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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생을 마친 말라 루치카를 보면서

이글은 한민족복지재단의 홈페이지 www.hankorea.or.kr의 한민족칼럼에 올린 이영일의 글입니다.

말라 루치카의 죽음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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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무고한 희생자를 위한 캠페인이라는 시민단체(CIVIC)에서 활동하던말라 루치카라는 여성 활동가가 이라크 인들의 자살폭탄테러에 숨졌다. 바그다드를 방문할 예정이던 미국인 특사의 수송차량을 노린 테러가 그만 빗나가 루치카가 탄 차를 덮친 것이다. 보도된 바로는 루치카는 이 단체(CIVIC)를 통해 전쟁터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조사해서 피해를 기록하고 이를 세상에 알려 전쟁을 막자는 평화운동을 벌이다가 이라크에서 자기의 삶을 마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당년 28세의 금발 여성 루치카가 평화운동에 뛰어든 것은 롱아일랜드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진학과 동시에 국제연대에 참여하여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에이즈병원, 팔레스타인의 난민촌을 찾아가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전쟁 때는 단신으로 카불에 들어가 민간인 희생자 실태조사와 의료지원활동을 펼쳤고 이라크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활동무대를 바그다드로 옮겼다.

나는 루치카의 죽음소식을 들으면서 두 가지의 상념에 사로잡혔다. 하나는 인류문명이 고도화했다는 21세기에도 지구촌의 구석구석에서 아직도 죽고 죽이는 야만적 살육전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중에도 군인보다는 6배 이상의 많은 민간인들이 무고히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고뇌였다.
다른 하나는 루치카의 죽음이 우리 한민족복지재단의 동역자들에게는 전혀 남의 일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었다. 루치카가 위하여 섬겼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바로 우리 한민족복지재단의 일꾼들이 섬기는 봉사의 현장과 겹치기 때문이다. 아프간 전쟁이 끝난 직후 우리 재단 봉사단이 찾아갔던 아프가니스탄의 사망간 지역은 물도 없고 풀도 없는 광야였다. 매일같이 굶주리는 민간인들이 죽어갔고 죽은 시신들은 청색의 쓰레기 수거통에 버려지는 그런 험악한 곳이었다. 이들에게이라는 빵을 나누어주기 위해 우리 일행이 이곳을 찾았을 때 빵 냄새를 맡은 굶주린 사람들이 우리 쪽을 향하여 우루루 몰려오는 광경은 지금도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토굴 속을 돌아다니면서 어린이들을 안아주고 빵을 하나씩 나누어주던 정영숙 홍보대사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이라크 전쟁 시 부모를 잃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갓난아이를 안고 찍은 인터넷상의 루치카 사진은 곧 바로 우리 재단 현지 사역자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전쟁터에서 군인도 아닌 민간인 희생자들을 조사하고 찾아내어 전쟁의 죄악상을 폭로함으로써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은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이 어려운 일을 감당하다가 마침내는 자기 목숨까지 바친 루치카의 귀하고 값진 섬김 앞에 우리 모두는 저절로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은 지금 바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치라고 당부하신 양들이란 바로 굶주리는 북한동포, 아프가니스탄의 전쟁고아와 미망인들, 무고히 죽어가고 있는 이라크 인들, 그리고 쓰나미에서 모든 것을 상실해버린 동남아의 난민들이 아닐 수 없다. 애통하고 고통 받고 주리면서 죽어가는 바로 그 현장에 항상 주님이 계시듯 우리 한민족복지재단도 바로 그런 현장 안에서 항상 살아 움직여야 한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증오가 사랑과 화해로 바뀌고 모든 살육무기들이 보습으로 변하는 평화의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우리는 쉴 틈 없이 기도하면서 전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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