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북아 정세와 한국의 국가위기
2019년 11월 12일
연사 : 이 영 일
동북아 공동체연구재단
목 차
1. 들어가면서
2. 동북아정세의 변동과 추이.
가. 미중패권전쟁의 양상
나. 미국의 대응
3. 미중관계의 전망과 그 파급예상
가. 누구도 외면할 수 없거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나. 중국 상황 평가
4. 한일 간 갈등의 심화
가. 수교협상의 회고
나. 새로운 갈등의 등장
5.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가. 핵과 미사일 문제의 현황
나. 북한의 핵문제와 대응
다. 핵 상황처리전망
6. 글을 맺으면서
가. 한국현대사의 교훈
나. 최근 한국의 정치변동과 국가위기
다. 안보정책상의 위기
라. 종합결론
최근 동북아시아 정세와 한국의 위기
들어가면서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 출범한지 어언 12개성상이 지나고 있다. 이 연구재단 발족에 동참한 사람들은 세계역사발전의 큰 축이 아시아 태평양지역으로, 특히 동북아시아로 옮아오고 있다는 시대적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동북아시아 중에서도 한국이 이 지역발전에서 중심축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꿈과 비전을 공유했다.
회고컨대 지난 12년 동안 동북아시아에서는 주목할 만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의 급성장이다. 2010년 7월 중국이 총량GDP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솟았다. 둘째로 북한의 군사력이 핵과 미사일 등을 보유,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안전과 평화에 위협이 될 만큼 강화되었다. 셋째는 트럼프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 크게 변화했다. 우선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도전세력 내지 수정세력으로서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지목하고 이중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가장 큰 경쟁세력으로 규정,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정치,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전면적인 견제정책을 펴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미중 양국 간에 패권(覇權 Hegemon)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이런 정세변화이전에 한국은 국내적으로는 세계랭킹 10위에서 12위를 오르내리는 G20 권내에 드는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랐고 중국,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 경제발전을 선도하는 국가의 일원이 되었다.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한국의 위상이 크게 바뀌었다. 본 연구재단이 추구하는 동북아 지역발전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는 꿈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러나 2016년 정권이 교체되면서부터 국가의 제반 상황은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 그리던 꿈과 목표를 실현할 전망을 돌연 어둡게 하고 있다. 우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한미동맹을 통한 국가안보라는 세 궤도 위에서 국가발전을 도모한다는 보수정권이 무너지고 진보를 표방하는 문재인정권이 들어서면서 부터다. 새 정권은 남북관계개선과 자주성 확립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걸고 모든 시책을 여기에 종속시킴으로써 한국의 오늘을 만들어낸 국가발전의 궤도를 크게 흔들어 놓고 있다.
국민들이 납득하고 동의할 수 있는 뚜렷한 미래비전도 내놓지 않고 기존질서만 흔들어댄 결과 경제는 연평균 성장률이 1%선으로 내려앉고 내치외교는 난맥과 혼란만 거듭한다. 나라의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국론갈등과 국민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상황을 유념, 최근 동북아시아의 주요정세변동 요인과 여기에서 조성되는 위기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대안을 모색코자한다.
2. 동북아시아정세의 변동과 추이
가. 미중패권전쟁의 양상
오늘날 미중관계를 무역 전쟁관계라고 말하지만 무역전쟁은 양국 간에 시작된 패권전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다투는 패권싸움이 양국 간에 시작된 것이다. 양국 모두 핵 강국이라는 제약 때문에 군사전쟁만을 뒤로 미룬 가운데 모든 분야에서 대결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국제정치이론의 세력전이(勢力轉移)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싸움은 중국이 미국에 도전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중국은 등소평 외교의 덕택으로 2001년 미국의 지원을 얻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고 자유무역질서와 개발도상국지위라는 특혜를 활용, 국력의 급신장을 이루었다. 중국은 2010년 7월 일본을 재끼고 세계2위(G2)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2016년부터는 구매력평가(PPP)에서 미국을 앞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힘입어 중국은 스스로 ‘신형대국’임을 내세우면서 중국도 세계문제에서 미국과 대등한 발언권을 행사하려고 시도했다. 미국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강대국(Responsible Stakeholder)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것을 권고하고 ’신형대국‘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이 주석이 되면서부터 중국의 대미자세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시진핑은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가 말한 것처럼 세계최강국을 지향했다. 아편전쟁이후의 100년간의 치욕의 역사를 끝내고 중국이 옛날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비전으로 내놓았다. 시진핑은 중국의 일본추월(追越)을 상황의 큰 변화로 보고 상황이 달라지면 사고(思考)도 달라져야 한다면서 등소평의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속에서 힘을 기르자-에 중국이 더 이상 메일 필요가 없고 중국도 국제사회에서 국력에 상응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그는 2017년의 제19차 당 대회에서 창당 100년을 넘어서는 2025년에는 ‘중국제조(中國製造) 2025’를 실현, 현대과학기술분야에서 세계선도국가가 되며 2035년에는 선진복지국가가 되고 건국 100년이 되는 2050년에는 ‘세계최강’이 되겠다는 발전시간표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아울러 그는 이렇게 큰일을 잘 감당하도록 당이 자기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요구, 2018년 개헌을 통해 당주석의 ‘임기제한 조항’을 철폐했다. 이에 대해 당내 경쟁세력들이나 중국내 민주개혁세력, 소수민족들의 반발을 억제하기 위해 시진핑은 IT와 AI를 이용한 디지털감시체제를 확대시행 하고 있다.
