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만카드는 끝났다.
시효가 임박한 미국의 대만카드
미국이 중국에 대한 외교적 압력수단으로 계속 대만카드를 사용할 수 있을까.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앞장세워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추구해 왔다. 부시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의 크로포드
목장에서의 정상회담, 후진타오 주석과 부시 대통령간의 제3국에서의
두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 또 중국을 의장국으로 한 6자회담의
개최가 하나같이 중국을 통한 북핵문제의 해결에 주목적이 있었다. 중국은 명분상으로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누리는 중국의 핵 독점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더 나아가서는 앞으로 동북아시아지역에 출현할 지역안보체제형성에서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타산에서 6자회담개최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이면에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미국이 사용할 이른바 대만 카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의 수교 이래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면서도 대만관계법을 제정, 대만의 안보를 뒷받침하고 대만에
필요한 군사원조를 제공함으로써 대만독립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보냈다. 중국은 미국의 태도가 불만스럽지만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강조한 등소평의 외교노선과 중국경제현대화에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용미(用美)외교방침에 입각, 지금까지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만카드 사용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대만을
상대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배합하는 통일전선공작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장쩌민 주석은 취임과 동시에 통일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대만을 상대로 평화통일공세를 강화했다. 1992년 중국과 타이완간에 이루어진 홍콩 합의(the
1992'Consensus)는 양자 공히‘하나의 중국’은
인정하되 그 해석은 자율에 맡긴다는 원칙에 합의를 보았다. 동시에 대만자본의 대륙진출을 폭넓게 개방함으로써 2004년 현재 대만의 대 중국 투자누계는 64,626건으로 799억 3500만 달러에 이르게 되었으며 대만의 대 본토 수출은 647억 달러, 수입은 380억
달러로서 중국이 대만 제1의 수출시장이며 중국 제2의 수입시장이
대만이다. 따라서 경제교역관계에서만 본다면 중국과 대만은 사실상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업자 수준의
관계로 심화되어 있다. 장쩌민 주석은 경제관계의 이러한 발전을 딛고 서서 2000년 10월 홍콩반환시의 조건보다 훨씬 완화된 7개항의 대만 통일정책을 제시하였다. 즉 ① 대만의 자체정부 유지 ② 군대유지 ③ 세관업무 독립 ④ 대만화폐사용
⑤ 본토의 대만자본 불간섭 ⑥ 대만 기업인의 재산보호 및 유지 ⑦ 본토 관리(官吏)의 대만 파견 유보라는 7개항의 1국양제(一國兩制) 통일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고 또 대만 민진당의 천수이벤(陳水扁)이 총통이 되면서부터 양안(兩岸)관계는 다시 긴장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원조와 대만의 유엔가입을 포함한 독립노선의 모색이 공론화된 것이다. 천수이벤 총통은
이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대만 주민의 국민투표를 추진한다는 입장까지 표명하였다. 장쩌민 주석의 뒤를 이은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대만의 분리 독립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입장을 강력히 천명하면서 2005년 3월 14일 전인대(全人代)를 통해 “국가분열방지법”을 제정 공포함으로써 분리 독립 세력에 대한 중국의 무력행사를 전체인민의 뜻으로 확정지었다.
이와 동시에 중국정부는 대만 국민당의 렌잔(連戰) 당수와 제2 야당인 친민당(親民黨)의
쑹추위(宋楚瑜) 당수의 중국방문제의를 수용하고 고위급회담을 통해 하나의 중국(One China)원칙을
새롭게 다짐하면서 국가분열방지법 제정으로 조성된 양안간 긴장을 완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편 중국을
방문한 야당지도자들은 후진타오 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으로부터 3통(通商 通航 通信)협정의 체결과 일부 농산물의 수입허용, 대만의
비정치적 유엔기구가입 등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얻어내었다. 결과적으로 후진타오 주석의 반(反)천수이벤
통일전선공작의 연결고리에 대만 제1, 제2 야당이 가담한
것이다. 지금 대만의 국내여론은 이른바 제3차 국공합작이라는
후진타오-렌잔 회담을 긍정하고 있다. 이에 앞서 2005년 2월 24일
천수이벤 총통과 친민당의 쑹추위 당수는 통일이냐 독립이냐를 묻는 국민투표의 불실시, 3통 협정의 체결, 양안(兩岸)간 관계설정에 어떠한 방식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10개항을 합의한 바 있다. 앞으로 천수이벤 총통은 이러한 중국의 통일공세에 맞서 어떻게 국민통합을 이룰 것이며 미국의 대만 카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정치사는 항상 분립보다는 천하통일이라는 명분에서 전개되어 왔음을 주목할 때 미국의
대만 카드는 앞으로 그렇게 시효가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다. 양안문제는 바야흐로 중국내부협상의 궤도에
진입, 자주 통일의 기운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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