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자기 몫을 나누는 정치를 기대한다.
이 영 일( 전 3선 국회의원, 한중문화협회 총재)
새해 들어 우리 국민들에게 큰 소망이 있다면 한국정치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보다는 낙담과 좌절, 국가의 앞날에 밝은 전망을 주기보다는 어두운 그림자를 들씌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발전가능성이 완전히 막혀있는 것만은 아니다. 작금의 정치현상을 정치발전론적 견지에서 보면 한국정치의 주제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정책대결로 진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4대강문제, 이른바 세종시 문제, 부자감세(富者減稅)로 선전되는 법인세감면문제 등은 모두 그 성격이 민주대 반민주의 과제 아닌 정책토론의 주제들이다.
정치의 주제가 바뀌면 정치투쟁의 방식도 바뀌어야 하는데 한국정치에서는 정치주제가 바뀌었는데도 정치투쟁방식은 아직도 민주대 반민주 구도시대를 풍미했던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투쟁으로 시종되고 있다. 민주대 반민주 구도 시대에는 전부 아니면 전무 투쟁이 정당화될 수 있었다.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토마스 제퍼슨 주의의 민주주의에 비추어 볼 때 국가권력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부당히 제한하려고 할 때 이러한 기도에 맞서 강경투쟁, 심지어 극한투쟁을 하더라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킨다는 명분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김대중 방식의 정치투쟁은 이런 명분에서 정당화되었고 지탱되었다.
그러나 21세기가 10년을 지나고 있는 현시점에서의 한국정치는 민주화를 향한 정치가 아니다. 절차로서의 민주주의가 정착되었고 국가권력이 국민을 섬기는 시대의 민주화 선상(民主化 線上)에서의 정치발전이 한국정치의 과제로 되었다. 이런 상황의 수요에 맞추어 정치의 주제도 정책대결로 변화된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과제의 문제해결방식은 국민여론을 변수로 하여 여야가 정책의 내용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의 비율을 놓고 다투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수의 의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의사가 소수의 의사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여 하나의 통일된 국민의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적 의사결정방식이며 민주주의가 갖는 묘미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Bernard Click이 정치를 정치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정당들 간에 자기의 몫을 분배받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는데 바로 이러한 정치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정치가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하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하나는 여야 공히 민주대 반민주 구도시대의 정치유산을 청산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국회를 구성하고 있고 둘째로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지역구도의 혜택 속에서 정치적 생존을 유지해온 국회의원들이 정치의 주제가 정책으로 변화된 상황을 소화할 능력을 결하고 있는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년에 들어와서 오늘과 같이 답답한 정치현실 속에서도 한 가닥의 희망을 국민들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현재와 같은 무익한 정치를 국민들이 점차 강도 높게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치인 후원회 참여를 거부하거나 후원금의 수준을 매년 줄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편을 통한 후원에는 세금감면혜택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혐오하는 국민들이 정치인 후원을 나날이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후원금의 부족분을 출판기념회를 통해 보충하는 정치인들도 있지만 정치자금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하는 아픔이 따른다.
앞으로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도 점차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몇몇 지역에는 아직도 그 잔영이 남아있지만 여론조사에 나타난 유권자들의 태도를 보면 능력과 청렴도가 검증되지 않은 정치인들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성숙한 민주정치에서 바람직한 정치투쟁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정책내용에 미칠 영향력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는 쪽은 7:3의 영향력이나 6:4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고 국민들의 지지가 반반일 경우 5:5의 영향력을 놓고 가부를 물어 국민의사를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영향력의 분배의 정치, 자기의 합당한 몫을 나누는 정치가 이번 국회를 끝으로 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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