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미치게 만들려면 급한 것은 경선 룰이 아니라 지지 세력의 저변확충이다]
이영일 (전 3선 국회의원)
강재섭 한나라 당 대표가 당내 대통령후보 경선 룰을 졸지에 발표했다가 분당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논의는 현시점에서 時利를 얻지 못하고 있다. 우선 현시점에서 여권이 대선후보를 정할 전망도, 가능성 마저도 보이지 않는 불투명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당인 열린 우리 당은 4분5열의 해체과정에 함입되어 있다.
한나라당 대선 주자로서 이명박, 박근혜 씨에 대한 지지가 유권자의 과반을 훨씬 넘어 여권이 후보를 내놓을 엄두를 내지 못할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간파한 노무현대통령은 열린 우리 당을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한명숙 전 총리, 이해찬 전 총리, 김혁규 전 경남지사 등을 대통령후보로 점찍어 두면서 이명박, 박근혜 간의 경선갈등을
이용, 한나라당의 분당을 적극 유도하고 남북정상회담을 국민지지미끼로 하는 정권재창출 전략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면서 경선정국을 주도해야 한다. 강재섭 대표가 서둘러야 할 일은 경선 룰이 아니라 분당을 막고 자당의
유력후보들을 여권의 공세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강재섭 대표가 서두르고 있는 경선 룰은 정치가 아닌 당무행정이다. 그는 자신의 대표직을
지키기 위해 경선 룰을 서둘러 발표했으나 그것은 결코 탁월한 선택이 아니다. 여당보다 앞서 야당이 대통령후보를
먼저 결정하는 일은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죽음의 키스에 다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의 결합체이며 장점과 단점의 결합체이다. 약점과 단점을 극대화하고
강점과 장점을 약화시키면 어떤 강한 힘도 버틸 수 없는 것이다. 야당이 여당에 앞서 후보를 정하면 여당은
맞춤형 후보를 내세우면서 여당과 제3당, 심지어 북한노동당의
힘까지를 동원하고 매스컴을 활용하여 야당후보의 강점을 , 장점을 약화시키고 단점과 약점을 극대화시켜
나가면 그 야당 대선후보는 본선을 목전에 두고 滿身瘡痍된 몸으로 퇴진할 수도 있다.
강재섭 대표는 이런 가능성 까지를 내다보아야 하며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를 서둘러 정할 필요가 없다. 여당이
후보를 정할 때까지 느긋이 기다리면서 한나라당의 조직과 선전을 경선몰이를 통해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여권이 후보를 정할 때 까지 자당의 유력경선 주자들로 하여금 국민 속에 더 깊숙이 파고 들도록 지원하고
후보자들을 보호하고 당의 단합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여당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 경선 주자들만을 놓고 실시한 여론조사를 경선자료로 쓰거나 이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당후보가 정해지고 여야 간의 여론조사를 실시할
상황이 도래할 때 까지 야당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여당후보가 정해진 후에 야당은 경선을 실시, 유력자를
선출한다. 여권후보를 제압할 맞춤후보를 내놓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강재섭 대표가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여당이 후보를 정할 때 까지 느긋하게 버티면서 자당의 세력 확충과 지지기반의 저변확대에 주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 예측이 빗나간 데서 오는 쇼크로 정신적 광란상태에 빠질 것이다.
경선 룰은 여당후보가 정해진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고 분단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 지금 강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자세이며
여기에 한나라당의 승리가 있을 것이다.
이 연설문은 2007년 4월 25일 한민족복지재단운영이사회 조찬모임에서 1시간 동안 행한 연설문 전문이며 이에 앞서 4월 13일 상록포럼(매리어트호텔 센트랄시티에서도 同一한 연설을 한 바 있음)
21 세기와 통일문제
이 영 일
1.시효 지난 콤플렉스를 버리고 주변 환경을 새롭게 보자
21세기가 7년을 맞는 시점이다. 그러나 세기가
바뀐 지 7년이 지나고 있어도 우리는 20세기의 역사 속에서 그것에 의지하여 통일 상황을 예측하고 전망했던 관점과 시각을 크게 바꾸지 못하고 있거나 설령 바꾸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충분히 내
면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0세기의 통일문제가 강력한 군대를 앞세워 무력통일을 획책하는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적화통일 음모를 어떻게 막고 그들의 배후세 력의 친북지원을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 것인가에 역점을 두었다면 21세기의 통일문제는 20세기와는 정반대되는 상황 속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우선 지구최빈국으로 전락해버린 북한을 어떻게 관리하고 변화시켜야 우리의 통일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두어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이후 20세기의 후반기를 다음 세 가지 콤플렉스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 우리 의식의 저변에 큰 자리를 잡고 惰性화된 콤플렉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가난한 약소국이라는 콤플렉스,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을 추구하고 있다는 콤플렉스, 그리고 주한미국의 주둔이라는 밀착지원(Close
Deterrence)이 국가안보의 최선책이라는 대미의존콤플렉스가 그것이다.
[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한 약소국이 아니다]
21세기에 접어든지 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조선시대처럼 약소국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한국모델을 본받자고 칭송하는 경제력 세계 11위의 국가로 성장했고 세계선진국클럽인 OECD 회원국이기도 하다.
현시점에서 우리의 종합국력을 따져 보면 @ 국토면적은 992만6000ha로 세계230국 중 110위에 지나지 않지만 @ 인구는 25위권(남북한 합치면 17위)에 속한다.
@ 원자력기술에 있어서는 약20개의 핵발전소를 보유한 세계 5위의 원자력강국이다. 36t〜37t의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는 7,251t이상의 폐 핵연료와 흑연중수로 감속로를 보유하고 있다.
@ 국방비는 2005년도 224억달러로 세계8위수준이다. 영국정부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핵과 생화학을 제외한 현대전 군사력분야에서 세계150여국 중 제 6위로 발표하고 있다.
@자동차기술은 세계6위이지만
@인터넷이나 휴대폰은 세계1위를 점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한 약소국이 아니다. 그런 콤플렉스를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뇌리가운데는 아직도 가난콤플렉스가 살아있으며 새 세대보다는 기성세대 가운데 이 콤플렉스의 뿌리가 깊다.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엿본다는 가정도 현실이 아니다]
또 우리는 20세기 중엽에 겪었던 북한의 무력침략과 그것에서 비롯된 간단없는 남북긴장과 갈등 때문에 우리의 의식 속에는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남침 콤플렉스가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사뭇 달라졌다. 우리가 6.25동란의 전재복구를 갓 끝낸 1961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1인당
GNP는 87달러이었고 북한의 그것은 104달러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국력은 앞에서 본바와 같이 1인당 소득에서 15,000달러를 넘어 20000달러 선에 근접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지구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했다. 북한은 이제 무력남침보다는 자기 체제보존에 급급하고
있으며 남북한의 협력관계가 긴밀해질수록 북측의 한국에 대한 의존도는높아진다.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 학자는 그의 최근 논문에서 “일 년에 3개월은 주민들이 외부의 식량지원이 없으면 굶는 나라, 그러나 연간
국방비가 GDP 대비 30%를 초과하며 1회에 3,000억 원이 소요되는 핵실험을 하는 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기회만 되면 탈북을 꿈꾸는 나라, 선군정치를
강조하는 국가에서 사병들이 군량미 부족으로 눈 덮인 겨울 산에서 먹을 것을 찾아 해매며 민가에 내려가 약탈하지 않는 이상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나라, 석유도 생산되지 않으며 벤츠자동차가 평양 시내에서 가장 흔한 차종인 나라, 평양에 거주하는 상위 1%의 핵심계층 23만여 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살림살이가 바닥 수준으로 비슷한 나라,
이것이 2007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모습이다.” 북한의 형편이 이러할 진데 우리가 남침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우리가 원하는 만큼 기대할 수도, 유도할 수도 없고 평화통일을 위한 효과적인 북한지역관리방안을
강구할 수도 없게 된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미국의 안보관은 변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인구가 많다거나 땅이 넓은 대국은 있어도 조선시대처럼 무조건 섬겨야 할 대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국가들 간에 세력균형이 유지되고 어느 한 국가가 주도하는 패권질서가 출현하지 않는 한 우리의 자주영역은
나날이 커지게 되어있다.
지난 세기 우리는 경제와 안보의 양면에서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정세는 크게 변화했다.
미국의 주적으로서의 소련과 공산권의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이후의 주변정세는 동서냉전시대와는 국제관계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이제 지구상에는 정규전을 통해 미국에 맞설 국가는 없다. 국제정치의 용어로 미국을 상대할 대칭적 적은 존재할 수 없다. 오직 테러와 같은 비대칭적(asymmetric)적이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달라지자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에 군대를 밀착 주둔시키는 방식보다는 미국안보의 당면과제가 되어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동성 높고 유연성있는 군으로 미군의 편성과 배치와 기능을 재정립하고 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지구최빈국으로 전락했고 북한의 남침을 응원할 우방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 하에서 한미협력관계를 냉전시의 그 수준으로 유지해야 안보가 가능하다는 사고는 이제 극복되어야 한다.
이제 한미관계는 일방적 의존으로부터 협력적 상호의존(Partnership)으로 협력의 양상을 바꿔나가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이번 한미 FTA 즉 KORUS FTA는 19세기말 한미수호조약 체결이후 최초로 한국이 미국을 대등한 입장에서 맞상대한 협상의 산물인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질 것이다.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는 새 통일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과거와 같은 약소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보다 국력이나 영향력이 훨씬 강한 4국이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다는 지정학적 운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주변국들의 패권갈등을 제어하면서 자주적으로 반패권(反覇權)의 세력균형질서를 이끌어내기에는 아직도 우리의 힘이 부족하다.
우리의 이러한 역부족에서 오는 안보상의 불리(不利)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맹외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중국이 패자(覇者)일 때 조선왕조는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외교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도모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시대적 사대외교가 아니라 21세기형 동맹외교이다.
이 점에서 한미동맹은 아직도 우리의 안전을 위한 동맹으로 유지, 발전되어야 한다. 그러나 종래와 같은 편무적 의존형의 동맹이 아니라 상호간에 공동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동맹이어야 한다. 이번 한미FTA타결은 매우 고무적인 사태진전이라 하겠다.
바야흐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의식 속에 잔존하는 20세기의 콤플렉스를 완전히 걷어내고 21세기에 걸 맞는 태도와 정책을 정립, 추진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
또 21세기의 변화된 현실을 우리의 정치생활 속에 내면화하고 이를 정책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동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는 결코 단순하거나 일시적인 문화흥행이 아니다.
오늘의 한국을 의식하는 동아시아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류는 우리의 뚜렷한 문화정책으로 정착되지 못했다.
