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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학계가 응수해야 할 동북공정의 도전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 영 일

동북공정(
東北工程)이 또다시 한중간의 갈등의 불씨로 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이 동북변강역사와 현상계열 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 系列硏究工程)이라는 제목 하에 조선반도 형세변화가 동북지구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부제로 2002년부터 5개년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동북공정이 그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한국고대사(古代史)의  내용을 심각히 왜곡 해석하는 내용물들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초기부터 중심연구대상으로 고구려로 설정하고 고구려의 성립과 흥망성쇠과정을 분석하여 고구려에 관련된 사실(史實)들을 정치적 목적에 맞도록 짜 깁기 하고 재포장하여 중국역사의 일부로 개변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중국학계는 198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당연히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로 보지 않았고 다만 만주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 학자들을 비롯한 일부학자들이일사양용론(
一史兩用論)’, 즉 고구려사를 한국과 중국이 서로 이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피력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중국은 자국을통일적 다민족국가로 정의(定義), 이념화하면서 고구려사 전체를 중국사의 일부로 바꾸는 주장들을 제기해 오다가 이제는 동북공정을 통해 이를 정설화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동북공정은 50건의 연구 성과를 책으로 펴냈고 최근 출간된 것은 발해국사(
渤海國史)를 비롯한 7건이다.특히 변강사지(邊疆史地)연구센터는 고구려와 발해는 물론 고조선과 부여까지를 중국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들 논문가운데는고대 중국의 영토가 한강(漢江)이북까지 확대됐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중국의 일부 사학자들이 한중 양국에 걸친 고대사를 심도있게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간의 통설과 다른 연구결과가 나와 새로운 학설로 내놓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자 개인의 학문연구이기 때문에 반론은 제기할 수 있을 뿐 시비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이런 연구가 설사 정부의 연구비보조를 얻었드라도 학문연구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된 국가에서의 연구라면 그것역시 학자개인의 소론으 로 보아 넘길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정부는 자국 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적 필요에서 특정분야의 진위나 정부(
正否)를 가리기 위해 연구를 학계에 위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은 두 가지 면에서 한국 측의 경계심과 비판적 대응을 유발한다. 우선 동북공정연구는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조선반도 형세변화의 동북지구 안정에 대한 충격'이라는 문건이 시사하듯 중국정부가 자국내의 소수민족 통합정책의 일환으로 내세우는통일된 다민족국가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치적 연구 사업이라는 점이다. 현재 중국에는 56개의 소수민족이 있으나 그들의 모국(母國)은 이미 역사에서 사라졌고 중국보다 잘 사는 모국을 가진 소수민족은 조선족밖에 없기 때문에 각별히 고구려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중국은 지금까지 많은 부문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 학문의 자유를 완전 보장하는 국가는 아니다.국가연구기관에 종속된  학자들은 주어진 목표에 적실(
適實)히 복무하는 도구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연구는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과학적 규명보다는 정치적 필요에 맞도록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거나 짜깁기 하는 수준을  탈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국내 학계에서는 중국 측의 동북공정이 현재로서는 대외적으로 밝힐 수 없는 장단기 목표를 추구하는 것으로 예상한다.즉 단기적으로는 한반도가 중심이 되는 동북아 정세변화를 내다보면서 패권의식을 잠재화하고 있는 중국의 금후의 역할설정을 위한 사료를 정비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상황변동이 중국의 국익과 충돌할 경우 한반도사태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명분을 쌓아놓자는 것으로 본다.

이 점과 관련하여 베이징 대학 역사학과의 쑹청유(
宋成有)교수가 자기도 저자의 한 사람인 중한관계사(中韓關係史)에서고구려는 신라, 백제와 함께 삼국시대의 한국역사라고 지적하고 이것이 베이징대 역사학과의 일관된 입장이라면서현재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고, 역사를 현실에 봉사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갈파한 것은 학자적 양심을 반영한 주장임과 동시에 오늘의 동북공정의현주소를 적절히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연구는 우리 정부가 중국정부를 상대로 외교적 항의를 일으킬 단계에까지는 와 있지 않다.왜냐하면 일부 중국학자들의 연구는 그것이 아직 중국정부의 한반도정책으로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상태는 다만 정부수준에서 주목하고 경계해야할 사안은 되지만 외교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대응할 사안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학자들의 연구는 정책화되는 수도 있지만 상황이 맞지않을 경우 영구히 사장(
死藏)되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문적으로 날조되거나 짜깁기 된 연구는 과학적으로 뒷받침-문서나 출토품을 통한 고증 등-된 심도 있는 정론(正論)이 나올 경우 곧바로 용도 폐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북공정이 마감된 이후 중국정부가 이들 연구를 어떻게 처리하고 정책에 반영하는지 여부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아직 최종결론도 ,정책화도 되기 전에 중국정부가 마치 우리의 고대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한 것으로 속단, 정부의 강력대응만을 촉구하는 것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수순이 아니다. 특히 역사의 진위를 다투는 문제를 국가주의적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특히 중국과 같은 인방(
)을 상대로 외교대결을 벌일 문제일수록 우리는 항상 가능한 것과 바람직한 것을 준별하면서 가능한 것의 누적을 통해 바람직한 것을  달성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견지해야할 자세는 우리 학자들, 특히 국사학자들과 국제정치 및 외교사 전문 학자들이 서로 제휴하고 앞장서서 동북공정의 허구성, 부실성을 세밀히 연구, 분석하면서 세계 학계의 지지와 공감을 살 수 있는 객관 타당한 사실을 내놓는 것이다. 따라서 현 단계 동북공정 도전에 대해서는 우리 학계가 대응의 일차적 책임을 맡도록 하고 우리 학계의 수준 높은 사실규명과 고증된 자료를 통해 중국학자들의 주장을 하나씩 논파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정부에 촉구해야 할 것은 중국정부에 대한 외교적 항의에 앞서 한국학계가 일부 중국학계의 도전을 잘 극복하도록 필요한 연구 지원을 강화하라는 것이어야 한다. 제1차 동북공정 파동(2004년)의 대응책으로 고구려사 연구재단을 발족시킨 정부가 차제에 범위를 넓혀 동북아역사연구재단으로 확장 개편한다는 것은 뒤늦은 감이 있으나  적절한 조치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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