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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을 바꾸어야 미래가 보인다

윤영관 전 외통부장관이 2006 7 24일 한국중등교육협의회 하계연수 특강한 연설문전문입니다. 미래전략연구지에 실린글을 허가없이 펀 온 것임
1.
들어가는 말

오늘 이처럼 귀중한 자리에 초대해주신 한국중등교육협의회 최수철 회장님과 회원님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5남매 중 3남매가 교육계에 근무하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는 다른 어떤 자리보다도 교육계의 일선 지도자들이신 여러분들을 모시고 말씀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대단히 뜻 깊게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10여 년 동안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교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극받고 변화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보람과 함께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직 외교부장관이라기보다는 국제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느끼시는 것처럼 오늘날의 한반도 정세는 대단히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중요한 기로에 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제 대학교수의 신분으로 되돌아와서 그동안 생각했던 바를 담담한 심정으로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전하는 저의 말씀이 정파적 차원을 초월해서 한반도 미래 대계를 설계하고 추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2.
교육의 중요성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안보나 통상 외교와 관련하여 많은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그 근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현실적 위상과 한국 사람들의 의식간의 갭"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즉 한국의 몸은 그 동안 국제사회에서 30-40대의 성년으로 성장해버렸는데 우리가 바깥세상이나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의식은 10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2005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GDP규모가 10위인 나라입니다. 장관을 할 때 곤혹스럽고 안타까운 경험 중의 하나는 신임장을 제정하러오는 개발도상국의 대사들이 직업학교를 지어주십시오, 컴퓨터를 보내주십시오, 경제개발 지원을 해 주십시오 하고 점잖게 부탁해 올 때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예산으로 다 ""라고 대답할 수도 없고 해서 안타까우면서도 우리 한국을 평가하는 세계 사회의 기대와 눈길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세계 경제력 10위의 국가이면 그 국력에 걸 맞는 외교력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고 그에 걸 맞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발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지금 우리 사회는 구한말(
舊韓末)에 있었던 저항적 민족주의나 1980년대의 종속이론과 같은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세계관에 의해 크게 영향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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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미래를 설계해나가고 조만간 닥쳐올 한반도 통합의 시대에 대비하여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원려(
遠慮)의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식의 감정적 민족주의가 우리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포로, ()의 포로가 되어버리면 미래를 설계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처럼 당하지 않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상 자체가 미래지향적이고, 적극적이고, 합리적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새로운 발상, 즉 새로운 세계관, 역사관, 민족관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21세기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에 걸 맞는 우리 민족의 꿈을 실현해나가려면 과거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우리 능력의 객관적 현실과 우리 스스로와 세계를 인식하는 의식 사이의 간격(gap)을 메꾸어 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육자들의 역할이고 교육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이 역사를 바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현장에 바로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3.
외교안보 전략의 문제

우리 민족은 정말 한(
) 많은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1세기 전 우리 조상들이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에 어둡고, 민족의 역량을 결집하지 못하다가 일본제국주의에 당했습니다. 그 후 처음 잘못 꿰인 일제(日帝)지배의 단추가 남북 분단, 전쟁, 독재정치, 그리고 이제 그것도 모자라 북 핵과 미사일 사태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안타까운 역사를 이 순간에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같은 민족에게 가장 감성적으로 호소력 있는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자주(
自主)입니다.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바로 자주 아니겠습니까? 1세기 전 태프트-가쓰라 밀약(Taft- 密約)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준 미국, 분단의 책임, 광주항쟁을 야기한 전두환 독재를 지지해주었던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탈미(脫美)가 우리에게 감성적으로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국력이 상승하고 있는 이때에 탈미친중(脫美親中)을 하나의 전략적 선택으로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외교는 감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차가운 계산으로 해야만 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해결해야 할 민족적 과제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민족적 과제는 두말 할 것 없이 북한 동포를 살리고 남북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

저는 한 달 전쯤 개성시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남북나눔운동이라는 단체에서 북한 농촌에 주택을 지어주는 사업을 하고 있기에 북측과 상의할 것이 있어서 이 일을 주도하시는 분들과 함께 개성 시내를 방문했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북한 동포들을 보고서 그들의 신장이 우리보다 평균 15센티미터 정도는 작아 보이고 골상(
骨相)도 달라져 보여, 이제 완전히 인종까지 달라져버렸구나 생각하고 깊은 비애감을 느꼈습니다. 가슴 속에 무거운 바위덩어리를 하나 안고 돌아온 심정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저분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하루라도 빨리 그렇게 하려면 서방 자본의 대량 투자가 없이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생각은 곧 서방자본의 북한 유입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휴전선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차를 몰고 개성을 다녀올 때는 저 철조망을 없애버리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데도 중요한 실질적 당사자중 하나가 미국이라는 현실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만일 100년 전 태프트-가츠라 밀약의 설움과 1980년대 독재정권을 지원한 미국에 대한 감정에 잡혀 외교정책을 밀고나간다면, 북한 동포들의 고통은 그만큼 더 깊어지고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도 그만큼 험난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중국의 6배 국력을 가진 미국,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 서방국가들을 제껴 놓고, 서부개발 때문에 스스로도 자본이 부족하여 외국자본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는 중국에게 대북투자를 주도하게 하면서, 북한동포들보고는 서서히 나아질테니까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옳은 일일까요?

우리가 좋던 싫던 상관없이 미국은 세계정치와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심지어는 북한마저도 핵과 미사일로 협박하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지난 15년 동안 외쳐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국을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일부의 주장이 과연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인지, 하루가 시급한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과연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과거는 과거고 현실은 현실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베트남 지도자들이 통일이후 베트남전쟁의 적대국이었던 미국이나 한국을 향해서 과거에 대한 한풀이식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경제발전이라는 국가 목표에 매진하기위해 미국 자본, 한국 자본을 끌어들이기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과거의 한을 품어 안으로 안으로 감추는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주(
自主)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고 봅니다. 소극적인 의미의 자주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나라의 자주는 강대국과의 동맹과 상호배타적인 관계에 있다고 상정하고 강대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야 자주가 강화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러한 개념을 한미동맹에 대입해 본다면 한미동맹을 냉전적 상황에서 우리에게 부과된 것으로 바라보고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관점이 될 것입니다. 저는 19세기말 저항민족주의나 1980년대 반독재반미의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주의 개념이 바로 이러한 소극적인 의미의 자주라고 봅니다. 특히 북한이 더 이상 안보위협이 아니라는 인식과 그렇기 때문에 동맹의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이러한 생각의 기초를 이룬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자주관은 두 가지 관점에서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한미동맹은 냉전적 상황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었으며 바로 그러한 선택이 가져다 준 혜택인 안정적인 안보환경에서 우리의 경제발전과 민주정치의 실현이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안보전략 하에서 우리의 노력과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확보한 경제발전과 민주정치라는 가치는 우리 현대사의 귀중한 성과이며 미래 후손들에게 물려줄 귀중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소극적 자주관은 우리 현대사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현재는 냉전 과거에서 탈냉전 미래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상황이지, 이미 탈냉전 미래를 달성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천여 문의 북한 장사정포가 서울을 겨냥하고 있고 북측 협상대표들은 심심치 않게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대북포용정책의 결과 남북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에는 아직도 남북간의 신뢰수준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이 냉정해야 될 객관적 현실 판단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되면 정말로 일을 풀어나가기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의미의 자주 개념은 한 국가가 세워놓은 국가 목표를 얼마만큼 잘 달성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파악됩니다. 우리보다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그들과의 관계를 활용하여 우리의 국가 목표, 민족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주라는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맹을 해체해서 아무런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 돌입했다하더라도 정작 우리가 원하는 국가목표를 달성할 수단이 없어져버린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자주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등이 고귀한 가치임에 틀림없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난에 빠져버린 평등은 공허한 수사(
修辭)에 불과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외국의 모든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정의되는 자주를 아무리 많이 구가해도, 정작 미래의 국가목표를 달성할 아무런 수단도 주어지지 않고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적극적 의미의 자주로서 국제정치의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통일시의 헬무트 콜 (Helmut Kohl) 총리의 대미외교입니다. 콜 총리는 당시 미국의 부시대통령과의 긴밀한 외교를 통해 주변국의 독일통일에 대한 반대를 막아냈습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직후 영국, 프랑스, 이태리, 소련 등은 독일통일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국제무대에 앞장서서 나서서 독일통일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주변국이 반대를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나갔습니다. 경제적 지원으로 소련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도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미소간의 모든 협의내용을 샅샅이 독일에게 일러주고 독일이 어떻게 통일해나갈 것인지 세세하게 상의함으로써 서독을 도왔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민족통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적인 적극적인 의미의 자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자주가 아니겠습니까?

국제정치에서 힘의 진공상태란 존재하지도 않고 상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국가는 어떤 형태로든 힘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중요한 것은 타국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유리하냐를 냉정하게 계산하고 따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고기가 연못의 물이 더럽다고 밖으로 튀어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러운 물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그 물 속에서도 적응하여 더 힘세어지도록 체질을 바꾸고 그 안에서 생존하는 법칙을 익히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난 다음에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했던 독일 슈뢰더총리의 대미외교를 보면서 정치는 타이밍(timing)의 예술이라는 점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대북정책에 대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0여 년 전부터 포용론자이고 지금도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탈냉전의 세계사적 추세에 맞추어 남북간에도 화해협력의 정신에 따라 민족통일의 기반을 서서히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남북협력과 포용정책을 우리가 주도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항상 지침으로 삼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포용정책을 추진하는 방법과 과정이 세계사의 흐름에, 그리고 세계사회에서 존중받는 가치에 부합되어야한다는 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남북이 함께 길을 잃고 세계사회의 미아(
迷兒)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후반 이래 세계사에서 하나의 법칙이 되어버린 것이 바로 사회주의체제가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해서 자체전환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망하게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경우도 이러한 세계사적 법칙에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북경제협력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돕는 일이 되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을 점진적으로 북한이 실현하는 방향으로 우리 정부는 꾸준히 노력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2003년 현 정부가 출범했을 때 DJ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대북정책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upgrade) 되었어야 했습니다.

사실 현 정부 초기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에게 불법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했을 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추진할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기는 어쩐 일인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고 새 정부의 포용정책은 DJ정부 때의 포용정책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되자 북한은 남쪽이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큰소리치면서 지원을 받아가고, 급기야는 "남측이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 있으니 대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까지 와버렸습니다.

시장원리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도 북측의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남북간의 채널을 통해 비공개적으로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우리의 입장을 수시로 명확히 전달하며 행동의 변화를 요구해왔어야 했다고 봅니다. 물론 과거 북한의 행동패턴을 고려할 때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을 진지하게 해왔더라면 북한이 우리를 지금처럼 우습게보지도 않았을 것이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지도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겁니다. 아마도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도록 설득하는데 있어서도 훨씬 입지가 좋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원칙 있는 포용정책만이 지속가능한 포용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원칙이 서지 않으면 국민의 공감대와 지지가 형성되기 힘들 것이고 이는 포용정책의 지속을 위한 국내정치적 지지기반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원칙 있는 포용정책의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어야 그들로 하여금 대북포용정책에 동참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경제의 피폐상과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고려할 때 한국이나 거기에 더해 중국의 투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서방 자본이 북한으로 유입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동반포용정책이 되어야만 북한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반포용을 유도하려면 우리부터 원칙 있는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해야만 합니다.

혹자는 북한이 경제개혁을 추진하면 주민들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을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저는 한국 정부를 비롯하여 서방 국가들이 북한의 지도자들에게 70년대 박정희 경제발전모델을 채택하도록 설득해야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경제는 개방하여 시장원리를 도입하되 국내정치적으로는 군사력을 기반으로 통제하는 것이 과거에 자유민주주의까지 경험했었던 한국이나 중남미국가들에서마저 상당기간 가능했었다는 점을 설득하여 시장원리의 도입을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먹고사는 문제라도 해결하여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이 정치, 경제 모두 희망이 없는 현 상태를 지속시켜나가는 것보다는 윤리적으로 나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해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북한은 아직도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북한이 핵을 경제, 외교, 안보적 지원과 맞바꿀 의사가 있었다면 2004년도 6 3 6자회담에서 미국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해법을 마련해 제안했던 직후, 또는 2005 94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이 나온 직후,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미국에게 협상의지를 알리고 협상에 진입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카오의 한 은행에 묶여있는 2,400만 달러를 풀겠다고 수백 배의 경제지원과 외교 안보 이익이 가능할 수도 있는, 더 나아가 북한전체의 사활이 걸린 6자회담을 방기하는 것도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물론 미국의 태도가 유연하지 못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벼랑 끝 전술로 미국을 협박하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협상의지를 표명했더라면 미국의 라이스(Rice)장관이나 힐(Hill) 차관보 같은 대화파들의 입지가 국내적으로 더욱 강화되어 협상이 가능했었을 것입니다. 북한도 안보 위협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911이후 미국도 테러리스트 손에 핵 물질이 넘어가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인식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나라의 안보든 그것은 상대적인 개념이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더구나 동북아와 같은 국가 상호간에 불신이 높고 불안정한 국제정치 상황에서 내가 "절대적"인 안보를 추구하면 상대방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국제정치의 속성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방어적 목적에서 절대적인 안보를 확보하기위해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아도, 상대방은 그것을 공격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 위협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른바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라고 하는 국제정치의 속성입니다. 결국 적당한 수준에서의 "상대적 안보"를 추구하면서 경제, 외교상의 이득과 안전보장을 받아내는 것이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인 것입니다. 우리의 대북 메시지는 다름이 아니라 북한이 그러한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하는 데에 모아졌어야 했습니다.