문화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의 머리가 21세기에 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내치외교를 21세기에 걸맞게 변화시키고 그 차원에서 모든 문제를 평가하고 대응하는 자세의
정립이 필요하다.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관점도 이런 견지에서 새롭게 검토되어야 한다. 우리는 결코 과거를 잊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묶이거나
매여서는 더더구나 안 된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한 나라도, 약소국도 아니고 침략의 위협 앞에 떨고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2. 재통일이냐 새 통일이냐
이제 우리는 통일문제를 영어식표현으로 재통일(Reunification)로 표기하기에는 상황도
달라졌고 시간도 너무 많이 흘렀다.
분단이 없었던 그 옛날, 눈물 없던 때를 되찾겠다는 의미의 복고적 통일관념, 가고파적 통일 관념이 우리의 뇌리 속에 담겨있을 수 있으나 현재 남북한 간에는 회복할만한 과거가 모두 지워졌거나
변질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過去志向적,復古的 통일은 현실적으로 성립불가능하다.
또 功利的 견지에서도 통일이 민족생활에 있어서 현재보다 더 잘 살고 더 행복해지기 위한 희망의 대명사라면 현 조건하에서 남북한을 단순히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의 통일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다.
GDP에서 세계랭킹 11위의 남한과 150위 이하로 분류되는 북한을 물리적으로 재결합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만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큰 의미가 없다.
통일은 미래의 시간에 이루어져야할 과제임을 상기할 때 우리가 이룩할 통일은 정서적이거나 물리적 의미의 재통일보다는 오늘의 한반도위에
선진화된 한민족의 새로운 국가를 세운다는 의미의 새 통일(New Unification)로 통일의 의미와 목표를 정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정상국가화가 통일의 지름길이다]
우리가 달성해야 할 통일을 이런 의미의 새 통일로 정의할 경우 당면한 통일과업은 현시점에서 지구 최빈국으로 전락한 북한을 변화시켜 21세기의 세계표준에 맞는 정상국가로 연착륙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북한의 실패한 계획경제체제를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동구라파 공산국가들의 경우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기존 집권층인 공산당 간부들이 시장경제의 주역이 되어 개혁개방에 앞장섰고 중국이나 베트남도 개혁개방의 주체들이 모두 공산당 간부들이었다.
미국의 네오콘들이 대북정책의 기조를 김정일 정권의 제거를 겨냥하는 정권교체(regime
change)에 두었다가 이를 정권의 변형(regime transformation)으로 바꾸고 이제는 북핵문제에 관한 2.13합의이후 정권의 관리와 변화유도에 역점을 두는 정권관리 (regime management)로 전환하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변화이다. 동서독의 경우 동독의 연착륙을 지원하지 않고 바로 흡수통일을 추진한 결과 西獨인들에게는 경제적 부담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가중되었고 동독인들에는 통일의 환멸과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이 갖는 경제력은 북한 재건을 독자적으로 지원하기에는 역량이 모자란다. 한국이 중심이 된 대북 지원 Consortium을 구성, 북한경제재건 지원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전망에서 예상 가능한 통일은 오늘의 한반도위에 남북한이
공히 잘사는 상태에서 만나는 통일, 즉 새 통일의 비전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노력이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기 위한 대전제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에로의 전환일 것이다.
3.한반도 통일추진의 실천적 기반은 무엇인가 [통일추진의 법적 근거는 불명]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사실관계에서 보면 한반도의 통일 주체는 비록 남북한으로 갈리어 있지만 오늘의 한반도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한민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국제법상으로 보면 한반도를 남북한으로 갈린 한민족이 주체가 되어 통일되어야 할 공간이라고 규정한 법적 근거는 없다.
日帝가 대한제국을 강압적으로 자국에 합병시킨 이래 통일의 源泉國家 또는 총괄국가(Gesamt Staat)로서 대한제국이 한일합병이전에 누리던 영토와 권한을 한민족이 통째로 맡아 행사한 경험이 없이 오늘에 이르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법의 세계에서는 대한제국의 法統(Legitimacy)이 그대로 오늘의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민족에게 인계되었다고 인정할 법적 근거가 불명하다.
물론 카이로, 포츠담선언에 의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쳐 독립을 부여하자는 연합국 수뇌들의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처리구상, 그리고 유엔감시위원단의 선거 감시 하에서 실시된 총선거로 단일의 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유엔총회결의가
한반도를 한민족의 통일공간을 긍정하는 국제적 합의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이나 결의도 동서냉전의 확산으로 분단질서가 고착됨으로 해서 아직까지 현실화되지 못했다.
우리는 한일기본조약체결과정에서 대한제국의 헌법적 부활을 기대할 기회를 가졌었다.
즉 1910년의 한일합병조약이 源泉無效(Originally null and void)이었음을 국제사회에 공인시켜야 했다. 그러나 법의 논리 보다는 한일수교라는 정치적 필요에 쫓겨 “원천 무효” 아닌 “이
미 무효”(Alreadynull and void)를 받아들임으로써 통일의 총괄국가로서의 대한제국의 헌법적 부활을 확보하는데 실패하고 일본으로부터의 배상이 아닌 독립축하금
명목의 차관도입으로 한일관계를 정상화시켰다. [유엔동시가입으로 두 개의 한국 현실화]
오늘날 남북한은 다같이 주권국가(Nation state)만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유엔회원국이
되었고 대외관계에서도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1970년 이래 남북 간에는 이산가족의 재회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나 그 숫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또 남북한 간에는 40년 가까이 비록 부침과 단절을 거듭하면서도 정치적 수준의 대화가 이어져 오고 있지만 한반도가 한민족의 통일공간임을 과시할 가등기(假登記)조차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비록 일방적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헌법 3조만이 한반도통일의 법적 근거로 살아있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이 조항은 실효적인 조항이라기보다는 선언적 규정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러나 탈북자를 대한민국이 받아들이고 그들을 지원하는
법적근거가 헌법3조에 근거하고 있음을 볼 때 결코 선언적인 규정 아닌 實效的 규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일부 국회의원들 가운데는 헌법3조를 비현실적 규정이라 하여 개헌을 통해 삭제하거나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최근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대북정책의 기조변경을 검토하면서 헌법3조의 개정을 거론하고 이 문제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여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휴전선이 남북을 가르는 국경선으로 바뀐다].
앞으로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치된다면 남북을 가르는 군사적 의미의 잠정 경계선인 휴전선이 평화선으로 바뀌겠지만 이는 구체적으로는 휴전선이 남북한을 항구적으로 가르는
국경선으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한반도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태도는 북한이 붕괴하거나 와해될 경우 자동으로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이 이룩되도록 인정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북한정권이 와해될 경우 한국이 통일을 위해 북한지역을 군사적으로 장악하는 것을 반대하고 북한지역을 국제관리 하에 두면서 북한처리에 관한 새로운 국제적 합의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또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라면 미국은 북한의 핵 제거를 명분으로 군사적 점령을 검토할 것이며 중국은 북한에 투자되어 있는 자국의
재산보호와 전통적인 안보 관념 즉 북한은 중국안보의 입술이며 중국은 이(齒)라는 순치관계론에 입각, 북한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이런 상황을 가상한 개입명분축적이라는 설도 있다. [통일의 실천적 기반 강화해야]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통일문제를 현시점에서 냉정히 검토할 때 우리의 통일을 위한 실천적 기반은 법보다는 남북대화와 교류협 력을 강화함으로써 국제사회가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의 한민족주도하에 이루러져야 한다는 것을 공인하게 만들어 나가고 실적을 쌓아야
한다.
올림픽 경기에서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한다거나 국제사회의 관심 속에서 이산가족의 재회 내지 재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관계에서 통일노력의
정당성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공감을 비축하는 방도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 개성공단운영, 철도연결 등은 국제사회로 하여금 한반도 통일의 주인이 한민족임을 굳혀가는 의미 있는 실적이 될 것이다.
4.한반도 평화협정과 비핵화 문제
[가장 오래된 휴전협정]
한국의 휴전협정은 국제법이 생긴 이래 가장 오랜 휴전협정으로 정의되고 있다. 통상 휴전협정은 협정체결 후 수년 내에 전쟁상태를 법률적으로 종결시키는 講和條約 내지 평화협정으로 대치된다.
그러나 한국의 휴전협정은 54년 동안 새로운 협정에 의해 대치되지 않고 있음으로 해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휴전협정이 되고 있다.
1954년 제네바정치회담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기회였으나 한반도휴전협정은 통일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평화협정으로 대치될 수 없는 당시의 사정
때문에 정치적 수준의 새로운 협정에 의하여 대체될 때까지 효력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통일문제는 유엔에서 다루기로 함으로써 제네바회담 은 아무 진전 없이 끝났다.
[휴전협정의 변질과 부담]
그러나 현재 휴전협정은 아직도 명칭은 그대로이며 휴전선도 있지만 엄격한 의미의 휴전협정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미국과 중국은 휴전협정에 서명하고 있음으로 해서 한반도에서는 문서상, 법률상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있지만
휴전체제를 그대로 둔 채 양자관계를 정상화했다.
한국도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여 수교15년을 맞고 있다. 현재 7개국으로 구상되었던 휴전감시단도
북한 측의 요구로 이미 철수했고 停戰委 비서장 회의도 북측의 거부로 열리지 않고 있으며 다만 판문점 관리를 유엔군 사령부가 맡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국의 휴전협정은 남북한 관계에서는 휴전체제를 뒷받침하는 국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거의 사문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간에 전쟁상태를 법률적으로 종결짓는 평화협정이 마련되지 않고 있음으로 해서 남북한 간에는 적잖은 부담과 불편이 따르고 있다.
한국은 GNP의 3%이상이 군사비로 지출되고 있는 반면, 북한은 GNP의 30%이상이 군사비로 쓰이고 있다. 군사적 견지에 서는 북한군은 남한군의 주적이고 미국의 입장에서도 법률상 북한군은 주적에 속한다. 이것의 逆도 마찬가지이다.
남북한 국민이 상대방 당국의 허가 없이 휴전선을 넘으면 간첩죄가 적용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면 간첩죄 아닌 여권미소지죄나 무비자 입국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협상주제로서의 휴전협정]
그러나 2006년 11월 18일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측이 핵 폐기에 동의한다면 한반도에 서 전쟁상태를 법률적으로 종결짓고 새로운 평화체제를 모색할 용의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한반도 휴전체제의 운명이 국제협상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2007년 2월 13일의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의 폐기를 향한 단계적 조치구상이 마련되어 있지만 휴전협정의 평화체제로의 전환과업
이 구체화되려면 6자회담의 실무 작업분회에서 논의가 좀더 진전되고 핵 폐기절차가 진행되는 정도를 지켜 보아야겠지만 2.13합의가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얽매는 효과(Lock-in Effect)에 맞물려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거론되다가 시들해지는 과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만이 해결책이다]. 이 과제의 열쇄는 북한 측이 핵문제를 과연 6자회담의 요구대로 수용실천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는 방법으로 행동할 것이냐 여부에 달려있다.
