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주석의 화해(和諧)정치 구상을 평가 한다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 영 일
지금 세계는 지난 10월 11일 폐막된 중국공산당
제16기 5차 전체회의(5중
전회)에서 후진타오(胡錦燾)국가주석이 중국정치의 새로운 캐치플레이스로 주창한 화해(和諧)(중국어로 허시에)사회이론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이 말한 화해(和諧)의
의미를 놓고 그 해석이 분분하다. 한국의 유명한 주역연구의 권위자 한 분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편의
여악지화(如樂之和)의
화(和)와
무소불해(無所不諧)의
해(諧)를
합하여 ‘화해’로 부르는 것 같다고 풀이하면서 진(晋)의 양공(襄公)이 중국내부의 각 제후들과 주변 소수민족들을 잘 도닥거려 규합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이를 음악의
조화같이 화합하지 않는 바가 없다고 한 고사(古事)가 어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중국은 바야흐로 화해사회를 겨냥해야 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 ‘발전한’ 동(東)과 ‘낙후된’ 서(西)로 나누인 지역 간의 격차, 계층 간의 격차 등 발전사회에서
야기되는 격차와 그것에서 파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극복해야 할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 제4세대 지도자로 국가주석에 취임한 후진타오 주석에게는 화해사회를 기치로 내부의 화합을 기함과 동시에 아울러 중국의
급속한 성장을 경계하는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도 갈등 아닌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후진타오 주석은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의 성격을 분명히 파악하고
거기에 걸 맞는 처방으로 화해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중국정치의 새로운 화두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이래 공산당이 문화혁명 때처럼 인민을 굶겨죽이지 않고
온 국민에게 밥을 먹게 해주는 원파오(溫飽)투쟁을 등소평 지도자 생전에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등소평의 뒤를 이은 장쩌민 주석은 원파오
이후의 과제로서 전 국민의 의식주를 보장해주고 최소한의 의료시혜와 교육을 제공하는 샤오캉(小康) 사회건설에 매진했다. 결국 90년대 10년간 최소한의 샤오캉 사회의 목표를 달성하고 샤오캉의
더 높은 단계를 지향하는 후진타오 주석시대가 열렸다. 그간 중국공산당은 당면한 국가목표달성을 위하여 기왕의 당 이론을 재해석하면서 변화된 현실과
당의 목표를 조화시키는 실천이론을 새롭게 구성했다. 등소평의 선부론(先富論), 조자양(趙紫陽)의 사회주의 초기단계이론, 장쩌민의 3개 대표이론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이러한 이론과 당의 지도가
중국의 발전을 원파오 단계를 거쳐 샤요캉 단계로 끌어올렸지만 급속한 경제발전에는 반드시 그에 기인하는 모순과 갈등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후지타오 주석은 취임 직후 "인민에게 봉사하는 공산당“을 구호로 내세우면서 과학적 발전관(發展觀)을 역설했다. 경제의 양적 성장만이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며 경제의 발전이 환경도 보호하고 인권도 소중히 생각하는 발전이 되어야 한다는 과학적 발전관을 주창하면서 각 성현(省縣)에
기획 부서를 설치, 발전의 과학화를 유도하고 주도하는 조치를 취해왔다.
후진타오 주석이 이번 5중 전회를 통하여 화해사회를 새로운 당의 비전으로 제시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화해사회론의 역사적 배경으로 원파오 단계, 샤오캉 단계라는 선행(先行)과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현재 후진타오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만큼 어렵고 긴급하고 힘든
과제는 없을 것이다. 굶느냐 먹느냐로 국가적 과제가 좁혀진 단계의 통치와 의식주 해소에 중점을 두면서
기업인들까지도 당에서 수용, 국가발전에 동참시키는 정치에 비해 후진타오의 정치는 이 차원을 훨씬 넘는
지난한 과제이며 도전이다. 등소평의 선부론에서 비롯된 지역간의 발전격차를 줄이라는 요구가 과격한 시위로
표현되고 40여개의 TV 네트워크를 통해서 세계 각국을 비교할 수 있는 정보가
각 가정의 안방에 전달되는 상황 하에서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 장쩌민은 기업인들을 포용, 투자활성화
를 촉진하였지만 ‘있는 자와 없는 자’ 간의 계층격차는 날로
벌어져 가고 여기서 비롯된 갈등역시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중국 남부지방에서는 노동자 급모(急募) 광고가 매일 나붙고 저임금을 감내할 수 없다는 노사갈등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국민들의 욕구곡선(欲求曲線)은
나날이 높아가지만 성취곡선(成就曲線)은 항상 그에 못 미친다.후진타오 주석은 중국이 어느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고 자신의 국가발전만을 추구하겠다는 화평굴기(和平屈起)를
역설하지만 그렇다고 외국의 대 중국경계심이 낮아지지도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후진타오 주석의 화해사회 주창이야말로 그 자신이 오늘의 중국을 가장 올바르게 관찰하면서 자기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임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웅변한다. 그의 화해론이 중국만이 아닌 한중관계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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