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중국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글은 2010년10월 26일 오후 19시 서울 팔레스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창립 27주년 기념식에서 한중문화협회 이영일 총재가 행한 강의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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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중국의 두 얼굴

  가. 두렵고 우려스러운 모습

 중국은 자기 나라의 국익, 특히 중국정부가 핵심적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항상 일전불사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개혁개방의 초기에는 등소평의 지시에 따라 韜光養晦의 원칙에 따라 강경대응을 자제했으나 GDP총량이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에 도달한 후부터, 특히 미국 발 금융위기이후 중국경제가 세계 제1의 성장세를 과시하면서부터는 韜光養晦 아닌 패권국가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東支那해에서의 일본과의 영토분쟁에서 보이는 중국의 태도는 패권추구 국가의 모습에 틀림없다.

 한국도 2000년 중국과의 마늘분쟁을 일으켰다가 중국의 강경한 대응으로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취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당시 한국은 마늘 수입을 898만 달러(1999년 기준)정도를 제한했는데 이에 비해 중국은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의 대중국 수출액은 각각 4,140만 달러, 4억7,130만 달러로 총 5억1,300만 달러의 수입제한조치를 부과했다. 당시는 중국의 WTO가입전이기 때문에 呼訴無處였다. 지금도 강대국이 위반하는 무역규칙 위반은 사실상 국제정치에서 실효가 없기는 매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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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기회의 땅

 중국은 개혁개방이후 지난 30년 동안 고도성장을 유지해왔고 미국 발 금융위기이후에도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마침내 일본을 재끼고 세계랭킹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동시에 구매력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10,000달러 이상의 개인 소득을 가진 인구가 전체인구의 15%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는 불확실)

수출입국을 기조로 하는 한국을 위해서는 중국이야말로 기회의 땅이다. 현재도 매일 1억 달러 가량의 흑자를 내고 있다. 흑자를 낸 만큼 중국경제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도 높아지지만 그것 없이는 금융위기이후 한국의 위기탈출이 힘들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시장이다. 지금은 고구려의 옛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 옛 땅 보다 더 넓은 시장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생각할 때 중국 같은 세계의 시장(과거에는 공장)을 咫尺에 두고 있다는 점은 한국경제의 축복이다.

 2. 중국의 인근국가정책을 살펴보자

 가. 국경관념

 중국은 國境을 內境과 外境으로 구분하는 태도를 역사적으로 지녀왔다. 내경 이라함은 현재 우리가 국제법상으로 말하는 국경을 말한다. 그러나 외경은 역사적으로 중국에 조공을 바쳤거나 왕위획득이나 계승 시 중국황제의 冊封절차를 밟았던 국가들의 영토를 말한다. 베트남, 미얀마, 조선, 몽고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 외경국가에 대해서는 말로는 주권평등이라지만 내심에서는 자기들이 우위에 선다는 우월의식을 부지불식간에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대중국외교와 거래상의 어려움이 있다.

 

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주권평등을 확보했고 한국은 한미방위동맹과 그간의 경제발전으로 독자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중국인들의 내면에는 아직도 우월의식이 깊이 깔려있고 그것이 경제력이 강화되면서부터 나날이 밖으로 표출되어 나오고 있다. 북한을 중국이 보호하고 나서는 이면에는 외경을 보호한다는 관념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나. 외자유치정책

 중국이 한국과 다른 점은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한 점이다. 한국은 제1차부터 3차에 걸치는 경제개발5개년계획과정에서 외자를 국가채무보증으로 유치했지만 중국은 FTI, 즉 정부 채무보증 없이 외자를 직접유치하고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합작방식을 취했다. 등소평은 이 전략이 三國志의 赤壁大戰에서 諸葛孔明이 지푸라기를 가득 채운 배를 밤중에 曹操진영으로 몰고 들어가 그 진영에서 쏘아대는 화살 10만개를 빼오는 이른바 草船借箭에 비유된다고 말했다.

 중국은 남의 돈으로 경제개발을 추진, 성장 동력을 갖춘 후부터는 외자도입조건을 갈수록 까다롭게 하면서 기술도입을 보장하는 외자도입정책을 내밀고 있다. 이제 세계 각국은 중국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자본제공은 물론이거니와 기술까지 제공하면서 중국경제에 자신들의 미래를 내맡기는 상황이 되었다.
 
 레닌이 자본가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자기들의 목에 달 밧줄까지 수출할 것이라고 말한 명언을 연상시킨다.

이제 중국은 미국이나 WTO나 선진국들이 만든 무역규칙, 외교규칙을 따르는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규칙을 제정하는(Rule Maker) 지경에 이르렀다.

한 중국 학자는 중국이 요즘들어 오만해졌다는 평에 대해 중국을 중국의 국격에 맞게 대우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오마한 중국이 아니지만 중국을 국격이하로 보는 사람들의 눈에만 오만하게 볼일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국격을 재는 기준은 중국인들 자신이기 때문에 이 말이 갖는 함의를 우리는 잘 촌탁해야 할 것이다. 

다. 외자 유치하는 자와 뺏는 자

 중국의 지방자치단체는 한국과는 달리 상당한 수준의 자치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중국 자치단체는 4개 직할시, 5개 자치구, 23개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통틀어 말하면 중국경제규모는 한국경제규모 정도의 경제덩어리가 32개 뭉쳐있다고 보아 틀림없다.

이들 자치단체 장들은 경쟁적으로 외자를 유치하는데 앞장선다. 省내의 市級 단체장들이 외자를 유치하더라도 省長이 직접 나가서 환영해주고 만찬도 베풀어 주면서 외자유치를 성원한다.

 외자유치협상 기간 중에는 투자자를 최고의 국빈으로 대접하지만 일단 투자협정이 체결되고 나면 그 투자자는 중국의 평범한 기업가수준으로 위치가 격하된다. 혹자는 하느님에서 사람으로 내려올 만큼 대우가 갑자기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자기업가에게 중국의 경제법, 세법 등의 요구를 충족시키도록 압력을 가하고 여기에 불응하거나 요구충족에 미흡하면 결국 기업을 포기하고 나가게 만든다. 외자를 유치하는 단체장과 투자된 외자기업체의 약점을 적출하여 내쫓는 단체장이 있다 이들은 A지역에서는 유치자요 B지역에서는 외자기업체를 중국에서 포기하고 나가도록 압력을 가하는 자의 역할을 한다.

중국에는 단체장을 선거로 뽑지 않는다. 중앙당이 부여한 목표달성여부가 승진과 전보와 퇴진의 기준이 되는 국가이다. 촌장만은 선출하고 국가주석은 150여명가량의 정치국원, 당 원로, 중앙위원회 일부, 고위지방자치단체장 등 최고당직자들이 베이다이허(北戴河)에 모여서 만장일치 투표로 선출한다.