지금 북한의 핵정책을 놓고 상반되는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핵 폐기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질 경우 핵을 폐기할 것이라는 견해와 북한은 어느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그것이다.
아직까지 이 상 두 견해 중 어느 것이 옳은 견해인지를 확언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르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북한의 핵 포기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북한의 핵 폐기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2.13합의는 미국과 북한간의 합의임과 동시에 6자간의 합의라는 점이다. 이 합의를 위반했을 경우 북한이 감당할 부담은 북한이 현재까지 감당했던 부담보다는 훨씬 심각한 부담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Lock-in 중Effect가 결렬되었을 때는 전쟁까지 각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유엔제재 1718호가 보다 강력히 북한에 적용되고 중국도 북 관계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은 핵을 보유하는 이익과 포기하는 이익을 교량 할 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핵보유이익보다는 포기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알 것이며 따라서 북 핵은 대미협상수단이상의 의의를 갖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① 우선 북한은 핵 실험을 감행,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일방적으로 깨트렸다.
한국의 안보부담을 증가시킴은 물론 한국의 핵무장을 유도하는 행위를 한 것이다. 한국은 북한보다 더 신속히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②또 북한은 核戰場터(Theatre nuclear)이기에는 국토가 협소하여 핵 선제공격을 받은 후 보복공격을 단행할 전략적 종심(縱深)없다.
따라서 북한이 핵무장을 한다고 해서 그들의 안전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핵을 보유함으로 해서 핵공격을 받을 구실만 제공하게 된다.
또 핵확산방지에 역행함으로써 국제적 제재만 불러온다.(유엔안보리 결의 1718).
③ 주지되는 바이지만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이 이룩한 경제발전, 산업발전, 과학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전체인민을 굶주리게 하면서 핵 암(暗)시장에서 고가로 매입한 핵기술로 추진되고 시도된 핵실험이었다.
북한 핵이 대량살상무기로 확고히 자리를 잡으려면 더 많은 시간, 돈, 기술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추가비용을 조달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아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④ 북한의 핵실험은 남북한 관계에서 6.15선언을 무효화시켰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핵무장으로 치닫는 북한’과 ‘비핵화를 지향하는 한국’은 이제 안보체계마저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에 그 단계가 높건 낮건 간에 서로 연합(Commonwealth 또는 Confederation)이나 연방(Federal Government)으로 묶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더욱이 유엔의 제재가 계속되는 한 인도적 차원 이외의 남북교류협력도 어려워졌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이 현시점에서 동의하고 한국과 중국이 중재하는 선에서 핵 폐기에 합의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얻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러한 협상을 통해 핵문제가 해결되면 이 합의의 연장선에서 휴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대치될 수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의 효과]
한반도 비핵화의 결과로 한국의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치되면 휴전선은 남북한의 평화선 즉 국경선으로 바뀌고 남북한 관계는 국가 대 국가 간의 관계로 정상화되고 양자간에 전쟁상태는 법률적으로 종결된다.
이런 상태의 도래는 평화통일의 기회도 되고 분단고정화의 전기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의 목적을 지닌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평화통일을 위한 정치과정을 서둘러 개시해야 한다.
남북한이 통일되어야 할 분단국가임을 국제사회에 공인 시키기 위한 초기조치로 남북한 관계를 연합단계로 발전시키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즉 한반도가 한민족의 통일 공간임을 입증할 이른바 가등기(假登記)를 해놓자는 것이다.
이 바탕위에서 한국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에 연착륙하도록 북한산업 재건Consortium을 구성하는 조치를 단계적으로 강구, 공존공영의 남북한관계를 유도해내야 한다.
비록 이 과정이 오랜 시일을 요하더라도 남북한이 잘사는 상태에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새 통일”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2.13합의와 그에 선행한 9.19합의 등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성실히 준수해야 한다. 5.재고되어야 할 우려들
[탈북 러시가 일어날 것이다?]
북한경제가 연착륙에 실패하여 정권붕괴현상이 일어날 경우 수많은 난민이 중국이나 남한 또는 일본으로 빠져나오는 난민러시가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공산권의 변화 동향을 지켜본 사람들 가운데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중국당국도 이런 견해를 비공식적으로는 긍정한다. 일본의 경우 북한난민유입에 대처할 비상대책을 강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스스로 붕괴될 가능성은 극소하며 설령 넘어진다고 하더라도 대거 집단탈북의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가족제도 역시 집단탈북의 제약요건이며 지금까지 이루어진 탈북도 정치적 탈북보다는 경제난민의 성격이 강한
점으로 미루어 체제붕괴와 국제사회의 지원이 결합될 경우 탈북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동구라파의 경우 시민사회가 중심이 된 체제변혁이었기 때문에 일부 강경세력들은 자신의 과오 때문에 망명을 시도할 것이지만 집단적인 국외탈출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북한을 지국최빈국으로 만든 현 집권 세력보다 더 나쁜 세력이 그들을 지배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 붕괴를 두려워 하거나 경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정상화까지를 내다보면서 2.13합의를 도출한 것은 대북정책 대안으로서의 북한정권교체론이 약화되고 정권생존전략으로서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정권의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6.15선언을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이 아닌 한국내정에 간섭하는 명분으로 악용하고
있다.
금년 1월 1일 북한은 그들의 공동사설형식의
신년사를 통해 한나라당을 비롯한 남측의 보수반동세력이 6.15통일시대의 흐름을 가로막고 재집권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피를 물고 날뛰고 있다”고 비난하고 특히 지난 4일에는
북측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한나라당 재집권은 남조선 내부문제만이 아니다”면서 “통일운동단체들이 6.15민족공동위원회를
모체로 하여 (중략) 남조선에서 반보수 대연합을 결성, 친미반동 보수 세력을 짓부수라”고 선동했다.
북한은 이처럼 6.15선언을 들먹이면서 전례 없이 남한 내정에 간섭해 오고 있는데 이 추세를 방치하면 조만간 “6.15선언”의 “우리끼리”를 명분으로 한국이 북한의 핵우산 밑으로 들어오라고 요구할지도 모른다.
현재 북측이 내세우는 6.15선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의 평양회담 후 국민들에게 밝힌 선언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김 전 대통령은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은 완전히 사라졌고 김정일 위원장은 통일 후에도 미군의 한국주둔을 양해했다”고 밝혔다.
또 조만간 북한도 중국처럼 변화할 것이고 그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평화와 통일의 꿈이 실현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6.15선언은 이런 정치효과를 발휘함으로써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김대중 씨가 말 한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고 있다. 현시점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는 주변국가들 간에 합의된 동북아 안보의 관건적 과제다. 그러나 북한은 핵 실험을 감행,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일방적으로 깨트렸다.
동시에 그들은 중국의 지도층들이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권면했던 개혁개방은 거부하고 만류했던 핵실험을 단행하여 그 성공을 전체 인민의
대축제로 환호하고 있다. 지금 북한의 지향은 핵 포기가 아니라 핵보유국으로 대우받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결과적으로 남북한 간에 유지되어온 군사균형을 깨트렸고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안보상황에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였다.
북한은 핵전장터(Theatre nuclear)이기에는 국토가 협소하여 핵 선제공격을 받은
후 보복공격을 단행할 전략적 종심(縱深)없다. 따라서 북한이 핵무장을 한다고 해서 그들의 안전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핵을 보유함으로 해서 핵공격을 받을 구실만 제공하게 된다. 또 핵확산방지에 역행함으로써 국제적 제재만 불러온다.(유엔안보리
결의 1718).
주지되는 바이지만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이 이룩한 경제발전, 산업발전, 과학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전체인민을 굶주리게 하면서 핵 암(暗)시장에서 고가로 매입한 핵기술로 추진되고
시도된 핵실험이었다. 북한 핵이 대량살상무기로 확고히 자리를 잡으려면 더 많은 시간, 돈, 기술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아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실험은 남북한 관계에서 6.15선언을 무효화시켰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핵무장으로 치닫는 북한’과 ‘비핵화를 지향하는 한국’은 이제 안보체계마저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에 그 단계가 높건 낮건 간에 서로 연합(Commonwealth 또는 Confederation)이나 연방(Federal Government)으로 묶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더욱이 유엔의 제재가 계속되는 한 인도적 차원 이외의 남북교류협력도 어려워졌다. 한국은 또 작년 10월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본 바와 같이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으로 미국이 이 땅에서 빼내간 핵
무기에 다시 의존하지 않고는 북한의 핵 공갈로부터 국가의 안전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변화로 6.15선언은 사문화되었다.
이제 정부는 존재이유를 잃은 6.15선언의 폐기를 공식화해야 한다. 북한이 남한의 친북세력을 앞세워 북한의 핵우산이라도 수용하여 전쟁을 막고 평화를 누리자고 떠들 꼬투리도 없애고 북측이 한국의 대통령선거에 끼여 드는 내정간섭의
빌미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6.15선언의 폐기를 서둘러 공식화해야한다.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그
용도가 오래전에 끝나버린 6.15선언을 북한이 더 이상 악용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동북아 안보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우선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에 군사균형이 붕괴되고 중국이 이 지역에서 누리던 핵독점질서도 깨졌다.
일본은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핵 폐기가 외교적 방법에 의해 해결될 전망이 없을 경우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서두르게 되고 한국 역시 미국 등 핵보유강대국들이 외교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NPT를 탈퇴하고 핵무장에 나설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은 동북아지역에서의 군비경쟁을 유발할 위험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북한의 핵실험이 한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되어 왔던 평화통일의 꿈을 빼앗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국민들은 조국통일이라는 명분으로 북한이 도발한 1950년대의 6.25동란에서 동족간의 처절한 유혈참극을 겪은 후부터 앞으로는 남북한 간에는 더 이상 통일의 수단으로 전쟁이나 무력수단이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조국통일은 오직 평화적 수단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영연방(英聯邦)(The British Commonwealth)처럼 남북한을 느슨하게 묶는 협력의 길을 걷다가 영연방보다는 협력의 강도를 심화시킨 국가연합 (Confederation)으로 남북한 관계를 발전시키고 이 단계에서 상호간에 신뢰가 축적되는 정도에 비례해서 연방정부 (Federal State)를 구성하고 마지막 단계에 자유총선거를 통한 단일의 통일정부를 이룬다는 접근방식이 꾸준히 모색되어 왔다.