또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Initiative(BRI)>정책을 내세워 중국의 영향력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지역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제19차공산당대회이후의 중국은 한마디로 제2차 세계대전이래 미국이 주도한 세계질서를 바꾸겠다는 도전이었다.
나. 미국의 대응
미국정부의 새로운 대 중국정책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2018년 10월 4일 미국 허드슨 연구소에서 행한 펜스 부통령의 연설이었다. 이 연설에서 펜스 부통령은 미국이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의 일원으로 포용하고 개발도상국으로 특혜를 제공한 한 것은 경제를 발전시켜 먹고 살기가 편해지면 독재정치가 풀리고 인권도 향상되며 자유가 신장되는 변화가 생기리라 기대였다. 그러나 실제로 나타난 것은 1인 독재가 모택동 때보다 더 강화되어 전체 주민들이 혹독한 디지털 감시체제하에서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펜스는 중국은 독창적인 기술개발이나 산업발전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선진투자기업들로부터 기술을 강탈하거나 도적질 하고 경영노하우까지 내놓도록 강요하면서 지적재산권의 해킹, 도적질을 통해 경제발전을 추진했는가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농촌을 떠나 도시나 해안지역으로 몰려온 자국 농민들에게 호구(戶口)제도를 적용, 외국인 노동자처럼 염가노동을 강요하고, 이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등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인권유린방식으로 경제를 키워왔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나아가 펜스는 중국기업들이 미국에서 누리는 것과 똑같은 자유를 미국기업들도 중국에서 누리도록 허용하는 조치가 있어야 미중 간에 공정무역, 자유무역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이러한 합의를 도출하는 데 미중무역협상의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얻은 모든 이득은 그것이 불공정거래의 산물이기 때문에 중국의 대미무역규모 5000억 달러 중에서 그 절반에 해당하는 2500억 달러에 대해 25%이상의 관세(과거에는 10%)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시진핑도 맞불관세로 응수하면서 대미 결사항전을 선언하고 온 국민들이 애국주의기치로 뭉칠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맞불관세는 대미수입량이 미국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다만 2019년 하반기에 매년 400억 내지 500억 불 상당의 미국농산물을 중국이 구매하겠다고 함에 따라 미국도 관세율을 25%에서 30%로 더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보류하고 기술규제를 다소 완화하는 선에서 무역협상을 타결키로 했다고 하지만 아직 시행은 보류상태다.
이러한 수준의 합의는 간헐적으로 되풀이 되면서 양국 국내정치적 필요를 다소 충족시킬 뿐 이미 시작된 패권싸움이 곧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아직도 5G의 큰 손인 중국의 화웨이(華爲)에 대해 동맹국들에게 거래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화웨이의 장비를 사용하면 그 순간부터 중국 헤커들의 무상출입을 허용하게 될 것이라고 미국은 말한다. 미국은 또 2018년도 전략보고서에서 아시아대륙의 패자를 꿈꾸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태평양함대사령부를 인도태평양함대사령부로 재편성하면서 일본, 한국, 타이완, 필리핀, 호주, 인도를 연결, 대 중국포위망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이어 미국은 구소련과 체결한 바 있던 중거리 미사일 제한협정(INF)에서 탈퇴한 후 신형 중거리 미사일을 본격 개발, 일본이나 한국 등에 배치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미국은 INF탈퇴이유로 러시아의 협정불이행을 말하지만 그 진의는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능력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또 미국은 중국이 자기영토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에 대해 항해의 자유를 앞세워 수시로 함정을 순항시키면서 중국의 영토주장을 국제법적으로 인정치 않는다.
