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당 폐지야말로 고비용 저효율정치를
척결하는 개혁의 첫걸음
지구당 폐지-고비용 저효율정치의 개혁이다
11월 5일 박관용 국회의장이 주선한 4당대표모임은
총선 전 지구당을 폐지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한다. 정말 좋은 결단이다. 직접 지구당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지구당 폐지가 갖는 정치개혁적 의의가 얼마나 큰 지를 잘 모를
것 같아 이 글을 올린다. 필자는 원 내외에서 지구당위원장을 체험한 바 있다. 원내에 있을 때나 원외에 있을 때를 막론하고 지구당위원장의 머리를 무겁게 하는 것이 지구당이다. 지구당 사무국장, 조직부장, 여성부장, 청년부장의 급료를 지급하는 문제를 비롯해서 사무실 임대료, 전화요금, 손님접대비, 신문, 잡지
구독료, 노인당이나 소년소녀가장 돕기, 독거노인 보조 등
어느 것 하나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이 없다. 여기에 수많은 민원에 애경사 비용을 합하면 매월 천만
원가량의 경비도 부족하다. 80년대 전후반기 여당의 경우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는 중앙당에서 지원해
주었지만 기타 경비는 위원장들이 각자 조달해야 한다. 이 때는 개인후원회가 없었기 때문에 지구당 사무국장이
부위원장들이나 유력한 중앙위원들에게 필요한 경비를 갹출하여 부족을 채웠다. 이 비용을 잘 조달하고 채우는
사람이 유능한 사무국장이었다. 또 사무국 요원들이 민원해결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각종 이권에 개입하기일수고
이때문에 징계조치를 하면 반대편에 붙거나 각종유언비어를 만들어 내는 등 실로 국회의원의 국정전념을 제약하는 독소였다. 지자제가 실시된 이후에는 지구당이야말로 기초 단체장을 비롯하여 시, 도의원
후보의 공천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까닭에 각종 공천비리의 온상이 되었다. 기초의원은 선거법에서
공천을 금하고 있는데도 이른바 내천(內薦)이라는 형식으로 지구당이 개입, 당비를 걷어낸다. 결국
기초단체장들이 지구당 살림살이를 지원하게 된다. 우리나라만큼 기초단체장은 물론 광역단체장들의 70%이상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옥중신세를 지거나 져야 할 상태에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것 역시 지구당을 선두로 한 지구당위원장들의 자치 간섭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구당과 사무국제도는 당초 민주공화당이 사전조직을 추진할 당시 행정권에 대한 당 우위라는 개념을 내세운데서 비롯된다. 민주공화당은 개발독재를 통한 이른바 국력배양운동에 국민들의 지지를 끌어들이는 몰이꾼으로 당을 활용하기 위해
지구당 사무국을 차리게 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가원수, 여당
총재, 행정수반,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의 사실상의 임명권자이던
제왕적 대통령 시대에 여당은 국가의 요직을 두루 장악했음은 물론 중앙집권 하에서 지방관서의 장을 지휘감독하고 요직인사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 지구당에는 그 나름의 역할이 주어졌다. 즉 일선행정기관과
더불어 민의를 수렴하고 정부의 의지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도관의 구실을 했던 것이다. 민주공화당의 이러한
지구당 사무국 중심주의는 그 후 5공과 6공이 이를 이어옴으로
해서 오늘날에는 우리나라 정당제도의 필수적 요소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정당법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지방자치가 정상화되고 개발독재정권이 사라진 오늘날까지도 지구당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정치가 타성에
젖어 잘못된 관행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데 기인한다.
그러나 마침내 대통령 후보를 추천한 여야의 어느 편도 부정부패의 법정에서 결코 무죄선고를 받을 수 없는 최악의 불법 정치자금파동을
거치면서 비로소 지구당폐지라는 개혁안에 정치권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천만 다행이다.그러나 이러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정치개혁의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정당법을 비롯하여 정치자금법과 선거구제도 등 어려운 합의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구당을 중심으로 유지되어 왔는데 지구당이 폐지될 경우 중대선거구의 실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는 비단 지구당폐지의 결과라는 차원보다는 한국정치의 고질의 하나인 지역주의의
극복 타파를 위해서도 필요한 개혁의 과제다. 이와 아울러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의 폐지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일 현 정치권이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여론을 잠재우기 위하여 일시
미봉책으로 개혁을 약속해 놓고 협상과정에서 유야무야로 만드는 일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런 우를 범한다면 국민의 분노는 그러한 정당의 해체요구로
발전할 것이다. 더 이상 국민을 속이는 정치를 멈추고 잘못을 바로 시정하여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정치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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