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와 통일문제
이 연설문은 2007년 4월 25일 한민족복지재단운영이사회 조찬모임에서 1시간 동안 행한 연설문 전문이며 이에 앞서 4월 13일 상록포럼(매리어트호텔 센트랄시티에서도 同一한 연설을 한 바 있음)
21 세기와 통일문제
이 영 일
1.시효 지난 콤플렉스를 버리고 주변 환경을 새롭게 보자
21세기가 7년을 맞는 시점이다. 그러나 세기가
바뀐 지 7년이 지나고 있어도 우리는 20세기의 역사 속에서 그것에 의지하여 통일 상황을 예측하고 전망했던 관점과 시각을 크게 바꾸지 못하고 있거나 설령 바꾸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충분히 내
면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0세기의 통일문제가 강력한 군대를 앞세워 무력통일을 획책하는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적화통일 음모를 어떻게 막고 그들의 배후세 력의 친북지원을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 것인가에 역점을 두었다면 21세기의 통일문제는 20세기와는 정반대되는 상황 속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우선 지구최빈국으로 전락해버린 북한을 어떻게 관리하고 변화시켜야 우리의 통일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두어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이후 20세기의 후반기를 다음 세 가지 콤플렉스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 우리 의식의 저변에 큰 자리를 잡고 惰性화된 콤플렉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가난한 약소국이라는 콤플렉스,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을 추구하고 있다는 콤플렉스, 그리고 주한미국의 주둔이라는 밀착지원(Close
Deterrence)이 국가안보의 최선책이라는 대미의존콤플렉스가 그것이다.
[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한 약소국이 아니다]
21세기에 접어든지 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조선시대처럼 약소국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한국모델을 본받자고 칭송하는 경제력 세계 11위의 국가로 성장했고 세계선진국클럽인 OECD 회원국이기도 하다.
현시점에서 우리의 종합국력을 따져 보면
@ 국토면적은 992만6000ha로 세계230국 중 110위에 지나지 않지만
@ 인구는 25위권(남북한 합치면 17위)에 속한다.
@ 원자력기술에 있어서는 약20개의 핵발전소를 보유한 세계 5위의 원자력강국이다. 36t〜37t의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는 7,251t이상의 폐 핵연료와 흑연중수로 감속로를 보유하고 있다.
@ 조선선박기술은 세계1위이고 GDP도 2005년 9월 IMF의 공개 자료에서 세계랭킹 10위로 보고되고 있다.
@ 국방비는 2005년도 224억달러로 세계8위수준이다. 영국정부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핵과 생화학을 제외한 현대전 군사력분야에서 세계150여국 중 제 6위로 발표하고 있다.
@자동차기술은 세계6위이지만
@인터넷이나 휴대폰은 세계1위를 점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한 약소국이 아니다. 그런 콤플렉스를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뇌리가운데는 아직도 가난콤플렉스가 살아있으며 새 세대보다는 기성세대 가운데 이 콤플렉스의 뿌리가 깊다.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엿본다는 가정도 현실이 아니다]
또 우리는 20세기 중엽에 겪었던 북한의 무력침략과 그것에서 비롯된 간단없는 남북긴장과 갈등 때문에 우리의 의식 속에는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남침 콤플렉스가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사뭇 달라졌다. 우리가 6.25동란의 전재복구를 갓 끝낸 1961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1인당
GNP는 87달러이었고 북한의 그것은 104달러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국력은 앞에서 본바와 같이 1인당 소득에서 15,000달러를 넘어 20000달러 선에 근접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지구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했다. 북한은 이제 무력남침보다는 자기 체제보존에 급급하고
있으며 남북한의 협력관계가 긴밀해질수록 북측의 한국에 대한 의존도는높아진다.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 학자는 그의 최근 논문에서 “일 년에 3개월은 주민들이 외부의 식량지원이 없으면 굶는 나라, 그러나 연간
국방비가 GDP 대비 30%를 초과하며 1회에 3,000억 원이 소요되는 핵실험을 하는 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기회만 되면 탈북을 꿈꾸는 나라, 선군정치를
강조하는 국가에서 사병들이 군량미 부족으로 눈 덮인 겨울 산에서 먹을 것을 찾아 해매며 민가에 내려가 약탈하지 않는 이상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나라, 석유도 생산되지 않으며 벤츠자동차가 평양 시내에서 가장 흔한 차종인 나라, 평양에 거주하는 상위 1%의 핵심계층 23만여 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살림살이가 바닥 수준으로 비슷한 나라,
이것이 2007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모습이다.” 북한의 형편이 이러할 진데 우리가 남침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우리가 원하는 만큼 기대할 수도, 유도할 수도 없고 평화통일을 위한 효과적인 북한지역관리방안을
강구할 수도 없게 된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미국의 안보관은 변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인구가 많다거나 땅이 넓은 대국은 있어도 조선시대처럼 무조건 섬겨야 할 대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국가들 간에 세력균형이 유지되고 어느 한 국가가 주도하는 패권질서가 출현하지 않는 한 우리의 자주영역은
나날이 커지게 되어있다.