4.
통상전략의 문제

1980
년대 한국의 사회과학계를 풍미했던 이론이 종속이론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주변에 해당하는 저발전 국가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중심부의 세계자본의 운동논리에 따라 경제, 정치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왜곡되어 자율성을 잃고 선진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저는 당시 유학을 가서 국제경제학 교과서를 읽던 중에 한국이 경제발전의 성공사례로 등장하는 것을 보고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종속이론이 풍미하는데 서방 학자들의 눈에는 종속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즉 주변국 저발전 국가도 하기에 따라서는 고속성장을 할 수 있다는, 첫 번째 사례로 등장하는 것이 한국이었기에 너무 역설적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정치적 암흑기를 거치는 반대급부가 있었기는 하지만 우리가 후손들에게 자랑할만한 유산입니다. 3세계 후진국에서 경제규모로 세계10위에 올라선 것이고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의 희생위에 이제는 정치의 민주화까지 이룬 것은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그러한 오늘날을 있게 한 한국의 대외통상전략의 핵심은 점차적으로 진행되어온 경제의 세계화 추세를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세계화의 물결을 적극적으로 타고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화의 덕을 가장 많이 본 나라를 들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일 것입니다.

1960
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 전략의 핵심이 수출주도형 발전전략이었고 이는 갈수록 개방화로 나아가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략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은 땅도 좁고 국내시장 규모도 협소하며 석유 한 방울 안 나고 자원도 척박한 나라입니다. 그러한 주어진 여건에서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살아남는 방법이란 고급인력을 길러내 기술과 상품혁신을 이루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길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모델이 되는 나라가 있다면 아마도 네덜란드가 아닌가 합니다. 네덜란드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유럽의 작은 나라이지만 유럽대륙에서 통상과 물류, 금융의 중심 국가로 높은 소득을 올리며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거대한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로 둘러싸인 우리의 입장에서 한국이 동아시아의 네덜란드가 될 수 있다면, 작지만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통상, 물류, 금융의 네트워크 안에 북한까지 품어 안아서 그들의 경제적 재건까지 돕는 것이 우리의 희망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 정부가 추진해온 동북아 중심전략의 핵심이라고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동북아중심전략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고 경제적, 기능적 개념입니다. 특히 교통 통신의 발달로 지리적 거리의 멀고 가까움이 별로 중요한 경제 변수가 아닌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한미 FTA협상을 놓고 찬반논쟁이 치열합니다. 반대논쟁 중의 하나는 동북아중심을 추진하던 현 정부가 왜 갑자기 한미FTA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인데, 그것은 동북아중심이라는 개념을 지리적 또는 정치적으로 해석한 결과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저는 동북아의 중심이 되는 일이 왜 한미FTA와 충돌된다고 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제대로 동북아 중심이 되려면 동북아와 미국간의 경제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한미FTA가 되어야하고 그렇게 될 때 서로 상승작용과 시너지 효과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한미간의 FTA체결은 그동안 한국이 추진해왔던 세계화의 파도타기전략의 맥락에서 바람직한 전략적 선택일 것입니다. 어차피 국내시장의 협소성과 자원의 부족을 고려할 때 한국은 개방된 세계를 상대로 뻗쳐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동아시아의 중심, 허브(hub)를 추진한다는 것도 경제의 세계화의 파도를 적극적으로 타겠다는 것이고 그러한 맥락에 한미FTA도 부합된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의 경쟁력을 금융, 서비스 산업부문에서 강화함으로써 동북아의 허브 역할을 할 역량도 키워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될 때 한국경제는 미국경제와 동북아경제를 연결시키는 연결고리 역할도 담당할 수 있을 것이고, 세계 속에서 한국경제의 비중과 위상은 한 단계 격상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 경제는 1993년 말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로 농업개방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개방은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가져왔지만 개방시대에 걸맞게 경제의 틀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한-칠레 FTA가 체결되어 발효되었지만 우리 농업 부문의 피해는 우려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던 대신 칠레로의 공산품 수출은 상당히 증가했습니다. 동북아 중심을 계획하고 세계화의 파도타기 통상전략을 말하면서도 FTA체결의 추세에서는 오히려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이제 겨우 세계경제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비마다 그러했듯이 수많은 논란과 우려가 한미FTA에 대해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김대중 정부가 1998년 일본과의 문화개방을 과감하게 추진했을 때 수많은 우려와 반대가 있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한류(
韓流)의 파도가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세계 도처로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들이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나아갈 때만, 우리의 저력이 드러나고 활로가 열린다는 가장 분명한 교훈을 최근 한류현상으로부터 읽고 있습니다.

한미FTA를 제가 찬성하는 또 다른 이유, 아마도 더 중요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남북한 통합에 대비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절대적인 과제, 피해갈 수 없는 숙명적인 과제는 앞에서도 이야기한 북한문제의 해결입니다. 북한문제의 핵심은 경제문제입니다. 북한의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국 서방자본이 도입되고 북한 경제가 세계경제로 편입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북한으로의 서방자본 유입과 북한경제의 세계경제 편입의 디딤돌을 만드는 일이 바로 한미FTA라고 생각합니다.

한미FTA는 경제적인 의미에서 미국을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일입니다. 냉전시대에 미국 군대를 끌어들여 안보를 확보했듯이, 미국의 자본 투자를 한반도 안으로 끌어들여 한반도 경제통합과 탈냉전을 유도해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한미FTA를 통해 한국경제의 투자여건이 개선되고 자본시장이 더욱 활성화되며 경제의 틀이 선진화된다면 그것은 곧 대북투자를 위한 한미간 파트너십이 더욱 강화될 뿐 아니라 미국이외의 서방자본의 도입까지 유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지한 협상을 통해 미국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물자를 한국산으로 간주해주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대북정책을 미국이 끌어안아주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FTA가 체결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핵 문제도 해소되고 한미경제 간의 연결고리가 더욱 강화된다면 미국 정부는 이를 한국산 상품으로 인정해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미FTA 문제는 긴 호흡으로 멀리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한미FTA 체결의 성공여부는 현 정부가 국내사회적 통합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냐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피해를 보는 집단에 대해 어떤 재원으로 어떠한 보상을 지급하여 업종전환과 생계를 도울 것인지를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확실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재정지출의 세세 항목까지 마련하여 피해예상 집단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찬성을 유도해내는 첩경일 것입니다. 둘째로 정작 피해를 보는 계층이 아니라 반세계화, 반미의 이념적 맥락에서 반대를 해오는 집단들을 설득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이들의 공세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직접 한미FTA의 명분과 필요성,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경제에 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미래의 청사진에 도달하기까지 우리가 겪어야 할 변화의 과정들을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설명하면서 협력을 구하는 적극적인 정치적 리더십의 행사가 필요합니다. 셋째로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과 과정은 공개하기 힘들지라도 어떻게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결과를 얻어냈는지를 그때그때 국민들에게 알리고 호소하는 진지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미FTA를 통해 이득을 볼 집단들로 하여금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해야할 것입니다. 수출이 늘어나 득을 보게 될 집단들이 침묵하고 무임승차나 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왜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국민 전체를 위해 득이 될 것인지, 피해 집단들의 적응과 조정 과정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21
세기 세계경제의 대세는 세계화입니다. 세계화는 우리 국민들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 역사는 세계화를 약으로 만들어 우리 국가의 활로를 개척해나가는데 한국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가 모두 인정해주는 사실입니다. 많은 논란과 걱정 속에서도 지나온 과거는 우리가 세계화의 파도타기전략에 성공해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나라는 세계에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1980년대 종속이론의 세계관, 숙명론적 결정론의 포로가 되어 역사의 기로에서 주춤거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제까지 국민들에게 그러한 자신감 있고 긍정적인, 미래지향적인 청사진과 세계관을 심어주는데 과연 성공했는지를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혹시나 경제문제에 대해 지나친 이념지향성을 가지고 접근해서 국민들의 시야를 오히려 안으로만 돌리도록 만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5.
맺음말

세계는 이미 하나의 개방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요즈음 한국의 젊은 주부들은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에 보낸 다음 인터넷으로 지난 밤 뉴욕 주식시장의 흐름을 살펴본 뒤 한국의 주식을 사고파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한국 금융기관들의 주식의 60%이상이 이미 외국인 소유일 정도로 한국은 세계경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구 저쪽 끝에서 벌어지는 중동 분쟁이 국제유가를 80달러가까이까지 올려붙여서 한국에 사는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북한 미사일의 발사가 UN 안보리와 G8 정상회담의 의제가 되어 논의됨으로써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화되어버린 탈냉전 세계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준전시상태로 남북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 그런 상황 속에서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10위가 되었고 우리의 혈육인 북한 동포들은 지금도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입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이 항구적인 평화를 한반도에 정착시키고 번영을 구가하는 것이 우리 한국의 국가 목표입니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21세기 오늘날 현실에 걸 맞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발상에 기반하여 안보와 통상전략이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1세기 전 구한말이나 1980년대 반독재투쟁시의 세계관과 발상과 의식, 그리고 그것에 뿌리를 둔 정책으로는 결코 평화정착과 번영 속에서 우리 민족을 통합하는 과제를 풀지 못하고 밝은 미래를 도모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정말 우리 스스로와 세계를 바라보는 의식과 발상이 변해야 될 때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여기 계신 교장선생님들께 당부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20-30년 후 한국의 미래를 담당할 중고등학생들에게 민족사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세계를 바라보는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눈을 길러주시기 바랍니다. 일제강점부터 시작된 잘못 꿰어진 역사의 흐름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만, 그러한 속에서도 우리가 세계 수준의 경제발전과 민주정치를 이루어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해주십시오. 세계에 그런 민족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은 지금의 일부 기성세대들처럼 한 많은 과거사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우리 국민들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이룩해낸 업적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시고 그러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그들이 우리 민족의 숙원인 민족통합을 성공적으로 달성해낼 수 있도록 진취적인 기상을 심어주십시오.

또한 우리는 세계화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국제정치와 국제경제의 흐름을 꿰뚫어 알고 그것을 기초로 우리 민족의 생존전략을 세워 실천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미리 익혀나가게 만들어주십시오. 한국은 세계 속에 있고 세계는 곧 한국인들의 삶의 터라는 것을 알아 세계시민으로서 갖추어야 될 덕목들도 배워 알게 만들어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의 사고와 기상이 세계로 세계로 뻗쳐나가게 자극하는 교육을 실현해 주십시오. 그래서 세계사 속의 한국의 자랑스러운 주역들이 되어가도록 키워주십시오. 그것만이 우리 민족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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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치와 폐기의 기로에 선 6.15선언         

 6.15선언은 아직도 남북한의 평화공존, 통일을 위해 유용한 선언인가. 이 선언이 발표된 지 6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우리는 이  선언의 존폐를 진지하게 검토해야할 상황을 맞고 있다. 최근 북한이 6.15선언에 대한 북한 측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은 6.15선언에 전혀 개의치 않고 지난 7월 5일 스커드 미사일, 노동 미사일,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 다. 정부의 일각에서는 북한의 미사일발사는 군사적이 아니고 정치적이라고 평가하지만 북한이 한국을 사정권 안에 둔 미사일을 예고  없이 발사한 행위는 임의의 시기에 남한에 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위협으로서 한국에 대한 군사도발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은 한미동맹에 근거한 연합방위전력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는 북한의 스커드미사일 공격에 자주적으로 대처할 준비가 취약한 상태에  있다. 

