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哈彌濱)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한국선수단 금메달 시상식전에서 이영일 총재와 채영덕 부총재(우)]

 필자는 하얼빈 시가 주최한 제24회 동계 유니버시아드 개막식에 하얼빈 시정부의 초청을 받아 지난 2월 18일부터 20일까지 2박3일의 일정으로 하얼빈 시를 방문했다. 하얼빈 시정부는 한중문화협회 총재인 나와 蔡泳德 부총재를 항공료와 滯在費까지 부담하면서 초청해주었다. 하얼빈에서 가진 두 차례 어린이심장병 환자 수술지원에 대한 사의표시 같았다.

도착당일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 개막식에 참석하려면 두 시간 전에 하얼빈 실내체육관에 입장해야 했다. 중국 돈 3800위안의 입장료는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요즈음 시세로 80만원을 상회하는 거금인데도 입구는 사람들로 이어졌다. 우리 일행은 하얼빈 아동병원의 승용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갔는데 테러대비를 명분으로 행사장 주위는 완전히 인민해방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있었다. 차에서 내려 행사장 까지 약 15분가량 걸어서 들어가야 하는데 체감온도 40도라는 혹독한 추위 때문에 목에 두른 머플러를 꺼내 귀를 막을 정도였다. 개막식이 실내행사이고 승용차로 가기 때문에 추위대비가 소홀했던 것이 실책이었다.

(이영일 총재와 채영덕 부총재가  태극기가 올라가는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다.)

북만주 땅인 하얼빈의 겨울은 역시 삭풍이 몰아치는 寒帶였다. 오후부터는 으레 예리한 추위가 두텁게 입은 옷 사이를 뚫고 들어올 만큼 무서운 寒冷 강풍이 불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실내에서 열린 개막행사는 너무 현란하고 아름다웠다.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만은 못하지만 그때 동원되었던 기량이 십분 발휘된 탓인지 LED를 이용한 동영상, 스크린, 무대 위의 율동, 화려한 음악과 무용이 조화를 이루는 개막식이었다. 화평굴기(和平崛起)의 중국을 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관중들의 박수와 함성역시 선진국을 육박하고 있었다. 후진국들의 특성중의 하나인 단조롭고 짧은 박수가 아니고 길고 우렁찬 박수와 함성이 개막식의 현장을 메웠다. 중국의 전통을 말해주는 복식과 음률과 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서구적인 것이 분위기를 장악했다.

이튿날 아침에는 한국선수들이 출전하는 스케이트 경기장을 찾았다. 스피드 스케이트 500M 경기에 한국의 남녀선수들이 출전했는데 남자경기에서는 한국의 李康石이 0.08초로 중국 선수를 앞질러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여자에서는 李相和 선수가 중국선수를 단연 앞서 금메달을 땄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태극기가 게양되는 가운데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국제경기 시상식을 보았다. 매일 한국을 향하여 전면대결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북한에서는 한명의 선수도 참석치 않았다. 우리 선수들은 북의 전쟁 공갈이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평소에 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중국, 러시아 등 동계스포츠강국 선수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 너무 자랑스러웠다. 나는 중국 관중들 틈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서서 이강석, 이상화 이름을 힘차게 불렀다. 맥도날드 햄버거로 오찬을 때우면서 응원에 열을 올렸다.

시상식이 끝난 후 우리는 松花江 속의 섬 太陽島에 설치된 눈 축제와 氷燈祭를 감상하게 되었다. 오후 시간부터는 혹서의 바람이 분다기에 과거 러시아 출장 때 사둔 털모자를 쓰고 두터운 장갑에 눈길에서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만든 구두를 신고 오리털 파커로 단단히 무장했다. 중국인들이 만든 눈 축제 현장은 하나의 도시가 아틀리에로 변한 것 같았다. 인공으로 만든 흰 눈을 마치 고령토처럼 이용하여 서양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석고 인물 데상(dessin)과 조각상이 제작, 전시되어 있었다. 마치 희랍의 신전이나 건축물을 보는 것과 같았다.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핀란드 은행이라고 쓴 건물을 눈덩어리로 실물크기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전시 작품들 사이사이로 차나 맥주를 파는 공간을 만들어 관람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더욱 감동적인 것은 氷燈祭의 현장이다. 하나의 거대한 얼음덩이 도시가 하얼빈의 번화가 중앙로를 그대로 재현시켜 太陽島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모든 소재가 얼음으로 된 거대한 시가지의 건물들이 건물 속에 내장된 오색영롱한 각양각색의 전등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규모가 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짜임새와 구도가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감동 없이는 감상할 수 없는 예술품이었다. 눈 축제와 빙등제의 현장은 나의 시선을 강력히 끌지만 혹심한 추위는 나의 방한장비를 모두 무력화 시켜버렸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체감추위 때문에 축제의 현장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여행은 젊어서 다닐 일이다. 내 또래의 나이에 혹한을 뚫고 눈 축제를 감상한다는 것은 하나의 객기가 아닐까.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도 하루하루 현대화, 선진화를 향하여 변해가는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실로 부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외부세계로부터 반민주적이라는 비판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나라를 제대로 이끌 능력과 지도력이 있다고 확실히 검증된 자만을 국가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드는 중국의 지도자 선출방식이 오늘의 중국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나는 杜甫같은 심정으로 한국의 현재를 생각하면서 하얼빈 여정을 마쳤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