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천재보다 정책천재를 국민은 원한다.
이글은 내일신문 2005년8월 11일 23면 이영일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국민은 정치천재보다 정책천재를 바라고 있다.
이 영 일
최근 연정론의 제창과 더불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천재(天才)가 다시금 번뜩이고 있다. 노대통령을 정치적 천재라고 부른다면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지금까지의 실적에서 보면 노대통령을
정치적 천재라고 불러서 조금치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는 출발당시 가장 불리한 여건에서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뽑혔으며 한때 인기 상승주로 떠오른 정몽준 씨에게
여론조사로 후보를 단일화 하자는 승부수를 던져 후보단일화를 일궈냈으며 미군의 교통사고로 숨진 두 여학생을 추모하는 대중들의 촛불시위를 유도, 대선막판에서 대통령선거 주도권을 장 악함으로써 대통령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참모들은 자기들의 공헌을 내세울지
모르나 선거과정을 자세히 지켜보면 대통령자신이 이끌어낸 승리였다. 어찌 이뿐이랴. 여소야대의 국회가 자신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케 함으로써 4.13총선에서 열린 우리당의 압승을 몰고 온 것이야말로 노대통령의 정치적 천재성을
넘치게 입증하는 것이다. 또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원내야당들이 내놓은 대북송금 특검안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함으로써 대북정책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수렴청정기도를
완전히 차단하고 자기 나름의 대북정책을 펴나가는 것 역시 그의 정치적 천재성의 하나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전략은 정치인들이
흔히 간과하기 쉬운 정략의 부수효과(Side Effects)를 중시하고 이를 겨냥한다. 겉에 들어난 목표보다는 뒤에 잠겨있는 부수효과를 고도로 개발 활용함으로써 커다란 정치적
이득을 추수한다. 또 정치상황에 정통하지 못한 일반 유권자들의 동정 심리, 공감심리를 읽어내고 유발하는데도 천재적 후각(嗅覺)을 지니고 있다.
노대통령은 그가 한나라당을 상대로 연정을 제의할 때 그쪽에서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또 여권 내에서 반발의 소리가 크게 들리고 노대통령의 다소 파격적인 정치구상을 언론이나 학자들이 동조해주리라고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정론은 현행 헌법상으로 보면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그의 연정론에서 내심 여러 개의 목표를 겨냥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첫째는 국정혼란이나 국정실패의 책임이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야당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호소하자는 것
같다. 한나라당은 집권경험도 있고 스스로 경륜도 많다고 자부하는 당인데 그러한 당이 국민직선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일 잘하도록 도와주지 않음으로써 오늘의 국정의 어려움이 가
중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자는데 목표를 둔 것 같다. 둘째로는 한나라당에 선거법개정을 통한 지역구도의
청산을 강하게 요구함으로써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지역구도에 매달려 국민통합을 해치는 정당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확실히 심어 두자는 것이다. 이 제안을 계속해서 밀고 나감으로써 지난 대선에서 자기에게 표를 던진 서민들의 동정을 사서 20%대에 머물고 있는 그에 대한 낮은 정치적 지지도를 올려보자는 의도를 깔고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연정론도
노대통령의 정치적 천재성과 무관한 구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연정론은 국민적 호응이나 부수효과를 유발하는 면에서 예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현시점에서 국민들은 정치의 천재보다는 정책의 천재를 고대하는 분위기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성공이 정책의 성공으로 연결되지 못하는데 국민적 지지가 줄어드는 원인이 있지 않을까. 노대통령은 그의
연정론의 당위성을 말하면서 자기를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은 외교에 능하고 경제에 통달해서가 아니라 망국적인 지역 구도를 타 파, 국민통합을 이룰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국민들은 외교에도 능하고 경제도 살려나갈 능력 있는 정치지도자(Statesman)를
원하고 있으며 표(票)만
의식하는 정객(Politician)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지역구도 타파론도 현시점에서는 시의성이 약하다. 3김 시대의 종언 이래 지역구도는 약화과정에 있다. 지역감정의 정치무기화는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생존과 목표달성수단으로 오랫동안 활용하였고 한나라당은 그 반사이익을 챙겼다. 또 지난 총선에서 얻은
열린당의 승리는 지역구도의 산물이 아니었고 금년 봄 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 역시 지역구도와의 관계는 극히 미미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일단 연정을 거부한 이상 연정론에 매달리기 보다는 ‘정책의 천재’를 갈망하는 국민적 요구를 수용하여야 한다. 이른바 코드인사를 넘어서서 헌법이 대통령에게 준 권한을 가지고 국정의
모든 분야에 ‘정책의 천재’를 발굴, 배치하는 범국민 정책내각을 모색하는 것도 바람직한 선택이다. 정치의 천재가 정책의 천재로 발전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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