 둘째로 북한은 6.15선언을 명분으로 미군철수선동과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 측은 한나라당이 집권하 면 6.15선언은 날아가고 남북교류도 없어지고 전쟁으로 한반도는 불바다가 될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의 집권반대를 명백히 했다. 우리나 라 정치공동체의 존립원리를 부정하는 내정간섭이 아닐 수 없다. 셋째로 북한은 6.15선언을 내세워 답례도, 고마움의 표시도 없이  남한의 일방적인 대북지원만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선군정치로 남한의 광범한 인민이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들의 지원요구 에 남측이 호응치 않을  경우 남북 간에 민족적 차원에서 진행되어 오던 이산가족 상봉 도, 면회소설치공사도 중지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6.15선 언에 대한 북측의 입장이 이렇게 표현될 진데 이 선언이 유용할 수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따져 봐야한다.
 
 당초 6.15선언을 만든 남북정상회담은 북한 측의 필요가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간청(
懇請)과 특검의 고발로 관련자 전 원이 사법 처리된 대북불법송금을 통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6.15선언은 애초부터 김 전 대통령이 수세적 입장에서 북한 측 주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이 북측에 요구해야할 1991년의 남북한 기본합의서나 한반도비핵화선언의 이행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보장방안이나 인권문제는 아예 거론도 못했다. 장기복역수문제는 문서에 담으면서도 납북자문제가 빠진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김 전 대통령은 선언 제5항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요청하여 합의를 얻어내고 김정일 위원장의 방한 시 한반도 평 화보장문제 등 한국 측 요구를 제기, 필요한 합의를 추가할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은 이루어지지 않 았고 그 전망도 없다. 6.15선언 직후 김 전 대통령은 이제 한반도에는 전쟁의 위험이 없어졌으며 김정일 위원장은 합리적이고  판단이 분명한 사람으로서 통일 후에도 미군의 한국주둔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이것은 6.15선언의 엉성함을 보 완해보려는 김 대통령의 희망사항 같았다. 그러나 선언발표이후의 정세는 김 전 대통령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았다. 

 물론 6.15선언이후 남북한관계는 교류와 협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남북당국자 회담만도 19회 에 이르는 장관급회담을 포함하여 169회 열렸고 이산가족상봉도 지난 5년 간 14회에 걸쳐 1만 여명이 참가하였다. 인적교류, 교 역량도 대폭 늘었고 끊어진 철도가 연결되었으며 개성공단도 설립되었다. 그러나 6.15선언이후 남북교류는 솔직히 말해서 남북한이 신 뢰할 만한 평화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상태 하에서의 남북교류였고 교류협력의 주도권도 항상 북측에 있었으며 북측의 요구사항을 하나씩  실현해주는 절차였다. 정부는 남북한 간의 긴장을 줄이고 북측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북 한주민들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하의 교류와 내왕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남북관계의 이러한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핵과 미사일 등을 포함한 한반도 군사문제에서는 철저히 남한무시(
無視)정책을 고수하고 있 다. 7.5미사일발사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현시점에서라도 6.15선언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공적조서 첨부자료로 유용 했던 것처럼 남북관계의 장래에 유용한 선 언이 되려면 새로운 협상을 통해 선언의 내용을 최소한 남북한 기본합의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남북한 간에 인식차이를 보이는 공존,  공조, 연합과 연방, 납북자, 국군포로문제 등의 갈등요소를 해소시켜야 한다. 또 남측이 대북지원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양적(
量的)상 호주의는 아니더라도 질적(質的)상호주의(예컨대 쌀 지원에 대해 납북자를 송환해주는 식)는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 정부는 북측이  이를 위한 새로운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6.15선언의 폐기를 선언하고 대북접근의 새로운 방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북한 이 남한내정에 간섭하거나 지원요구의 명분만 주고 자기네들은 어떠한 책임과 의무도 지지 않는 선언은 더 이상 붙들고 있을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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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호의 발언은 사견이 아니다

 이것 저것 너무 많이 알아도 병일지 모른다. 그간 북한정권의 대남책략을 나름대로 연구 습득하고 공산주의자들의 통일전선공작을 여러  자료로 섭렵하면서 밥벌이해오던 인생의 한 토막이 있었음으로 해서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한차례 불쾌감을 토하고 잊어버리 는 공산주의자의 말 한마디도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습벽이 생긴 것 같다.

 지난 6월 10일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약칭 조평통)사무국장 안경호라는 사람이 북한에 대한 남한의 일방적 지원으로  국내에서 퍼주기 논쟁이 일어날 만큼 대북지원이 활성화되고 있는 때 이런 상황에 걸맞지 않는 발언을 준비된 원고를 통해 내뱉었다. 그는 이날 평양 중앙로동자회관에서 진행된반일 6.10만세 시위투쟁 80돌 기념 평양시보고회에서 보고를 통해 "한나라당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으면 6.15가 날아나고 평양 서울로 가는 길, 금강산 관광길이 막히게 될 것이며 개성공업지구 건설도 전면 중단되고 남녘땅은 물론 온 나라가 미국이 불 지른 전쟁의 화염 속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섬뜩한 발언이다. 이  발언이 월드컵분위기에 덮여 잊혀져가고 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결코 그냥 넘겨버릴 수없는  중대문제로 보인다.

  [북한은 대남통일전선공작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발언은 일견 헛소리 같기도 하고 북측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내뱉는 말 같지만 그것이 보고서라는 준비된 원고로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이 발언내용은 결코 개인의 사견이 아니고 조선노동당의 공식견해라는 점에서 우리는 주목해야하고 그 발언의 내용과 저의를 날카롭게 파헤쳐야 한다.

발언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북한정권이 취하고 있거나 앞으로 취할 대남책략의 핵심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보여 진다.
 현재 조평통은 북한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으로서 대남통일전선공작을 통해 남한의 강점을 약화시키고 약점을 극대화시켜 남한체제를 흔듦으로써 북한정권주도하에 남한의
親北化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공작기관이다. 
 
안경호는 바로 이 조직의 서기국장이기 때문에 통일전선이론에 비추어보면 남한의 한나라당은 타도해야할 주적(
主敵)이며 그 밖의 정당들은 우군(友軍),동 맹세력 또는 부차적(副次敵)이되고 통일전선의 지도부는 조선노동당, 전선(前線)업무의 주관부서로는 북에서는 조평통이고 남에서는 범민련 등 친북단체로서 平澤美軍基地移轉沮止투쟁이나 맥아더銅像撤去운동을 주도한 단체들일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解放政局에서도 당시 공산당은 남한 내의 수많은 정당사회단체중에서 한국 민주당(약칭 韓民黨)만을 주적으로, 타도대상으로 삼아 집중공격하고 여타의 정당들에 대해서는 이를 우군 내지 일시적 동맹세력으로 간주, 일체 공격하지 않았다. 한민당을 공격한 까닭은 한민당만이 남한사회의 구조 속에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세력으로 보았기 때문이었 다. 

훈련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과 同志개념이 우리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즉 우리들은 적이 아니면 동지이지만 공산주의자에게는 동지 가 아닌 한 모두 적이다. 따라서 북한노동당이 현재 한나라당만을 공격하고 다른 정당들을 우군이나 동맹세력으로 간주하여 공격대상에서 빼놓고 있지만 언젠가는 공산당의 동지가 되지 않는 한 그들도 반드시 타도대상이 될 것이다. 타도대상으로 삼는 시간순위만 다를 뿐이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남한의 야당에 대해서 항상 남조선 사회의 일부지배층으로 정의해 왔다는 사실에 유의해야할 것이다.
 
    [6.15선언은 이미 실효되었다]

 안경호 발언에서 두 번째로 주목되는 것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6.15가 날아가고 남북교류가 막힌다는 것이다. 
우선 6.15선언을 볼 때 그것은 남한사회나 국제사회에서  북한 측이 강조하는 것 만큼 국제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의미를 지닌 선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6.15선언은 그것이 성립되는 과정의 불법성이 특검(
特檢)조사로 밝혀져서 김대 중 씨를 제외한 관련자 전원이 사법처리 되었다. 이 때문에 선언자체가 남북관계를 구속할 적법한 선언인지 여부가 아직 국론으로서 결 말이 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둘째로 내용면에서도 김대중 씨 개인의 3단계통일방안과 북한의 통일방안을 놓고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합의한데 대해서도 국론통일이 전 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셋째로 6.15선언의 제5항에 명시된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으로 해서 사실상 실효(
失效)된 선언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다. 
 다만 이 선언을 담은 문건이 실질적으로 효력을 발생시킨 부분은 김대중 씨의 노벨평화상 수상결정의 가장 중요한 공적조서로 쓰인 경우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남북한 간에 발전되고 있는 교류 와 협력은 사실 6.15선언과는 무관하며 6.15선언이전에도 이미 대북지원NGO 활동을 비롯해서 정부의 대북식량지원이 지속되어 왔다. 안경호는 6.15선언을 남북교류협력의 유일한 원천인양 주장하면서 한나라당이  6.15를 부정하는 세력으로 선전하고 있다. 왜일까.

 [북한은 한나라당을 적대세력으로 인식한다]

 다음으로 안경호 발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미국이 지른 불로 온 나라가 전쟁의 화염 속에 휩싸인다는 것이 다. 현재의 상황에서 이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북한은 한나라가 집권할  경우 현재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처럼 그들이 녹녹하게 다루기 힘든 정권이라는 인식을 깊이 깔고 있다. 
다른 민주국가들 같으면 지자제총선의 결과로 한나라당의 집권전망이 밝아지면 오히려 한나라당과의 관계개선을 적극 시도하고 한나라당 대 표의 북한방문을 제안했을 것이다. 더욱이 북한 측은 지난 지자제총선 때 그들과 연계된 남한 내의 모든 공개, 비공개조직을 총동원하여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도록 강력히 지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현실을 본다면 응당 한나라당에 대한 적대정책을 숨기고 관계개선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정반대의 태도를 취했다. 그들은
民意보다는 革命論理를 따르기 때문이다.

안경호는 남한사회를 분노케 할 발언을 했는데도 남한정부당국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도 받지 않았으며 사과의 말도 않은 채 당당히 광주에서 열린 6.15선언 6주년 행사에 참석했다가 5.18묘지에 헌화하고 큰 소리치면서 북한으로 돌아갔다. 남측의 통일부 장관은 북쪽 사람들이 여기 와서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이 남한 정부를 도 와주는 것이라면서 안경호의 튀는 발언의 재발방지만을 주문했던 것이다. 이 대목은 마치 정부가 한나라당을 반대하여 북한노동당과 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왜일까. 
 
[
차기대선을 위한 북측 포석으로 보아야 한다]

 안경호의 발언은 한마디로 다음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북한 측의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북측은 다음 대선을 
통일보수세력 대 통일평화세력의 대결로  규정하고 남북합의문서로서의 6.15선을 앞세우면서 남한 유권자들에게 공공연히 전쟁을 원하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통일과 평화를  원한다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라고 강요하는 공작을 획책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위협수단으로 미사일과 핵 공갈을 빼놓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이나 핵은 미국이나 주변 강대국의 어느 나라에도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북한이 미사일과 핵을 가지고 불장난을 쳐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는 것은 북 핵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일본의 핵무장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의 핵과 미사일은 오직 남한에 대해서만 위협의 무기로 될 수 있다. 한국정부가 북핵문제는 미국과 북한간의 문제일 뿐 한국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판단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난센스인가.

현시점에서 북한 측은 어느 경우에나 한나라당 같은 보수 세력이 집권할  경우 그 세력은 열린우리당과는 달리 북한의 지지에 정권의 명맥을 유지하는 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현 정권 하에서 북이 누리던 모든 특전이 결코 지속될 수 없을 것으로 단정하고 한나라당 같은 보수 세력의 집권저지에 
死活을 걸고 나설 속셈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안경호 발언에 담긴 진의이다. 이 때문에 나는 마음이 걸린다.
 
안경호는 북측 통일전선 공작 전문가로서 이러한 협박이 다음 대선에 주효할 수 있다는 전망을 품고 남한 사람들의 각계각층의 태도를 미리 촌탁 해 보기 위해 미친척하고 이런 섬뜩한 발언을 내뱉었던 것이다. 그는 이번 
光州에서 도처에 나붙은 반미구호를 담은 벽보나 현수막을 보았을 것이다. 북한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반미구호가 남한의 남쪽지방인 광주의 이곳 저곳에 나붙은 것을 보면서 反美・反한나라 통일전선공작의 현실적 가능성을 엿보았을 것이다. 
 