 미국의 존 나이스 비트는 그가 쓴 "메가트랜드 차이나"에서 이를 垂直的 民主主義라고 한다. 나는 수직적 민주주의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이스비트의 견해는 현 중국지도부를 향한 최대의 찬사일 것이다.어쩌면 한국인들도 나이스비트와 같은 찬사를 쓸줄 알아야 할 것이다.

 중국지방자치단체의 간부들은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한국 중소기업들도 중국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충분히 갖지 못한 상태에서 노임이 싼 것만 보고 덥석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날리고 심지어는 맨몸으로 중국을 빠져 나오는 사람들도  적잖다.

 이들은 애당초 중국에 투자할 자격이 없는 기업이었다. 중국에 투자했다가 그나마 자기 밑천을 송두리채 날리는 어리석음은 누구탓도 아닌 자기 탓이다. 百究一投(백번 연구한 후에 한 푼이라도 투자하라)가 필요한 나라이다.

 특히 中國語를 모르면 중국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중간에 朝鮮族 通譯을 앞세우고 사업하면 성공할 확률이 너무 낮다. 자기가 중국어를 하거나 자기 한국인 직원이 사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조건에서만 투자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중국정치의 금후의 전망

 요즈음 원자바오 총리의 중국민주화발언으로 중국정치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없지않다. 그러나  원자바오 총리의 발언은 多黨制나 삼권분립같은 西方式 의미의 대의정치를 향한 개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직이나 공직임명에 있어서 투명성을 높이는 문제, 파벌간의 안배 위주 인사의 개선 등 국가충원제도의 결함이나 공평성확대에 역점이 두어질 것 같고 나아가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입법기능을 강화하고 법치의 강화에 역점을 두는 개혁이 아닐까 생각된다.

 2012년 중국에서는 공산당 18차 당대회를 통하여 리더십 교체가 행해질 것이다. 현지도부가 대거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새로운 지도부의모습은 현재와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브르킹스연구소 중국문제연구소 李成주임은 시진핑(習近平)으로 대표되는 소위 태자당 그룹과 리커창(李克强)으로 대표되는 퇀파이(團派)간의 연립정부가 출현할 것으로 예견된다.

특히 시진핑 그룹에는 해외유학파, 고급 관료, 성공한 사업가(新紅資), 군부가 중심축을 이루는 반면 리커창 파에는 지방당의 간부들, 전국인민대표대의원, 소상인,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의 후진타오 직계파 당료들이 중심이 되어 사실상 연립정부(Coalition)가 출현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 중국은 일당독재이기 때문에 일본자민당처럼  당내 파벌들 간의 협력과 견제로 국정을 운영하는 수준까지는 가지않더라도 통치의 양상이나 운영형태상 변화가 예상되며 대북정책도 현재와 같은 보조일치가 힘들어 질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경제정책도 현실화되며 해외파들이 정책결정의 요직을 장악하면서 중국의 대내외정책이 현재보다 훨씬 합리화될 것이다.

 앞으로 통일안보를 위해서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한중협력은 한미협력에 못지않게 중요한다. 중국을 좀 더 깊이 연구하고 한중관계를 발전시킬 지혜를 발현하는 것이 우리들과 우리 자손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중국을 우리의 안전한 시장으로 만들려면

 한중관계를 개성발전시키는 방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에 유학와 있는 8만4000명의 중국유학생을 친한파 내지 지한파로 만드는 것이다. 또 한구에 근로자로 나와 일하는 40만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지방의 경우 중국유학생을 정원미달을 채우는 대상으로, 수도권대학들의 경우 과외TO로 받아들여 수입을 늘리는 대상으로 삼는다면 올바를 유학정책이 아니다. 이들의 한국어 수준을 수시 점검하여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 올리면서 한국에 유학 왔기 때문에 자기 인생의 새 지평이 열리게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도록 챙기는 배려가 필요하다.

노동자들에게도 사랑과 인정을 베풀어 다른 나라아닌 한국에서 노동했기 때문에 이만큼 가치와 보람을 창조하게 되었다고 자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잘 관리된 유학생들과 노동자들이 귀국하게 되면 중국의 전 지역은 한국을 위한 시장으로 변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대학들과 기업들이 지금까지 옳은 중구유학생정책을 펴왔는가, 중국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관리해 왔는가를 반성해야 할 때이다.

오늘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행한 제 짧은 특강이 중국을 우리의 친구로 만들고, 안전한 시장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에 보탬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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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지도자 시진핑이 피할 수 없는 숙제는 인권 민주화

2010.10.21 중앙일보

‘동아시아 전략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게 중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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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명예회장인 박태준(83) 전 총리의 세종로 파이낸스 빌딩 사무실엔 대형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그는 지도를 보면서 “한국은 중국 턱밑의 목젖과 같고, 일본 옆구리의 단도와 같다”고 말하곤 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중국과 일본에 급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활달한 정신에서 반도적 숙명론은 찾아볼 수 없다. 박 전 총리는 1992년 이래 중국을 집중적으로 탐구해 왔다. 덩샤오핑(登小平)의 초청을 받아 ‘개발하기 전 서울의 강남’ 같던 허허벌판,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지역을 시찰한 게 그가 중국을 탐구한 계기였다고 한다. 그전부터 박 전 총리는 중국 정부로부터 구멍가게 수준인 제철산업을 포스코처첨 현대화하는 데 협력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을 받았다.

박 전 총리는 ‘세계의 철강왕’일 뿐 아니라 중국의 권력자들을 직간접적으로 꾸준히 접촉하고 관리해 온 ‘동아시아의 전략가’다. 기자는 12일부터 17일까지 난징(南京)~장쑤(江蘇)성 장자강(張家港)시~상하이를 방문한 박 전 총리를 동행 취재했다.

동아시아의 전략가와 함께 중국의 변모를 관찰하면서 이 거대한 나라를 한국이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를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5박6일간 10차례에 걸쳐 15시간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마침 며칠 뒤 중공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된 시진핑(習近平·57)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 오랜만에 본 중국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14일 장쑤성 포스코스테인리스 일관제철소 현장을 방문한 박태준 전 총리(왼쪽). 옆은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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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년부터 18년간 놀라울 정도로 변했어요. 놀라지 않고, 그런가 하면 둔감한 사람이지. 어느 것도 저절로 되는 건 없어요. 1차적으로 모택동(毛澤東 ※박 전 총리는 중국인의 이름을 시종일관 한자식으로 발음했다. 이하 그의 발음대로 적음)의 혁명이 완전히 성공했고, 주은래(周恩來)와 등소평으로 내려오면서 전체주의로 흐르지 않고 시장경제로 간 것 아닌가. 단순히 공산혁명이 아니야. 애국심이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런 변화는 있을 수 없어요.” 

