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굿 소사이어티 Issue 레터 - 2011년 4월 제10호에서 퍼온 것임을 밝힙니다.
성급한 국사 필수화 약인가,독인가 강규형 | 2011-04-27 14:32:02 | 조회 166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역사교육, 특히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기억의 공유’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얻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한국사를 필수로 한다는 정책은 타당함이 있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교육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한국사 필수 논의 이전에 국사교육의 여러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방향을 찾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일제강점 35년에 대한 치욕을 극복하고자 민족주의를 북돋는 국사교육이 광복 후 강조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노력은 결실을 이뤄 자긍심을 갖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나타났다. 한국의 국사 교육은 역사 인식의 주체를 국민 혹은 국가가 아니라 민족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민중적 관점을 강조했다.
그 결과는 한편으론 편협하고 폐쇄적인 복고적(復古的) 민족주의, 다른 한편으론 마오쩌둥(毛澤東)주의에 영향을 받은 좌파적 민족주의로 귀결됐다. 권위주의 정부 시기의 국사학에 대한 특혜에 가까운 전폭적 지원은 국사학계를 안이하고 자족적이고 구태의연한 시각과 서술에 머물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국사 교과서의 특징과 문제점 국사 교과서의 또 다른 특징은 내재적(內在的) 발전론에 입각해서 근대를 열강의 침략과 그것에 대한 저항이라는 이원적(二元的)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점이다. 반면 조선왕조체제의 내적 취약성과 자폐적(自閉的) 성격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국의 근·현대는 좋건 싫건 간에 국제관계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는데도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과 서술이 무시되고 있다. 즉 폐쇄적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일국사(一國史)적 관점에 빠져버려 한국사를 세계사적 시야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현대사 서술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적 서술, 대한민국의 성취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북한체제에 대한 우호적 서술도 강하게 나타났다.
한국은 역사학과가 한국사·동양사·서양사로 나누어진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심지어 국사학과만 있는 대학들도 있다. 그 결과 같은 역사학 내부에서도 교류가 단절되는 경향이 있다. 현대 학문은 학문 간 통섭(通涉)을 중시하는 데 비해 한국의 사학계는 역사학 내부에서도 벽을 쌓고 있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국사학계 일부에서는 서양사나 동양사와의 교류도 없는 채 한국사라는 좁은 틀 안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새로 나온 ‘한국사’ 교과서들은 이전 교과서들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크게 봐서는 기존의 한계를 못 벗어나고 있다. 암기 위주의 편성도 여전하다. 전문가가 읽어도 지겨운 책을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할 수 있나. 나는 (원래 역사교과서로 간행되기로 했던) 한국사 교과서 검인정 1차과정인 연구위원으로 참여해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2차과정인 검정과정을 통과한 문제 내용이 상당수 교과서에 수록됐다. 교과서의 문제점을 놓고 역사교육학계와 국사학계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까지 보인다. 탈락한 일부 교과서는 현행 교과서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친(親) 북한 체제적 서술 신천학살 사건을 묘사한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은 북한 ‘아지프로(선전선동)’의 산물이었다. 실제 황해도 신천에서 학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지역의 좌우대립에서 일어난 것이지 북한의 대외적인 선전선동이 주장하는 미군과 국군의 학살이 아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피카소는 북한 선전에 휘둘려 격분해서 이 그림을 그렸고 미군의 학살을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남침론을 부정했던 브루스 커밍스의 책 표지에도 실린 그림이다. 이것은 한 교과서가 교묘히 왜곡 표현한 것처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전쟁을 비판한 작품”이 아니다. 많은 교과서 시안이 사전에 짜맞춘 듯 이 사진을 매우 크게 걸어놓았고, 어떤 시안은 미군이 자행한 학살의 예로 들었다. 결국 이 사진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데도 두 교과서에 실렸다.
은연중 아지프로에 놀아난 셈이다. 국사 필수화보다 중요한 것 고등학교 과정 국사필수화와 공무원 임용과정 및 고시에 국사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국사 필수화와 역사교육 강화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필수화하고 시험에 포함한다고 해서 역사의식과 국가관과 세계관이 바로잡힌다는 것은 얄팍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만약 국사교육을 시키면 시킬수록 더 국가관이 나빠진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것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면 먹여야 한다. 그렇다고 오래돼서 상한 음식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효용성이 다하고 낡아빠졌으며 왜곡된 정보로 가득 찬 한국사를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낡은 체계를 새로 고치는 것은 많은 시간을 요하는 문제다.
그러나 틀린 사실을 바로잡는 것은 가능하다. 국사 필수화를 성급히 시행하기 전에 현행 교과서의 중장기 및 단기 개정 작업부터 했어야 옳은 순서였다. 반성과 개선이 있고 나서야 한국사 필수가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것이다. 또한 일선 역사교육 현장의 편향성 문제도 심각하다. 제일 문제 많고 편향된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채택률을 보였던 것은 그런 서술이 교사들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전교조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사 교육은 민족, 민중, 통일지상주의라는 협소하고 폐쇄적인 사관(史觀)에서 탈피해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국제적 관점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자기비하’적인 역사관과 ‘자화자찬’식 서술이라는 양극단적인 접근에서 탈피해야 한다.
의도나 선전보다는 엄밀한 사료비판을 통해 입증된 사실을 중심으로 명암과 공과를 균형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특히 1948년 대한민국 체제가 어려움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이룩한 성과를 충분히 서술해야 한다.