또 안경호는 자기 자신의 부적절한 돌출발언에도 불구하고 남한당국이 한마디 항의 없이 입국을 허가해주는 유약한 태도를 보면서 그들의 통일전선공작까지도  남한 정부가 묵인해줄 가능성이 있음을 엿보았을 것이다. 또 북으로부터 존립을 위협받는 한나라당의 반응도 생각보다는 심각치 않다는데 안도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안경호는 대남통일전선공작의 성공가능성을 엿보았을 것이다. 

  [북한의 통일전선공작은 반드시 실패한다]

그러나 북측이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정확히 인식한다면 그들의 통일전선공작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북한이 지구 최빈국으로서 남한 사람의 어느 누구도 북한체제를 지지하거나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극단적인 반미주의자라도 정신병자가 아닌 한 북한을 동경하지 않는다. 현재 남한 내에서 친북반미활동을 벌리는 당사자일지라도 북한에 가서 살기를 택할 사람이 전무하고 또 일부는 반미운동을 아르바이트차원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간 북한에서의 김정일 통치가 실패하여 북한을 지구최빈국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정치난민 아닌 경제난민이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으로 북한이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참혹한 현실에는 눈을 감고 남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통일전선공작이 통할 수 있을지를 북한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통일전선공작이 성공하려면 우선 이 공작의 지도부가 본받을 만한 업적과 경륜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하고 적어도 김일성주석이 1965년에 발표한바 이른바 남조선해방을 위한 3대혁명역량 중에서 그 첫째가 되는  북한의 사회주의혁명기지화, 바꾸어 말하면 북한이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할 역량을 공고히 다지고 비축해야 하는데 오늘의 북한현실은 지구최빈국으로 전락하여 인도적 차원의 외부 구호물자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외면한 통일전선공작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둘째로 북한은 미사일과 핵을 자랑할지 모르나 북한에서는 오히려 그것의 보유가 화근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핵무기나 미사일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했거나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에서 개발되었다. 결코 산업발전이 뒤져있고 전체인민이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헤매는 빈곤국가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한 전례가 없다. 북한이 인민의 희생위에서 개발한 핵과 미사일은 오직 김정일 정권유지를 위한 것일 뿐 다른 어떤 정당성의 명분도 없다. 이 결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북한정권에 대한 외부의 간섭만을 유발,정권유지의 화근은 될 수 있어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북한을 살릴 무기는 될 수는 없다.핵과 미사일을 보유하면 북한정권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고 갈수록 인민의 후생을 돌볼 힘만 줄어들고 내부의 갈등만 분출시키게 될 것이다.  

셋째로 국제사회의 대북견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일본의 납치공세, 유럽 등 EU국가들의 인권공세, 미국의 PSI를 앞세운 국제적 대북봉쇄공세와 위폐마약공세로 북한정권은 그 존립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안방에서 까지 잘 알고 있는 한국을 상대로
反美・反한나라 통일전선공작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수작인가. 

상황이 이러함에도 안경호의 발언은 나의 마음에 걸린다. 그것은 천지를 모르고 날뛸 맹종분자들이 김정일의 북한에는 아직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항상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월드컵경기를 통해 전 세계의 한인사회는 이제 확실히 대한민국으로 통합되고 있으며 한반도의 국제적 대표성도 대한민국으로 단일화 되어 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북한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통일전선공작은 결국 역이용되어 북한을 망치는 덫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지도층은 방심말고 모두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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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의 조속한 정상화를 기대한다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2차 회의가 끝났다. 북측은 이 회의에서 남측에 경공업건설에 필요한 자제, 비료, 지하자원 및 시베리아 벌목, 석탄채굴사업을 위한 투자지원 등을 요구했다. 그간 남북협력은 1995년 말 북한이 엄청난 수재로 식량난에 봉착했다면서 유엔에 식량 원조를 호소한 이래 인도적 차원의 대북경협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 단계 남북협력의 과제는 인도적 차원을 넘어서서 북한산업의 재건지원으로 그 중점이 대폭 옮겨지고 있다. 작년 5월 북경에서 열린 북한지원NGO세계대회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북한에서 인도적 지원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활동해 왔던 각국의 NGO들이 오늘날 북한상황은 인도차원을 넘어선 개발협력단계에 접어들었다면서 인도적 지원 단체들의 임무는 사실상 종료되었다고 보고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도지원사업과 개발 협력 사업은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도 지원 사업은 무조건적이며 지원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를 요구하지 않지만 개발 협력 사업은 보상과 상환계획을 수반한 개발계획위에서 국가간 협력을 실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되고 이 원칙이 준수될 때 비로소 협력의 실효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합의는 남북경협이 시작된 이후 인도적 차원의 일방적 지원 형식이 아닌 개발협력차원의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하다. 남북한은 이번  제주(
濟州)회담에서 경공업·지하자원개발 협력 합의서를 채택하고 남측이 북측의 신발, 비누, 옷 등을 만들 수 있도록 8000만 달러(800억원)상당의 원자재를 지원하기로 하고 여기에 상환기일과 연체이자에 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개발협력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남측에 협력을 요구하는 북측의 태도이다. 북측이 한국에 대하여 개발협력을 요구하는 태도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북측은 처음부 터 대남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한 가운데 남측에 대해 마치 맡겨놓은 물건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협력을 요청하고 남측은 개발차관공여에 서 반드시 요구되는 상대방 측 사업계획의 타당성이나 실현가능성을 검토할 기초자료조차 변변히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북측은 비록 경제지원을 받더라도 어떠한 내정간섭적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자료제출요구를 묵살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지금까지 북측의 이러한 태도를 그대로 수용해 왔고 이를 대북포용정책이라고 정의했다. 이 결과 북측은 작년도에 국회에서 통과된 1조원이상의 남북협력기금을 마치 자기네들 예산인 것처럼 내용을 소상히 파악하고 경추위(經推委)를 통해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대북경협에 임하는 남측의 태도가 이러하기 때문에 북측은 언제나 협상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남북 간에 이루어진 합의들을 자기들 편의에 따라 수시로 파기했다. 남북철도시험운행약속을 북측 이 하루아침에 취소한 것은 그 대표적 실례이다. 당초 남북철도연결사업은 북한 쪽이 맡아야 할 공사지역의 원자재, 공사비까지를 남측이 사실상 전액 부담함으로써 성사되어 시험운행이 합의된 것인데 북측은 철도운행과 전혀 무관한 문제를 들고 나와 남측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물론 정부가 항의했다지만 그 항의는 일방적 약속파기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북측이 실감할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태도까지를 포용해야만 남북 간에 전쟁을 막고 북한의 변화도 촉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현재의 남북관계는 남측이 북측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저자세를 취하지 않고 협상의 주도권을 쥐더라 도 남북관계가 단절되거나 안보 위기가 조성될 상황이 결코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은 지금 북한체제의 급작스런 붕괴를 바라지 않 는 남한과 중국의 협력과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는 정권을 지탱하기 힘든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제주합의는 비록 문서로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남북철도시험운행을  북한에 대한 경협발효의 중요한 선행조건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기왕의 합의들보다는 진일보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북측이 또다시 군부의 반발을 핑계 삼아 시험운행약속을 지연시킬  경우 현 정부가 과연 이에 단호히 맞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남측이 이럴 경우 북측에 언제나 양보해왔기 때문 이다. 

그러나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의 조소나 울분을 유발할 편무적 대북포용정책을 지양하고 약속준수라는 상식차원의 경협관(
經協觀)을 정착시켜 남북협력을  정상화해야 한다.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보가 위태로워진다는 주장은 시효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06/6/15일자 이영일 칼럼과 이영일 홈페이지 www.rep201.or.kr 통일꾼 이야기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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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6자회담의 방관자인가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겨냥하여 열린 6자회담이 지난 9월 열린 4차 회담을 끝으로 3년 반 만에 성과 없이 침몰하는 것 같다.

 당초 미국은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으나 2002년 부시대통령이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가진 후 중국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면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3년 이상 끌어온 6자회담의 기간 중 북한에 대해 미국이 기대하는 만큼의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았다. 국제위기관리기구의 전문가 피터 백(Peter Beck) 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중국이 스스로 인정하는 것 보다는 크고 외부에서 믿는 것보다는 작다면서 그러나 중국은 지금까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의 외교위상을 세우는데 필요한 정도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북한이 강행하겠다는 핵실험을 막는다거나 6자회담을 보이콧하는 행동만 자제시켰을 뿐 실질적으로 핵무기를 포기시키는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6자회담에 대한 최신의 점검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미국과는 달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이 자율적으로 핵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이상의 행동을 취할 전망이 없다고 단정하고 6자회담을 통한 북 핵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태도는 그간 잠재화되었던 김정일 정권교체론을 다시 들고 나오고 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 스티븐 해들리의 정권변형론(Regime Transformation)이나 미 국무성 부장관 로버트 죌릭의 정권변화론(Regime Evolution)은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본질은 동일하다.

부시 대통령은 인민을 굶기면서 핵무기개발을 추진하는 김정일 정권을 도덕적으로 최악의 정권이라고 비판하면서 위폐문제, 마약문제, 인권문제를 강력히 제기, 북한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납치공세, 유럽의 인권공세가 가중되고 미국의 PSI(비확산안전조치구상)를 통한 대북봉쇄망은 한층 더 좁혀지고 있다.

이러한 공세로 북한이 존립의 위기에 처하자 중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늘리는 한편 대북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북한의 대중국 경제의존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중국은 그간 북한정권의 연명에 필요한 만큼만 지원해오던 식량과 에너지를 모두 대북투자로 전환하면서 북한지역을 자원조달, 상품시장,  물류기지로 변환시키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중국은 그들의 개혁개방을 경제면에서 사실상 북한에 밀어 붙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현시점에서 자국경제가 중국동북경제권에 빨려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중국에 매달리는 이외의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는 처지이다. 

미국은 김정일 정권의 교체가 한국이나 중국이 큰 재앙(
災殃)으로 받아들이는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보지 않고 김정일 정권만 퇴진시키면 북한도 다른 동구의 공산국가들처럼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정권의 구조와 속성에 관한 비경험적 가설에 근거한다. 현재 체제붕괴를 수반하지 않는 북한정권의 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한국이나 중국의 북한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이처럼 와해의 국면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외교는 심각한 갈등의 국면을 맞고 있다. 동맹국인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맞장구를 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국처럼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할 만큼 북한에 대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민족공조의 이름하에 북한에 식량, 비료, 생필품을 지원하는 뒷바라지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현재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 남북한 간에 이른바 정상회담이 거론되지만 실효성 있는 현안타결을 기대할 수 없다. 또 정상회담을 통해 양자간에 어떠한  합의를 이룬다고 해도 그것이 유효한 것이 되려면 주변국들의 양해와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현재의 한미관계, 한일관계가 너 무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 시점에서 한국외교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한미일 공조체제를 신속히 복원하는 것이다. 이 기반위에서 한국은 한반도 비핵 화의 촉진요소로서 북한의 안전보장과 북한경제의 회생 및 산업재건비용을 국제사회가 분담, 실천할 새로운 방안을 제안해야 한다. 개성 공단 제품의 출로보장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한다. 

한국은 먼저 이러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미국, 일본, 중국 등이 수용토록 협상을 벌인 후 그 성과를 바탕으로 남북정상간 대화를 추 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효율적인 노력 없이 미군이 입주할 평택 부지를 사실상의 내전상태에 방치해 놓고 미국의 대북압박공세에 어 깃장을 놓는 언동과 대북물자지원으로 한국의 외교정책이 표현된다면 우리는 또다시 북 핵 외교에서 방청객의 위치로 밀려날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되는 한국외교를 한말외교만도 못한 것으로 평가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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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다시 압록강을 넘어 온다

        
최근 중국의 북한정책을 놓고 많은 우려의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북한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되는 과정에 진입했으며 이 추세 로 간다면 북한은 마침내 중국의 동북3성에 추가되는 동북4성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결국 우리의 통일은 물 건 너가고 경제성장과 더불어 정치군사대국의 길을 걷는 중국이 한반도의 일부를 티베트 화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이다.