정부의 평화통일 4단계접근방식이나 김대중의 소위 3단계 통일방안도 모두 이러한 접근방식에 연계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이러한 통일접근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만들었다.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면서 핵무장의 길을 걷는 북한과 인권을 존중하고 비핵화의 길을 걸으면서 시장경제를 통해 세계11위의 경제력을 갖게 된 한국을 하나의 울타리에 묶는 다는 것은 그것이 느슨하건 단단하건 간에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형성에 대한 이념적 기초가 다른데다가 국가안보방식마저 근본적으로 달라진 남북한을 하나의 연합이나 연방으로 묶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북한 간에 핵이 없는 상태 하에서라도 연합이나 연방을 실시할 경우 남북한관계는 2인(人)3각(脚)체제로 되어 함께 서지도 못하고 넘어질 판인데 여기에 ‘반인권핵무장체제(反人權核武裝體制)와 인 권존중비핵화체제(人權尊重非核化體制)를 하나의 통일국가로 묶는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과 김정일 간에 합의된 이른바 6.15선언은 1992년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기반위에서 성립된 것이며 선언 제2항은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간에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보고 통일은 이 방향에서 추진하자는 것인데 북한이 핵실험을 자행한 순간 이 조항과 6.15선언은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북한의 핵은 유엔 상임이사국들의 공인된 핵 처럼 핵 무력행사가 국민수준의 동의나 국제여론에서 통제되는 핵이 아닌 김정일 개인의 집권유지수단인 점에서 더욱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또 평화운동에서 강조하는 평화는 반전, 반핵을 핵심개념으로 하는데 이른바 남한의 진보세력과 환경운동가들은 전라북도의 부안군수가 추 진한 원자력발전소 유치운동까지를 반핵의 이름으로 저지투쟁을 벌여 주민폭력사태를 일으켰다. 그들의 북 핵에 대한 금후의 태도를 주의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 핵실험은 중국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될 수 없다. 우선 중국은 자체의 핵무장을 통해서 동북아시아 세력균형의 한 축이 되어왔는데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의 핵 독점적 지위를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의 핵무장을 부채질 할 명분이 됨으로 해서 주변의 안보상황을 극도의 불안 속에 빠트렸다. 중국이 추구하는 화평굴기(和平崛起)노선에 심각한 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만류하면서 북한정권의 존속에 필요한 식량과 에너지를 공급해 왔고 중국식의 개혁개방을 권고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동맹국으로서의 중국의 충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폐쇄주의와 핵개발을 강행하고 말았다. 중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의 대북제재 결의에 두 차례나 찬표를 던진 것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당과 군부의 분노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웅변한다.
이제 한국과 중국 앞에 나서는 당면긴급과제는 하루속히 북한의 핵을 폐기시키는 것이다. 한국은 평화통일의 길을 트기 위해, 중국은 자국발전의 주요여건인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해 서로 뜻과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 다. 지금까지 유엔의 제재결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실례가 적다는 비관론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비록 주민들이 그간 어려운 고통을 많이 감내해 왔다고는 하지만 북한이 놓여있는 지경학적 위치에서 보건데 주변국들이 돕지 않는다면 유엔제재를 극복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 회교국가도 아니기 때문에 종교적 유대를 통한 국제지원을 얻어낼 수도 없다.
북한의 핵개발은 북한자체가 이룩한 경제발전의 결과도 아니고 고도로 발전된 과학기술의 산물도 아니다. 전체인민의 배고픔과 어린이들의 영양실조 위에서, 지구최빈국이라는 열악한 경제 환경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한국이 북 핵 폐기를 실효 없는 6자회담이나 미국의 대북정책변화에만 내맡기는 자세를 넘어서서 유엔의 제재결의를 액면 대로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없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환경조성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6자회담도 실질적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이 공조하면서 유엔헌장 103조가 헌장상의 의무와 그 밖의 어떤 국제협정상의 의무가 저촉하는 경우 헌장상의 의무가 우선한다는 규정을 상기하면서 유엔의 제재결의를 철저히 준수한다면 북한은 반드시 핵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북 핵 폐기를 위 한 한중 공조의 필연성이 있다 할 것이다.
. 이글은 2006년 11월 2일 ASEM연구원이 주최한 “북한의
핵실험이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에서 한중문화협회 이영일 총재가 발표한 발언전문
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오늘의 북한을 보는 세계 각국의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7월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 실시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서구인들에게는 1995년 이래 인도적 지원대상국이었다. 북한이 1995년 엄청난 자연재해로 유엔에 식량과 의료지원을 호소해 왔을 때 세계식량기구(WFP)는 말 할 것도 없고 미국,프랑스, 독일,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스위스, 일본 등 전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은 앞 다투어 북한 지원에
나섰고 한국에서도 정부수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50여개의 NGO단체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북한지원을 펼쳤다.
이러한 지원을 통하여 북한은 1999년부터 수백만의 아사자(餓死者)를
냈던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 작년 5월 중국의 베이징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인도주의(人道主義)적 차원에서 북한을 지원해 온 세계 각국의 NGO대표들이 모여서 이제 대북지원은 인도지원 단계를 넘어 개발협력단계로 전환할 때가 되었다면서 금년부터는 북한의 산업재건을 목표로 개발협력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핵실험은 NGO 기부자들을 없앴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유엔안전보장 이사회가 북한에 대한 제재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함으로 말미암아 개발협력의 꿈은 북한의 핵 포기이후의 과제로 밀려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정부수준의 지원도 납세자들의 동의를 얻기가 힘들게 되었고 국내외(國內外)의 NGO들도 寄附者(Donor)를 모으기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북한지원에 앞장섰던 교회들에서 헌금(獻金)이 심각히 줄어들었으며 또 지금까지 북한지원에 앞장섰던 국내외 NGO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사태에서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외부침략을 막기 위한 핵개발이 아니다]
북한의 핵개발은 북한자체가 이룩한 경제발전의 결과도 아니고 고도로 발전된 과학기술의 산물도 아니다.
전체인민의 배고픔과 어린이들의 영양실조 위에서, 지구최빈국이라는 열악한 경제 환경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또 외부로부터의 침략위협을 막아 내야할 절박한 상황 때문에 핵개발이 착수된 것도 아니다. 물론 북한은 미국의 압살정책에 대한 억지수단
으로 핵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오늘의 세계에서 만성적인 빈곤국가인 북한을 군사적으로 침공할 나라는 없다. 북한에는 이라크처럼 전후복구를 감당할 지하자원도 없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을 하지 않을 것임을 누차 강조하고 다짐했다. 그러나 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이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이라는 인류공동의 염원을 명분으로 하여 북한에 대한 경제, 금융, 무역 면에서 제재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나는 미‧북 兩者회담을 반대한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회담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북한의 핵은 미국과 북한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안보와도 직접 관계되는 문제이다. 따라서 관련당사자들이 모인 6자회담에서 마땅히 논의하고 해결해야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만약 미국과 북한 간에 양자회담이 열린다면 정치심리전면에서 한국은 정신적인 Panic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국은 반세기전 엄청난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서 시장경제와 개방사회의 이점을 살려
오늘날 GDP세계랭킹 11위의 국가로 성장했는데 북한은 그
정반대의 길을 걸어 지구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미국과 북한 간에 양자회담이 열린다면 세계의 관중석에서는
시장경제에 성공한 한국보다는 핵실험에 성공한 북한이 마치 한반도의 현재를 대변하는 것처럼 투영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국민들의 사기를 극도로 저하시키고 한국도 핵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에 점화할 우려가 있다.
셋째로 미 북 양자회담이 열릴 경우 북한은 전 세계의 반미여론과 약자동정(弱者同情)론을 등에 업고 미국에 일방적 양보만을 계속 요구할 것이고 미국이 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북한은 미국핑계를 대면서 오히려 북한자체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려 들 것이다. 핵 포기 아닌
핵보유의 명분만을 얻게 될 것이다. 양자회담을 요구하는 북한의 진의가운데는 이러한 계산이 깔려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견지에서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회담은 북핵문제의 해결방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햇볕정책 ,포용정책은 핵실험으로 끝장났다]
현재 북핵문제는 한국정부가 그동안 추진해 온 이른바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이나
포용정책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은 서로 적대하는
국가들과의 관계를 협력과 화해로 유도하는데 주효한 정책이다. 한국의 경우에서도 북한정권의 목표가 경제재건에
있었다면, 또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 경제적 개혁을 추진하는데 있었다면 북한에 대한 한국의 햇볕정책은
성공한 정책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한국은 1998년 이래
약 7조 4천억 원 상당의 대북지원을 했지만 북한 경제는 아직 개선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 세계가 원치 않는 핵실험을 낳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정권의 햇볕정책, 포용정책은 이론상 틀린 정책은 아니었지만 정책을 적용받을 상대방을 잘못 선정한 데 문제가 있었다.
