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 나덕성의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베토벤 소나타 공연을 보고나서
피아니스트 신수정여사와 첼리스트 나덕성선생
요즘 내 생활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다. 12월 18일 밤 한 친구의 권유와 초청으로 서초동의 모차르트 홀에서 열린 베토벤의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소나타 전곡연주회 2부를 듣는 모임에 참석했다. 1부는 11월 6일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두 분의 연주는 참으로 감미로웠다. 잘 조화된 기악곡의 협연이 줄 수 있는 멋과 아름다움, 감미로운 선율로 넘치는 화려한 연주회였다. 연주자 두 분 모두 피아노와 첼로연주에서 국내 최정상에 올랐던 평판도 작용했겠지만 이 정도의 수준 높은 연주를 해내는 두 분의 내공을 높이 사서인 것 같다.
자리를 함께한 친구들과 이남장에서 저녁을 마치고 여유 있게 공연장을 향했다. 좁은 홀이 대만원을 이루어 사람들이 통로로 이용하는 공간까지 접는 간이의자로 채워져 있을 정도였다. 이곳저곳에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띌 때마다 가벼운 미소로 목례하면서 공연을 기다렸다. 예상은 했지만 이날 공연의 주인공들은 나의 대학시절의 콩쿠르에서 명성을 올린 분들이었기에 금년 나이는 고희를 갓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달리 큰 피아노앞으로 나앉은 신수정씨 모습은 예나 다름없었고 자기 키 크기의 첼로를 들고 나오는 나덕성씨 역시 젊어보였다. 문자 그대로 YO(Young Old의 약칭으로 75세미만의 연령그룹)세대들이었다. 베토벤은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소나타 5곡을 썼다는데 나는 이날 밤 소나타 No.2와 소나타 N0.5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연주에 나선 두 분 모두 한국기악계의 거성들로서 음대 학장을 거친 원로들이었지만 연주를 위해 무대 위로 나와 인사하는 모습은 다소간의 수줍음을 섞은 정중함이었다. 누구나 많은 사람들 앞에 자기가 주인공으로 나와 연설을 하거나 연주를 할 때는 으레 다소간의 긴장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 분들의 표정에서도 그런 느낌이 감전되었다. 그
러나 두 사람이 눈 사인에 맞춰 동시 연주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두 분 너무 진지해졌다. 피아노와 첼로음의 조화로 울려나오는 음률의 아름다움은 청중을 숨소리도 나오지 못하게끔 압도하였다. 한국 최고 거장들의 연주라는 선입견을 넣지 않는다고 해도 두 분 모두가 보이는 연주의 진지함은 청중들의 심금을 파고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소나타 No.2의 Allegro Molto 부분의 연주에서는 격정이랄까 열정 같은 것을 모두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동안 감기로 고생하다가 다 끝나가는 무렵이었기 때문에 무탈하게 감상하고 올 줄 알았다가 웬걸 기침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기침을 참으면서 안간힘을 쓰고 앉아있는데 인터미션이 되었다. 이 순간만큼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나의 어려움을 눈치 챈 친구가 빨리 집에 가서 쉬라고 권했다. 김남윤 씨가 바이올린으로 가세하는 Piano trio No.4도 듣고 싶었는데 남들의 감상을 위해 나의 욕심을 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눈에 선한 것은 악장이 끝날 때마다 이마를 쓰다듬거나 콧등을 만지면서 피로해 하는 나덕성 씨의 표정이었다. 나이 탓에 연주에 힘이 부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연주에 쏟는 열정이 부족해지는 힘을 보충하면서 수준 높은 연주를 해내는데 감동치 안을 수 없었다. 이들의 연주는 훌륭했지만 보다 더 훌륭한 분은 이 소나타를 써낸 베토벤, 그리고 베토벤을 인류에게 보내주신 하나님 아니겠는가. 좋은 시간을 갖게 해준 두 분 친구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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