 중국과 북한관계의 변화를 이렇게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중국학자들이 2004년 동북공정(
東北工程)을 통해 우리의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의 하나로 결론짓는 역사왜곡을 시도 한 바 있는데 국사(國史)학계는 중국의 이러한 태도를 중화(中華)사관의 발로라면서 이웃나라를 침략했던 일본의 황국사관에 진배없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또 다른 근거는 최근 중국과 북한간의 경제협력관계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 그간 중국은 북한정권의 연명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과 석유를 원조해왔는데 2005년부터는 갑자기 대북원조를 투자로 전환하면서 대북경협을 크게 확대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여러 성시(
省市)에서는 거의 매주 서울의 큰 호텔 연회장을 빌려 투자 설명회를 열고, 한국자본유치에 심혈을 쏟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당장에 구매력도, 실리도 없어 보이는 북한에 중국기업들이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무역에서 중국은 2005 2월 베이징에 차오화유롄(
朝華友聯) 문화교류공사를 설치, 대북무역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 결과 1999년의 4억 달러규모를 맴돌던 무역액이 2005년에는 16억 달러로 늘어났고 중국기업들의 대북투자도 적극 권장되고 있다. 2005년 1월 중국 흑룡강 성 하얼빈시에서 열린조선반도 투자합작설명회에서는중국의 어제가 북한의 오늘이고, 중국의 오늘이 북한의 내일이다라며 지금이 대북 투자 적기임을 역설했다고 한다. 지난해 발행된 중국 시사지 요망동방주간(膫望東邦週刊)중국이 다시 압록강을 건너다를 헤드라인으로 뽑고 있는데 이것은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중국의 대북한 투자러시를 잘 말해준다.
 
최근 북한이 겪고 있는 안팎의 위기상황은 중국과의 무역증진과 투자유치를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아직도 원자재, 에너 지, 식량 난이 지속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위폐공세, 유럽의 인권공세, 일본의 납치공세에 밀려 존립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 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이외의 다른 출구를 찾기 어렵다. 

한편 중국은 현재의 연평균 9%이상의 경제성장을 지속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부족한 자원, 시장 확보를 목표로 경제의 외연 확대를  적극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미일(
美日)과의 경쟁상황에도 대처하기 위해서는 3린 정책 즉 안린(安隣:이웃을 안정시키고) 목린(睦隣:이웃과 화목하고)부린(富隣:이웃을 부유하게 한다)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또한 중국은 안보전략상 북한정권의 급작스러운  붕괴방지를 필수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시점에서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긴밀화는 양자 간의 이해일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학계일각에서는 중국의 대북투자의 정책근거로 2005년 6월에 발표된 중국 국무원 판공청 명의의 36호 문건을 예시한다. 이 문건의 본 명칭은 촉진동북노공업기지진일보확대대외개방적실시의견(
促進東北老工業基地進一步擴大對外開放的實施意見)인데 이는 중국이 최근 강 조하고 있는 동북진흥 책 건의안이다. 이러한 건의안 공개와 때를 같이하여 중국의 대북투자가 100만 달러 수준에서 5000만 달러로 크게 늘고 2005년에는 무산철광과 나진항의 50년 임대계약이 맺어지게 되자 저 36호 문건을 바로 동북공정의 경제버전이라고 성급히 결론짓기도 한다.

이러한 결론은 확실한 정보에 근거한다기보다는 문건내용에 대한 유추해석이거나 다분히 과거 역사경험을 응용한 추론이다. 현시점에서 중 국이 북한정권의 붕괴예방을 위해 취하는 일련의 대북지원정책을 한마디로 동북4성편입론으로 비약시키는 것은 무리다. 중국외교의 최근  추세나 전략사상에 비추어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문제나 자체개혁문제를 슬기롭게 풀지 못하고 와해의 위기에 빠 질 경우에는 모든 우려들이 현실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이 능력 면에서 북한의 경제회생, 핵 포기,개혁개방을 주도적으로 유도할 수 없는 한 우리는 항상 걱정을 안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이글은 내일신문 4 24일자 이영일칼럼에 전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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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의 세번째 평양나들이

 

나의 세 번째 평양나들이

  이  영  일 (한민족복지재단 공동대표)

심양거쳐 평양으로  

금년은 여느 해에 비해 봄이 더디 오는 것 같다.3월 중순인데도 날씨는 매우 쌀쌀하고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한민족복지재단의 방북 단은 북한의 민족화해협력위원회의 초청으로 인천공항을 3월 15일 출발, 중국의 심양을 거쳐 당일 평양으로 들어가는 3박 4일의 북 한여행에 나섰다. 나는 2001년 5월에 북한을 처음 방문했다. 

그 때는 먼저 중국의 북경으로 가서 북한대사관에서 비자를 얻은 후 고려항공 북경지사에서 항공권을 구입하고 호텔에서 1박한 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코스였는데 이번에는 당일 평양으로 가기 때문에 경비와 시간이 절약되었다. 2002년 6월에는 전세기로 서해상을 돌아 바로 평양공항에 들어갔다. 

이때는 실시간으로 따지면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평양에 당도했다. 이번 방북은 직행만은 못하더라도 당일 평양행 이기  때문에 중국호텔에 돈벌이를 시켜주지 않고 바로 평양에 갈 수 있어 좋았다. 심양공항에서 북한입국비자를 받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 으로 예상했지만 재단 측에서 북한비자수속대행인에게 미리 인터넷메일로 사진과 신상기록사항을 보내어 작업해 두었기 때문에 휴대폰으로 심양도착을 알린지 30분도 안 되어 미리 받아놓은 비자를 조선족 대행인이 가져왔다. 북한비자는 입국 시에 제출하 고 돌아올 때는 북한당국이 다시 회수해 가는 이른바 쪽지비자이다. 이 때문에 한국여권에는 북한출입국사실의 기록이 전혀 남지 않는 다. 그러나 내가 받은 쪽지 비자 속에 나의 국적을 남조선으로 표시한 것이 언짢았다. 아직도 대한민국이라고 표시하지 않는 것이  통일지향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당도한 순안국제공항의 날씨는 한겨울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찬바람이 머리칼을 날리는 초봄의 을씨년스러움이 전신에 느껴졌다.  두 명의 민화협 간부가 우리 일행을 영접했는데 귀빈대기실에서 채 20분도 안 되어 짐들이 나왔다. 맨 처음 평양에 왔을 때 내가  가지고 온 물건기록과 사실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 두 시간 공항에서 기다렸던 때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것 같다. 그러나  평양에 들어가는 항공기 속에서 자기 백 속에 든 짐 내용과 소지한 돈의 액수와 종류를 자세히 기록하고 출국 시에는 기록된 돈과 물 건만 가지고 나갈 수 있다는 입국통관신고서 제출요구는 예나 같았다. 서면요구대로 통관서류를 그대로 작성한다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 이 아니다. 그러나 몇 차례 북한을 드나든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고지 곧 대로 모든 요구사항을 깨알같이 적지 않고 대충 내의 몇 벌, 세면도구, 미화 몇 달러 가량이라 고 써냈다. 그래도 아무 시비가  없었다. 
 


퇴근길의 평양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일행은 해지기전에 공항을 빠져나와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 뻥 뚫린 아스팔트 대로 위를 막힘없이 빠른 속도로 평양 시 내를 향하여 달렸다. 좀 역설적이긴 하지만 서울의 러시아워의 교통체증을 생각하면 차가 잘 빠지는 것이 어쩌면 평양의 자랑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고속도로의 연변에는 포플러의 나목(
裸木)들이 더디 오는 봄을 기다리면서  늘어서있었다. 잎사귀보다 먼저 꽃망울을 내밀면서 봄의 도래를 성급히 알리는 개나리도 요즈음의 이곳 날씨 같으면 추어서 몸을 움츠 렸을 것이다. 시내에 거의 다 달았을 때가 마침 퇴근시간이어서인지 버스정류장마다 머플러나 털 목도리를 두른 아낙들과 학생들, 두툼 한 점퍼나 파커 같은 겉옷을 입은 직장인들이 줄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닌 모에 카키색의 인민복차림을 한 사내들이 두서너 명씩 걸어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차창 밖으로 무궤도 전차버스들이 몇 대 지나가는 것이 보이고 고색창연한 전차가 아직도 교통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시내에 가까워 지면서 청색유니폼을 입은 여자교통순 경이 수신호로 오가는 차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다니는 차가 너무 적어서 여자교통순경이 도시의 장식품 같은 느낌을 주었다. 교통순경이 차를 기다리고 있을 만큼 한가한 평양거리에 멋진 폼으로 수신호를 보내는 교통순경의 진정한 용도가 무엇인가를 궁리하는 사이에 차는 벌써 시내중심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차가 평양시내 외곽인 모란봉 경기장근처에 이르렀을 때 유니폼을 입은 수많은 남녀들이 도수체조를 하면서 집체로 훈련하는 모습이 시야 에 들어왔다. 옆자리에 앉은 K회장은 이들이 아마 태양절 매스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  탄생일을 태양절이라 하여 국가적 경사로 기념하면서 세계제일을 자부할만한 메스게임, 카드섹션을 펼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의 숙소가 될 보통강여관을 향하여 달리는 도중에 또 다른 한 떼의 여자들이 열심히 집체훈련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평양체육관 마당인데 이들도 태양절을 대비하는 것 같았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거리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조금씩 붐비었다. 전에는 해가 진 뒤 공항에서 평양시내로 진입하였기 때문에 퇴근하는 평양의 직장인들의 행렬을 보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제대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손에 가방을 든 사람, 등에 보퉁이를 멘사람,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하면서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우리 눈에 너무 익숙한 풍경이었다. 두툼한 옷에 머리를 모자나 목도리로 감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남북한 간에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몇몇 지하철 출구 쪽에서는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북한 사회의 한 단면을 새롭게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새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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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거리의 벽에 걸린 구호나 포스터의 선전문구들은 얼핏 보아 4년 전이나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나같이 북한연구에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의 눈에는 차이가 느껴졌다. 지난번 방북 시 흔히 보았던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걷자는 구호가 아무데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북한으로서는 일단 그 지루하고 길었던 고난의 행군시기가 끝났다는 뜻에서 그런 구호를 없앴는지 아니면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 없앴는지는 모르지만 고난의 삶을 끝내고 싶다는 표시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구호는 그 홍보의 강도가 훨씬 더 늘어난 것 같다. 지금의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을 위해 영생탑을 세우고 그를 영원한 주석으로 결정하여 북한의 관직에서 주석으로 호칭될 수 있는 사람은 김일성 주석뿐이며 김정일 위원장도 주석으로는 호칭될 수 없게 되어있다. 김일성 주석의 자연생명은 끝났지만 그는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로 군림하게 되어 있다. 시내 한복판의 만수대언덕에 세워진 김일성주석의 금 동상, 전기가 태부족한 북한에서 영원히 밤에 불이 꺼지지  않는 금수산궁(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곳)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또 큰 호텔 내는 물론이거니와 리(
) 단위의 새마을 회관 같은  곳에도 김일성주의 연구소의 간판이 붙어 있다. 오늘의 북한에서 김일성주석은 북한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살아있는 존재로 상정되어  있다. 김일성 주석은 이제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평양거리나 고층건물의 벽에 걸려있는 정치 슬로건들의 또 다른 특징은 북한당국이 체제의 적이나 경계대상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제국주의자들을 떼려 부시자거나 남조선의 반동세력을 타도하자거나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인민을 해방하자거나 하는 등의 외 부 지향적 구호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지도부를 목숨으로 옹위하자 당이 결정하 면 우리는 한다와 같은 내부지향적 구호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체제유지를 위한 통제시스템은 예전과 다름없어

그러나 우리 일행을 태운 마이크로버스가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저녁식탁에 앉아 금후 북한체제기간의 일정을 설명 듣는 순간부터  내 마음의 기류는 또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2002년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이 자기 체제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은 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아무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실망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호텔방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나의 이메일을 열어 점검해보고 필요한 응답을 보내는데 그것을 할 수  없는 곳이 우리가 죽어도 소원이라고 노래하는 민족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이라는 사실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또 국제전화를 걸어 집에 혼자 있는 아내에게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는 안부전화를 하고 수시로 국내소식도 전화로 물어보곤 했는데 그것을 할 수없는 곳이 북한이라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평양시내에 택시가 있지만 나를 담당하는 사람이 함께 동승하는 조건이 아니면 천만금이 있어도 택시를 탈 수 없고 식당 간판은 눈에  띄지만 담당자의 안내 받음 없이는 나에게 밥을 팔 식당이 없는 곳이 오늘의 북한이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북한 동포들과 사 랑을 나누기 위해 방문하는 남한 동포들에게까지도 북의 통제시스템은 아직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낙담시켰다. 

