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국국제문제연구원발행의 國際問題 2009.11월호에 게재)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년 감상법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영일
중국공산당은 지난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하여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천안문 광장에서 성대한 기념행사를 마쳤다. 중국인들에게 건국60주년기념식이야말로 환희와 감동에 넘치는 기념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중국공산당은 근대화 고지를 선점(先占)했던 서방 강대국들에게 짓눌려 민족적 수모와 실의 속에 빠져 있던 중국을 지난 60년 동안의 집정(執政)을 통해 다시금 세계최강국가의 반열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던 1949년 중국의 1인당 GDP는 33달러에 지나지 않았으나 60년이 지난 오늘날 중국의 1인당 GDP는 3,267달러(2008년 9월 기준)로 신장했으며 외환보유고에서 세계1위, 상품수출에서 세계2위를 점하게 되었고 우주과학 분야에서도 미국과 러시아를 맹렬히 뒤 쫒는 수준에 도달했다. 성급한 미래 학자들은 총량에서 중국이 세계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일본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2040년경에는 미국을 앞서갈 것이라고 예측(Goldman Sachs)하고 있다. 실로 놀랄만한 발전이고 변화다.
[중국의 대국화과정은 서구의 그것과 달랐다]
국제정치 학자들은 하나같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정치의 단극구조는 이제 중국의 등장으로 양극구조로 재편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본다. 21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중국은 분명히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대국화 과정은 과거 서구의 대국화 과정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과거 서구는 약육강식의 정복과 식민지수탈, 자원착취, 원주민들의 노동착취를 통해 강국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중국은 산업현장에서 극도의 저임금을 감수하면서 땀 흘려 일한 중국 노동자, 농민들의 수고와 헌신, 이를 통해 조성된 수출경쟁력강화로 일궈낸 경제발전의 결과다. 중국은 분명히 지난 60년 동안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도, 남의 나라의 자원을 약탈하지도 않고 오직 자국민의 피와 땀으로 저개발을 개발로, 낙후지역을 현대화하고 가난을 극복해낸 대국화의 길을 열었다. 이는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위대한 사건으로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국가발전을 공산주의운동이 성세를 보이던 시절에 이룩한 것이 아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운동이 폐절되거나 변질되는 시기였다. 아직도 아시아에는 대외 폐쇄주의를 고수하면서 극도의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북한이 있는가하면 미주대륙의 쿠바역시 정상적 발전의 궤도를 이탈한 가운데 빈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공산당만이 이처럼 성공할 수 있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지도자 선출방식이 엘리트 통치의 지속을 보장하고 있다]
국외자(局外者)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의 가장 큰 강점은 우선은 문화혁명이후의 암담한 중국을 발전방향으로 이끈 훌륭한 지도자를 만났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 등소평의 출현은 실로 중국인들이 지도자 복을 받았다고 말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미국 하바드 대학교의 에즈라 포걸(Ezra F. Vogel)교수는 지난 10월4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중국인들이 기념해야할 시간은 60년이 아니라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이후의 30년간뿐이라고 지적하고 등소평의 이론과 비전과 통찰력이 오늘의 중국을 이루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늘의 중국을 개혁개방을 통해 새로운 대국으로 만들어낸 등소평의 지도력과 공헌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높이 평가될 것이다.
둘째로 지적해야할 중국의 강점은 등소평 이후의 중국공산당이 지도자선출방식에서 지도자의 경력과 능력을 철저히 검증, 당과 정부와 인민을 잘 이끌 능력 있는 인물만을 선출함으로써 엘리트 통치를 보장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공산당은 주지되는 바와 같이 당의 원로들과 전, 현직 정치국원, 정치국 후보위원, 중앙위원회 간부들이 진황도(秦皇島)의 베이다이허(北戴河)에 모여 오랜 시간을 두고 격의 없는 난상토론을 통해 총의가 집약되는 인물을 지도자로 선출하는 특별한 제도를 발전시켜왔다. 일본이나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는 선거운동과정을 통해 유권자들이 지도자를 검증하고 선거의 결과로 다수의 지지를 받는 자를 국가최고지도자로 뽑는다. 이 제도는 인민직선(人民直選)인 점에서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항상 유위 유능한 인물만을 뽑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국민들이 좋은 지도자를 만날 복이 있을 때만 훌륭한 지도자를 뽑게 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대중인기에 영합하는 선동정객들이 지도자로 선출되어 국민들이 곧바로 선거결과를 후회하거나 좌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중국의 지도자선출방식은 함량미달의 인물이 지도자로 선출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만 인민들이 직접 고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민주적일지 모르지만 선출의 결과를 보면 인민직선제보다 더 훌륭하고 효율적인 지도자선출방식임을 증명하고 있다.