- 현재 중국 리더들의 자질과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내가 가장 주목하는 건 습근평(시진핑)이야. 덩치가 좀 크데. 중국의 지도자들은 등소평이 일찍이 중국을 되돌이킬 수 없는 근대화로 나아가게 하겠다는 계획 아래 잘 준비시켰어. 강택민(江澤民), 호금도(胡錦濤) 이런 식으로.” 

- 덩샤오핑이 시진핑도 미리 지도자로 준비시켰을까요. “나는 그렇다고 보고 있어요. 그 이후는 몰라도 습근평까진 근대화 지도자의 줄을 세워놓았다고 봐.” 

- 그렇다면 상당히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중국 지도층 인사들은 한국 근대화를 포스코가 주도했다고 생각해 많이들 배우러 왔어. 포항·광양·제주도 같은 데를 다녀갔어. 등소평이 근대화 지도자들을 키웠지.” 

- 키신저 박사가 지난 여름 한국에 와서 ‘국가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더 이상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데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가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만. “희생을 요구하면 표 떨어지니까. 세계 민주주의의 한계, 맞아요. 공산주의라 그렇긴 하겠지만 중국의 지도자들은 표를 의식하지 않지요. 포퓰리즘으로 흐르지 않지. 그런 점에서 안정적이고 수준 높은 리더십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 그러면 한국의 리더십은 어떻습니까. “다른 분들은 얘기하기 그렇고.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했고, 자기가 먼저 희생을 했어. 나도 포항·광양에서 새벽 5시엔 일어나 현장을 돌았지. 국민들은 지도자가 먼저 희생하면 대부분 따릅니다.” 덩샤오핑이 박 전 총리를 특별히 주목한 건 78년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회장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덩샤오핑이 중국의 개방 모델을 배우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둘이 나눈 대화의 한 토막. 

▶덩샤오핑=중국도 한국의 포항제철 같은 현대화된 일관 제철소를 만들고 싶다. ▶이나야마=중국엔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어서 어려울 것이다. ▶덩샤오핑=무슨 소리냐. 중국 인구가 10억이나 된다. ▶이나야마=10억이든 15억이든 없는 건 없는 거다. ▶덩샤오핑=그럼 박태준을 수입하면 될 것 아니냐. 

이 대화록은 이나야마 회장이 당시 기록을 포스코 쪽에 전달함으로써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이후 포스코에 사람들을 보내 제철산업을 벤치마킹했고, 이런 신뢰가 쌓여 92년 박 전 총리를 상하이로 초청해 본격적인 현대화를 요청한 것이다. 

올 들어 중국을 ‘불편한 진실’로 느끼는 한국인이 많아졌다.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 때문에 특히 그러했다. 그렇다고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된 중국과 척지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중국을 대하는 방법을 물었다. 

- 중국이 커져서 세계가 당황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돌고 움직이는 거요. 모택동의 공산정권이 오래 안 갈 거라고 그랬는데 그 예상이 틀렸어. 중국이란 방대한 힘에 일본은 힘 못 쓰고, 미국은 어쩔 줄 모르고 있잖아. 동아시아는 마치 중국의 1극체제처럼 흘러가고 있고…. 북한 김정일이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왜 중국에 갔겠나. 김정일이 죽으면 북한이 바로 붕괴할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난 안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봐요. 중국이 보호하면 북한은 그대로 갈 수 있는 거요. 동독의 붕괴와는 상황이 달라.” 

-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안보적으로 미국과 동맹관계를 놓치면 안 돼요. 중국 사람과는 더 많이 더 자주 만나야 해. 그들을 아주 잘 알아야 돼. 지금 중국 지도부를 아는 사람들이 너무 없어. 요샌 중국 사람들 만나기도 힘듭니다. 하도 커지니까. 겸손하게 중국어를 배워야 돼. 그들의 마음을 훔쳐야 돼요.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 우리가 1등 국가가 된 줄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까딱 잘 못하다간 비행기 추락하듯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 노벨 평화상 수상 문제로 중국의 인권 문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인권·민주화는 산업화되는 나라가 피할 수 없는 도전이야. 그건 중국의 새로운 책임자가 될 습근평이 풀어야 할 문제일 거요.” 포스코스테인리스 일관제철소가 있는 장쑤성 장자강시에서 박 전 총리는 국빈급 대우를 받았다. 그의 승용차는 무장경찰차가 선도했으며 왕복 전 차선에서 교통이 통제됐다. 그도 그럴 것이 100만 명이 사는 장자강시의 포스코스테인리스가 지난해 낸 세금은 5000만 달러(600억원)였고, 호황이던 2007년엔 3억2000만 달러(3800억원)를 기록했다.

상하이=전영기 중앙 SUNDAY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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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에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퍼온글)

  • 입력 : 2010.10.08 18:03 / 수정 : 2010.10.08 20:03
류샤오보 /조선일보DB

올해의 노벨평화상은 중국의 인권운동을 선택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8일 오후 6시(한국시각)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2010년 노벨 평화상 발표식에서 중국의 인권신장을 위해 오랫동안 투쟁한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를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중국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길고 비폭력적인 투쟁을 벌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지난 20년간 류샤오보는 중국에서 기본 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고 소개한 뒤 “그는 1989년 톈안먼 시위에 참여했으며, ’08헌장’의 주요 저자였다”면서 “그는 중국 인권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위원회는 성명에서 중국 정부가 자국민들의 정치적 권리와 인권을 제약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중국의 새로운 위상은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고 지적한 뒤 “중국은 정치적 권리와 관련, 자신들이 서명한 여러 국제 합의와 자국 법조문을 위반하고 있다”며 “중국 헌법 35조는 중국 인민이 언론과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이런 자유는 명백히 제약돼 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류샤오보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줄기차게 중국의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해온 대표적인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다. 노벨위원회는 "중국 인권운동의 가장 뚜렷한 상징"이라고 평했다.

그는 톈안먼 사태 당시 방문학자로 있던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급거 귀국해 단식투쟁을 이끌다 수감된 것을 시작으로 반복된 투옥 등 고난으로 점철된 민주화 운동의 길을 걸었다.