식탁도 계절 탓인지 전기부족으로 온실제배가 불가능해서인지 싱싱한 야채는 별로 없고 김장김치에 마른 해물구이 생선요리와 미역국이나  콩나물 국이 번갈아 나오고 계란찜에 요구르트가 제공되고 있었다. 북한 형편에서는 좋은 식단이나 고가의 호텔음식치고는 너무 빈약했 다. 또 북의 호텔에서는 양식이나 일식, 또는 취향에 따라 중국식을 선택적으로 사 먹을 수 있는 호텔은 없었다. 한식뿐이기  때문이다. 이 사정은 프랑스와 기술 제휴하여 대동강 안에 세운 양각도 호텔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또 가족들이 주말이나 집안 경사에  호텔에 모여 식사하는 풍경도 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 온 손님이나 외국인들만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북적대는 호텔 커피숍이나 예약 없이는 입장할 수 없는 큰 호텔 뷔페식당을 이곳에서 연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음 은 다시 쓸쓸해졌다. 

 
  처음으로 북한 시골의 협동농장을 탐방하다             

 우리의 이번 방북은 북한에 농업기술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의 P박사가 발명한 복토직파 기술을 북한에 전수해 주어 북한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복토직파란 P박사가 발명한 복토직파기를 트랙터에 부착한  후 트랙터를 운전하면 땅이 파이면서 그 판 골에 씨앗이 뿌려지고 동시에 규산질비료가 살포되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주는 작용을 하 나의 동작으로 하게 되는 데 이러한 기능이 12개의 고리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소수의 인원으로 넓은 면적에 정밀하고 과학적으로 파종함은 물론이거니와 비료의 유실도 방지하고 벼농사의 경우 건 답이나 습답을 막론하고 모내기를 할 필요 없이 농사를 짓는 장점이 있다. 

한민족복지재단은 작년에 북한농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이러한 기술 원조를 북측에 제안하였는데 북한 정무원은 세밀한 조사 후에 금년 봄  농사에 이 기술을 도입해보기로 결정함에 따라 한민족복지재단 대북 농업기술지원단의 방북이 이루어진 것이다.   
 보통강 호텔에서 일박을 한 후 우리 일행은 서둘러 조찬을 마친 후 평양에서 서북쪽으로 1시간 40분정도 달릴 거리에 있는 평안남도 숙천군 약전리 협동농장을 향해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달렸다.

30분가량의 고속도로를 달린 후부터 비포장 시골길로 들어섰다. 덜컹거리는 차의 소음을 들으면서 봄기운을 지표에 빨들이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는 평안도의 들녘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큰 특전이었다. 작년1년 간 남한에서 북한을 방문한 총 인원은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8만여 명에 이르지만 북녘의 농촌을 우리 처럼 근접해서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이곳 저곳의 밭에서는 농부들의 일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농부의 곡괭이들이 봄의 대지를 찍는 순간  놀란 흙덩이들은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여자들은 3인1조가 되어 쟁기질해서 뒤엎어 놓은 밭두렁에 골을 내는 가래질에 여념이 없 었다. 배토기만 한대 있으면 전근대적인 가래질을 하지 않아도 몇 정보의 논이나 밭의 고랑을 내는 것은 문제도 안 될 터인데 이곳은  가래질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는 것 같다. 
약전리 농장 가까이 왔을 때 일단의 군인들과 농민들이 서로 엉기어 호안공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새마을 취로사업현장을 연상시키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여자들은 흙더미를 머리에 이어 나르는 것 같고 남자들은 땅을 파서 옹벽을 쌓고 있었다. 공사현장 근처에 는 비닐장막을 쳐놓고 북한 담배, 삶은 달걀 같은 것을 팔고 있었고 장막도 없이 두어 사람의 노점상들이 목판에 몇 가지 일용품을  올려놓고 들녘을 오가며 물건을 파는 것도 보였다. 자세히는 볼 수 없었지만 앞으로 저 사람들이 북한시장경제건설의 주역이 될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평양시내에서 보지 못했던 좌판상을 이런 시골 내륙에서 처음 본다는 것은 실로 반갑고 놀라웠다.  북에서는 시장경제가 도시에서 보다는 농촌에서,특히 농산품시장에서 먼저 발전할지 모른다는 예감을 갖게 해주었다.
 

인간미 넘치는 북한 농가에 신농법을 전수하면서      

 약전리 협동농장에 당도했을 때 농장관리위원장을 비롯하여 군당간부, 농업부  간부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 일행을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서울에서 인천항을 통해 미리 보내놓은 복토직파기를 자기들이 조립해서 트랙터에 부착시켜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P
박사는 이들의 열성에 감동하면서 기계성능과 이용법, 한국에서 가져온 찹쌀보리 종자의 파종면적과 관리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었고  김포에서 복토직파로 벼농사에 성공한 C사장은 농기계의 이용관리상의 주의할 점을 경험을 토대로 설명해준 후 현장에서 직파실험을 개 시했다. 여기까지 올 때는 내가 지원 단장이었으나 농업현장에서는 트랙터를 직접 몰면서 직파의 시범을 보이는 C사장이 주연배우였고  P박사는 감독이었다. 이곳에서는 길가에서 바로 북한의 농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똑같은 크기의 농가가 길 쪽으로 10여 가구 늘 어서 있어 농가 속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았는데 유리창은 거의 없고 비닐유리로 바람을 가리면서 살고 있었다. 

작년 같이 추운 겨울에 삭풍을 어떻게 막았을까를 생각하니 몸이 오싹해졌다. 중국의 원조로 대안유리공장이 준공되었다니 이곳에도 유리 배급이 나올 날이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평야지대인 이곳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땔감부족이라고 했다. 연탄도 없어 볏짚이  땔감으로 쓰이기  때문에 고공품을 농가부업으로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농장관리위원장은 여자 분인데 매우 침착하고 열성적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농장 현황을 잘 설명해주었다. 이곳은 북한곡창지대의 하나인 열두 삼천리 벌에 속하는 농장으로 과거 김일성주석 생존 시에도 종종  현지 지도 장소로 선발된 바 있는 우수농장으로서 6400명이 조합원으로 일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직파기술이 북한농업방 침으로 채택 실시되면 이 농장은 조합원 100명이면 족히 운영할 수 있는데 나머지 6300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머리 속이 혼란해졌다. 

나는 현장에 나와 있는 군당 간부에게 잉여조합원활용방안으로 당이 앞장서 조림사업에 이들을 동원할 것을 제안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산림청을 농림부에서 내무부로 소관을 바꾼 일이며 4월5일 식목일 날 이외에 11월에 육림의 날을 지정하여 자기가 봄에 심은 나무 에 거름을 주게 하는 운동을 일으키고 광화문 네 거리에는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라는 대형현수막을 걸어놓고 조림사업을 독려한  결과 지금의 남한 산야는 녹화되어 지구가 필요로 하는 산소공급에 크게 기여하는 나라가 되었음을 일러주었다. 이들은 나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 있게 들으면서 몹시 부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민족공조는 북한이 한국의 도움을 받아들이게 하는 정치명분이었다

협동농장에서의 기술지도행사가 끝난 후 농장회관에 준비해 놓은 점심식사를 맛있게 나누었다. 북녘에서는 특찬 이라고 할 당고기 요리와  삶은 칠면조 알이 상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북녘을 방문할 때마다 통일교가 경영한다는 안산집이나 평양 당고기 하우스에서 당고기  요리를 먹었지만 이번처럼 맛있는 당고기 요리는 처음이었다. 특히 온실이 아닌 들에서 따온 달래나 냉이는 자연의 향으로 입속을 상큼 하게 했다. 식사가 끝난 후 P박사와 농장관리위원장이 주재하는 농장간부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기계성능에 대한 P박사의 질문에 하나같이 좋다는 반응을 보였고 앞으로 한국에서 트랙터나 직파기를 이 농장에  언제 얼마만큼 지원해줄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물었다. 

특히 농장관리위원장은 단장인 나에게 농장에서 짐 운반에 필수적인 5톤 트럭 한 대가 필요하다면서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 문제는 북측 민화협과 의논해서 결론을 내자고 답했지만 자동차를 사달라는 요구는 4 년 전에도 있었다. 한민족복지재단이 운영하는 평양 서구 동성동 빵공장을 시찰했을 때 여자지배인이 그때도 단장으로 갔던 나에게 빵의  배달에 필요하니 차를 사달라고 해서 귀국 후 내가 속한 서울 영동 CBMC의 협력으로 스타렉스 벤을 한 대 사 보낸 일이 생각났다. 

나는 이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마음에 이름 모를 기쁨이 샘솟는다. 북한체제의 성격상 이런 부탁은 남한에서 온나에게 할 성질이 아니고 자기 정부에 해야 할 부탁인데 이런 부탁을 받게된다는 것은 북한의 오늘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어떻게든 힘자라는 데까지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회의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농장이 보유하고 있는 농기구를 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대소 농기구가 전부 한국에서 보내온 것이며 한 국의 상표가 그대로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이 남조선인민해방의 구호를 통치명분으로 강조할 때는 남한을 나타내는 어떠한 표시도 용납지 않았지만 이제는 남조 선인민해방아닌 민족공조를 강조하고 있어서인지 남한상표나 남한표시가 있는 물건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것은 변화라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또 이곳 농민들의 표정에서 남한사람들이 자기네들보다 훨씬 잘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으며 우리를 몹시 부러워하고 있음도 직감할 수 있었다. 북한의 내륙 깊은 곳의 농민들은 남한 실정을 전혀 모를 것이라는 일반인 들의 예단이 한참 빗나갔던 것이다. 추위와 배고픔을 감내하면서 봄밭에 씨뿌리기 위해 가래질하는 아낙들, 직파기 기술을 터득하기 위 해 트랙터의 뒤를 밟고 따라다니면서 요점을 기록하는 농부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할 같은 민족임을 새롭게 확인하게 된다.  결국 민족공조란 경제적으로 앞선 남한이 도움을 받는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북측을 도와주는 정치명분임을 이번 여행에서  새심 깨달을 수 있었다. 

   느리지만 북한에도 변화는 찾아오고 있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키는 가운데 귀국길에 올랐다. 다시 심양을 거치는 코스였기  때문에 아침에 출발하여 오후 4시에 서울로 돌아왔다. 앞으로 남북한 간에 뭔가 바람직한 변화가 임박하고 있다는 희망적인 기대가 내  마음 한구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4년 만에 다시 간 북한에 몇 가지 변화의 조짐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를 안내하는 북측 요원들이 태도가 달라졌다. 식사 때마다 우리와 함께 간 목사님에게 식 기도를 부탁할 경우 자리를 함께 한 북의 고위층도 이를 허용하면서 기도하는 동안 함께 조용히 묵념하고 앉아있었다. 함께 간 일행이 아침에 방에 모여 경건시간을 가지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도 문제 삼지 않는다. 북한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북한을 돕기 위해 앞장서는 NGO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로 남한에서 올라간 사람들을 안내하고 협의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 은 사람들이 훨씬 덜 까다로워지고 친절해졌다는 사실이다. 체제유지의 시스템은 그대로 경직되어 있지만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남 한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로움을 이해하고 그러한 지유를 가능한 한 억제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메일 접촉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었다. 

내가 K회장 편에 북한의 애국 열사릉을 방문해서 한중문화협회 초대회장이었던 조소앙(
趙素昻)선생묘소를 참배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를  까다로운 절차 없이 허가해 주었다. 평양 형제산 구역 신미리에 있는 애국열사 능으로 가서 조소앙선생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온 것도 나에게는 큰 수확이었고 변화의 체감이었다.  숙소에서 아침 일찍 보통강변을 거닐면서 산책을 하다보면 직장에 출근하는 북한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과거에는 이러한 마주침도 산책도 금지되었는데 지금은 이 정도는 눈감아 주고 문제를 삼지 않았다. 동무! 이 문제 놓고 한번 토론해 봅시다 하는 소리를  이번 여행에서는 한번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요인은 북한주민들이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산다는 것을 도시뿐만 아 니라 시골농촌사람들까지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국의 일부에서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남한의 물자들이 북한주민에게 남한 실정,  그것도 북한보다 월등히 잘 산다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북한을 상대로 50개 이상의 민간 NGO단체들이 북한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고 정부에서도 식량과 비료 등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 러한 노력들이 누적되어 남조선해방론을 민족공조론으로 바꾸는 계기를 조성한 것은 아닐까. 북한이 변화하는 데는 아직도 더 많은 시간 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빨라질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가 퍼주기라는 험담 대신에 남북한 동포 간에 사랑 의 나눔을 넓혀 간다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꾸준히 진실하게 접근해 간다면 머지않아 필요한 변화가 북한에서 나올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농업직파기술보다는 협동농장의 토지를 각 농가에 나누어 주어 농가생산청부제(
請負制)를 실시하면 더 많은 식량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의 교훈일진데 그러한 교훈이 북한에서도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3박4일간의 나의 세 번째 북한여행은 끝났다.