3. 미중관계의 전망과 그 파급 예상
가. 누구도 외면하거나 피할 수 없는 현실
미국과 중국이 지금 펼치는 패권다툼에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중국에 인접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으며 일본도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52개의 군사기지를 미국에 제공하고 있다. 이중 7개 기지는 유엔군사령부의 통제 하에서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은 동맹국의 동맹국이다. 역사에 가정법이 없다지만 현시점에서 한국, 미국, 일본이 3자 군사동맹을 맺는다면 지구상에서 경제력으로나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동맹체가 되어 중국의 패권굴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이렇게 되면 한국의 대미전략가치는 높아지고 북한도 핵무기를 포기하고 베트남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아직 미중패권전쟁에서 최종적인 승자가 미·중의 어느 편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모든 면에서 중국을 앞선다. 우선 미국은 식량을 자급하고 에너지도 쉐일(Shale)가스 혁명을 통해 중동의존을 벗어나 자립했다. 과학기술적 창의와 군사력에서도 중국을 압도한다. 동맹외교에서나 Soft Power에서도 중국은 미국을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4년에 한번 씩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라는 국내적 제약이 있다. 또 미소(美蘇)시대와는 달리 중국은 미국에 많은 거래 선을 깔고 있어 대내적으로 풀어야 할 중국문제도 많다. 중국학자 옌쉐퉁(閻通)点)은 이제 중국은 필요한 기술과 인재를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세계의 누구도 중국의 성장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시진핑도 지구전(持久戰)으로 밀고 나가면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의 체제상의 불리에도 불구하고 세계패권을 지키려면 중국제압은 피할 수 없다. 설사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미국의 중국제압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은 현재 중국을 압도할 최강국이지만 대국간 갈등이 가져올 세계 공동체의 피해파급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기승부를 피하면서 내파(Implosion)를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 중국 상황 평가
중국도 대내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신강 위구르나 티베트 등 소수민족문제를 비롯하여 하나의 중국 론의 준거가 될 일국양제(一國兩制)가 홍콩 사태로 시험대에 올랐으며 타이완의 독립운동도 시진핑 정권에는 큰 부담이다. 또 미국의 인권공세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1인 독재와 디지털 감시체제 강화에 대한 중국내부 민주세력들의 저항, 당내불만세력들의 도전, 지역과 계층 간에 확대일로에 있는 불평등 때문에 시진핑 정부의 공안예산은 줄곧 국방예산을 상회하고 있다. 디지털 독재에 대한 저항을 막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메르켈 독일 수상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크고 작은 어떤 장벽도 허물리고 말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구공산당과 시진핑이 자유를 향한 역사의 큰 흐름을 애국주의 선동과 감시로 끝까지 막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4. 한일 간의 갈등 심화
가. 수교상황의 회고
이상의 정세변동요인에 부가해서 최악의 상태로 변한 한일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변수의 하나다. 한일관계는 1965년 어렵게 국교를 정상화했다. 어려웠던 원인은 1910년의 한일합병조약의 처리문제였다. 이승만 정부는 1910년의 합병조약이 강박에 의한 조약이기 때문에 ‘원천무효’(Originally Null and Void)라는 입장이었고 이에 반해 일본 측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을 수용, 식민지를 모두 포기했기 때문에 한일합병조약은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입장으로 맞섰다. 한반도에 대한 36년간의 식민통치의 불법성을 인정치 않고 무조건 항복에 의한 식민지 포기로 한반도문제에 관한 일본의 입장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원천무효를 관철시키지 않으면 한국은 배상청구권을 갖지 못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재임중 한일수교를 거부하면서 일관해서 요구했던 주장이 원천무효였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비공식적 중재를 통해서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는 “이미 무효”라는 전제하에 ① 한국에 남겨진 일본인 재산권의 전면포기 ② 한국에 대한 무상 경제지원 3억 달러, 유상지원 2억 달러-이중 2500만 달러를 징용노동자보상금으로 책정했다-로 양국은 협상을 타결, 수교조약을 체결하였고 국회는 이를 비준했다.
