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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포퓰이즘 정치의 종언

한국정치는 지금까지 크게 보아 두 가지의 흐름을 타고 전개되었다. 하나는 국력배양이라는 큰 목표를 정해놓고 온 국민들이 돈 버는 재미로 살맛나게 해 줌으로써 정권을 생산하고 정권을 지키는 동원(
動員)의 정치가 한 흐름이라면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 이름 하에 못 먹고 못 배운 사람들을 더 잘 먹고 더 잘 배우게 해주기보다는 못 먹고 못 배운 사람들의 정서에 편승, 영합하고 비위를 맞추어줌으로써 자신들이 그들의 편임을 부각,그들의 지지를 끌어내어 정권을 생산하고 정권을 지켜나가는 것이 또 하나의 흐름이다. 흔히 전자(前者)를 개발독재라고 하여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반동(反動)의 정치로 폄하하지만 실제로 오늘의 한국을 세계 GNP 12위권에 오르게 한 물질적 기초는 바로 이 시기에 다져졌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정치는 후자에 의하여 지도되고 있다. 한국국민들 중에 잘사는 사람보다는 못 사는 사람이 더 많고 많이 배운 사람보다는 덜 배운 사람들이 더 많다. 이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시장경제제도를 갖는 모든 국가에 공통되는 현상이다. 현 집권층은 아직까지 못사는 사람들을 더 잘 살게 할 비전이나 프로젝트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덜 배운 사람들을 더 잘 배우게 해 줄 방도도 이렇다할만한 것이 없다. 현 집권층은 잘 먹고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헐뜯어 끌어내리는 데는 익숙하지만 역사에 무한책임을 지는 집권세력으로서의 경륜과 비전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결과 현 집권층들은 새롭고 건설적인 정책보다는 그들의 약점을 지적하고 지지하기를 거부하는 세력을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 하에 배제, 약화시킴으로써 정권지지기반을 못 먹고 못 배 운 사람들 중심으로 재편성할 것을 기도하고 있다. 못 배운 사람들의 정서를 지지로 전화시키기 위해서 이른바 서울대학교 해체론을 제 기한다. 못 사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지지를 끓어내기 위하여 소위 강남해체론을 들고 나왔다. 역사적인 집권세력의 지지기반을 변 환시키기 위해서 수도이전이라는 구실 하에 수도 해체를 추진했다. 여기에 삼성 등 재벌을 약화시키기 위해 재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 는 이른바 재벌해체론을 내세우고 언론개혁의 이름 하에 조중동(
朝中東)해체를 추구하고 있다.
 또 대외적으로 일본에 대해서는 경쟁적 민족주의를, 미국에 대해서는 자주(自主)를 강조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연중(連中)정책을 구사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민족공조를 주장함으로 해서 식민지 체험국민들의 정서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저항적 민족주의 감정을 대중선동의 정치무기로 발전시키고 있 다.

 그러나 이러한 하향평준화정책은 일시적인 지지상승의 효과는 있었고 민족주의적 자주선동도 시효가 길지 않았다. 국민들의 정치수준이  현 집권층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민주주의를 내세운 이들 정권의 도덕성도 개발독재정권들에 비해 우월하지도 못했다. 국가 원수의 자제들과 친인척들이 부패로 투옥되는 현상은 중남미독재정권들에서는 매우 흔한 일인데 바로 그러한 형태의 부패가 소위 한국 민주주의 대부(
代父)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정치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고 요즈음 등장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게이트 성 부패 신드롬도 실로 개탄스럽다. 
 이러한 집권행태는 하나같이 국력의 배양보다는 침체를, 국민의 통합보다는 갈등과 긴장을 유발한다. 기업인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산업체의 해외이전을 부채질한다. 청년실업자는 나날이 늘어나고 중소기업들이 줄이어 도산한다. 나라의 경제수준은 개발독재정권들이 끌어올린 1인당 국민소득 10,000달러 선을 크게 돌파하지 못한 채 저성장의 늪을 헤매고 있다.

 1992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민주화의 이름하에 진행된 한국판 포퓰이즘 정부는 바야흐로 그 존립의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이제 국민들은 현 집권층을 향하여 서울대학교를 없애기보다는 서울대학교보다 더 나은 대학을 만들어 제2, 3의 황우석 박사 같은 분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한국인의 경쟁력이 세계무대로 확산해 나가도록 해줄 것을 요구한다. 강남을 증오하고 해체를 기도할 것이 아니라 강북도 강남처럼 발전시킬 것을 요구한다. 국민들은 또 자주(
自主)를 내세우고 강조하는 정부를 향하여 무엇을 위한 자주이고 누구를 위한 자주인가를 강력히 캐 묻는다. 국민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 일본들과의 관계도 개선되는 것 이 우리의 살김임을 알고 있다 .국민들은 우리나라 기업들 가운데 삼성그룹과 같은 대그룹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한결같이 바라고 있다. 사촌이 논사면 배 아파하는 국민성을 이용하는 정치보다는 1인당 10,000달러 소득이 20,000달러, 30,000달러로 늘어나는 정치를 원한다. 더 이상 국민들은 나보다 나은 사람이나 기업이나 집단을 끌어내리는 개혁이라는 이름의 포퓰이즘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고용수준과 투자수준 을 올려 발전과 성장을 일으키는 정치, 청년실업을 줄이는 정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집권층은 23대 0으로  참패를 당했다. 바로 여기에 나타난 표심이 한국적 포퓰이즘의 종언을 말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이러한 실존적 부르짖음, 요구를 수용할 능력이 없는 한 한국형 포퓰이즘 정부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즈음 집권층내부에서 이른바 개혁파와 실용파간의 다툼이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얼마나 다행스러울까.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그런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한국정치의 안타까움이 있는 것 같다. 이제 한국정치의 포퓰이즘은 패막 일보전의 상황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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