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줄타기외교에 적극 대처하자. (이글은 憲政誌09/11월호에 게재)
이영일 전주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한중문화협회 총재)
북한의 제2차 핵 실험 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 1874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할 때까지만 해도 중국의 대북정책이 곧 바뀔 것이라는 견해들이 쏟아졌다.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중국의 아시아 전문가들 간에도 북한이 핵을 협상을 통해 포기할 의사가 없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중국도 강력한 대북제재를 펼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것은 중국외교정책의 선언된 목표의 하나가 한반도의 비핵화(중국은 무핵화(无核化)라고 말한다)이며 이를 비군사적 방법으로 실현하기 위해 북 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추진하는 의장국이 중국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국익계산 방법은 학자들이나 민간분석가들과는 달랐다. 중국공산당은 북한의 비핵화를 바라면서도 북한이 현재 취하고 핵 공갈을 중국의 국익 실현을 위한 외교카드로 이용할 가치가 아직 남아 있다고 보고 정책전환에 고도의 신중을 기하고 있다.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大國)이어야 한다는 내외여론을 의식, 북한제재결의에는 찬성하면서도 제재의 실천에서는 한발을 뒤로 빼는 입장을 취한다.
지난 10월 초 북·중 수교 60주년 기념행사참석이라는 명분으로 원자바오 중국총리가 북한을 방문했고 뒤이어 밝혀진 양측 입장성명은 바로 이런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안보리 결의 1874호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라면서 2000만 달러 상당의 대북식량지원을 약속했다.
북한 김정일은 중국 총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미국과 북한간의 대화가 잘되면 그에 연해서 6자회담이나 다자회담에 응 한다"는 표현을 내비쳤지만 북측이 “이미 끝났다”고 대내외적으로 공언한 6자회담에 꼭 복귀한다는 다짐 없이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이벤트는 끝났다. 바꾸어 말하면 북한은 어떠한 형태로든 북 핵 포기를 요구하는 회담에는 불참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국제정세는 북핵문제를 미국이 군사적 방법으로 풀 수 없다면 외교적 해결 밖에 없는데 외교방식의 해결에서 중국의 개입과 조정은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중국과 미국은 국제정치문제에서 협력관계라기 보다는 협력과 경쟁을 병행하는 관계였다.
미국 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중양국은 상호간의 불신을 해소하고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2차례에 걸쳐 전략경제대화를 추진해 왔으며 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G2로서의 중국과의 협력을 미국외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도 부시 행정부가 공공연히 추진해온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 몽골, 일본, 대만, 한국 등을 잇는 미국의 아시아외교 네트워크를 자국에 반대하는 중국포위망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 오늘날 중국과 대만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미국의 대만방위공약 때문에 아직도 통일은 요원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현재 미국은 전략대화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지만 미국이 다시금 힘을 회복할 경우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중국이 미국에 대해 이러한 의념(疑念)을 가지고 있는 한, 적어도 대만문제가 풀릴 때까지는 북한이 붕괴하고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 상황이 한반도에 조성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작금의 통설이다.
어느 면에서 김정일은 중국외교의 이러한 측면을 간파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은 미중관계의 현상을 지켜보면서 과거 60년대의 중소(中蘇)분쟁 시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줄타기 외교를 벌였던 김일성처럼 김정일도 미중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치는 양상을 내보인다.
현시점에서 미국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의사도 없고 입장도 아니다. 설사 미국이 지구최빈국 북한을 공격, 괴멸시킨다고 해도 북한은 이라크와는 달리 재건비용을 짜낼 자원이 전무하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안전보장은 현실적으로는 미국보다는 오히려 중국에 요구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북한은 '있지도 않은 미국의 안보위협'을 내세우면서 오직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끈덕지게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이로서 중국이 현시점에서 우려하는 미·북간의 전략적 담합가능성을 내비쳐 중국의 친북정책 포기를 막고 있다. 이 카드로 원자바오 총리를 북한에 불러들인 것이다.
이 맥락을 풀어보면 북한이 현시점에서 미국에 요구하는 보장은 미국에 의한 침공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이 아니라 북한이 앞으로 실행을 꿈꾸는 통일전쟁에 미국이 간여하지 말 것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북한은 북 핵카드를 미끼로 주한미군의 완전철수를 실현시키겠다는 것이다.
“통일전쟁은 휴전일 뿐 끝난 것이 아니다”는 김정일의 일관된 주장 속에 담긴 결론이다. 북한의 이러한 내심을 중국이 모를 리 없다. 중국은 주한미군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면서도 외교원칙에서는 미국군대의 아시아 주둔을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다. 또 중국은 북 핵이 장기적으로는 중국안보에 부담이 되지만 지금 당장에는 자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유엔의 제재결의는 지지해도 구체적 제재국면에서는 소극적이 된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중국의 이러한 태도를 바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중(韓中) FTA를 적극 추진하고 동북아경제공동체 논의를 심화시키는 한편 한중양국은 상호간의 국익을 위해 서로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임을 납득시킬 외교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핵 포기와 한국주도하의 통일이 주한미군의 철수환경조성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질서도래의 기초가 될 것임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중국지도층을 설득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에 버팀목이 되었던 미국이 제 위상을 되찾으려면 많은 시일이 요하며 어쩌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앞으로 이명박 정부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겨냥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서의 한중관계를 수사(修辭) 아닌 보다 실질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대중 외교의 성공 없이 우리의 앞길은 평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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