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를 중국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호남대학교 초빙교수 이 영 일
중국이 북 핵을 풀 수 있을 까. 북한이 지난 2월 10일 6자회담 불참과 핵무장선언을 하면서부터 북한을 6자회담에 다시 참여케 하고 북 핵 포기를 외교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이 리자오싱(李肇星)중국외상과의 통화에서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는가 하면 한국정부도 같은 취지를 중국 측에
요청했다. 중국도 여기에 호응, 왕자루이(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평양에 파견,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담판을 통해 북한의 태도변화 가능성을 타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미양국은 북핵문제를 유엔안보리를 통한 제재방식이 아닌 외교적 수단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동맹관계이고 북한에 가장 많은
원조를 제공하고 있는 중국이 나서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조어대(釣魚臺)에
있는 6자회담장 내부를 성당(盛唐)시절 황제가 외국사신들을 접견하던 황궁내부처럼 꾸미면서 회담을 주선한 국가인 점에서도 6자회담을 살리려면 중국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국제사회의 이러한 요청을 수용하면서 실효성 있는 역할을 수행하려면 그러한 역할이 내외정세 속에서 중국의 국익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형식논리로만 본다면 북한의 핵 보유나 6자회담불참선언은
중국의 국익에 어긋난다. 중국도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하고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주변정세 속에는 북 핵 해결을 위한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제약할 요소가 적지 않음에도 우리는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중국이 보는 북한관이다. 중국은 북한이 50년 이상의 오랜 우방으로서 어느 경우에나 중국에
등 돌릴 세력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속도는 더디지만 개혁개방을 지향하고 있으며, 북한보다 먼저 개혁개방을 추진한 중국이 겪었던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감안할 때 오늘의 북한의 처지에 대해 남다른
이해와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중국지도부와 인민의 태도가 유사하다.
둘째로 중국은 자국 안보상의 이유에서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고 또 북한이 다른 세력권에 쏠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이 중국과 현재와 같은 순치(脣齒)관계를 가지면서 한반도에서 미국과 적절한 수준의 긴장관계를 지속, 미군을 한국에 묶어 두는 것이 중국의 안보에 보다 큰 이익이 된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비록 지금 북한의 대외행동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을 상대로 채찍정책을 강행할 입장은 아니다. 즉 북한에 큰 손실과 부담을 주는 압박정책은 전통적 맹방에 대한 외교관행에 비추어 취하기 힘든 상황이다. 셋째로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크게 신뢰하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은 대만과 중국간의 세력균형유지를 명분으로 EU의 대 중국 무기 금수해제를 공공연히 반대했으며 또
일본이 최근 미국과의 2+2라는 양국 국방・외교장관 회의를 마친 후 ‘대만(臺灣)의
현상유지를 지지한다’는 정책성명을 발표하였다. 중국은 이러한
움직임에 강한 불만과 위구심을 품고 있다. 넷째로 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할 두 가지 수단, 즉 대북적대정책의 종식과 북한정권의 안전보장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활용치 않고 있다고 중국측은
지적한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말하는 적대정책이란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 스스로 조작한 대미공포일
뿐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음을 누차 천명했다면서 중국측 비판을 수용치 않는다.
한국은 그간 중국이 ‘북한 붕괴 불원(不願)이라는 입장을 공유한다고 해서 한중(韓中)공조에 큰 비중을 두어 왔다. 그리고 현재는
중국만이 북한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보고 대 중국외교에 올 인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내외정세가
북한의 태도변화를 강력히 요구할만큼 성숙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자기 역할을 6자회담에 북한이 참여토록
외교적으로 권유하는 수준으로 한정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중국은 북핵도 반대하지만 동시에 미ㆍ일이
군사협력을 강화, 중국을 견제하는 환경이 조성되어 가는 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국을 통한 북 핵외교의 한계를 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정부는 대 중국외교에만 매달리지 말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이래 밝혀 온 바 ‘북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표명이 의례적이 아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통령 자신의 국정철학임을 다시한번
분명히 밝혀야 한다. 동시에 북한 주민에게는 도움이 되었지만 정권에는 아무런 효험도 못미치는 햇볕정책을
재검토하고 핵포기와 경협을 연계시키는 새로운 접근을 추진해야 한다. 한국대통령의 정책표명이 북한에게
더 이상 묵살당하지 않고 존중받게 하는 것이 대북정책의 당면목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이 북핵문제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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