지난 2008년 12월 ‘일당 독재 종식’을 골자로 하는 ‘08 헌장’ 작성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지난해 12월 국가권력 전복 선동죄로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현재 랴오닝(遼寧)성 감옥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의 인권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앞서 중국은 류샤오보의 수상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제기되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류샤오보의 수상은 곧 중국의 인권탄압이 국제적인 ‘공인’을 받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미 지난 6월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에 “류샤오보가 평화상을 받게 되면 노르웨이와 중국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압력을 가했다.

지난달 28일에는 “류샤오보는 중국 현행법을 위반한 사람으로 그의 행동은 노벨평화상의 정신과 정반대”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인권문제에 대해 각국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가 류샤오보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하는 행위가 중국 내정 간섭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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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0년 9월 1일 중국문화원에서 열린 중국대사관 주최 抗日戰爭승리 65주년 기념식상에서 행한 이영일 총재의 致辭全文이다.


               항일전쟁승리 65주년 기념식 치사

尊敬하는 장씬선 中華人民共和國 大使님내외분, 그리고 독립운동가 후손을 대표해서 이자리에 참석하신 국회 李鍾杰 의원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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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신 內外貴賓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中國 政府가 抗日戰爭勝利 65周年을 記念하기 위하여 마련한 매우 의의 깊은 記念式場입니다.

동시에 우리 한국의 입장에서도 祖國光復 65周年의 意味를 되새겨보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한중양국이 그 意義과 가치를 共有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행사인줄 압니다.

바로 이런 자리에서 本人이 1942년 중국의 臨時首都 총칭(重慶)에서 抗日을 위한 韓中合作機構로 創立된 韓中文化協會의 정신을 계승하는 단체의 대표로서 致辭의 말씀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매우 榮光으로 생각합니다.

돌이켜 볼 때 우리 韓國과 中國은 20世紀가 시작될 무렵부터 근 半世紀 가까운 긴 세월동안 日本 帝國主義者들의 侵略으로 말미암아 이루 말할 수 없는 苦痛과 不幸을 겪었습니다.

日本帝國主義者들은 1900년대 초에는 그들의 이른바 國家利益線이 韓半島까지라고 일방적으로 선언, 韓半島를 强占하고 뒤이어 그들 이익선 개념을 滿洲로 확장,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마침내 중국대륙을 침략하고 동남아시아에까지 침략의 魔手를 뻗쳐,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罪過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워 亞細亞大陸에 속하면서도 亞細亞國家임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이 벌인 전쟁을 鬼畜聖戰이라면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과 중국인들을 가장 잔인하게 학살했습니다. 남경대학살에서 목숨을 잃은 중국인 총수가 일본에 떨어진 原爆被害者보다 그 수가 더 많다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殘虐性을 雄辯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 세력들에게 나라를 강탈당한 우리 韓國民들은 祖國光復을 위해, 중국은 일본침략자들을 자기 疆土에서 몰아내기위해 함께 힘을 합쳐 싸웠습니다.

中國大陸은 우리 先祖들이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일본침략세력을 상대로 목숨 바쳐 투쟁했던 獨立運動의 現場이였습니다. 抗日獨立鬪爭 時에 中國人民들이 한국독립운동지도자들에게 보여준 聲援과 支持를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中國人民들이 尊敬하는 故 周恩來 中國總理는 일찍이 伊藤博文을 하얼빈 驛에서 쓰러뜨린 安重根 義士의 長擧야말로 日本에 대한 韓中共同鬪爭의 시작이라고 評價한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40년대에는 韓中文化協會의 創立을 적극 周旋, 支援함으로써 抗日鬪爭을 위한 韓中合作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오늘 中國政府가 이 자리에서 紀念하는 抗日戰爭勝利의 歷史는 비단 中國만의 勝利가 아닙니다. 우리 겨레의 祖國光復으로 이어지는 勝利의 歷史와 脈과 軌를 같이한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제2차 世界大戰에서 侵略勢力 日本은 敗亡했습니다. 그러나 패망으로부터 65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다른 나라를 侵略한 行爲에 대한 反省보다는 왜 敗戰했는가에 대한 反省을 더한층 强調하는 정권들이 오래 동안 집권했습니다

그들은 敗戰 후 하면서 人間性과 平和에 대한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 and Peace)로 東京戰犯裁判에서 處刑당한 사람들을 일본을 위한 愛國者, 義士, 烈士로 추모하는 사람들이 적잖았으며 역대 일본 수상들 가운데는 이들 전쟁범죄자들의 位牌를 奉安한 야스쿠니(靖國)神社에 참배하여 그들의 애국정신을 讚揚, 鼓舞한 바 있었습니다.

최근 새롭게 집권한 일본 민주당 정권이 야스쿠니(靖國) 神社參拜를 중단하고 이웃나라를 침략했던 역사를 다소나마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부족하고 晩時之歎의 감이 있지만 사태의 다행스러운 進展의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은 自己 나라에 文化와 知識과 産業發展의 技術을 傳授해 준 이웃나라들을 一方的으로 侵略하여 갖은 蠻行을 저지른 잘못된 역사를 통절히 반성해야 합니다. 獨逸이 나치의 罪惡相을 반성하고 나치세력이 장악한 영토를 다시 요구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나치즘의 再登場을 막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일본은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인 가운데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歷史를 美化, 承繼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실로 痛嘆할 일입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를 빌어 日本人들은 그들의 侵略的 過去를 徹底히 反省하고 그러한 禽獸와 같은 歷史와의 斷絶을 宣言할 것을 강력히 促求하는 바입니다.

오늘 이 뜻 깊은 행사가 더 이상 침략의 우려가 없어지는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 속에서 共存共榮 하는 동아시아의 世紀를 만드는 契機가 될 것을 祈願하면서 이 행사를 조직한 중국정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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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2일 이영일 총재를 단장으로 중국산동성 威海市가 주최한 '한중수교 18주년 기념 한중문화에술교류의 달'행사 개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을 출발했던 한중문화협회 방중단은 주어진 임무를 잘 마치고 24일 밤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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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막식-좌로부터 張培廷 당서기, 노영민 국회의원, 이영일 총재, 장영달 전 의원 )
이 행사는 한중양국의 서예가, 미술가등 1000여명의 작품이 전시되고 대만 홍콩 작가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된 큰 행사였지만 행사명칭은 "한중문화예술교류의 달"로 정했다.   한국측에서는 이영일 총재를 비롯하여 국회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인 노명민 의원, 전국회의원이었던 장영달 의원, 전남 여수시 김충석시장과 김영규 의장, 한국관광공사의 정용문 칭다오 지회장 등이 참석했다.
 