나. 새로운 갈등의 등장
한일수교로부터 이제 54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은 경제발전의 결과로 G20의 국가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최근 수교당시 청구권협정으로 끝났다고 여겨진 징용 노동자문제가 재론되기 시작했고 수교협상에서 중시되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도 새롭게 제기되었다.
오늘날에는 국가라도 개인의 권리에 속하는 문제를 일방적으로 협상 처리할 수 없다는 인권사상이 발전했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재론을 수용하는 이유다. 그러나 문재인에 앞선 노무현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일본에 대한 청구권은 소멸했다고 보고 역대정부가 제대로 처리 못한 보상 문제를 정부 책임 하에 해결하겠다면서 필요한 보상조치를 취했다. 위안부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끈질긴 협상 끝에 일본정부가 위안부문제에 대해 실질적으로 책임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게 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피해당사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논란은 남았다.
그러나 최근 일부 징용노동자들은 전범(戰犯)기업이라고 부르는 미쓰비시(三菱)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개인별 배상청구소송을 제기, 한일 간에 외교문제를 일으켰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 소송이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 정부와 법원 간에 합리적 해결방도를 조율하는 도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문재인 정권의 새 대법원장은 "청구권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일제(日帝)의 불법행위에 따른 '개인별 보상청구시효'는 아직 유효하다고 판시, 미쓰비시와 신일본 제철은 고소인들이 요구대로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한국국내에 투자된 미쓰비시 등의 재산을 억류, 보상받게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위반, 즉 국제 법을 위반했다고 강력 항의 하면서 한일청구권협정문에 명시된 제3자 중재절차를 따르자고 제안했으나 문재인 정부는 이를 외면 내지 무시했다.
결국 일본의 아베정부는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로서 반도체생산의 필수요소인 불소 소재(弗素素材)3종류에 대한 수입제한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수출의 전면금지가 아니고 소재수출의 조건을 자동수출대상에서 심사케이스로 바꾸었다. 그러나 심사의 전권을 일본이 쥐기 때문에 한국기업에는 위협적이었다. 이에 맞서 한국정부도 수출입상의 대일 우대조치를 폐기함과 아울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시한을 연기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파기시켰다. 한일관계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단절을 피하려면 국제법적으로 유효한 한일 간의 제반협정을 준수하고 사법부의 판단이 국제법과 충돌하면 이를 치유할 국내정치차원에서 특례입법을 제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5. 북 핵과 미사일 문제
가. 핵과 미사일 문제의 현황
동북아시아 정세가운데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다. 미국은 당초 북핵문제를 대 중국정책의 부속(附屬)문제로 간주하고 해결의 열쇠를 중국이 쥐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역대 다른 미국행정부와는 달리 북·중 관계에 내포된 갈등에 주목, 북한을 중국영향권에서 떼어놓으려는 외교공세를 시도했다. 트럼프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가짐으로 해서 김정은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한껏 올려주었다. 이어 제2차 회담을 하노이에서 개최, 북한이 비핵화를 추동하면서 베트남 모델을 벤치마킹함으로써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빅딜(Big Deal)을 시도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빅딜을 수용할 태세가 아니었다. 트럼프의 제안을 덥석 받기에는 미·북 간에 신뢰가 얕았고 파키스탄처럼 북한도 대미협상을 통해 핵 보유를 인정받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9.11 사건에서 미국이 얻은 뼈아픈 교훈은 이슬람의 테러분자들의 손아귀에 불량국가(Rogue State)로부터 단 한 개의 핵탄두도 들어가게 해서는 미국에 큰 위협이 된다는 강한 인식이었다. 9.11을 체험한 미국으로서는 핵의 완전하고 검증되고 돌이킬 수 없게 폐기한다는 원칙(CVID)에서 한걸음도 물러설 수 없었다.