북한은 항상 强盛大國과先軍政治를 부르짖었을 뿐 개혁이나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중국식의 개혁개방의
성과를 칭찬하면서도 자기들은 그 노선을 벤치마킹하지 않고 “조선식 사회주의”를 발전시킨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개발을 추구할 것이라면서 햇볕정책을 추진했는데 이것은 善意로 말해서 김대중 씨 개인의 희망론(wishful
thinking)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이를 승계한 노무현정권의 포용정책은 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지적한 것처럼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지 못했으며 핵개발을 돕는 결과를 초래했다. 북한 핵실험은 민족공조나 “우리끼리”하는 표현의 허구성
기만성을 입증했다. 핵실험의 가장 큰 희생자는 한국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북 핵 대책은 민족공조 아닌 한미공조, 국제공조를 기본으로 하면서 한미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길 뿐이다.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는 효과적이다]
지금까지 유엔의 제재결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실례가 적다는 비관론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비록 북한주민들이 그간 어려운 고통을 많이 감내해 왔다고는 하지만 북한이 놓여있는 지경학적 위치에서 보건데 주변국들이 돕지 않는다면 유엔제재를
극복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 회교국가도 아니기 때문에 종교적 유대를 통한 국제지원을 얻어낼 수도 없다. 유엔제재에
중국에 소극적이라는 관측이 있으나 그 예상은 정확치 않다. 우선 중국은 유엔제재결의안에 찬성하였으며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중국의 당과 군이 크게 분노했고 그 분노가 해소되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말미암아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 누리던 핵독점체제가 깨졌고 일본의 핵무장여론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유엔헌장 103조가 헌장상의 의무와 그 밖의 어떤 국제협정상의 의무가 저촉하는 경우 헌장상의 의무가 우선한다는 규정을 상기하면서 유엔의 제재결의를 철저히 준수한다면 북한은 반드시 핵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또다시 한중간의 갈등의 불씨로 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이 동북변강역사와 현상계열 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라는 제목 하에 “조선반도
형세변화가 동북지구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부제로 2002년부터 5개년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동북공정이 그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한국고대사(古代史)의
내용을 심각히 왜곡 해석하는 내용물들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초기부터 중심연구대상으로 고구려로 설정하고 고구려의 성립과 흥망성쇠과정을 분석하여 고구려에 관련된 사실(史實)들을 정치적 목적에 맞도록 짜 깁기 하고 재포장하여
중국역사의 일부로 개변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중국학계는 198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당연히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로 보지 않았고
다만 만주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 학자들을 비롯한 일부학자들이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 즉 고구려사를 한국과 중국이 서로 이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피력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중국은 자국을 ’통일적 다민족국가‘로 정의(定義), 이념화하면서 고구려사 전체를 중국사의 일부로 바꾸는 주장들을 제기해 오다가 이제는 동북공정을 통해 이를 정설화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동북공정은 50건의 연구 성과를 책으로 펴냈고 최근 출간된 것은 발해국사(渤海國史)를
비롯한 7건이다.특히 변강사지(邊疆史地)연구센터는 고구려와 발해는 물론 고조선과 부여까지를 중국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들 논문가운데는 “고대 중국의 영토가 한강(漢江)이북까지 확대됐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중국의 일부 사학자들이 한중 양국에 걸친 고대사를 심도있게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간의 통설과 다른 연구결과가 나와 새로운 학설로
내놓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자 개인의 학문연구이기 때문에 반론은 제기할 수 있을 뿐 시비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이런 연구가 설사 정부의 연구비보조를 얻었드라도 학문연구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된 국가에서의 연구라면 그것역시 학자개인의 소론으
로 보아 넘길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정부는 자국 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적 필요에서 특정분야의 진위나 정부(正否)를 가리기 위해 연구를 학계에 위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은 두 가지 면에서 한국 측의 경계심과 비판적 대응을 유발한다. 우선 동북공정연구는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조선반도 형세변화의 동북지구 안정에 대한
충격'이라는 문건이 시사하듯 중국정부가 자국내의 소수민족 통합정책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통일된 다민족국가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치적 연구 사업이라는 점이다. 현재 중국에는 56개의 소수민족이 있으나 그들의 모국(母國)은
이미 역사에서 사라졌고 중국보다 잘 사는 모국을 가진 소수민족은 조선족밖에 없기 때문에 각별히 고구려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중국은 지금까지 많은 부문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 학문의 자유를 완전 보장하는 국가는 아니다.국가연구기관에 종속된
학자들은 주어진 목표에 적실(適實)히 복무하는 도구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연구는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과학적 규명보다는 정치적 필요에 맞도록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거나 짜깁기 하는 수준을
탈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국내 학계에서는 중국 측의 동북공정이 현재로서는 대외적으로 밝힐 수 없는 장단기 목표를 추구하는 것으로 예상한다.즉 단기적으로는
한반도가 중심이 되는 동북아 정세변화를 내다보면서 패권의식을 잠재화하고 있는 중국의 금후의 역할설정을 위한 사료를 정비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상황변동이 중국의 국익과 충돌할 경우 한반도사태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명분을 쌓아놓자는 것으로 본다.
이 점과 관련하여 베이징 대학 역사학과의 쑹청유(宋成有)교수가 자기도 저자의 한 사람인 중한관계사(中韓關係史)에서 “고구려는 신라, 백제와 함께 삼국시대의 한국역사”라고 지적하고 이것이 베이징대 역사학과의
일관된 입장”이라면서 “현재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고, 역사를 현실에 봉사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갈파한 것은 학자적
양심을 반영한 주장임과 동시에 오늘의 동북공정의 ‘현주소’를
적절히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연구는 우리 정부가 중국정부를 상대로 외교적 항의를 일으킬 단계에까지는 와 있지 않다.왜냐하면 일부 중국학자들의
연구는 그것이 아직 중국정부의 한반도정책으로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상태는 다만 정부수준에서
주목하고 경계해야할 사안은 되지만 외교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대응할 사안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학자들의
연구는 정책화되는 수도 있지만 상황이 맞지않을 경우 영구히 사장(死藏)되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문적으로 날조되거나 짜깁기 된 연구는 과학적으로 뒷받침-문서나 출토품을 통한 고증 등-된 심도 있는 정론(正論)이 나올 경우 곧바로 용도 폐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북공정이 마감된 이후 중국정부가 이들 연구를 어떻게 처리하고 정책에 반영하는지 여부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아직 최종결론도 ,정책화도 되기 전에 중국정부가 마치 우리의 고대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한 것으로 속단, 정부의
강력대응만을 촉구하는 것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수순이 아니다. 특히 역사의 진위를 다투는 문제를 국가주의적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특히 중국과 같은 인방(隣邦)을 상대로 외교대결을 벌일 문제일수록 우리는 항상 가능한 것과 바람직한 것을 준별하면서 가능한 것의 누적을 통해 바람직한 것을 달성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견지해야할 자세는 우리 학자들, 특히 국사학자들과 국제정치 및 외교사 전문 학자들이 서로 제휴하고 앞장서서 동북공정의
허구성, 부실성을 세밀히 연구, 분석하면서 세계 학계의 지지와
공감을 살 수 있는 객관 타당한 사실을 내놓는 것이다. 따라서 현 단계 동북공정 도전에 대해서는 우리 학계가 대응의
일차적 책임을 맡도록 하고 우리 학계의 수준 높은 사실규명과 고증된 자료를 통해 중국학자들의 주장을 하나씩 논파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정부에 촉구해야 할 것은 중국정부에 대한 외교적 항의에 앞서 한국학계가 일부 중국학계의 도전을 잘 극복하도록 필요한 연구
지원을 강화하라는 것이어야 한다. 제1차 동북공정 파동(2004년)의 대응책으로 고구려사 연구재단을 발족시킨 정부가 차제에 범위를 넓혀 동북아역사연구재단으로 확장 개편한다는 것은 뒤늦은 감이 있으나
적절한 조치로 본다.
지금 정국은 심각한 분열과 갈등의 늪에 빠져있다. 현재 우리가 겪는 국론분열은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통권)의 환수를 주장함으로써 6.25이후 지난 50년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재발을 방지해 온 한미연합방위체제를 사실상
해체하려고 시도한데서 비롯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주어진 전작통권을 한국이 환수할 때가 되었으며 “작전통제권이야말로 자주국방의 핵심이요, 자주국방이야말로 주권국가의
꽃“이라면서 전작통권 환수로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더라도 한국안보에는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안보현실을 잘 아는
전직 국방장관들을 비롯한 예비역장교들과 안보 전문가들은 현 정권의 이러한 주장에 정면으로 반발하면서 한국이 그것에 의거하여 평화를 누렸던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시기, 상황의 어느 모로 보나 한국의 안보보험, 전쟁억제장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통렬히 비판한다. 사실 한미연합사체제는 지난 반세기 이상 北의大小남침책동과南의 대북군사반격을 동시에 억제, 남북한의
긴장이 제2의 한국전으로 발전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아왔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자주적 주권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울 때가 바로 지금이라면서 조만간 대미협상을 통해 전작통권 환수를 서두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현재 한국은 GDP세계랭킹 12위의 유엔회원국으로서 연간
수억 달러의 ODA자금을 통해 약소국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러한 나라를 제대로 주권도 행사 못하는 비자주(非自主)국가라고
말할 나라가 북한 말고는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또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해 전작통권을 한미연합사령관과 공동으로 행사한다고 해서 협력안보가 현실인
오늘의 세계에서 한국의 주권이 제약되었다고 평가받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노 대통령의 명분을 이렇게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현시점의 전작통권 문제는
국가안보적 고려 아닌 국내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발상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자주”개념을 앞세운 정치적 상징조작을 통해 안보문제를 잘 모르는 국민들로부터 전작통권 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려고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서 국론이 크게 갈린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노 대통령도 말한 바 있거니와 “아무도 합리적 사고로는 그
태도를 예측할 수없는 김정일 정권”이 불시에 미사일도 발사했고 또 핵실험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진데
현 정부가 과연 전작통권의 한국이관 후에 필연적으로 뒤따를 총체적인 국가안보수요를 제대로 충당할 수 있을 가,또 북한은 터무니없이 그들의 선군정치로 남한이 보는 혜택의
대가를 내놓으라고 한국정부를 윽박지르는데 이러한 사태에도 잘 대처해 낼 능력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국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는
아직까지 국민들의 이러한 우려에 명확한 비전과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 예상되는 국민들의 안보부담증가와 국가선진화를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해서도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다. 한편 미국은 럼스펠드 독트린에 따라 해외주둔미군을 특정지역에 고정배치 시키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이동배치가 용이한 기동군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보면 한미연합사체제는 앞으로 미군의 기동군화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한국의 반발만 없다면 전작통권을 한국에 이양하면서 점차 그 해체를
추진해야 할 형편이었다. 노 대통령의 이 시기를 겨냥한 정치적 선수로서의 전작통권 요구를 미국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국론분열은 내전(內戰)을 연상할 만큼 심각하다. 조속한 극복이 요구된다. 어떤 갈등이나 대립도
양보와 타협에 의해 해결가능하다는 신념위에 민주정치가 성립하는 것이라면 정부는 하루빨리 국민적 합의도출을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여야영수회담은 물론 전문가들과의 대화도 필요하다. 필자는 70년대
초에 미국과 중국이 대만문제로 수교협상이 교착되었을 때 키신저 박사가 “원칙에서는 미국이 양보하고 시간에서는
중국이 양보하는” 타협안을 마련, 협상을 타결한 선례가 문득 떠올랐다. 이러한 접근은 국내의 당면현안해결에도 응용될 수 있다. 즉 정부의 전작통권
단독행사라는 원칙에 대해서는 야당이 이를 받아들이되 그것의 실시시기와 방법에 관해서는 정부가 야당의 주장을 수용하여 대타협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러한
타협이 이루어지면 그다음 한미정상회담과 한미연례안보회의를 통해 전작통권이양의 시기와 방법을 놓고 대미협상을 심도 있게 펼치면서 국민의 의사가 협상에
반영되도록 협상대표단에 야당과 비판적인 전문가대표도 참여시키자는 것이다. 결국 원칙에서는 야당이 정부에
양보하고 시기와 방법에서는 정부가 야당에 양보하는 타협을 통해 국론분열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더 이상
국론이 극한으로 갈라지는 것만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가 통과된 지 1개월이 가까워오고 있다. 북한이 유엔결의를 전면 거부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회원국들의 제재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는 물론 결의안을 발의한 일본과 미국이 앞장서겠지만 그러나 이번의 유엔결의는 안보리 15개 회원국의 전원일치로
통과되었기 때문에 북한의 우방인 중국이나 러시아로서도 정부차원에서의 대북지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금융지원은 달러화가 국제 사회의 기축통화인 한 북한제재라는 미국의 방침에 맞서 대북협력관계를 유지하거나 협력관계를 개설할 금융기관이 나타나기는 힘들 것이
다. 이 점에서 미국과 일본이 앞장서는 대북제재는 그 심도가 갈수록 강화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제재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간 유엔안보리는 90년대 이후 국제분쟁의 외교적 해결 수단으로 제재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남아프리카 등 일부국가를 제외하고는 성공한 예가 드물고 이라크나 보스니아 등에 대한 경제는
목적달성이 어려워지자 끝내는 전쟁이 제재를 대체했다.
