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 필요하다
우리는 제14대 대통령과 15대 대통령, 그리고 제 16대 대통령을 내 손으로 직접 선출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기 이를 데 없다. 고대
로마의 시이저나 나폴레옹의 그것을 능가할 만큼 강하다.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이고 통수권자이며
행정부의 수반이다. 지금은 여소야대 정국이어서 다르지만 과거에는 여당 총재로서 국회의장을 지명하고 당대표
등 간부를 임명하며 대법원장을 제청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국가운영의 기간이 되는 2천8백여 개의 요직을 사실상 임명한다.동시에 방송기관은 물론 금융기관의 여신업무까지 컨트롤할 수 있다. 이러한
막강한 권한이 효과적으로 행사되기 위해서는 항상 자질과 경륜에서 뛰어난 인물이 선출될 수 있어야 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른바 현자(Philosopher King)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하고 경륜의 빈곤으로 국정을 리드할 능력이 한참 모자란 인물을 선출할 경우
권력이 사유화되거나 오·남용됨으로써 국가를 파국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대중민주주의 하에서는 잡초가 화초를 이기듯이 열등분자가 우수분자를 제치고 민주의 이름아래 대통령에 뽑히는
수가 허다하다. 중남미에서 시행되는 대통령직선제의 현실은 대통령제가 과연 좋은 제도인가를 되씹게 해준다.
우리의 헌정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제가 시행되기만 하면 그것이 어느 순간 기층 정치문화인 동양적 군주주의와 결합됨으로
해서 제왕적 대통령제로 변질돼버린다. 또 직선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다 보면 지역감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 3김의 퇴진으로 지역감정이 존재할 명분은 없어졌어도 지역정서는 늦여름의 더위처럼 아직도 우리 정치권을 괴롭힌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현 대통령제도 운영의 묘만 살리면 우리 실정에 적합할 수 있다면서 대통령의 권한축소를 내용으로 하는 개헌론을 꺼리는
사람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이며 현실은 아니다. 지금
우리의 대통령제는 앞서 말한 현자(賢者)를 선출했을 때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그렇지 않고 보통사람을 선출했을 때는 국가위기를 조성할 지극히 위험한 제도임이 지난 기간동안의
실험에서 입증되어 왔다.
이제 우리 국민은 어느 순간 제왕적 대통령제로 변하거나 무능 열등분자가 대중 선동으로 집권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현실에서 직선 대통령제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고 대통령제를 실시하더라도 권한을 대폭 줄이는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 이 점에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그들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지만 그에게 국가의 모든
권한을 맡기지 않는다. 외교·국방의 과제만을 맡겨 국가의
동일성, 정책의 일관성을 보장케 한다. 외교·국방 이외의 국정은 의회에 책임을 지는 내각에 맡기고 있다. 그리하여
대통령제의 단점도 막으면서 또 순수내각제에 수반하는 혼란도 피함으로써 국가적 통일과 발전을 이루고 있다. 우리도
이제 권력구조 개혁의 과제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최근 인구에 회자되는 책임총리제도 대통령을
잘 못 선출했을 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좋은 방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탄핵에 의해
잘못 선출된 대통령을 국회가 축출하기보다는 잘못 선택된 대통령이라도 국민이 선택했음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향한 개헌을 적극 검토하는
것도 정치개혁의 중요한 아젠다(Agenda)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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