성급한 국사 필수화 약인가,독인가 강규형 | 2011-04-27 14:32:02 | 조회 166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역사교육, 특히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기억의 공유’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얻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한국사를 필수로 한다는 정책은 타당함이 있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교육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한국사 필수 논의 이전에 국사교육의 여러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방향을 찾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일제강점 35년에 대한 치욕을 극복하고자 민족주의를 북돋는 국사교육이 광복 후 강조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노력은 결실을 이뤄 자긍심을 갖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나타났다. 한국의 국사 교육은 역사 인식의 주체를 국민 혹은 국가가 아니라 민족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민중적 관점을 강조했다.
그 결과는 한편으론 편협하고 폐쇄적인 복고적(復古的) 민족주의, 다른 한편으론 마오쩌둥(毛澤東)주의에 영향을 받은 좌파적 민족주의로 귀결됐다. 권위주의 정부 시기의 국사학에 대한 특혜에 가까운 전폭적 지원은 국사학계를 안이하고 자족적이고 구태의연한 시각과 서술에 머물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국사 교과서의 특징과 문제점 국사 교과서의 또 다른 특징은 내재적(內在的) 발전론에 입각해서 근대를 열강의 침략과 그것에 대한 저항이라는 이원적(二元的)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점이다. 반면 조선왕조체제의 내적 취약성과 자폐적(自閉的) 성격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국의 근·현대는 좋건 싫건 간에 국제관계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는데도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과 서술이 무시되고 있다. 즉 폐쇄적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일국사(一國史)적 관점에 빠져버려 한국사를 세계사적 시야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현대사 서술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적 서술, 대한민국의 성취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북한체제에 대한 우호적 서술도 강하게 나타났다.
한국은 역사학과가 한국사·동양사·서양사로 나누어진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심지어 국사학과만 있는 대학들도 있다. 그 결과 같은 역사학 내부에서도 교류가 단절되는 경향이 있다. 현대 학문은 학문 간 통섭(通涉)을 중시하는 데 비해 한국의 사학계는 역사학 내부에서도 벽을 쌓고 있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국사학계 일부에서는 서양사나 동양사와의 교류도 없는 채 한국사라는 좁은 틀 안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새로 나온 ‘한국사’ 교과서들은 이전 교과서들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크게 봐서는 기존의 한계를 못 벗어나고 있다. 암기 위주의 편성도 여전하다. 전문가가 읽어도 지겨운 책을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할 수 있나. 나는 (원래 역사교과서로 간행되기로 했던) 한국사 교과서 검인정 1차과정인 연구위원으로 참여해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2차과정인 검정과정을 통과한 문제 내용이 상당수 교과서에 수록됐다. 교과서의 문제점을 놓고 역사교육학계와 국사학계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까지 보인다. 탈락한 일부 교과서는 현행 교과서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친(親) 북한 체제적 서술 신천학살 사건을 묘사한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은 북한 ‘아지프로(선전선동)’의 산물이었다. 실제 황해도 신천에서 학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지역의 좌우대립에서 일어난 것이지 북한의 대외적인 선전선동이 주장하는 미군과 국군의 학살이 아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피카소는 북한 선전에 휘둘려 격분해서 이 그림을 그렸고 미군의 학살을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남침론을 부정했던 브루스 커밍스의 책 표지에도 실린 그림이다. 이것은 한 교과서가 교묘히 왜곡 표현한 것처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전쟁을 비판한 작품”이 아니다. 많은 교과서 시안이 사전에 짜맞춘 듯 이 사진을 매우 크게 걸어놓았고, 어떤 시안은 미군이 자행한 학살의 예로 들었다. 결국 이 사진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데도 두 교과서에 실렸다.
은연중 아지프로에 놀아난 셈이다. 국사 필수화보다 중요한 것 고등학교 과정 국사필수화와 공무원 임용과정 및 고시에 국사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국사 필수화와 역사교육 강화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필수화하고 시험에 포함한다고 해서 역사의식과 국가관과 세계관이 바로잡힌다는 것은 얄팍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만약 국사교육을 시키면 시킬수록 더 국가관이 나빠진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것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면 먹여야 한다. 그렇다고 오래돼서 상한 음식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효용성이 다하고 낡아빠졌으며 왜곡된 정보로 가득 찬 한국사를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낡은 체계를 새로 고치는 것은 많은 시간을 요하는 문제다.
그러나 틀린 사실을 바로잡는 것은 가능하다. 국사 필수화를 성급히 시행하기 전에 현행 교과서의 중장기 및 단기 개정 작업부터 했어야 옳은 순서였다. 반성과 개선이 있고 나서야 한국사 필수가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것이다. 또한 일선 역사교육 현장의 편향성 문제도 심각하다. 제일 문제 많고 편향된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채택률을 보였던 것은 그런 서술이 교사들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전교조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사 교육은 민족, 민중, 통일지상주의라는 협소하고 폐쇄적인 사관(史觀)에서 탈피해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국제적 관점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자기비하’적인 역사관과 ‘자화자찬’식 서술이라는 양극단적인 접근에서 탈피해야 한다.
의도나 선전보다는 엄밀한 사료비판을 통해 입증된 사실을 중심으로 명암과 공과를 균형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특히 1948년 대한민국 체제가 어려움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이룩한 성과를 충분히 서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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