어느 면에서 제재는 군사력사용에 앞선 명분조성수단으로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북한의 경우 이라크나 아이티와는 달리 지정학적 위
치의 특수성 때문에 군사력이 목적달성의 수단으로 선택되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은 현재 그 효력에 대하여 부정적 담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러(中露)와 군사동맹조약을 맺고 있다. 또 한국역시 북한문제의 군사적 해결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이라크나 아이티에서 처럼 대북한 군사제재를 실천에 옮기기는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엔의 제재는 지금까지의 선례에서 보면 제재가 갖는 정치외교적인 목적이나 명분을 무색케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우
선 유엔 제재는 단기적으로 보면 대상국가의 정권을 약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강화시키는 계기를 조성했다. 민족주의적 선동이 가능해짐 으로써 대상 국가를 내부적으로 견제할 시민사회-중산층이나 지식인들-를 약화시켰다. 동시에 유엔제재는 해당국가 집권세력에게 주는 피
해보다는 그 정권의 통치를 받는 인민들에게 훨씬 더 큰 고통과 손실을 입혔다. 왜냐하면 경제제재의 경우 물자의 속성이 군수(軍需)와 민수(民需)의 양용(兩用)성을 갖기 때문에 제재의 대상과 내용을 엄격히 세목화하지 않는 한 생필품 등 민수용 원자재의 상당부분이 제재대상에 포함된다. 일본이 북한선박의 일본기항을 불허하면 일본에서의 군수품과 자금조달을 막음과 동시
에 생필품의 입북도 막게 된다.
특히 금융제재는 그 대상을 민수나 군수로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경제의 숨통을 끊는 결과를 초래한다. 유니세프(UNICEF)조사는 이라크에 대한 1991년〜1998년에 이르는 제재 기간 동안 5세 이하의 어린이 50만 명이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사담 후세인의 정책결정과 전혀 무관한 생명들이
이렇게 희생된 것이다. 이러한 비극이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신념의 경제’로 오래 버텨왔기 때문에 인내의 저력은 강하겠지만 유엔의 경제제재가 강화되고 여기에 엄청난 수해까지 겹치면 결국 집권층보다는 인민수준에서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다.북한경제는 ‘인민군경제’와 ‘인민경제’의 두 섹터로 나뉘어져 있는데 경제제재가 가중되면 김정일정권은 ‘인민경제’를 희생시키고 핵개발이나 미사일 등 ‘선군정치’의 근간이 되는 ‘인민군경제’를 한사코 꾸려 나갈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유엔은 제재의 목적달성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작용의 최소화의 최소화도 배려해야 한다. 우선 결의안에 인도적 물자가 군수물자로 분류되지 않도록 제재해야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할 것이다. 이번 노무현 정권은
유엔이 제재결의를 하기도 전에 식량, 비료 등 인도 물자의 대북지원을 유보한다고 했다. 북측이 남측의 만류를 무시하고 미사일발사 를 강행한 데 대한 유감의
표시겠지만 결정을 서두른 것은 경륜부족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이제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을 통한 대북지원업무를 대북지원 NGO들에 분담시켜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 북한정권은 북
한주민전체의 반년 분 식량구입에 쓰일 큰 돈을 미사일발사에 날려버리고 WFP의 식량지원제의도 그것이 분배의 투명성을 요구한다고 해
서 거부하고 대한적십자사의 수해(水害)지원마저 마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한 동포들이 겪어야하는 처절한 고통과
아픔의 이유를 캐묻기보다그것을 넘어서는 뜨거운 동포애로서 인도적 지원활동을 계속해야 한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않지만 그것의 존재는 항상 느껴지기 때문이다
윤영관 전 외통부장관이 2006년 7월 24일 한국중등교육협의회 하계연수 특강한 연설문전문입니다. 미래전략연구지에
실린글을 허가없이 펀 온 것임
1. 들어가는 말
오늘 이처럼 귀중한 자리에 초대해주신 한국중등교육협의회 최수철 회장님과 회원님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5남매 중
3남매가 교육계에 근무하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는 다른 어떤 자리보다도 교육계의 일선 지도자들이신 여러분들을 모시고 말씀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대단히 뜻 깊게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10여 년 동안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교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극받고 변화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보람과 함께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직 외교부장관이라기보다는 국제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느끼시는 것처럼 오늘날의 한반도 정세는 대단히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중요한 기로에 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제 대학교수의 신분으로 되돌아와서 그동안 생각했던 바를 담담한 심정으로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전하는 저의 말씀이 정파적 차원을 초월해서 한반도 미래 대계를 설계하고 추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2. 교육의 중요성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안보나 통상 외교와 관련하여 많은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그
근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현실적 위상과 한국
사람들의 의식간의 갭"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즉 한국의
몸은 그 동안 국제사회에서 30-40대의 성년으로 성장해버렸는데 우리가 바깥세상이나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의식은 10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2005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GDP규모가 10위인 나라입니다. 장관을 할 때 곤혹스럽고 안타까운 경험 중의
하나는 신임장을 제정하러오는 개발도상국의 대사들이 직업학교를 지어주십시오, 컴퓨터를 보내주십시오, 경제개발 지원을 해 주십시오 하고 점잖게 부탁해 올 때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으로 다 "예"라고 대답할 수도
없고 해서 안타까우면서도 우리 한국을 평가하는 세계 사회의 기대와 눈길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세계 경제력 10위의 국가이면 그 국력에 걸 맞는 외교력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고
그에 걸 맞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발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지금 우리 사회는 구한말(舊韓末)에
있었던 저항적 민족주의나 1980년대의 종속이론과 같은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세계관에 의해 크게 영향
받고 있습니다.
21세기의 미래를 설계해나가고 조만간 닥쳐올 한반도 통합의 시대에 대비하여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원려(遠慮)의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식의 감정적 민족주의가
우리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포로, 한(恨)의 포로가 되어버리면 미래를 설계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처럼 당하지 않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상 자체가 미래지향적이고, 적극적이고, 합리적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새로운 발상, 즉 새로운 세계관, 역사관, 민족관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21세기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에 걸 맞는 우리 민족의 꿈을 실현해나가려면 과거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우리 능력의 객관적 현실과 우리 스스로와 세계를 인식하는
의식 사이의 간격(gap)을 메꾸어 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육자들의 역할이고 교육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이 역사를 바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현장에 바로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3. 외교안보 전략의 문제
우리 민족은 정말 한(恨) 많은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1세기 전 우리 조상들이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에 어둡고, 민족의 역량을 결집하지 못하다가 일본제국주의에 당했습니다. 그 후
처음 잘못 꿰인 일제(日帝)지배의 단추가 남북 분단, 전쟁, 독재정치, 그리고 이제 그것도 모자라 북 핵과 미사일 사태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안타까운 역사를 이 순간에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같은 민족에게 가장 감성적으로 호소력 있는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자주(自主)입니다.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바로 자주 아니겠습니까? 1세기 전 태프트-가쓰라 밀약(Taft-桂密約)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준 미국, 분단의 책임, 광주항쟁을 야기한
전두환 독재를 지지해주었던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탈미(脫美)가 우리에게 감성적으로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국력이 상승하고 있는 이때에 탈미친중(脫美親中)을 하나의 전략적 선택으로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교는 감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차가운 계산으로 해야만 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해결해야 할 민족적 과제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민족적 과제는 두말 할 것 없이 북한
동포를 살리고 남북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
저는 한 달 전쯤 개성시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남북나눔운동이라는
단체에서 북한 농촌에 주택을 지어주는 사업을 하고 있기에 북측과 상의할 것이 있어서 이 일을 주도하시는 분들과 함께 개성 시내를 방문했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북한 동포들을 보고서 그들의 신장이 우리보다 평균
15센티미터 정도는 작아 보이고 골상(骨相)도 달라져 보여, 이제 완전히 인종까지
달라져버렸구나 생각하고 깊은 비애감을 느꼈습니다. 가슴 속에 무거운 바위덩어리를 하나 안고 돌아온 심정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저분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하루라도 빨리 그렇게 하려면
서방 자본의 대량 투자가 없이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생각은 곧 서방자본의 북한 유입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휴전선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차를 몰고
개성을 다녀올 때는 저 철조망을 없애버리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데도 중요한 실질적 당사자중 하나가 미국이라는 현실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만일 100년 전 태프트-가츠라 밀약의
설움과 1980년대 독재정권을 지원한 미국에 대한 감정에 잡혀 외교정책을 밀고나간다면, 북한 동포들의 고통은 그만큼 더 깊어지고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도 그만큼 험난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중국의 6배 국력을 가진 미국,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 서방국가들을 제껴 놓고, 서부개발 때문에
스스로도 자본이 부족하여 외국자본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는 중국에게 대북투자를 주도하게 하면서, 북한동포들보고는
서서히 나아질테니까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옳은 일일까요?
우리가 좋던 싫던 상관없이 미국은 세계정치와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심지어는
북한마저도 핵과 미사일로 협박하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지난 15년 동안 외쳐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국을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일부의 주장이 과연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인지, 하루가 시급한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과연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과거는 과거고 현실은 현실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베트남 지도자들이 통일이후 베트남전쟁의
적대국이었던 미국이나 한국을 향해서 과거에 대한 한풀이식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경제발전이라는
국가 목표에 매진하기위해 미국 자본, 한국 자본을 끌어들이기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과거의 한을 품어 안으로 안으로 감추는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주(自主)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고 봅니다. 소극적인 의미의 자주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나라의 자주는 강대국과의 동맹과 상호배타적인 관계에 있다고 상정하고 강대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야 자주가 강화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러한 개념을 한미동맹에 대입해 본다면 한미동맹을 냉전적 상황에서 우리에게 부과된 것으로 바라보고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관점이 될 것입니다. 저는 19세기말 저항민족주의나 1980년대 반독재반미의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주의 개념이 바로 이러한 소극적인 의미의 자주라고 봅니다. 특히 북한이 더 이상 안보위협이 아니라는 인식과 그렇기 때문에 동맹의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이러한 생각의
기초를 이룬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자주관은 두 가지 관점에서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한미동맹은 냉전적 상황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었으며 바로 그러한 선택이 가져다 준 혜택인 안정적인
안보환경에서 우리의 경제발전과 민주정치의 실현이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안보전략 하에서
우리의 노력과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확보한 경제발전과 민주정치라는 가치는 우리 현대사의 귀중한 성과이며 미래 후손들에게 물려줄 귀중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소극적 자주관은 우리 현대사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현재는 냉전 과거에서 탈냉전 미래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상황이지, 이미 탈냉전
미래를 달성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천여 문의 북한 장사정포가 서울을 겨냥하고 있고 북측
협상대표들은 심심치 않게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대북포용정책의
결과 남북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에는 아직도 남북간의
신뢰수준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이 냉정해야 될 객관적 현실 판단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되면 정말로 일을 풀어나가기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의미의 자주 개념은 한 국가가 세워놓은 국가 목표를 얼마만큼 잘 달성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파악됩니다. 우리보다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그들과의 관계를 활용하여 우리의 국가 목표, 민족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주라는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맹을
해체해서 아무런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 돌입했다하더라도 정작 우리가 원하는 국가목표를 달성할 수단이 없어져버린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자주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등이 고귀한 가치임에 틀림없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난에 빠져버린
평등은 공허한 수사(修辭)에
불과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외국의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정의되는 자주를 아무리 많이 구가해도, 정작 미래의 국가목표를 달성할 아무런 수단도 주어지지 않고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적극적 의미의 자주로서 국제정치의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통일시의 헬무트 콜 (Helmut Kohl) 총리의
대미외교입니다. 콜 총리는 당시 미국의 부시대통령과의 긴밀한 외교를 통해 주변국의 독일통일에 대한 반대를
막아냈습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직후 영국, 프랑스, 이태리, 소련 등은 독일통일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국제무대에 앞장서서 나서서 독일통일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주변국이
반대를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나갔습니다. 경제적 지원으로 소련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도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미소간의 모든 협의내용을 샅샅이 독일에게 일러주고 독일이 어떻게 통일해나갈 것인지 세세하게 상의함으로써 서독을 도왔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민족통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적인 적극적인 의미의 자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자주가 아니겠습니까?