[당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자기변화를 하고 있다]
셋째로는 공산당 지도부는 시대의 변화에 발을 맞춰나가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장쩌민 주석이 강조한 위스쮜진(與時俱進)은 오늘에도 그대로 승계되는 지도방향이다. 동시에 선출된 국가주석은 사실상 내각제의 수반처럼 동료중의 제1인자로서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국 위원 전체회의를 통해 고도의 합의제 정치를 통해 국책을 결정하고 있다. 독단적 결정이 없는 것이다.
넷째 후계문제도 연령에 의해 조절되는 가운데 차기 지도자를 사전에 예정해 둠으로써 후계자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잘 극복하고 있다. 브르진스키(Zbignew Brzezinski)는 그의 전체주의 국가연구에서 공산권에서의 후계자 지명을 "죽음의 키스"라고까지 극단적인 평을 한 바 있지만 오늘의 중국에서는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의 양위와 같은 순리로 계승의 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다. 선거에서 오는 낭비와 갈등을 없애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기에 하나 더 첨가한다면 중국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엘리트 충원에서 고도의 개방제도(開放制度)를 택하고 있다. 국가발전에 필요한 전문인, 기술자, 과학자를 폭넓게 포용, 활용하고 있다. 관료들이 자기 지위보전을 위해 유능한 엘리트의 국가경영참여의 길을 여러 가지 이유로 제한하고 있는 일본이나 한국에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중국의 성공이 이데올로기 정치의 승리하고 말할 수 없다]
중국공산당은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은 리더십을 통해 가난과 실의에 빠진 중국인들에게 세계를 향하여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는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중국의 성공은 결코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성공을 의미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개혁개방정책을 사회주의 초기단계라고 정당화하면서 중국인들의 잠재적 발전역량을 현재화(顯在化)시킨 시장경제라는 이름의 자본제 생산양식과 고도의 통치능률을 보장하는 일당체제의 결합이 만들어 낸 성공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약 100년간으로 추산되는 사회주의초기단계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중국공산당의 일당집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중국은 지나간 60년보다는 앞으로의 60년이 더욱 힘들고 어려운 선택의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증가하는 욕구수준과 성취수준 간에 벌어지는 간격, 낙후지역과 발전지역간의 격차, 도농(都農)간, 계층 간의 격차문제는 공산당의 존립을 좌우할 중요한 과제로 되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정부패척결문제역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며 여기에 독립과 분리를 요구하는 소수민족문제도 외면할 수 없는 도전요소이다.
언론자유가 보장된 국가들에서는 사회적 합의하에 모든 형태의 부정이나 부패, 인권침해에 대한 폭로와 고발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으로 해서 부정비리의 자기정화(自己淨化)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국가안정과 1당 지배의 공고화라는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언론자유와 인터넷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 중국 같은 사회에서는 부패와 부정에 대한 자기치유능력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중국공산당이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특정 도그마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이에 걸 맞는 처방으로 내놓는 개혁개방, 삼개대표(三個代表)사상, 과학적 발전관과 화해사회론 등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유연성을 계속 살려 나간다면 중국은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잘 극복하면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한다. 후진타오 주석이 기념식전에서 “중국의 미래는 낙관적이며 발전은 무한하다”고 선언한데는 중국 나름의 이 같은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린(富隣), 안린(安隣), 목린(睦隣)의 실천을 기대한다]
끝으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건국60년을 기념하는 중국공산당에게 한마디 당부한다면 중국이 이룩한 오늘의 발전성과를 중국만의 부국강병을 도모, 또다시 패권(覇權)을 추구하는 한(恨)풀이의 에너지로 삼지 말고 동북아시아의 공동발전, 세계평화를 보장하는 능력으로 가꾸어 나가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동시에 리자오싱(李肇星)전 중국외교부장이 말한바 이웃나라들에 대해서는 부린(富隣), 목린(睦隣), 안린(安隣)의 3린 정책을 실천, 주변국들과 공존공영 하는 선린우호의 중국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중국의 발전에 대한 주변국들의 경계와 우려를 해소하고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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