지난 세기 우리는 경제와 안보의 양면에서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정세는 크게 변화했다.
미국의 주적으로서의 소련과 공산권의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이후의 주변정세는 동서냉전시대와는 국제관계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이제 지구상에는 정규전을 통해 미국에 맞설 국가는 없다. 국제정치의 용어로 미국을 상대할 대칭적 적은 존재할 수 없다. 오직 테러와 같은 비대칭적(asymmetric)적이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달라지자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에 군대를 밀착 주둔시키는 방식보다는 미국안보의 당면과제가 되어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동성 높고 유연성있는 군으로 미군의 편성과 배치와 기능을 재정립하고 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지구최빈국으로 전락했고 북한의 남침을 응원할 우방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 하에서 한미협력관계를 냉전시의 그 수준으로 유지해야 안보가 가능하다는 사고는 이제 극복되어야 한다.
이제 한미관계는 일방적 의존으로부터 협력적 상호의존(Partnership)으로 협력의 양상을 바꿔나가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이번 한미 FTA 즉 KORUS FTA는 19세기말 한미수호조약 체결이후 최초로 한국이 미국을 대등한 입장에서 맞상대한 협상의 산물인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질 것이다.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는 새 통일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과거와 같은 약소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보다 국력이나 영향력이 훨씬 강한 4국이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다는 지정학적 운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주변국들의 패권갈등을 제어하면서 자주적으로 반패권(反覇權)의 세력균형질서를 이끌어내기에는 아직도 우리의 힘이 부족하다.
우리의 이러한 역부족에서 오는 안보상의 불리(不利)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맹외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중국이 패자(覇者)일 때 조선왕조는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외교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도모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시대적 사대외교가 아니라 21세기형 동맹외교이다.
이 점에서 한미동맹은 아직도 우리의 안전을 위한 동맹으로 유지, 발전되어야 한다. 그러나 종래와 같은 편무적 의존형의 동맹이 아니라 상호간에 공동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동맹이어야 한다. 이번 한미FTA타결은 매우 고무적인 사태진전이라 하겠다.
바야흐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의식 속에 잔존하는 20세기의 콤플렉스를 완전히 걷어내고 21세기에 걸 맞는 태도와 정책을 정립, 추진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
또 21세기의 변화된 현실을 우리의 정치생활 속에 내면화하고 이를 정책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동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는 결코 단순하거나 일시적인 문화흥행이 아니다.
오늘의 한국을 의식하는 동아시아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류는 우리의 뚜렷한 문화정책으로 정착되지 못했다.
문화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의 머리가 21세기에 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내치외교를 21세기에 걸맞게 변화시키고 그 차원에서 모든 문제를 평가하고 대응하는 자세의
정립이 필요하다.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관점도 이런 견지에서 새롭게 검토되어야 한다. 우리는 결코 과거를 잊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묶이거나
매여서는 더더구나 안 된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한 나라도, 약소국도 아니고 침략의 위협 앞에 떨고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2. 재통일이냐 새 통일이냐
이제 우리는 통일문제를 영어식표현으로 재통일(Reunification)로 표기하기에는 상황도
달라졌고 시간도 너무 많이 흘렀다.