나. 북한의 핵 상황평가
흔히 북한은 생존을 위해 핵무장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핵개발의 동기는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1950년에 실패한 무력통일을 기필코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제어할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김일성의 전략적 결단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어렵고도 힘든 관문을 넘어야 한다. 첫째는 유엔안보리가 결의하는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제재의 벽이다. 둘째로는 민생경제의 파탄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다. 북한은 이상 두 가지의 어느 것에도 자신이 없다. 핵과 미사일의 포기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맞서면 맛 설수록 북한 자체의 안보불안은 더 커지고 민생경제도 더욱 피폐해진다. 오늘날 대다수의 국가들은 핵무기 없이도 국가안전과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한 때 미국과 10년 이상 전쟁을 치룬 베트남도 핵무기 없이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성취하고 있다. 북한은 생존이나 안보를 위해서 핵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3대에 걸친 시대착오적 세습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현시점에서 북한은 국제제재가 지속되는 한 국가로서 존립을 유지해 나가기조차 어렵다. 식량, 의료, 에너지가 태부족한 상태를 언제까지 버티고 나갈 것인가. 북한주민들의 불만은 이제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다. 김정은의 손에 남은 카드는 대미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길 뿐이다. 미국을 상대로 협상하려는 것은 미국만이 핵 폐기의 대가를 실질적으로 제공할 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 핵 상황 처리 전망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은 핵의 완전포기의 대가로 북한의 베트남 화(Vietnamization)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을 트럼프는 빅딜(Big Deal) 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 핵무기는 하루아침에 해체될 수 없다.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적어도 핵 폐기가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가 필요하다. ①우선 북한이 지니고 있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종류, 숫자, 위치신고(Inventory) ② 검증(Verification)과 사찰(Inspection) ③ 해체(Dismantlement)관련조치 ④ 핵 폐기에 따른 보상조치(Reward),⑤ 체제보장요구를 담보할 평화체제가 협상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앞으로 미국과 북한 간에 협상이 재개되면 북한은 원칙 면에서 빅딜을 수용하고 이 빅딜 속에 이상 지적된 5개항의 내용을 채우는 스몰딜(Small Deal)들을 하나로 묶어 빅딜타결로 합의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합의의 이행정도에 상응, 국제제재의 부분해제도 검토될 수 있다. 이러한 합의가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쉬울 것 같지 않다. 협상이 결렬되고 새해에 북한이 다시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다면 미국은 군사적 조치이외의 다른 수단이 없다. 트럼프는 본시 북한에서는 정권을 교체해야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김정은이 완전 비핵화에 순응하면 북한의 베트남화를 지원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화염과 분노로 비핵화를 끝내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아직도 핵 보유 세습독재국가에 집착하기 때문에 협상해결의 길이 쉽게 열릴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6. 한국의 바람직한 선택
가. 한국현대사의 교훈
한국은 국토분단 이래 지정학이 한반도에 부과했던 역사적 운명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조선조 500년을 빈곤의 굴레 속에 묶어두었던 대륙세력의 꼬리국가에서 해양세력의 대륙진출 교두보로 지정학적 운명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등 대륙세력에 붙은 북한지역은 아직도 조선조 5백년처럼 1인의 자유는 있지만 만인의 자유가 없이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일본, 서구 등 해양세력으로부터 국가발전에 필요한 지식, 기술, 정보, 자본을 공급받았으며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촉진시켜왔다. 현재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G20에 속하는 국가로서 세계 랭킹 12위를 넘나들며 2012년부터는 세계에서 7번째로 30-50 클럽(인구 5천만 이상에 1인당 GNP 3만 불을 넘는 국가클럽)에 가입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한미동맹을 통한 국가안보’라는 세 기둥 위에 국가발전의 궤도를 깔고 해양세력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기 때문에 한국은 탄탄한 궤도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나. 최근 한국의 정치변동과 국가위기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은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그간 단단했던 국가발전의 궤도가 크게 흔들리면서 국가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그간 한국은 4.19혁명, 5.16 쿠데타, 10,26사건으로 정권이 바뀌는 역사를 살아왔다. 그러나 정권들이 바뀐다고 해서 국가발전의 궤도이탈현상은 일어나지 않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한미동맹에 의한 안전보장이라는 국가유지의 근간은 조금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대통령과 국민 간에 국가이익개념이 다르지 않고 공유되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국민과 대통령 간에 국익 개념이 달리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선 내치 면에서 국민적 합의부재의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득주도성장, 탈 원전, 최저임금제, 노동시간의 주52시간으로의 규제, 세금복지정책 등이다. 특히 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복지정책은 다음 세대나 다음 정권이 부담 없이 승계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통한 사회안전망 확충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기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문 정권은 세금을 국민의 혈세로 보지 않고 정권지지 세력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 세금복지-‘묻지마 현금복지’-를 실시했다. 우리 국민 중 1200만 명이 이러한 세금혜택을 입고 있다고 한다. 만장일치는 아니더라도 다수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실종되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정책이 이를 그대로 입증한다. 조국(曺國)임명파동이 이를 입증한다. 문 정권은 세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른바 망국적 세금주도성장을 획책, 세금은 매년 수 조원씩 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실시하는 이러한 정책이 겨냥하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외국 투자가들은 정치적 전망이 밝던 몇 안 되는 아시아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위상이 지금 크게 흔들린다면서 국가경제운영의 방향을 바꾸라고 권고하다. 그러나 방향전환도 하지 않고 뚜렷한 미래비전의 제시도 없다. 내놓을 비전이 없을 때 쓰는 카드가 과거를 뒤집어 파헤치는 적폐청산이다. 문 정권은 여기에만 몰두한다. 국민적 혼란과 좌절만 확산된다.