우리 협회에서는 이만섭 부총재, 박세정 부산관역시 지회장, 송동석 광주광역시 지회장, 이근재 전주지회장, 윤경숙 운영이사, 김종경이사, 박동기 광주지회 고문, 정창엽 광주지회 부회장, 윤정하 운영이사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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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하이 참석한 한중대표단 전원기념좌로부터 정창엽, 송동석,김종경,이근재, 박세정, 총재.윤경숙,이만섭,윤정하, 박동기)

張培廷 威海시당 서기는 첫날 각계대표자들을 威海市 영빈관에 해당하는 東山빈관에 만찬으로 초청,  방문인사들을 두루 환영하고 환영하고 행사의 성공적 게최를 다짐했다. 이영일 총재는 답사겸 건배사를 통해 정치적 수교가 정치적 거리를 가깝게 했다면 문화예술의 교류는 한중양국민들간의 마음의 거리를 더 좁혀준다고 말하고 威海市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데 이제는 마음의 거리까지 가까워지게 되엇다고 평가한 후 이 행사를 준비해온 張培廷 당위 서기와 張劍 준비위원장의 노고를 치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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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당일(22일) 만찬을 마친 후 威海市인민정부는 우리 일행을 경제개발구 화샤루(華夏路1번지)에 있는 웨이하이화샤청(威海華夏城)으로 초대, 산의 계곡과 바다를 360도로 회전하는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중국역사극과 음악, 춤과 무예, 해전모형극을 약 1시간 반에 걸쳐 감상했다. 조안이라는 분이 감독했다는 창작무대를 통해 펼쳐지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가무와 연극으로 표현하는 무대예술앞에 우리 일행들 입에서는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청중들의 반응이었다. 한국에서 같으면 기립박수가 나오거나 기립은 아니더라도 힘찬 박수가 오래도록 이어졌을 것이나 박수를 통한 청중호응이 너무 미약하였고 그것도 기껏해야 한국관중들이 박수를 선도했지만 호응의 미약으로 짧게 끊겼다. 중국이 총량지표상으로는 G2일지 몰라도 문화적으로 G2가 되려면 아직도 요원해 보였다. 박수의 길이와 선진화의 수준은 비례하기 때문이다.            

 행사당일(23일)은 비가와서 屋外행사가 어려웠는데도 주최측은  개막식의 옥외행사를 강행했다. 賀客들은 모두 양쪽의 구름다리밑으로 자리를 옮겨 행사를 참관했고 主席團에 오른 인사들은 檀上에 서서 우산을 들고 행사진행에 참여했다. 주최측이 무리하게 옥외행사를 강행한 이유는 뒤에 알고보니 행사가 성공하려면 폭죽을 터트리는 관행이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어쩔 수없이 옥외행사를 하지않을 수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행사 말미에 동시다발의 폭죽이 터졌다.  중국이 진짜 G2로 불러도 될가를 다시 되새기게 하는 광경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개막식 행사를 마치고 미술과 서예 전시장을 巡回감상했는데 예술문화중심건물의 웅대함과 방대함에는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장도 너무 많고 넓어 다 채우려면 상당한 세월이 흘러야 할 것 같았다. 장 서기가 앞장서서 한국에서 온 노영민 국회의원 등 주석단에 오른 인사들을 안내하는데 너무 빨리 걸어가는 바람에 작품을 감상했는지 전시장을 행진했는지 구별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新羅坊 대신 韓樂坊(한러방)추진
이곳에서 인상적인 것은 한러방(韓樂坊)발전계획이었다. 3국시대 신라를 무역대국으로 발전시카려던 장보고가 산동성 일원에 신라인들의 집단거부지로 신라방을 차린 고사는 우리가 잘 알거니와 장보고의 신라방을 오늘에 되살려 이곳에 한중교류의 새장을 펼친다는 것이 한러방 계획의 참 뜻이 있다고 한다.  신라방이라는 표현을 생각했지만 역사적 고증도 문제려니와 설명의 편의상 한러방이 신라방 보다 쉽다는 취지에서 이렇게 命名된 된 같다.  工程이 약 20% 진척되었는데 鳥瞰圖는 훌륭했다. 준공후 와 볼만한 곳 같다.


오찬을 마친 후 청산터우(成山頭) 일대를 관광했다. 제주 상산포와 같은 분위기였다. 일출봉이라는 명칭도 있어 성산포와 같다는 느낌을 더해주었다. 모두 역사적 유물이라기 보다는 관광용으로 새로 건조한 것들이지만 그나름의 노력은 평가할만했다. 우리 가이드는 진시황이 徐福에게 명하여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떠난 배의 출발점이 이곳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지난 5월 한중문화협회 대표단이 방문한 진황도에서는 그곳이 출발지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홍길도의 탄생지와 ㅊ심청의 탄생지가 두곳이상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굽히지않고 다투는 하는 것과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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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날은 장보고 장군의 유적지가 있는 赤山景區를 들러보았다. 모두 새로운 건조물들이어서 역사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이곳을 찾는 한국인의 발길이 끊기지않는다는 가이드이 설명에 가슴에 뭉클했다. 우리 여행객들의 마음속에 역사의식이 숨쉬고 있음을 알 수있기 때문이다.
 (츠산경구의 진시황, 서복의 석상앞에서)
 오찬은 영성시의 빈관에서 李冠營 산동성 국제우호연락회장이 주관했다. 오붓하고 화려한 오찬이었다.  우리 일행이 세분의 국제우호련 산동지부 간부들과 함께 나누는 오찬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오찬후면 귀국길에 오를 일정이었기 때문에 허리풀고 차분히 즐겁게 마시고 휴식했다. 주최측이  선물을 준비해왔는데 우리는 지난번 제2차 한중민간우호포럼 보고서를 선물로 전달해 주었다.

  귀국후 여성 두분을 제외한 일행들은 이영일 총재 주관의 만찬으로 해단식을 하면서 威海를 다녀온 팀들이 威海클럽을 만들기로 하고 회장은 李根宰  全州지회장이, 총무는 김종경 이사가 맡기로 했다. 이만섭 부총재는 자기 사무실에서 가져온 靈池버섯酒를 일병씩 기념품으로 나누어 주면서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한중문화협회를 발전시키자고 제창,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주 좋은 추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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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의 저서 햇볕정책의 종언이 출간된지 오늘이 3년째 되는 날입니다.
제2판발간후 거의 매진되었으나 3판 간행은 새로 증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출판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이 책 출판을 맡아주신 전예원 사장 김진홍 교수가 작년에 졸지에 별세, 출판활동을 멈췄기에 재판인쇄는 신간으로 새로 집필할 계획입니다.  구입을 원하시는 분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 연락하시면 재고가 있을지 모릅니다.

이 책의 주요골자는 햇볕정책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식 식 햇볕정책의 종언을 말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을 통일을 내다보면서 중국변수를 가미하여 새롭게 집필한 저서를 곧 내놓겠습니다.