필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일본 츠쿠바 대학 역사인류학계 국제정치연구분야 객원연구원
국회의원(11대, 12대, 15대)국회문교공보위원장
국토통일원 정치외교담당관,교육홍보실장,통일교육원장(차관보)역임
한중문화협회 총재(현)
한국아프가니스탄 친선협회장(현)
한민족복지재단 공동대표(현)
호남대학교 초빙교수(현)
한성대학교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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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권당의 양극화문제제기의 정치함정-박세일교수


요즈음 양극화에 대한 논의가 갑자기 많아지고 있다. 양극화란 한마디로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상위 20%는 잘나가는데 하위 80%는 어렵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 양극화를 시한폭탄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남은 2년간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올인 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양극화해소를 위해 증세를 하거나 아니면 세정을 강화하여 세금을 안내던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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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를 이 시대의 국가적 과제로 설정하는 것은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
어느 사회이던 그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 과제설정(agenda setting) 내지 선택에 그 나라의 국정운영세력의 철학과 역사관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문제도 어떻게 문제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해결방법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사회에는 중소기업의 퇴출, 중산층의 몰락, 실업의 증대와 빈곤의 확대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놓고 이를 소득분배의 악화문제 즉 양극화의 문제로 보느냐, 아니면 경기하락과 성장추락의 문제로 보느냐 하는 것은 국정운영세력의 경제철학과 역사관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또한 어느 문제로 보느냐에 따라 그 문제의 해결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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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우리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를 소득분배의 악화 즉 양극화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것은 크게 잘못된 문제파악이고 문제설정이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그 자체는 세계적으로 보아 결코 나쁜 편이 아니다. 소득분배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2005 UN 통계를 보면 114개국 중에서 26번째로 양호하다. 우리가 아는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스위스 등도 모두 우리보다 소득분배가 나쁘다. 중국과 인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인구의 25%가 절대빈곤의 상태에 빠져 있고 우리보다 소득분배가 훨씬 나쁜 인도의 재무부장관은 금년의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성장이야 말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해독제라고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빈곤과 실업과의 싸움을 위해서는 경제성장, 세금인하 그리고 투자증대 등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인도의 집권세력이 그러한 올바른 경제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근 인도의 성장은 눈부시다. 작년에 8.1% 의 성장률을 달성하였고 금년에는 10%의 성장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둘째,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소득분배의 악화나 양극화의 문제로 보면 잘못된 정책방향이 나온다. 우리의 문제를 양극화의 시각으로만보면 (1) 빈곤의 문제를 풀기 위해선 소득재분배를 강조하게 되고 (2) 실업의 문제를 풀기 위하여선 공공부분의 고용창출, 소위 사회적 일자리를 강조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실패한 정책들이다.

빈곤의 문제를 양극화라는 시각에서 보면 당연
平等主義的 해결책이 나온다. 결국 앞서가는 기업이나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뒤에 있는 사람들을 지원한다는 답이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평등주의적인 방식은 결과적으로 경제를 더욱 후퇴시키고 그 결과 소득분배를 더욱 악화시킨다. 결국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들게 된다. 그것이 인류 역사의 교훈이다.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가 이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또한 20세기 南美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포퓰리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포퓰리즘은경제를 살리는 데는 주력하지 않고 재분배만을 강조하여, 정치적으로 대중의 인기는 얻었지만, 경제를 더욱 침체시켜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만들었다.

남미의 포퓰리즘 정권들도 입만 열면 우리 정부처럼 소위동반성장이라는 말을 자주 내세웠다. 그러나 말과 달리 행동은 항상 반기업적이었고 평등주의적이었다. 결국 국가실패를 가져왔다. 우리는 이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양극화 시각에서 실업문제를 보면 경제를 살려서 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실업을 줄이려는
市場主義的 접근을 경시하게된다. 그 대신 공공부문의 일자리, 소위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통해 실업을 줄이려는國家主義的 해결을 도모하게 된다. 현 정부는 바로 이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주요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주의적 시도는 대부분 실패하였다. 유럽의 20세기형 복지국가의 고용정책이 실패한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민간경제의 활성화보다 공공부분의 일자리 창출로 실업의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엄청난 재정적자와 지속적인 경제침체로 결국 두 손을 든 것이 바로 20세기 유럽 복지국가의 실패경험이다.

셋째,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는 소득분배의 악화가 아니라 사실은 경제성장의 부진이고 성장잠재력의 추락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빈곤층의 증대가 문제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빈곤의 증대와 분배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경기부진과 성장의 추락이다. 우리나라의 자료를 보아도 60년대나 80년대와 같이 경제가 발전할 때는 빈곤층이 줄었고 소득분배도 개선되었으나, 2000년대와 같이 경제가 후퇴할 때는 빈곤층도 늘고 소득분배도 악화되었다. 따라서 최근 수년간의 신 빈곤층의 증대와 소득분배의 악화는 부자와 중산층이 세금을 덜 내서가 아니라 사실은 경제성장의 추락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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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나라의 당면문제는 양극화가 아니라 경제발전의 부진과 성장추락으로 인한 신 빈곤층이 문제이다. 신 빈곤층은 과연 누구인가?
빈곤층은 산업화시대의 산물이라면 빈곤층은 세계화시대의 산물이다. 신 빈곤층은 세계화시대의 과학과 정보기술의 혁신, 경영환경의 변화 등으로 산업이나 기업에 요구되는구조조정의 속도가 빨라지는데 반하여, 그에 적응하는국가제도나 정책의 변화속도가 늦어서 발생하는 빈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정부의 산업정책, 기업정책, 교육정책 등이 빠르게 세계변화를 수용하고 적극 대처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신 빈곤층은 줄어들지만, 반대로 정부정책의 대응이 더디거나 혹은 우리나라처럼 변화에 역행하는 정책을 쓰면 신 빈곤층은 늘어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세계화시대에 국가의 정책실패가 만들어 내는 빈곤층이 신 빈곤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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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왜 경제발전은 부진하고 성장은 추락하며 신 빈곤층은 증대하고 있는가? 그 이유를 밝히고 이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이 정부가 하여야할 시급한 국정과제이다. 아니 그래야 신 빈곤층도 줄고 소득분배도 개선될 수 있다.

첫째, 이 정부에는 일관성 있는 경제발전전략이 없다. 자유와 경쟁, 글로벌 스탠더드와 개방 등을 중시하는자유주의적 정책은 적고, 분배와 균형,
기업과 시장의평등주의적 정책이 과다하다. 이 정부는 7% 경제성장률을 공약하고 등장하였다. 그러나 지금 성장률은 4%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동북아 중심, 정부혁신 등그럴듯한 구호는 많았지만 불쑥불쑥 나오는 평등주의적 개혁정책으로 사실상 기업의 투자욕구와 사업의지를 많이 죽여 왔다. 국민들의 소비심리도 크게 위축시켜 왔다. 지난 기간의 투자증가율을 보면 단적으로 나타난다. 1990년대 전반의 투자증가율은 10%였다. 90년대 후반은 IMF사태 등으로 낮아져 투자증가율이 5%였다. 그러나 지난 3년간은 더욱 낮아져 0.3% 에 불과하다. 미래가 불안하다는 이야기이다.

둘째, 이 정부의 교육정책은 시대역행적이다. 선택과 경쟁, 자율과 책임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니 세계화시대가 요구하는 경쟁력 있는 인재들을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 평준화라는 덫에 걸려있고 관치교육이라는 구시대적 유물이 교육혁신을 막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학도 세계 100대 우수대학순위에서 겨우 93위에 머무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수능등급제의 강요 등 이 정부는 대학까지 평준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교육개혁을 가지고 경쟁하는 시대이다. 어느 나라가 교육개혁을 더 잘 하느냐가 그 나라 미래의 성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1세기가 요구하는교육의 자유화개혁은 하지 않고교육의 평준화개혁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 결과는 인적 경쟁력부진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몰락, 대졸자 실업과 신 빈곤층의 양산이다.

셋째,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은 낭비와 비효율 위에 서 있다. 우선 복지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분권적이지 않고 중앙집권적이다. 국민의 혈세로 만든 복지재원이 필요한 곳에 가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가는 도중에 낭비도 심하다. 현장의 요구나 변화가 고려되지 않는 탁상복지행정이 많다. 또한 복지정책이 교육훈련정책과 직업알선 등의 노동시장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지 못하다. 그래서 비효율이 심하다. 과거 20세기 유럽의 복지국가가 실패한 중앙집권적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돈만 부족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선 복지재정을 아무리 늘려도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복지개선은 어렵다.
국가정책이 이상과 같은데어떻게 경제가 발전하고 경기가 회복되며 실업과 신 빈곤층이 줄어들겠는가? 그래서 지난 수년간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대부분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데 우리나라만 성장부진이 나타나고 있다. 금년에 들어서도 우리나라 성장률은 동아시아 10개국 중에 8위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 일본과 싱가포르를 빼놓고 중국 홍콩 대만 베트남 태국 말레시아 등등 모든 나라들 보다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성장부진의 원인은 해외에서가 아니라 국내에서 찾아야 하고, 그에 대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할 세력은 집권세력이다. 그런데 집권세력이 적반하장 격으로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들은 오늘의 분배악화의 원인을 박정희 시대의 고도 압축 성장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은 IMF 금융위기 때문이라고도 하며 지난 정권들의 잘못으로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사실 박정희 시대야말로 고도성장과 더불어 빈곤도 줄고 소득분배도 크게 개선되던 성공의 시기였다. 그리고 IMF 금융위기의 경우도 위기 직후에는 성장과 분배가 일시적으로 크게 악화되었으나 곧 반등하여 모두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것이 이 정부 들어, 다시 성장과 분배 모두 급속히 악화되어 오고 있다. 따라서 두 가지 책임회피 모두가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틀린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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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세력은 왜 국정운영책임은 회피하면서 양극화라는 문제설정을 고집하는가? 왜 성장부진의 문제는 굳이 외면하면서 양극화만을 부각시키는가? 거기에는 경제적 논리적 이유보다 정치적 의도가 더 큰 것 같다. 한마디로 적극적 공격적 포퓰리즘(populism)이다. 포퓰리즘은 일부정파가 자신들의 부분이익을 위해, 대중의 일시적 인기에 영합하여, 국가의 이익(전체이익)을 희생시키는 정치내지 정책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 포퓰리즘은 소극적 인기영합의 단계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대중인기를 조작하고 공격적으로 대중정서를 선동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 단계에서 사이버 여론몰이, 마녀사냥,
기존 관치언론수단의 동원 등이 자주 활용되고 있다. 그것도 부족하면 국민의 선량인 국회의원들을 포퓰리즘의 선전선동에 앞세우기도 한다.
최근에 집권여당의 당 지도부가 소속위원 143명 전원에게 실업계 고교에서 일일 교사로 강의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집권여당의 원내총무가 실업계 고교에 가서부자부모를 만난 학생들을 비싼 과외로 공부를 하여 좋은 학교에 가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기회도 많고, 부자부모를 못 만난 아이들은 비싼 과외를 못하여 좋은 학교에 못가고 계속 못살게 되는 현상이 양극화다라고 강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잘사는 사람은 계속 자기들 끼리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사회는 잘못된 것이고 결국은 망하게 된다.”고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한마디로 참 한심하고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에 대표적인정책 포퓰리즘은 수도이전 내지 수도분할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지역의 몰표를 얻기 위해 국가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아니하고 무책임하게 급조된 정책이 수도이전이고 수도분할이었다. 왜 공주연기 만 지원하느냐고 다른 지역에서 불만을 이야기하니 이제는 정부 산하의 170여개의 공공단체를 전국에 강제로 나누어 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의 땅값을 뜰 쑤셔 놓던, 국정운영의 비효율과 낭비가 극심하던, 국토발전의 장기적 체계성이 파괴되던, 그러한 문제들은 전혀 안중에 없다. 우선 정파적 정치적 이익의 극대화만이 목표이다. 그러니 수도인구의 과잉집중을 막기 위하여 50만의 신 행정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는 정부가 8.31 부동산대책에서는 서울지역에 120만이 더 살 수 있는 신 아파트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앞과 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수도분할에서 재미를 본 현 정권은 이번에는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기 위한 또 하나의정책 포퓰리즘으로 양극화를 선택한 것 같다.따라서 이들에게는 양극화는 경제이슈가 아니라 정치이슈이다. 닥아 오는 선거계절에 대비하여 국민을 20 80으로 나누어 서로 대립갈등하게 하면서 80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이지, 진정으로 이들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선동수단을 찾고 있다. 문제의 해결이 목적이 아니라, 문제의 이용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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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들이 양극화를 주장하는 사고의 밑바닥에는 단순한 포퓰리즘 이상의 문제가 숨어 있다. 즉 이들의 사고와 사상의 저변에는 수정주의적 역사관(revisionism)이 있다. 한마디로
좌파적 역사관이 문제이다. 수정주의적 역사관은 역사를 대외적으로는 민중과 외세의 투쟁의 역사로 인식하고 국내적으론 "가진 자" "못 가진 자" 간의 갈등과 대립의 역사로 이해한다. 이러한 역사관을 가지고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민족분열주의자가 세운 나라이고 우리의 산업화는가진 자美日 외국자본과 결탁하여 우리 노동자를 착취하는 식민지 매판경제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역사관에서 오늘을 보면 당연히 우리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성장의 추락이 아니라, “가진 자못 가진 자간의 양극화의 심화가 된다. 그 양극화의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크지 않다든가, 그 발생의 원인이 경제성장과 교육개혁의 부진 때문이라든가, 혹은 보다 직접 원인은 평등주의적 정부정책 때문이라든가 하는 문제제기는 이들 수정주의자들에게는 전혀 설득력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 좌파적 역사관이 오늘의 현실을 신 좌파적으로 해석하게 만들고 우리의 미래를 신 좌파적으로 계획하고 구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잘못된 역사관에서 잘못된 세계관과 경제사회관이 나오고 그 결과 잘못된 경제철학과 정책론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양극화 논의는 하나의 시발점에 불과할 것이다. 앞으로는 경제의 양극화뿐 아니라 모든 국정과제를 양극화의 문제로 단순화하고
口號化 할지 모른다. 정치의 양극화, 사회의 양극화, 교육의 양극화, 문화의 양극화,국토의 양극화 등등으로 국민들을 분열 대립시켜 나갈지 모른다. 왜 이렇게 국가와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가이익을 스스로를 해치는 일을 하는가하는 질문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정주의 역사관에서는 국민을 분열 대립시키는 것이 역사적 고 역사적 正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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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기로에 서있다. 선진화로 가느냐 아니면 추락하는 중진국이 되느냐이다. 포퓰리즘이라는
類似민주화가 더욱 기승을 부리면 선동정치, 폭민정치가 되고, 국민의 분열과 갈등은 격화되어 자유민주주의는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세계화와 시장경제의 실패를 불러오게 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진입에 실패하고 영원히 정치적, 경제적 후진국으로 전략하게 될 것이다. 이 잘못된 역사의 진행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를 고칠 수 있는 세력은 누구인가?
결국 망국적 포퓰리즘을 막고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광정하기 위하여 국민모두가 일어나야 한다. 누구에게 맡길 수 있고 기대할 수 있는 한가한 때가 아니다. 국민모두가 깨어있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사상의 힘과 행동의 힘을 가지고 역사의 수례바퀴를 돌려놓아야 한다.
함석헌 선생께서생각하는 국민이어야 산다고 했는데 지금은깨어 있는 국민”, “행동하는 국민이어야 사는 시대이다. 우리사회 지식인들 속에서도 국민의 각성을 촉구하고 앞장서는전투적 자유주의자” “개혁적 자유주의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들과 함께 나라를 살리는 구국운동을 벌려야 한다. 대한민국을 지키고 대한민국을 선진화시키는 국민운동을 벌려야 한다.우리 사회 각계각층과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올바른 역사관 올바른 세계관 올바른 경제철학을 세우는 자성과 자각의 소리가 우렁차게 나와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을 꿈 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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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개혁개방이 북한에서도 가능할 것인가