다. 안보정책상의 위기
안보외교에서도 국익개념이 전혀 공유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현재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주한 미군이 북한의 도발을 억지(抑止)하고 북한의 핵 공세를 제압할 미국의 전략자산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이나 판문점 선언으로 평화가 도래했고 비핵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문 정권의 ‘평화 팔기’는 북측의 표현대로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소리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문 정권은 “전쟁보다는 나쁜 평화가 낫다”면서 평화만 강조한다. 문정권이 3차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군사합의’나 중국과의 3불합의(3不合意)도 상대방의 행동에 전혀 구속력을 갖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정부는 북한이 올해 13회에 걸쳐 유엔결의를 위반한 탄도 미사일이나 방사포를 발사해도 아무 대응도 못하면서 남북관계가 좋아졌다고 주장한다.
한일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징용노동자문제가 나오자 이를 빌미로 법원의 판결을 통해 36년간의 식민통치의 불법성문제를 재론하였다. 여기에 편승 반일주창자들은 한일협정을 뒤엎으려하면서 일본상품 불매, 관광 거부, 죽창으로 궐기하자는 등 시대착오적 망동을 부추겼다. 이를 비판하는 국민을 토착왜구로 몰아세우고 결국 한일갈등 속에서 GSOMIA를 연장시키지 않음으로써 양국관계를 악화시켰다. 한국은 대 중국 포위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이 강하게 요구하는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을 결과적으로 실현 불가능 하게 만들었다. 문재인정권이 취하는 반일(反日)정책은 미국의 대 중국 전략구도를 허물어뜨린 점에서 반미(反美)나 다름없고 미국은 한국이 동맹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행태는 한국의 전략 가치를 감소시키고 주한미군 철수 론이 나올 빌미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문재인 정권이 한국의 국익논리를 이른바 진영논리에 종속시키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 의하면 문재인 정권이 한마디로 한국외교를 탈미(脫美), 반일(反日), 친중(親中), 종북(從北)으로 바꾸려고 할 때만 통하는 논리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제 한국도 G20반열에 오른 국가인 만큼 G20국가답게 징용자문제를 한일 청구권 협정대로 정부가 맡아 해결하되 다만 한마디 “일본의 불법적 식민통치로 받은 치욕의 역사를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발표로 양국갈등을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GISOMIA도 계속 유지, 한, 미, 일 관계를 명실상부한 공조로 정상화시켜야 안보위기의 현실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라. 종합결론
최근의 한국정치변동은 흔히 보수정권을 진보정권이 대체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보정권으로 분류되는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서도 국익개념이 정부와 국민 간에 공유되었다. 공유되지 않으면 국론은 분열되고 혼란은 가중되며 국가는 정신적인 내전상태에 빠진다. 지난 10.3, 10.9의 국민적 시위가 이런 가능성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는 침체할 수밖에 없다. 요즘 한미방위동맹도 깨지고 주한미군이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소리가 들린다. 문 정권은 자주국방을 강조하지만 오늘날 지구상에서 자주국방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국가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구최강국과의 안보동맹은 필수적이다. 동맹을 통해 안보혜택을 받으면 주권국가로서의 자율성에 다소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어떠한 동맹도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중(親中)정책으로는 얻을 것이 없다. 한·중의 과거사나 사드 배치 이후의 현실을 통해 우리는 중국의 민낯을 바로 보았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지구최강인 미국과의 동맹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해나가면서 일본과도 우호친선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 길만이 우리를 지키는 길이라 믿으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