항상 성원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영    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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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記溫家寶總理和中韓青少年友好交流團的會面

2010年06月11日 23:28:37  來源: 新華網 【字號 大小】【留言】【打印】【關閉】

6月11日,國務院總理溫家寶在北京中南海與由20位應邀訪問中國的韓國小朋友和19位來自汶川、玉樹地震災區的中國青少年組成的中韓青少年友好交流團會面。新華社記者李學仁 攝

新華網北京6月11日電 題:光輝的太陽屬于你們——記溫家寶總理和中韓青少年友好交流團的會面

記者李斌、李忠發 “溫爺爺好!”“孩子們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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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日下午15時許,中南海紫光閣前,一群身著鮮艷民族服裝的中韓兩國少年兒童,歡呼雀躍地擁向國務院總理溫家寶,緊緊圍在他身邊。

望著中韓青少年友好交流團的孩子們,一向喜歡和青少年在一起的溫家寶總理親切地問長問短。溫總理慈祥的笑容、溫暖的話語,使孩子們原本緊張的心情放松下來,大家你一言我一語,搶著向溫家寶問候。

                                                  (한국청소년방중단과 중국원자바오 총리)

一年前,汶川地震災區少年兒童友好代表團應邀訪問韓國,受到韓國總統李明博夫婦的親切會見和盛情款待。韓方還特別安排保育院的少年兒童與代表團團員結伴交流。今天,20位韓國小朋友應邀訪問中國,並和19位來自汶川、玉樹地震災區的中國青少年組成了交流團。兩國青少年結下的深厚友誼在北京得到延續。

 

中南海內林木蔥鬱,鳥語花香。溫家寶總理與孩子們親切交流,紫光閣前不時傳出歡聲笑語。伴隨著照相機的快門聲,溫家寶總理和中韓兩國小朋友們一張張花朵般的笑臉,定格成難忘的瞬間。

在孩子們的簇擁下,溫家寶和大家一起步行來到紫光閣對面的外賓接待廳。往日莊重的接待廳內,4株高大的散尾葵青翠欲滴,長勢喜人。四周懸挂的彩帶和氣球,把這裏裝點得喜慶熱烈。大廳中間擺放著韓國首爾常綠保育院12歲女孩黃多惠的一幅水彩畫。畫面上,兩個小朋友手拉著手走在林蔭道上。溫家寶稱讚說:“畫得真好。綠色代表生機,孩子象徵未來和希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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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중국의 내정간섭 형 요구를 수용할 것인가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 영 일

 천안함 폭침사건이후 한국 지식인들 가운데는 중국을 마치 북한만을 지원하는 국가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이것은 사실을 잘못 관찰한데 기인한 것 같다. 중국은 언제나 원자바오(溫家寶)총리가 말한 대로 누구 편이 아닌 중국의 국익을 앞세운다. 오히려 천안함 사건으로 북⦁중 관계는 양자관계에서 심각한 변화를 보였다. 북한도발의 천안함 사건은 두 측면에서 중국을 크게 곤혹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건발생의 시점(時點)이다. 중국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온 상해(上海)엑스포 개막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사건이 발생, 자칫 엑스포의 개막과 진행에 큰 위기를 조성할 가능성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한미연합방위체제가 북한을 상대로 국제법상 용인된 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중국은 본의 아니게 한반도의 전쟁위기에 휘말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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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도부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이러한 위험요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북한으로 인해 중국이 경제발전과 외교적 위상정립에 어려움을 겪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2010년 5월초 후진타오(胡錦燾) 주석은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격으로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를 당 대 당 외교형식으로 중국에 초청(사실상 召喚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동지로서 극진한 예우를 하면서도 전례 없이 강경한 담판을 벌여 양국관계를 재조정하고 있다.

 

그간 중국은 북한에 대해서는 양국관계가 냉전형의 동맹이 아닌 국가대 국가관계로 바뀌었다고 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혈맹명분하에 경제 원조를 늘리는 한편, 북한정권의 존속과 안전에 각별한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특히 2009년 10월부터는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를 분리, 북한정권의 존속에 역점을 두는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북한이 중국식의 개혁개방에 나서도록 설득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번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북한의 행동을 강력히 통제하기 위한 자기요구를 드러냈다.

 우선 후(胡)주석은 김정일에게 양국 간의 중요사안(事案)에 대한 사전소통을 요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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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는 앞으로 중요한 문제를 중국과 사전에 협의해서 처리하라는 요구였다. 또 원자바오 총리는 외교적 언사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소개한다고 표현했지만 내용인즉 중국식 개혁개방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정일은 이 두 가지의 내정간섭(內政干涉)형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북한이 중국의 요구를 이처럼 고분고분 수용하기는 양국역사에서 드문 일이다. 중국이 부단히 요구해 온 중국식 개혁개방을 북한이 따르기로 한 점도 특히 눈길을 끈다.

 

그간 중국은 북한이 사전협의 없이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핵실험을 단행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하고 6자회담을 보이콧하는 등 여러 차례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외교적 입지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중국은 ‘책임 있는 강국’이라는 명분 때문에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제에는 동참하면서도 북한이 감당하기 힘든 강경조치를 완화하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북한이 역사적인 혈맹, 양자 간 안보조약을 맺고 있는 중국의 유일한 동맹국이란 점 등을 감안, 모든 문제를 설득과 대화로 풀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 천안함 사태에서는 태도를 바꿔 북⦁중 양자관계를 문제 삼았다. 물론 한국이 조사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북한에 대해 문책(問責)성 조치를 강구한 것이다. 천안함 문제는 중국이 본의 아니게 자칫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내포한 위험천만의 불장난이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정일도 이번에는 중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완전범죄를 목표로 꾸며진 천안함 사고가 북 측의 소행으로 들통이나 독자적으로 뒷감당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김정일은 중국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불어 닥치는 국제정치적 위기 외에도 김정일 자신의 건강위기, 화폐개혁실패에서 초래된 경제위기, 정권승계위기 등 체제의 존속을 위협하는 위기 앞에서 중국의 요구를 마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지켜보아야 할 것은 김정일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긴급대피용으로 중국의 요구를 일시적으로 수용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앞날을 생각해서 내린 합의인지를 두고 보아야한다. 그러나 중국도 북한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임을 간파하고 조치를 취한 것 같다.

 앞으로 북한의 중국과의 사전소통약속이 지켜진다면 추가적인 북한의 대남도발로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는 억제될 가능성이 많고 6자회담재개도 예상된다. 또 서해상에서의 새로운 도발 우려도 줄어들 것이다. 특히 최근 관심을 모으는 개성공단문제도 한국이 폐쇄하지 않는 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과연 중국이 권하는 개혁개방정책을 그대로 따를 것인지는 의문의 여기자 남는다.