국제정치에서 힘의 진공상태란 존재하지도 않고 상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국가는 어떤 형태로든
힘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중요한 것은 타국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유리하냐를 냉정하게 계산하고
따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고기가 연못의 물이 더럽다고 밖으로 튀어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러운 물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그 물 속에서도 적응하여 더 힘세어지도록
체질을 바꾸고 그 안에서 생존하는 법칙을 익히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난 다음에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했던 독일 슈뢰더총리의 대미외교를 보면서 정치는 타이밍(timing)의
예술이라는 점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대북정책에 대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0여
년 전부터 포용론자이고 지금도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탈냉전의 세계사적 추세에 맞추어 남북간에도
화해협력의 정신에 따라 민족통일의 기반을 서서히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남북협력과 포용정책을 우리가 주도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항상 지침으로 삼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포용정책을 추진하는 방법과 과정이 세계사의 흐름에, 그리고 세계사회에서 존중받는 가치에 부합되어야한다는
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남북이 함께 길을 잃고 세계사회의 미아(迷兒)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후반 이래 세계사에서 하나의 법칙이 되어버린 것이 바로 사회주의체제가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해서 자체전환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망하게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경우도
이러한 세계사적 법칙에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북경제협력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돕는 일이 되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을 점진적으로 북한이 실현하는 방향으로
우리 정부는 꾸준히 노력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2003년 현 정부가 출범했을 때 DJ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대북정책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upgrade) 되었어야 했습니다.
사실 현 정부 초기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에게 불법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했을 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추진할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기는 어쩐 일인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고 새 정부의 포용정책은
DJ정부 때의 포용정책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되자 북한은 남쪽이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큰소리치면서 지원을 받아가고, 급기야는 "남측이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 있으니 대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까지 와버렸습니다.
시장원리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도 북측의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남북간의 채널을 통해 비공개적으로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우리의 입장을 수시로 명확히 전달하며 행동의 변화를 요구해왔어야 했다고 봅니다. 물론 과거 북한의 행동패턴을 고려할 때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을 진지하게 해왔더라면 북한이 우리를 지금처럼 우습게보지도 않았을 것이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지도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겁니다. 아마도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도록 설득하는데 있어서도 훨씬 입지가 좋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원칙 있는 포용정책만이 지속가능한 포용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원칙이
서지 않으면 국민의 공감대와 지지가 형성되기 힘들 것이고 이는 포용정책의 지속을 위한 국내정치적 지지기반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의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어야 그들로 하여금 대북포용정책에 동참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경제의 피폐상과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고려할 때 한국이나 거기에 더해 중국의 투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서방 자본이 북한으로 유입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동반포용정책이 되어야만 북한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반포용을 유도하려면 우리부터 원칙 있는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해야만 합니다.
혹자는 북한이 경제개혁을 추진하면 주민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을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저는 한국 정부를 비롯하여 서방 국가들이 북한의 지도자들에게
70년대 박정희 경제발전모델을 채택하도록 설득해야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경제는 개방하여
시장원리를 도입하되 국내정치적으로는 군사력을 기반으로 통제하는 것이 과거에 자유민주주의까지 경험했었던 한국이나 중남미국가들에서마저 상당기간 가능했었다는
점을 설득하여 시장원리의 도입을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먹고사는 문제라도 해결하여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이 정치, 경제 모두 희망이 없는 현 상태를 지속시켜나가는 것보다는 윤리적으로 나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해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북한은
아직도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북한이 핵을
경제, 외교, 안보적 지원과 맞바꿀 의사가 있었다면 2004년도 6월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해법을 마련해 제안했던 직후, 또는 2005년 9월 4차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이 나온 직후,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미국에게
협상의지를 알리고 협상에 진입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카오의 한 은행에 묶여있는 2,400만 달러를 풀겠다고 수백 배의 경제지원과 외교 안보 이익이 가능할 수도 있는, 더 나아가 북한전체의 사활이 걸린 6자회담을 방기하는 것도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물론 미국의 태도가 유연하지 못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벼랑 끝 전술로 미국을
협박하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협상의지를 표명했더라면 미국의 라이스(Rice)장관이나 힐(Hill) 차관보 같은 대화파들의 입지가 국내적으로 더욱 강화되어 협상이 가능했었을 것입니다. 북한도 안보 위협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911이후 미국도 테러리스트
손에 핵 물질이 넘어가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인식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나라의
안보든 그것은 상대적인 개념이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더구나 동북아와 같은 국가 상호간에 불신이 높고 불안정한 국제정치 상황에서 내가 "절대적"인 안보를 추구하면 상대방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국제정치의 속성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방어적 목적에서 절대적인 안보를 확보하기위해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아도, 상대방은 그것을
공격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 위협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른바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라고 하는 국제정치의 속성입니다. 결국 적당한 수준에서의 "상대적 안보"를 추구하면서 경제, 외교상의 이득과 안전보장을 받아내는 것이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인 것입니다. 우리의 대북 메시지는 다름이 아니라 북한이 그러한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하는 데에 모아졌어야
했습니다.
4. 통상전략의 문제
1980년대 한국의 사회과학계를 풍미했던 이론이 종속이론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주변에 해당하는 저발전 국가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중심부의 세계자본의 운동논리에 따라 경제, 정치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왜곡되어 자율성을 잃고 선진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저는 당시 유학을 가서 국제경제학 교과서를 읽던 중에 한국이 경제발전의 성공사례로 등장하는 것을 보고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종속이론이 풍미하는데 서방 학자들의 눈에는 종속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즉 주변국 저발전 국가도 하기에 따라서는 고속성장을 할 수 있다는, 첫
번째 사례로 등장하는 것이 한국이었기에 너무 역설적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정치적 암흑기를 거치는 반대급부가 있었기는 하지만 우리가 후손들에게 자랑할만한 유산입니다. 제3세계 후진국에서 경제규모로 세계10위에 올라선 것이고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의 희생위에 이제는 정치의 민주화까지 이룬 것은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그러한 오늘날을 있게 한 한국의 대외통상전략의 핵심은 점차적으로 진행되어온 경제의 세계화 추세를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세계화의 물결을 적극적으로 타고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화의 덕을
가장 많이 본 나라를 들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일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 전략의 핵심이 수출주도형 발전전략이었고 이는 갈수록 개방화로 나아가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략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은 땅도 좁고 국내시장 규모도 협소하며 석유 한 방울 안 나고 자원도
척박한 나라입니다. 그러한 주어진 여건에서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살아남는 방법이란 고급인력을 길러내 기술과
상품혁신을 이루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길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모델이 되는 나라가 있다면 아마도 네덜란드가 아닌가 합니다. 네덜란드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유럽의 작은 나라이지만 유럽대륙에서 통상과 물류, 금융의 중심 국가로 높은 소득을
올리며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거대한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로 둘러싸인 우리의 입장에서 한국이
동아시아의 네덜란드가 될 수 있다면, 작지만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통상, 물류, 금융의
네트워크 안에 북한까지 품어 안아서 그들의 경제적 재건까지 돕는 것이 우리의 희망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 정부가 추진해온 동북아 중심전략의 핵심이라고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동북아중심전략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고 경제적, 기능적 개념입니다. 특히 교통 통신의 발달로 지리적 거리의 멀고 가까움이 별로 중요한 경제 변수가 아닌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한미 FTA협상을 놓고 찬반논쟁이
치열합니다. 반대논쟁 중의 하나는 동북아중심을 추진하던 현 정부가 왜 갑자기 한미FTA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인데, 그것은 동북아중심이라는 개념을 지리적
또는 정치적으로 해석한 결과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저는 동북아의 중심이 되는 일이 왜 한미FTA와 충돌된다고 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제대로 동북아
중심이 되려면 동북아와 미국간의 경제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한미FTA가 되어야하고 그렇게 될 때
서로 상승작용과 시너지 효과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한미간의 FTA체결은 그동안 한국이 추진해왔던 세계화의 파도타기전략의 맥락에서 바람직한
전략적 선택일 것입니다. 어차피 국내시장의 협소성과 자원의 부족을 고려할 때 한국은 개방된 세계를 상대로
뻗쳐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동아시아의 중심, 허브(hub)를 추진한다는 것도 경제의 세계화의 파도를 적극적으로 타겠다는 것이고 그러한 맥락에 한미FTA도 부합된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의 경쟁력을 금융, 서비스 산업부문에서 강화함으로써 동북아의 허브 역할을 할 역량도 키워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될 때 한국경제는 미국경제와 동북아경제를 연결시키는 연결고리 역할도 담당할 수 있을 것이고, 세계 속에서 한국경제의 비중과 위상은 한 단계 격상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 경제는 1993년 말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로 농업개방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개방은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가져왔지만 개방시대에 걸맞게 경제의
틀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한-칠레 FTA가 체결되어 발효되었지만 우리 농업 부문의 피해는 우려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던 대신 칠레로의 공산품 수출은
상당히 증가했습니다. 동북아 중심을 계획하고 세계화의 파도타기 통상전략을 말하면서도 FTA체결의 추세에서는 오히려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이제 겨우 세계경제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비마다 그러했듯이 수많은 논란과 우려가 한미FTA에 대해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가 1998년 일본과의 문화개방을 과감하게 추진했을 때 수많은 우려와
반대가 있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한류(韓流)의 파도가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세계 도처로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들이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나아갈 때만, 우리의
저력이 드러나고 활로가 열린다는 가장 분명한 교훈을 최근 한류현상으로부터 읽고 있습니다.
