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공약 수정에 정치과정이 빠졌다

                                                                 이영일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흔히 한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역사상 가장 짧은 시일 안에 성공적으로 이루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국이 이룩한 민주화는 국민이 지도자를 뽑는 절차적 민주제도를 정착시킨 데 성공했을 뿐이다. 민주화가 자유민주체제의 완성으로 발전하려면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가 국민의 뜻을 하늘 같이 섬기면서 공약을 제대로 지키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철저히 보장하는 법치를 확립하는 것이다. 헌법 위에 '때 법'이 난무해도 이를 다스리지 못하여 법치의 행방을 묻게 하고 국민에 대한 공약을 독선적으로 왜곡, 변질시켜 본래의 취지를 그르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 민주 체제는 아니다. 절차적 민주화는 되었어도 자유민주주의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절차로서의 민주화에는 성공해도 자유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하고 넘어진 정권들도 많다. 현시점의 한국의 민주화도 절차로서의 민주화로 끝나는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단계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공약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에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공약을 이행할 수 없는 현저하고 명백한 사정변경이나 천재지변의 경우 공약은 수정이나 변경될 수 있다. 그러나 현저하고 명백한 사정변경이나 천재지변 없이 선거 당시의 주요공약을 수정 변경하려면 공약당시 생각이 못 미쳤거나 모자랐거나 발상의 잘못에서 나온 공약이라면 이를 국민에게 솔직히 고백, 사과하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런 조치를 국민들이 수용토록 하는 정치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합의도출이 힘들 경우에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처럼 대통령직을 건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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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계획을 국민투표로 바꾸자는 역대 총리들의 모임 

세종시는 주지되는 바이지만 공약 그 자체가 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장래에 대한 원려에서 모색한 것이 아니고 선거 득표용 민심획득 작전에서 나온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의 잘못된 공약을 차기 대통령이 수정, 변경하는 것조차 막아보기 위해 이 사업을 서둘러 집행함으로써 공약수정을 원천방지하려고 대못을 박는 악마적 결정을 내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이전공약을 헌법 불일치로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행정복합도시라는 꾀를 내어 헌재(憲裁)의 판결을 빠져 나갈 때 국민의 반대여론이 얼마나 높았던가를 회고해보면 국민의 정론과 정치권 간에 태도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실감한다. 국민다수의 여론이 세종시 계획을 반대해도 그 지역의 몰표를 바라는 정치권은 국민 다수의 의사를 무시했다. 국회는 행정복합도시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에서 세종시 공약을 자기 공약으로 승계하면서 충청권 지역의 지지를 강하게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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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표 근영) 

현 정부는 집권 2년이 지난 지금 세종시 공약을 원안대로 이행할 경우 행정의 비능률이 예상된다면서 공약의 수정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세종시 건설 사업은 이미 국가예산이 집행되어 토지보상도, 측량설계도 끝나 도시건설을 추진 중에 있다. 그런데 공약입안과 시행에 직접 관련이 없던 새 국무총리가 나와 세종시 공약의 수정론을 제기하고 대통령은 국무총리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태도를 바꾸었다. 이에 세종시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데 앞장선 한나라당의 전 대표 박근혜 씨는 공약의 원안대로의 이행을 촉구하고 나옴으로써 세종시 공약수정안의 국회통과 전망에 엄청난 난관을 조성했다. 일부 논객들 가운데는 이명박 대통령 정책에 맞서는 박근혜 씨의 태도를 격렬히 비판하고 어떤 이는 박근혜 씨의 한나라당 탈당을 촉구하면서 심지어 박근혜 씨의 가계(家系)까지를 들먹이며 독재와 친일로 매도하기 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건데 세종시파동의 진원지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나 공약을 수정하거나 바꾸는 정부의 태도가 좋게 말해서 지나치게 안이하고 독선적인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에 대한 약속을 하늘처럼 소중히 생각하기 보다는 선거용으로 공약했다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공약이라고 해서 다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거나 “공약에 지나치게 묶이기 보다는 당면한 국정을 잘 주도,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이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실용주의적 관점에 편승한데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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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서 답변하는 정운찬 총리)

 설사 이러한 입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상당수의 국민들에게 이해관계를 발생시킨 공약이거나 이미 사업에 착수된 공약을 변경시키려면 변경이나 수정에 수반하는 정당한 정치과정을 진행시켜야 한다. 우선 대통령과 법안통과주체들이 공약수정 문제를 놓고 진지한 토론과 반성이 선행되고 여기에서 수정에 대한 당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 합의가 이루어진 후 대통령과 관련 당대표가 대국민사과를 공식으로 행하고 여론을 공약수정을 수용시키는 방향으로 소통과정을 넓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빠트린 채 새로 임명된 국무총리가 대통령과의 의견조율을 통해 공약수정을 발표하고 이를 여론에 띄워 밀어붙인다면 국민을 섬긴다는 자세에서 크게 일탈하는 것이다. 당내의 합의도 모아지지 않은 가운데 대국민, 대야설득이 가능하겠는가. 또 박근혜 씨를 공격하는 논객, 여론이 뜬다고 해서 집권당의 공약과 국민신뢰의 문제가 해결된 단 말인가.

세종시 문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절차적 민주화에만 도달했을 뿐 자유민주주의에까지 이르려면 더 많은 정치훈련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세종 시 계획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공약의 수정이나 변경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그 안이함과 속 들여다보임을 개탄하면서 민주정치에서 정치과정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에 이르는 정도임을 확인했다. 결국 국민투표 이외의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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