북한에는 중국식 개혁개방을 가로막는 권력세습이라는 체제내적 약점이 있다. 권력세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주민들을 외부세계의 지식과 정보로부터 완전 차단해야 한다. 둘째로 김일성, 김정일 개인의 우상화를 위해 심각한 수준으로 날조, 왜곡해 놓은 가계(家系)의 역사와 항일투쟁사의 진실노출을 우려한다.

셋째로 정권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령(首領)론을 내세워 혁명혈통(革命血統)을 대대로 전수(傳受)하자면서 전체 인민을 수령을 위해 목숨을 바칠 존재로 규정, 위민(爲民)노선을 부정해왔다. 이 점에서 중국과 북한은 인민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중국공산당은 당 존립의 정당성근거가 무슨 수단을 빌어서라도 인민에게 빵을 주는(黑猫白猫)위민(爲民)통치에 있음을 강조하는데 비해 북한에는 이러한 의미의 인민도, 통치도 없다. 이것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따를 수 없는 북한의 약점이다.

 북한은 선군정치를 강조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주변국들을 위협했지만 인민의 생계를 보장할 경제를 만들지 못했다. 이제라도 늦었지만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서둘러야 북한주민들이 아사(餓死)로 내몰리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현재의 난경(難境)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긴급한 것이 핵 포기이며 동시에 선군정치를 끝내는 것이다.
 
이러한 결단 없이는 중국식 개혁개방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자는 북한이 하루라도 빨리 중국식 개혁개방을 실천, 북한 동포들이 굶지 않게 되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정치지형 속에서 한중관계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양자관계를 잘 이끌어 가는 데는 노련한 분석과 지혜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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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태로 본 중국의 대북정책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  영  일


천안함 침몰사건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 때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북한은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침략행위를 자행했고 정전협정을 명백히 위반했다. 피해자인 한국은 유엔안보리에 제소하거나 응분의 자위권을 발동할 명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자위권의 행사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전시의 경우 한미양국대통령의 사전협의를 거쳐 행사하는 작전 지휘권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미 간에 긴밀한 협의가 뒤따를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이 취할 최선의 방도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취할 수 있는 대북제재와 병행하여 한미 간의 협력을 통해 북측에 천안함 사건을 훨씬 능가할만한 아픔과 부담을 안겨주어 제2의 천안함 사건에의 유혹을 단호히 차단하는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의 침략책임을 묻기 위해 유엔안보리를 통한 제재를 추진해야 한다. 물론 유엔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실효성에 문제가 없진 않지만 유엔이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도전을 묵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후견국인 중국이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지난 2006년의 안보리 결의 1718호와 2009년의 1874호의 경우에서처럼 이번에도 동참 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한미연합방위체제에 대한 도발이었기 때문에 한미양국은 군사적으로 보복 조치할 수 있는 명분을 얻고 있다. 따라서 중국도 군사적 보복에서 비롯되는 동북아시아 정세의 악화를 원치 않는다면 유엔안보리를 통한 제재결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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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5월3일부터 4일간 중국공산당의 호출로 북경을 방문한 김정일과 후진타오 주석)
그러나 천암함 침몰 사건 이후 북한의 김정일은 5월 3일부터 4박5일간 중국을 비공식 방문, 당대당(黨對黨) 수준의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흔히 김정일의 중국방문의 성격을 놓고 중국이 먼저 방문을 요구했다는 설과 북한 측이 내부경제사정을 풀기위해 방문을 희망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번의 경우는 “국가대 국가” 외교 아닌 “당대당” 외교라는 중국특유의 외교방식으로 중공당이 당대외연락부를 통해 비공식으로 김정일을 초청한 것이다.

중국 측으로서는 그들이 수년 동안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통해 준비해 온 상해 엑스포 개막즉전에 뜻하지 않은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로 비화하여 한반도정세가 악화된다면 상해엑스포는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중국의 국익에 역행하는 사태의 전개를 막기 위해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엑스포 개막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서는 천암함 사건의 과학적 진상 구명을 요구했고 북한 측에 대해서는 김정일을 중국으로 불러 들여 사태의 더 이상의 악화를 방지하도록 단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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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엑스포2010개막식에 참석한 이대통령내외와 후주석 내외)
현시점에서 중국의 당면한 국가이익은 상해 엑스포의 성공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은 김정일을 급히 중국으로 불러들였다. 중국TV에 비친 김정일의 모습은 한마디로 환자의 몰골 그대로였다. 머리는 듬성듬성 빠져있고 왼쪽 다리는 절고 한쪽 팔도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서 정상외교에 나서기에는 너무 부적절했다. 그러나 중국은 상해엑스포 개막식에 북한을 대표해서 참석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제쳐두고 실력자 김정일을 바로 불러들인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조치를 통해 상해 엑스포의 급한 불은 일단 꺼놓고 나머지는 외교를 통해 천안함 사건에 접근할 것이다. 북한 측은 천암함 사건과 자신들이 무관하다고 강변하지만 북한의 침략행위가 명백히 증거로서 밝혀진 이상 유엔안보리의 제재는 피할 수 없다. 중국도 천안함 사건을 한미양국의 자위권행사에 내맡기는 것 보다는 안보리 제재를 선택할 것이다. 안보리가 북한의 천안함 사태에 적절한 조치를 강구치 못함으로 해서 미7함대를 비롯한 주요전함들이 서해와 동해로 몰려들고 한국도 비상사태를 선언하여 한반도 긴장상태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발전하는 것을 중국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까지는 북한이 선군정치, 강성대국, 세습정치를 추구하면서 일으키는 의외의 사고에 대해서는 심지어 핵 실험까지도 중국의 국익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겉으로는 유감스럽다고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많은 경우에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중국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카드로 이용해왔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는 상해 엑스포의 성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 위협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김정일을 곧 바로 불러들인 후 당대당 외교의 특색을 살려 극진히 예우를 하면서도 실질에서는 향후 북한이 제반문제에서 중국과의 사전소통을 강력히 요구하고 중국식 개혁개방을 본받으라는 내정간섭적 통고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중국은 커졌고 북한은 핵 놀음을 하면서도 왜소해졌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천안함 폭침사고에 대해서도 중국이 뒤를 잘 봐줄 것을 기대하면서 모든 수모를 감수하고 쓸쓸히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역사는 천안함의 비극에 대해 김정일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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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통일신문 2010년 3월29일 3면과 한국국제문제연구원 간행의 國際問題 2010 4월호(The Journal of International Affairs)pp.53-56에 전재되었음)   


                    중국 지식인들이 말하는 북한 이야기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         영     일

최근 한중간은 물론 미국 일본 등지에서 열리는 주요 학술회의에 중국학자들이 주제발표자로 또는 토론 참가자로 대거 초청받고 있다. 중국의 저명 학자들을 초청하려면 종래와는 달리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에 예약해야할 만큼 중국학자들의 견해를 구하는 모임이 부쩍 늘고 있다.
 