분단이 없었던 그 옛날, 눈물 없던 때를 되찾겠다는 의미의 복고적 통일관념, 가고파적 통일 관념이 우리의 뇌리 속에 담겨있을 수 있으나 현재 남북한 간에는 회복할만한 과거가 모두 지워졌거나
변질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過去志向적, 復古的 통일은 현실적으로 성립불가능하다.
또 功利的 견지에서도 통일이 민족생활에 있어서 현재보다 더 잘 살고 더 행복해지기 위한 희망의 대명사라면 현 조건하에서 남북한을 단순히 하나로 합친다는 의미의 통일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다.
GDP에서 세계랭킹 11위의 남한과 150위 이하로 분류되는 북한을 물리적으로 재결합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만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큰 의미가 없다.
통일은 미래의 시간에 이루어져야할 과제임을 상기할 때 우리가 이룩할 통일은 정서적이거나 물리적 의미의 재통일보다는 오늘의 한반도위에
선진화된 한민족의 새로운 국가를 세운다는 의미의 새 통일(New Unification)로 통일의 의미와 목표를 정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정상국가화가 통일의 지름길이다]
우리가 달성해야 할 통일을 이런 의미의 새 통일로 정의할 경우 당면한 통일과업은 현시점에서 지구 최빈국으로 전락한 북한을 변화시켜 21세기의 세계표준에 맞는 정상국가로 연착륙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북한의 실패한 계획경제체제를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동구라파 공산국가들의 경우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기존 집권층인 공산당 간부들이 시장경제의 주역이 되어 개혁개방에 앞장섰고 중국이나 베트남도 개혁개방의 주체들이 모두 공산당 간부들이었다.
미국의 네오콘들이 대북정책의 기조를 김정일 정권의 제거를 겨냥하는 정권교체(regime
change)에 두었다가 이를 정권의 변형(regime transformation)으로 바꾸고 이제는 북핵문제에 관한 2.13합의이후 정권의 관리와 변화유도에 역점을 두는 정권관리 (regime management)로 전환하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변화이다. 동서독의 경우 동독의 연착륙을 지원하지 않고 바로 흡수통일을 추진한 결과 西獨인들에게는 경제적 부담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가중되었고 동독인들에는 통일의 환멸과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이 갖는 경제력은 북한 재건을 독자적으로 지원하기에는 역량이 모자란다. 한국이 중심이 된 대북 지원 Consortium을 구성, 북한경제재건 지원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전망에서 예상 가능한 통일은 오늘의 한반도위에 남북한이
공히 잘사는 상태에서 만나는 통일, 즉 새 통일의 비전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노력이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기 위한 대전제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에로의 전환일 것이다.
3.한반도 통일추진의 실천적 기반은 무엇인가
[통일추진의 법적 근거는 불명]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사실관계에서 보면 한반도의 통일 주체는 비록 남북한으로 갈리어 있지만 오늘의 한반도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한민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국제법상으로 보면 한반도를 남북한으로 갈린 한민족이 주체가 되어 통일되어야 할 공간이라고 규정한 법적 근거는 없다.
日帝가 대한제국을 강압적으로 자국에 합병시킨 이래 통일의 源泉國家 또는 총괄국가(Gesamt Staat)로서 대한제국이 한일합병이전에 누리던 영토와 권한을 한민족이 통째로 맡아 행사한 경험이 없이 오늘에 이르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법의 세계에서는 대한제국의 法統(Legitimacy)이 그대로 오늘의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민족에게 인계되었다고 인정할 법적 근거가 불명하다.
물론 카이로, 포츠담선언에 의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쳐 독립을 부여하자는 연합국 수뇌들의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처리구상, 그리고 유엔감시위원단의 선거 감시 하에서 실시된 총선거로 단일의 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유엔총회결의가
한반도를 한민족의 통일공간을 긍정하는 국제적 합의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이나 결의도 동서냉전의 확산으로 분단질서가 고착됨으로 해서 아직까지 현실화되지 못했다.