이 영 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초 중국방문을 계기로 북한이 앞으로 중국식 개혁개방을 벤치마킹하는 개혁노선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예측은 그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다.

우선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일정이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주도한 등소평(
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가 행해진 중국남부의 개혁개방의 상징도시들을 순방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또 이보다 3개월 전인 작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후진타오 주석은 평양에서 행한 만찬연설의 3분의 1 가량을 중국에서의 개혁개방의 성과를 설명, 중국이 이룩한 오늘의 발전이 개혁개방 때문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북한도 중국처럼 개혁개방에 나서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후진타오(
胡錦燾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는 앞으로 북한이 개혁정책을 펴는데 필요하다면 총규모 20억 달러의 경협을 고려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도 연초 비공식 방중(訪中)의 명분을 후진타오 주석의 초청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일부 학자들 가운데는 등소평의 남순강화를 본 딴 김정일의귀국강화’(
歸國講話)가 곧 나올 것이며 북한에서도 중국식 개혁개방이 뒤이어질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번 중국방문은 1983년 등소평의 초청으로 그가 처음 중국을 방문한 이래 횟수로는 공식, 비공식을 포함 5회째 방문이며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때 마다 북한 측에 개혁개방을 권고했고 그때마다 김정일은 각국은 자국의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를 추진해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특히 2002 9월 장쩌민 주석이 북한을 방문, 중국의 개혁개방을 설명하고 북한 측에 중국식 모델을 권고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의 개혁개방이 높은 성과를 얻고 있음을 상하이 방문에서 보았음을 시인하면서도 북한은 중국특색적 사회주의와 구별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밀고 나갈 것임을 밝힘으로써 장쩌민의 방북에 따른 공동성명마저 발표되지 않는 이례(
異例)를 남기기도 했다.

중국은 북한 측에 개혁개방을 권고하고 있지만 개혁개방은 중국에서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국도 개혁개방의 시대를 열기위해 생사를 건 투쟁을 전개했고 심각한 난관을 넘어서야 했다. 등소평이 극복해야 했던 가장 큰 난관은 량거빤쓰(
兩個凡是)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즉 모택동의 교시와 정책은 절대적인 것으로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모택동의 후계자 후아꾸어펑(華國鋒) 주석의 집권명분과 싸워 이겨야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 당 학교 부교장 후야오빵(
胡耀邦)은 1978년 5월11일 광명일보(光明日報)실천이야말로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논설을 발표, 개혁을 향한 여론몰이의 횃불을 올렸고 여기에 등소평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개혁세력이 가세함으로써 실증 되지 않은 모택동 주석의 교시와 정책을 거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사상해방(思想解放)의 기틀을 만든 것이다.

이 투쟁을 통해 중국공산당 제11 3차 중앙위원회는 등소평 중심의 개혁세력이 중국공산당의 중심에 서는 정권변환을 이루었다. 이어 1981년 모택동의 위상과 이론과 업적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하는 역사결의를 통해 개혁개방의 대로가 열렸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이러한 투쟁이 있을 수 없었다. 김일성 주석의 교시와 정책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으며 김일성주석의 가르침과 정책은 그대로 대를 이어 승계되어야 한다는 세습유훈통치(
世襲遺訓統治)가 김일성 주석의 사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말하는 량거빤쓰 극복투쟁이 북한에는 있을 수 없다. 중국처럼 북한에는 체제운영방식을 둘러싼 대내논쟁도 없었다. 농업생산성의 감퇴로 인한 식량난, 원자재난, 에너지난 등은 그 원인이 천재지변이나 외부환경에 있을 뿐 김일성주석의 교시나 정책에는 흠결이 없다는 것이다.기아와 이로 인한 탈북사태가 초래되어도 북한지도층은 누구도 이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 이른바 자연재앙이나 미국의 북한압살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은 더 이상 개혁과 개방을 늦출 수 없는 내외환경을 맞고 있다. 중국적 기준에서 보면 개혁의 대상이어야 할 현 집권층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서라도위로부터의 개혁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대내적 결핍과 중국의 권유형식에 의한 개혁압력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현실적으로도 개혁개방을 통해 산업재건, 경제회생을 기하지 않는 한 체제유지가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이 비록 개혁개방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개혁주체세력 없이, 새로운 개혁철학 없이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로 변신해야 하는 한계성 때문에 개혁개방이 소기의 성과를 얻는 데는 중국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를 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시대의 대세인 개혁개방을 더 이상 늦추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개혁의 길로 떨쳐 나서야 할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살길이 있 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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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국이 경계할만큼 무서운 존재인가

 

이글은 2006 2 16일자 내일신문 이영일 칼럼에 게재된 것임

중국경계론은 실체인가 기우인가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 영 일

새해 동북아 국제정치의 화두는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미국과 일본이 제기하는 중국경계론이라 할 것이다. 특히 중국통계청이 지난 1 24 2005년 말 로 중국 GDP가 비록 1인당 GDP 1700달러이지만 총량에 있어서는 프랑스를 앞질러 세계랭킹 5위에 도달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서방측의 중국경계론은 한층 더 고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작년도에 이미 국방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사, 정치대국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중국 군비확충의 지속성과 불투명성을 강력히 비판하였고 일본도 이에 동조하였다.

중국은 이러한 경계론을 향하여 이른바 화평굴기(
和平屈起)론으로 자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한편 미일의 외교적 포위공세에 대처하는 작업을 적극화하고 있다. 중국 측의 해명은 첫째 자국의 경제발전방식이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침략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의 자원과 노동을 약탈 갈취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시장을 개방하여 직접 투자(FDI)를 유치하고 여기에 중국의 풍부한 노동력을 결합시켜 경제발전을 추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둘째 중국 지도부는 덩샤오핑, 장쩌민 시대를 거치면서 모택동 주석 시대의 정설(
定說)이었던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전쟁불가피론(戰爭不可避論)을 완전 청산하고 주변정세가 평화적으로 유지될 때 비로소 중국은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은 화평굴기 즉 평화적 발전정책 적극 추구한다고 역설한다.

셋째 중국은 현시점에서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경제규모는 아직도 미국의 7분의 1,일본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고 1인당 소득도 1천7백 달러로서 중국은 아직도 세계랭킹 100위에 머무르고 있어 미일의 중국경계론은 모든 면에서 터무니없는 모함이라고 항변한다.

오늘날 중국경계론을 놓고 미국학계에서도 양론이 맞선다. 키신저는 오늘의 중국은 지도부의 각성을 통해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주어진 여건을 활용, 국제정치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갖는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대국화를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이 성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패권을 추구할 수 없도록 중국주변에 견제세력을 육성하는데 미국외교는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등을 중국을 견제할 주변세력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미국 내 네오콘들의 주류는 중국의 견제 없이는 미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면서 효과적인 견제필요성을 강조한다.

일본에서도 중국을 보는 시각에 있어서 유사한 현상이 일고 있다. 일본 판 네오콘들(사카모도 다카오 등)도 중국의 군비가 끊임없이 증가하고 경제발전에 비례해서 민족주의적 성향이 외교정책에서 강력히 부각되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중국의 궁극적 목적은 아시아 대륙에서의 패권추구에 있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일본의 온건 진보세력들은 중국의 안정과 발전이 동북아시아를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어나가는데 순기능(
順機能)을 할 것이라면서 일본과 중국 간의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현시점에서 중국이 추진하는 경제발전의 궁극적 목표가 이 지역에서의 패권추구에 있다고 단정할 근거는 희박하다. 중국지도부의 잠재의식 속에 한 때 아시아 대륙에서 군림했던 지난날의 영광(Pax Sinica)에의 향수가 깔려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중국이 강력히 추진하는 경제발전은 분명히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중국이 문화대혁명 때처럼 내부적으로 진통하면서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수천수만의 난민이 아시아 대륙을 떠도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동아시아 정세를 극도의 불안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이 13억 인구의 의식주를 안정시키고 교육과 의료수준을 향상시키면서 국민적 자신감을 키워주고 있는 것은 세계정세안정화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자원부족, 인구과다, 계층 및 지역 간의 격차, 중앙과 지방의 정책대립 등 중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제약할 요인에 주목한다면 중국경계론은 한낱 기우에 불과하며 중국의 급성장에 불안을 느낀 서방의 외교심리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중국 측의 태도가운데는 아직은 미약하지만 경계론을 실체로 우려할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내치외교수단 으로 중화민족주의(
中華民族主義)를 틈틈이 활용하는가 하면 또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처럼 패권주의적 과거로의 복귀를 노리는 것 등은 우려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명실상부한 화평굴기의 길을  중국이 이탈할 경우 중국경계론은 언제나 힘을 얻어 중국을 괴롭히는 화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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