중국의 경제발전수준이 총량 면에서 세계2위 내지 3위권에 진입했고 미국의 달러화 보유량도 세계 1위를 점할 만큼 향상된 결과이다. 이제 중국을 G2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의례적인 형용사가 아니라 국제정치의 실질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한반도 내지 동북아 전략문제 전문가들이 오늘의 북한을 어떻게 평가하고 인식하고 있는가는 우리의 중요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 중국전문가들은 중국학자들을 국제파와 전통파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성향에 맞추어 관련 학술회의에 초청하는 것 같다. 국제파들은 대부분이 미국 등 서구지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거나 외교부문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학자들이다. 이들은 과거 냉전시기에는 북한과 중국은 혈맹관계였지만 한중간에 국교가 열리고 남북한이 다 같이 유엔에 가입한 현재는 혈맹관계의 북중 관계는 끝났고 정상적인 국가대 국가 간의 관계라고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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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후진타오주석과 김정일, 하단 6자회담의 오찬풍경

특히 한중 양국이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한중관계를 한 차원 더 높인 현 단계에서는 한중관계를 중북관계에 못지않게 중시한다고 한다. 특히 북한의 2009년의 제2차 핵실험은 2006년의 제1차 핵실험과는 달리 북 핵을 바라보는 중국정부의 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북한의 제1차 핵실험 때만해도 북한의 핵실험은 대미협상에서 우위를 노린 외교행위의 일환으로 보면서 외교적 해결이 가능한 문제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2차 핵 실험이 있은 후에는 북한의 의도가 핵보유국가로서의 지위획득에 목적을 둔 것으로 평가하고 6자회담 같은 외교방식으로 해결가능한 문제인가에 심각한 우려를 자아냈다고 분석한다.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하면서 핵 폐기에 동의할 것 같은 제스처는 취하지만 실제로는 핵 보유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북경대학의 다른 학자는 북한의 핵개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고 김정일 정권(Kim's Household)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주저 없이 평가한다.
 
그간 미국은 북한이 핵 포기협상에 응하도록 하기 위해 북한을 침공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다짐하는 서면약속(2009년 부시정부)을 해주었고 북한에 에너지로서 중유를 제공했다.(클린턴과 부시) 이러한 미국이 북한을 압살하는 적대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우기면서 이를 핵개발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북한의 태도를 수용하지 않는다. 중국이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으로서 비토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견제하고 응징하는 안보리의 제재결의에 두 번이나 찬표를 던진 것은 북한에 대한 중국 측의 우려와 유감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중국의 전통파들은 국제파와 입장이 다르다. 이들은 중국과 조선(북)의 우호관계는 조선(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불가결한 기초이며 기초가 흔들리면 모든 평화와 발전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면서 오늘의 북 핵 사태는 1964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을 당시에 미국이 중국에 보인 태도를 상기해보라면서 그 당시 중국을 비하, 고립, 봉쇄시키는 미국의 정책이 오늘날 북한에도 되풀이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맞서 북한이 핵 개발에 나선 것은 정당한 자위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핵이 한 나라에 독점되었을 때는 전쟁수단이 되었지만 여러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핵무기는 더 이상 전쟁수단이 되지 않게 되었다면서 국제사회가 북한을 "악마화(惡魔化)"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또 북핵문제는 반세기를 넘기도록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북미대결구도의 산물이며 미국의 북 핵카드의 본질은 대중 포위 전략을 완결함과 동시에 나아가 동아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지역 전체, 특별히 석유 및 천연가스 자원들에 대한 자신의 패권적 지배를 관철시키려는 것으로 분석한다.

중국의 한 언론인은 자립자강의 사회주의 북한의 존재는 중국변경안정의 보호벽이 된다고 지적하고 중조(中朝)맹우관계가 일단 파열하면 “자기편을 불리하게 하고 적을 기쁘게 하여(親痛仇快) 가장 크게 손해를 보는 것은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지식인 사회의 이 같은 두 가지 흐름은 중국정부의 대북한 정책에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고 어느 면에서는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유엔외교와 대서방정책에서는 국제파의 주장이 많이 채택되는데 반해 중국의 대내정책차원의 대북정책에서는 전통파의 입장을 살리는 측면이 엿보인다. 동시에 중국정부는 북 핵이 장기적으로는 중국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지만 당면해서는 북한의 붕괴나 와해가 중국안보에 더 절실한 부담과 위협이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최근에 논의가 증폭되는 북한내부의 급변사태에 관해서도 북한의 붕괴방지가 중국의 국익에 일치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정부의 이런 태도나 입장에 대해서는 전통파나 국제파의 시각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요즈음 이 두 학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북 핵 처리방도는 북한정권의 와해나 붕괴를 막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에 따르도록 하여 핵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자는 쪽으로 집약된다.

 최근 중국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항만, 도로, 철도건설에 투자를 대폭 늘리고 나진항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창지투(長吉圖-창춘-엔지-투먼)프로젝트는 그 의도가 북한의 개혁개방유도정책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음과 동시에 북한경제를 중국에 예속시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양면성을 띄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특히 화폐개혁의 실패로 김정일의 핵심지지기반이 내부적으로 크게 붕괴, 동요하는 시점에서 취하는 중국의 이러한 정책은 정책의도를 관철하기가 한층 더 용이할 것이다. 최근 경제적 궁지에 몰린 북한은 관광객의 신변안전보장을 요구하는 한국 측 주장을 일축하면서 금강산 관광 사업마저 중국에 넘기겠다고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북 핵문제나 북한의 개혁개방문제는 중국이나 미국에게 보다는 우리 한국의 장래에 더 크고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손을 놓고 앉아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대화를 지켜보면서 그 결과에 따라 한국의 대응전략을 세우려는 안이한 자세를 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한국은 G20의장국이 될 만큼 성장한 대한민국의 역량에 걸맞게 핵문제에 진전이 없다면 핵문제가 진전되도록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강구해야 하고 북한지역의 개혁개방을 위한 인센티브도 능동적으로 제공하는 협상주도력을 발휘해야한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의 햇볕정책처럼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지도 못하면서 선군정치나 핵개발을 뒷받침했던 과거의 전철을 밟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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