우리는 한일기본조약체결과정에서 대한제국의 헌법적 부활을 기대할 기회를 가졌었다.
즉 1910년의 한일합병조약이 源泉無效(Originally null and void)이었음을 국제사회에 공인시켜야 했다. 그러나 법의 논리 보다는 한일수교라는 정치적 필요에 쫓겨 “원천 무효” 아닌 “이
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를 받아들임으로써 통일의 총괄국가로서의 대한제국의 헌법적 부활을 확보하는데 실패하고 일본으로부터의 배상이 아닌 독립축하금
명목의 차관도입으로 한일관계를 정상화시켰다.
[유엔동시가입으로 두 개의 한국 현실화]
오늘날 남북한은 다같이 주권국가(Nation state)만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유엔회원국이
되었고 대외관계에서도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1970년 이래 남북 간에는 이산가족의 재회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나 그 숫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또 남북한 간에는 40년 가까이 비록 부침과 단절을 거듭하면서도 정치적 수준의 대화가 이어져 오고 있지만 한반도가 한민족의 통일공간임을 과시할 가등기(假登記)조차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비록 일방적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헌법 3조만이 한반도통일의 법적 근거로 살아있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이 조항은 실효적인 조항이라기보다는 선언적 규정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러나 탈북자를 대한민국이 받아들이고 그들을 지원하는
법적근거가 헌법3조에 근거하고 있음을 볼 때 결코 선언적인 규정 아닌 實效的 규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일부 국회의원들 가운데는 헌법3조를 비현실적 규정이라 하여 개헌을 통해 삭제하거나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최근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대북정책의 기조변경을 검토하면서 헌법3조의 개정을 거론하고 이 문제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여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휴전선이 남북을 가르는 국경선으로 바뀐다].
앞으로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치된다면 남북을 가르는 군사적 의미의 잠정 경계선인 휴전선이 평화선으로 바뀌겠지만 이는 구체적으로는 휴전선이 남북한을 항구적으로 가르는
국경선으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한반도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태도는 북한이 붕괴하거나 와해될 경우 자동으로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이 이룩되도록 인정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북한정권이 와해될 경우 한국이 통일을 위해 북한지역을 군사적으로 장악하는 것을 반대하고 북한지역을 국제관리 하에 두면서 북한처리에 관한 새로운 국제적 합의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또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라면 미국은 북한의 핵 제거를 명분으로 군사적 점령을 검토할 것이며 중국은 북한에 투자되어 있는 자국의
재산보호와 전통적인 안보 관념 즉 북한은 중국안보의 입술이며 중국은 이(齒)라는 순치관계론에 입각, 북한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이런 상황을 가상한 개입명분축적이라는 설도 있다.
[통일의 실천적 기반 강화해야]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통일문제를 현시점에서 냉정히 검토할 때 우리의 통일을 위한 실천적 기반은 법보다는 남북대화와 교류협 력을 강화함으로써 국제사회가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의 한민족주도하에 이루러져야 한다는 것을 공인하게 만들어 나가고 실적을 쌓아야
한다.
올림픽 경기에서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한다거나 국제사회의 관심 속에서 이산가족의 재회 내지 재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관계에서 통일노력의
정당성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공감을 비축하는 방도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 개성공단운영, 철도연결 등은 국제사회로 하여금 한반도 통일의 주인이 한민족임을 굳혀가는 의미 있는 실적이 될 것이다.
4.한반도 평화협정과 비핵화 문제
[가장 오래된 휴전협정]
한국의 휴전협정은 국제법이 생긴 이래 가장 오랜 휴전협정으로 정의되고 있다. 통상 휴전협정은 협정체결 후 수년 내에 전쟁상태를 법률적으로 종결시키는 講和條約 내지 평화협정으로 대치된다.