한미FTA를 제가 찬성하는 또 다른 이유, 아마도
더 중요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남북한 통합에 대비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절대적인
과제, 피해갈 수 없는 숙명적인 과제는 앞에서도 이야기한 북한문제의 해결입니다. 북한문제의 핵심은 경제문제입니다. 북한의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국 서방자본이 도입되고 북한 경제가 세계경제로 편입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북한으로의 서방자본 유입과
북한경제의 세계경제 편입의 디딤돌을 만드는 일이 바로 한미FTA라고 생각합니다.
한미FTA는 경제적인 의미에서 미국을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일입니다. 냉전시대에 미국 군대를 끌어들여 안보를 확보했듯이, 미국의 자본
투자를 한반도 안으로 끌어들여 한반도 경제통합과 탈냉전을 유도해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한미FTA를 통해 한국경제의 투자여건이 개선되고 자본시장이 더욱 활성화되며 경제의 틀이 선진화된다면 그것은 곧 대북투자를
위한 한미간 파트너십이 더욱 강화될 뿐 아니라 미국이외의 서방자본의 도입까지 유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지한 협상을 통해 미국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물자를 한국산으로 간주해주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대북정책을 미국이 끌어안아주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FTA가 체결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핵 문제도 해소되고
한미경제 간의 연결고리가 더욱 강화된다면 미국 정부는 이를 한국산 상품으로 인정해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미FTA 문제는 긴 호흡으로 멀리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한미FTA 체결의 성공여부는 현 정부가 국내사회적 통합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냐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피해를 보는 집단에 대해 어떤 재원으로 어떠한
보상을 지급하여 업종전환과 생계를 도울 것인지를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확실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재정지출의 세세 항목까지 마련하여 피해예상 집단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찬성을 유도해내는
첩경일 것입니다. 둘째로 정작 피해를 보는 계층이 아니라 반세계화, 반미의
이념적 맥락에서 반대를 해오는 집단들을 설득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이들의 공세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직접 한미FTA의 명분과 필요성,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경제에
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미래의 청사진에 도달하기까지 우리가
겪어야 할 변화의 과정들을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설명하면서 협력을 구하는 적극적인 정치적 리더십의 행사가 필요합니다. 셋째로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과 과정은 공개하기 힘들지라도 어떻게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결과를
얻어냈는지를 그때그때 국민들에게 알리고 호소하는 진지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미FTA를 통해 이득을 볼 집단들로 하여금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해야할
것입니다. 수출이 늘어나 득을 보게 될 집단들이 침묵하고 무임승차나 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왜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국민 전체를 위해 득이 될 것인지, 피해 집단들의 적응과 조정 과정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세계경제의 대세는 세계화입니다. 세계화는 우리 국민들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 역사는 세계화를 약으로 만들어 우리 국가의 활로를 개척해나가는데
한국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가 모두 인정해주는 사실입니다. 많은 논란과 걱정 속에서도 지나온 과거는 우리가 세계화의 파도타기전략에 성공해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나라는 세계에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1980년대 종속이론의 세계관, 숙명론적 결정론의 포로가 되어 역사의
기로에서 주춤거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제까지 국민들에게 그러한
자신감 있고 긍정적인, 미래지향적인 청사진과 세계관을 심어주는데 과연 성공했는지를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혹시나 경제문제에 대해 지나친 이념지향성을 가지고 접근해서 국민들의 시야를 오히려 안으로만
돌리도록 만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5. 맺음말
세계는 이미 하나의 개방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요즈음 한국의 젊은 주부들은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에 보낸 다음 인터넷으로 지난 밤 뉴욕 주식시장의 흐름을 살펴본 뒤 한국의 주식을 사고파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한국 금융기관들의 주식의 60%이상이 이미 외국인 소유일 정도로
한국은 세계경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구 저쪽 끝에서 벌어지는 중동 분쟁이 국제유가를 80달러가까이까지 올려붙여서 한국에 사는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북한 미사일의 발사가 UN 안보리와 G8 정상회담의 의제가 되어 논의됨으로써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화되어버린 탈냉전 세계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준전시상태로 남북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상황 속에서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10위가 되었고 우리의 혈육인 북한 동포들은 지금도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입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이 항구적인 평화를 한반도에 정착시키고 번영을 구가하는 것이 우리 한국의 국가 목표입니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21세기 오늘날 현실에
걸 맞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발상에 기반하여 안보와 통상전략이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1세기 전 구한말이나 1980년대 반독재투쟁시의 세계관과 발상과 의식, 그리고 그것에 뿌리를
둔 정책으로는 결코 평화정착과 번영 속에서 우리 민족을 통합하는 과제를 풀지 못하고 밝은 미래를 도모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정말 우리 스스로와 세계를 바라보는 의식과 발상이 변해야 될 때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여기 계신 교장선생님들께 당부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20-30년 후 한국의
미래를 담당할 중고등학생들에게 민족사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세계를 바라보는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눈을 길러주시기 바랍니다. 일제강점부터 시작된 잘못 꿰어진 역사의 흐름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만, 그러한
속에서도 우리가 세계 수준의 경제발전과 민주정치를 이루어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해주십시오. 세계에
그런 민족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은 지금의 일부 기성세대들처럼 한 많은 과거사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우리 국민들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이룩해낸 업적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시고
그러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그들이 우리 민족의 숙원인 민족통합을 성공적으로 달성해낼 수 있도록 진취적인 기상을 심어주십시오.
또한 우리는 세계화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국제정치와
국제경제의 흐름을 꿰뚫어 알고 그것을 기초로 우리 민족의 생존전략을 세워 실천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미리 익혀나가게 만들어주십시오. 한국은 세계 속에 있고 세계는 곧 한국인들의 삶의 터라는 것을 알아 세계시민으로서 갖추어야 될 덕목들도 배워
알게 만들어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의 사고와 기상이 세계로 세계로 뻗쳐나가게 자극하는 교육을 실현해
주십시오. 그래서 세계사 속의 한국의 자랑스러운 주역들이 되어가도록 키워주십시오. 그것만이 우리 민족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6.15선언은 아직도 남북한의 평화공존, 통일을 위해 유용한 선언인가. 이 선언이 발표된 지 6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우리는 이
선언의 존폐를 진지하게 검토해야할 상황을 맞고 있다. 최근 북한이 6.15선언에 대한 북한 측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은 6.15선언에 전혀 개의치 않고 지난 7월 5일 스커드 미사일, 노동 미사일,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 다. 정부의 일각에서는 북한의 미사일발사는 군사적이 아니고 “정치적”이라고 평가하지만 북한이 한국을 사정권 안에 둔 미사일을 예고
없이 발사한 행위는 임의의 시기에 남한에 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위협으로서 한국에 대한 군사도발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은 한미동맹에 근거한 연합방위전력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는 북한의 스커드미사일 공격에 자주적으로 대처할 준비가 취약한 상태에
있다.
둘째로 북한은 6.15선언을 명분으로 미군철수선동과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 측은 한나라당이 집권하 면 6.15선언은 날아가고 남북교류도 없어지고 전쟁으로 한반도는 불바다가 될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의 집권반대를 명백히 했다. 우리나
라 정치공동체의 존립원리를 부정하는 내정간섭이 아닐 수 없다. 셋째로 북한은 6.15선언을 내세워 답례도, 고마움의 표시도 없이 남한의 일방적인 대북지원만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선군정치’로 남한의 광범한 인민이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들의 지원요구
에 남측이 호응치 않을 경우 남북 간에 민족적 차원에서 진행되어 오던 이산가족 상봉 도, 면회소설치공사도 중지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6.15선
언에 대한 북측의 입장이 이렇게 표현될 진데 이 선언이 유용할 수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따져 봐야한다. 당초 6.15선언을 만든 남북정상회담은 북한 측의 필요가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간청(懇請)과 특검의 고발로 관련자 전 원이 사법 처리된 대북불법송금을 통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6.15선언은 애초부터 김 전 대통령이 수세적 입장에서 북한 측 주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이 북측에 요구해야할 1991년의 남북한 기본합의서나 한반도비핵화선언의 이행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보장방안이나 인권문제는 아예 거론도 못했다. 장기복역수문제는 문서에 담으면서도 납북자문제가 빠진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김 전 대통령은 선언 제5항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요청하여 합의를 얻어내고 김정일 위원장의 방한 시 한반도 평 화보장문제 등 한국 측 요구를 제기, 필요한 합의를 추가할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은 이루어지지 않
았고 그 전망도 없다. 6.15선언 직후 김 전 대통령은 “이제 한반도에는 전쟁의 위험이 없어졌으며” 김정일 위원장은 합리적이고 판단이 분명한 사람으로서 통일 후에도 미군의 한국주둔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이것은 6.15선언의 엉성함을 보
완해보려는 김 대통령의 희망사항 같았다. 그러나 선언발표이후의 정세는 김 전 대통령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았다.
물론 6.15선언이후 남북한관계는 교류와 협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남북당국자 회담만도 19회 에 이르는 장관급회담을 포함하여 169회 열렸고 이산가족상봉도 지난 5년 간 14회에 걸쳐 1만 여명이 참가하였다. 인적교류, 교
역량도 대폭 늘었고 끊어진 철도가 연결되었으며 개성공단도 설립되었다. 그러나 6.15선언이후 남북교류는 솔직히 말해서 남북한이 신 뢰할 만한 평화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상태 하에서의 남북교류였고 교류협력의 주도권도 항상 북측에 있었으며 북측의 요구사항을 하나씩
실현해주는 절차였다. 정부는 남북한 간의 긴장을 줄이고 북측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북 한주민들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하의 교류와 내왕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남북관계의 이러한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핵과 미사일 등을 포함한 한반도 군사문제에서는 철저히 남한무시(無視)정책을 고수하고 있 다. 7.5미사일발사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현시점에서라도 6.15선언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공적조서 첨부자료로 유용 했던 것처럼 남북관계의 장래에 유용한 선 언이 되려면 새로운 협상을 통해 선언의 내용을 최소한 남북한 기본합의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남북한 간에 인식차이를 보이는 공존,
공조, 연합과 연방, 납북자, 국군포로문제 등의 갈등요소를 해소시켜야 한다. 또 남측이 대북지원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양적(量的)상 호주의는 아니더라도 질적(質的)상호주의(예컨대 쌀 지원에 대해 납북자를 송환해주는 식)는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 정부는 북측이
이를 위한 새로운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6.15선언의 폐기를 선언하고 대북접근의 새로운 방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북한 이 남한내정에 간섭하거나 지원요구의 명분만 주고 자기네들은 어떠한 책임과 의무도 지지 않는 선언은 더
이상 붙들고 있을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