의하고(先탄핵결의) 후 특검을 통한 입증이라는 해괴한 접근을 통해 국민 51.6%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을 몰아내려고 시도한 것이 이번의 탄핵정국의 배경인데 헌법재판소는 졸지에 이러한 여야 정치대결의 한가운데 서게 되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을 맡아야 할 헌재가 여야갈등의 어느 일방을 편들어야 하는 곤궁에 몰린 것이다. 정치권이 국민적 공감을 살 수 없는 사건을 만들어 놓고 책임을 헌재에 떠맡기는 형국이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협박이 공론화된 가운데 인용판결을 했을 때는 아스팔트위에 피 흘리는 사태가 초래될 것이라는 위협적 언동이 난무하고 있다. 당초 탄핵을 선동했던 신문과 방송들은 탄핵이 국민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태극기시위가 촛불시위를 완전히 제압하는 지금 시점에서도 같은 여론조사가 나올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촛불민심만이 민심이 아니고 태극기 민심이 더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면 헌재가 기댈 언덕은 어디인가. 특검의 조사결과인가 아니면 헌재재판관들의 양심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문제는 이 시점에서 보면 더 이상 법률적 판단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상태다. 헌재가 판결로서 정국갈등을 해소하거나 국민적 컨센서스를 도출할 상황이 이미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정권을 잡겠다는 사람들은 헌재의 인용판결로 정권교체의 혁명을 이루겠다는 것이고 태극기 시위대들은 매스컴을 앞세운 선동으로 대통령을 억울하게 내쫒지 말라면서 기각을 주장한다.

 

이제 헌재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를 고민할 상황을 벗어났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의 본질이 정치공세의 하나이기 때문에 헌재는 법률이나 명령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헌재는 여야 정치싸움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헌재는 더 늦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을 심리해본 결과 헌재가 관할해서 결론을 도출할 사항이 아님을 확인했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심리대상에서 이번 대통령 탄핵사항을 배제하는 각하(却下)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장의 임기에 맞춰서 탄핵여부의 결론을 내려고 서두르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될 것이다. 지체 없이 각하(却下)판결을 통해 탄핵안을 국회로 되돌려 보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헌재(憲裁)가 살고 법치가 살고 한국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