그러나 한국의 휴전협정은 54년 동안 새로운 협정에 의해 대치되지 않고 있음으로 해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휴전협정이 되고 있다.
1954년 제네바정치회담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기회였으나 한반도휴전협정은 통일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평화협정으로 대치될 수 없는 당시의 사정
때문에 정치적 수준의 새로운 협정에 의하여 대체될 때까지 효력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통일문제는 유엔에서 다루기로 함으로써 제네바회담 은 아무 진전 없이 끝났다.
[휴전협정의 변질과 부담]
그러나 현재 휴전협정은 아직도 명칭은 그대로이며 휴전선도 있지만 엄격한 의미의 휴전협정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미국과 중국은 휴전협정에 서명하고 있음으로 해서 한반도에서는 문서상, 법률상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있지만
휴전체제를 그대로 둔 채 양자관계를 정상화했다.
한국도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여 수교15년을 맞고 있다. 현재 7개국으로 구상되었던 휴전감시단도
북한 측의 요구로 이미 철수했고 停戰委 비서장 회의도 북측의 거부로 열리지 않고 있으며 다만 판문점 관리를 유엔군 사령부가 맡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국의 휴전협정은 남북한 관계에서는 휴전체제를 뒷받침하는 국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거의 사문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간에 전쟁상태를 법률적으로 종결짓는 평화협정이 마련되지 않고 있음으로 해서 남북한 간에는 적잖은 부담과 불편이 따르고 있다.
한국은 GNP의 3%이상이 군사비로 지출되고 있는 반면, 북한은 GNP의 30%이상이 군사비로 쓰이고 있다. 군사적 견지에 서는 북한군은 남한군의 주적이고 미국의 입장에서도 법률상 북한군은 주적에 속한다. 이것의 逆도 마찬가지이다.
남북한 국민이 상대방 당국의 허가 없이 휴전선을 넘으면 간첩죄가 적용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면 간첩죄 아닌 여권미소지죄나 무비자 입국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협상주제로서의 휴전협정]
그러나 2006년 11월 18일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측이 핵 폐기에 동의한다면 한반도에 서 전쟁상태를 법률적으로 종결짓고 새로운 평화체제를 모색할 용의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한반도 휴전체제의 운명이 국제협상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2007년 2월 13일의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의 폐기를 향한 단계적 조치구상이 마련되어 있지만 휴전협정의 평화체제로의 전환과업
이 구체화되려면 6자회담의 실무 작업분회에서 논의가 좀더 진전되고 핵 폐기절차가 진행되는 정도를 지켜 보아야겠지만 2.13합의가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얽매는 효과(Lock-in Effect)에 맞물려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거론되다가 시들해지는 과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만이 해결책이다].
이 과제의 열쇄는 북한 측이 핵문제를 과연 6자회담의 요구대로 수용실천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는 방법으로 행동할 것이냐 여부에 달려있다.
지금 북한의 핵정책을 놓고 상반되는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핵 폐기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질 경우 핵을 폐기할 것이라는 견해와 북한은 어느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그것이다.
아직까지 이 상 두 견해 중 어느 것이 옳은 견해인지를 확언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르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북한의 핵 포기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북한의 핵 폐기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2.13합의는 미국과 북한간의 합의임과 동시에 6자간의 합의라는 점이다. 이 합의를 위반했을 경우 북한이 감당할 부담은 북한이 현재까지 감당했던 부담보다는 훨씬 심각한 부담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Lock-in 중Effect가 결렬되었을 때는 전쟁까지 각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유엔제재 1718호가 보다 강력히 북한에 적용되고 중국도 북 관계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은 핵을 보유하는 이익과 포기하는 이익을 교량 할 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핵보유이익보다는 포기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알 것이며 따라서 북 핵은 대미협상수단이상의 의의를 갖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① 우선 북한은 핵 실험을 감행,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일방적으로 깨트렸다.
한국의 안보부담을 증가시킴은 물론 한국의 핵무장을 유도하는 행위를 한 것이다. 한국은 북한보다 더 신속히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②또 북한은 核戰場터(Theatre nuclear)이기에는 국토가 협소하여 핵 선제공격을 받은 후 보복공격을 단행할 전략적 종심(縱深)없다.
