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비전공유없는 대북지원은 국민갈등만 유발한다
통일비전의 공유가 시급하다
호남대학교 인문사회대 초빙교수 이영일
남북한관계가 발전하면 할수록 통일비전의 공유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 비전은 남북한 간에서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한국내의 국론통일
을 위해서도 그 필요성이 날로 절감된다. 지난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15차남북장관급회담은 분단이후 남북 간에 진행된 대화사상 가장 많은 실질적 합의를 생산한 점에서 2000년의 6.15선언에 못지않은 성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난제인 북핵문제에서도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최종목표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한 것을 비 롯하여 이산가족의 만남을 위한 면회소 설치공사를 시작키로 하고 화상상봉의 길도 열었으며 국군포로들의 생사문제도 협의하기로 하였음은
물론 남북한의 군장성급회담, 서해 해상에서의 군사충돌방지를 위한 남북한의 수산당국자 회의개최, 남북경협과 식량문제의 근원적 해결 을 겨냥하는 농업협력 등 다방면에 걸친 합의를 이룩하였다.
대화성과 커도 국민감동은 적어
이러한 수준의 합의가 회담성과로 나왔다면 우리 사회는 마땅히 축제분위기에 휩싸여야 하며 감동의 물결이 온 누리에서 출렁이어 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민들의 마음속에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낮은 지지도도 회담이
전에 비해 결코 향상되지 않았다. 이 회담을 주도한 통일부장관에 대한 지지도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분단국가에서 가장 실효성 있 는 집권자의 통치밑천인 통일문제가 지금 이 정권 하에서는 전혀 효용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남북합의의 이
행에 임하는 북한의 그간의 행태에 대한 신뢰가 낮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일비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되어 있지 못한데 그 참된 원인이 있는 것이다. 즉 “어떤 통일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부재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그간 정부는 김영삼 정권 당시 제1단계로 남북공존단계, 제2단계로 교류협력단계, 제3단계로 남북연합단계를 거쳐 총선거를 통한 단일의 통일정부를 세운다는 입장을 천명해 왔고 국민적 공론화과정을 거친 점에서 국민적 합의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이 현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의 준거인지는 분명치 않다.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통일방안은 제1단계로 남북연합단계, 제2단 계로 남북연방단계, 제3단계로 완전통일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 방안은 국민적 차원의 공론화과정을 거친 바 없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는 아니며 또 “어떤 통일인가”에 대한 입장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6.15선언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그러나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이후에는 이른바 6.15선언 제2항에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한의 연합제 간에 공통점
이 있다’는 북측의 주장을 남측이 수용한 것으로 표현된 문면이 있는데 북한은 이를 근거로 남북대화가 열릴 때마다 매번 6.15선언
의 이행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6.15선언이 남북한 관계를 규율할 실효적 선언인가도 따져보아야 한다.6.15선언이 유효한 합의가 되기 위해서는 6.15선언 제5항에 따라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6.15선언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들어있는 남북거래의 불법성을 모두 파헤쳐서 관련자들을 모두 사법처리하였다. 이런 사정 하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다. 따라서 과연 김대중-김정일 간의 합의인 6.15선언이 아직도 유효한 것인지
그리고 이 선언이 지향하는 통일이 무엇인지도 정부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일방주의는 국민 분열유발
지금 국민들은 정부가 “어떤 통일인가”에 대한 비전을 확실히 정립하고 그 비전에 국민들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합의의 창조를
열망하고 있다. 이 합의가 전제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국채를 구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부가 유럽의 전후복구를 지원한 마셜플랜 같은 대대적인 북한지원계획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을 적극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비전에 대한 국민의 공감과 합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
으로 대북지원계획을 세우고 밀어붙인다면 그러한 일방주의(Unilateralism)는 반드시 극도의 국론분열과 갈등을 유발할 것이
다. 최근 강정구 교수의 통일에 관한 언동,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라는 이른바 반미자주통일의 비전 등에 대해서도 정부는 색깔론을 방 패삼아 비판을 피해가거나 사법부에 판단에 미루지 말고 정부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지금 통일의 시계는 “통일이면 무조건 좋다”는 통일지상주의로 국민을 승복시킬 수 없는 시점임을 가리키고 있다.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증액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통일비전의 국민적 공유임을 명심하고 국론통일에 가일층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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