따라서 북한이 핵무장을 한다고 해서 그들의 안전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핵을 보유함으로 해서 핵공격을 받을 구실만 제공하게 된다.
또 핵확산방지에 역행함으로써 국제적 제재만 불러온다.(유엔안보리 결의 1718).
③ 주지되는 바이지만 북한의 핵실험은 북한이 이룩한 경제발전, 산업발전, 과학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전체인민을 굶주리게 하면서 핵 암(暗)시장에서 고가로 매입한 핵기술로 추진되고 시도된 핵실험이었다.
북한 핵이 대량살상무기로 확고히 자리를 잡으려면 더 많은 시간, 돈, 기술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추가비용을 조달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아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④ 북한의 핵실험은 남북한 관계에서 6.15선언을 무효화시켰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핵무장으로 치닫는 북한’과 ‘비핵화를 지향하는 한국’은 이제 안보체계마저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에 그 단계가 높건 낮건 간에 서로 연합(Commonwealth 또는 Confederation)이나 연방(Federal Government)으로 묶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더욱이 유엔의 제재가 계속되는 한 인도적 차원 이외의 남북교류협력도 어려워졌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이 현시점에서 동의하고 한국과 중국이 중재하는 선에서 핵 폐기에 합의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얻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러한 협상을 통해 핵문제가 해결되면 이 합의의 연장선에서 휴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대치될 수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의 효과]
한반도 비핵화의 결과로 한국의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치되면 휴전선은 남북한의 평화선 즉 국경선으로 바뀌고 남북한 관계는 국가 대 국가 간의 관계로 정상화되고 양자간에 전쟁상태는 법률적으로 종결된다.
이런 상태의 도래는 평화통일의 기회도 되고 분단고정화의 전기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의 목적을 지닌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평화통일을 위한 정치과정을 서둘러 개시해야 한다.
남북한이 통일되어야 할 분단국가임을 국제사회에 공인 시키기 위한 초기조치로 남북한 관계를 연합단계로 발전시키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즉 한반도가 한민족의 통일 공간임을 입증할 이른바 가등기(假登記)를 해놓자는 것이다.
이 바탕위에서 한국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에 연착륙하도록 북한산업 재건Consortium을 구성하는 조치를 단계적으로 강구, 공존공영의 남북한관계를 유도해내야 한다.
비록 이 과정이 오랜 시일을 요하더라도 남북한이 잘사는 상태에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새 통일”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2.13합의와 그에 선행한 9.19합의 등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성실히 준수해야 한다.
5.재고되어야 할 우려들
[탈북 러시가 일어날 것이다?]
북한경제가 연착륙에 실패하여 정권붕괴현상이 일어날 경우 수많은 난민이 중국이나 남한 또는 일본으로 빠져나오는 난민러시가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공산권의 변화 동향을 지켜본 사람들 가운데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중국당국도 이런 견해를 비공식적으로는 긍정한다. 일본의 경우 북한난민유입에 대처할 비상대책을 강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스스로 붕괴될 가능성은 극소하며 설령 넘어진다고 하더라도 대거 집단탈북의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가족제도 역시 집단탈북의 제약요건이며 지금까지 이루어진 탈북도 정치적 탈북보다는 경제난민의 성격이 강한
점으로 미루어 체제붕괴와 국제사회의 지원이 결합될 경우 탈북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동구라파의 경우 시민사회가 중심이 된 체제변혁이었기 때문에 일부 강경세력들은 자신의 과오 때문에 망명을 시도할 것이지만 집단적인 국외탈출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북한을 지국최빈국으로 만든 현 집권 세력보다 더 나쁜 세력이 그들을 지배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 붕괴를 두려워 하거나 경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정상화까지를 내다보면서 2.13합의를 도출한 것은 대북정책 대안으로서의 북한정권교체론이 약화되고 정권생존전략으로서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정권의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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