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프간 친선협회회장에 신치호씨, 이영일 전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한국아프간친선협회는 2011년 12월 16일 18시 서소문 사무실에서 정기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이영일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고 신치호 회장(노스타코리아 L.T.C.와 세계로 CBMC회장)을 새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영일 명예회장은 2002년 3월 아프간전쟁 직후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의료봉사단을 인솔하고 한국대사관도, 국제협력단도 없는 아프간의 마쟈리에샤리프와 발크지역을 방문, 의료봉사활동을 펼쳤고 그가 속한 한민족복지재단은 거의 반년 동안 의료진을 아프간에 파송, 의료지원활동을 계속했다. 이 사업에는 탈런트 정영숙 권사도 참가했다.
2003년에는 아프간임시정부의 Fayes 고등교육부장관이 16명의 아프간 대학총장단을 이끌고 방한한 것을 계기로 6.3빌딩에서 한국아프간 친선협회를 결성하고 아프간 교육재건을 위해 다방면에 걸친 지원활동을 펼쳤다. 서울대학교 정운찬 총장이 40대의 신규 컴퓨터를 지원했고 한국진흥재단은 재활용된 400대의 컴퓨터를 아프간 대학들에 지원, 컴퓨터학과 설립을 추진했다. 2003년 여름에는 한국아프간 친선협회 대표단이 인도의 뉴델리 공항을 거쳐 카불을 방문, 수로비 지역의 관개사업을 지원하는 한편, 관개공사를 새마을 취로사업형식으로 전개, 코이카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이 때 이영일 회장은 카불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Fayes 고등교육부장관의 주선으로 왕궁으로 방문, 면담하고 한국에 아프간대사관을 개설할 것으로 요청, 흔쾌히 승낙을 해주어 현재 서울 한남동 소재의 유엔 빌리지에 아프간 대사관이 세워졌다. 아울러 카불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아프간•한국친선협회도 결성되고 아프간 측 회장에 Fayes장관이 선임되었다.
한국아프간 친선협회는 그 후 3명의 아프간 유학생이 한동대학교에서 공부하도록 지원했고 아프간 국회의원단의 내방을 접견함과 동시에 아프간 대사관이 제 구실을 하도록 물심양면의 지원활동을 펼쳤다. 동시에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 필라병원을 인수해서 정인섭 사장(대한제강사장 2만 달러를 희사한 한민족복지재단 이사)불이 투자한 기금으로 재활병원을 병설해서 전쟁부상자들의 재활 지원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각 민간단체나 교회에서 단기 봉사 팀을 편성, 필라병원에서 간호활동을 지원해 왔다. 지금도 한동대학교에서는 조원철 교수 지도하에 칸다하르 병원을 돕는 단기사역의 대학생 봉사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2007년의 샘물교회의 단기봉사 활동은 탈레반에게 봉사활동대원 전원이 피랍되었고 탈레반 손에 두 사람의 봉사단원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불행을 겪었다. 김만복이라는 국정원장의 공명심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더 이상의 추가희생자는 없이 피랍되신 분들이 생환했지만 그 상처는 여러 군데 아직도 앙금처럼 남아있다. 한국 내에 안티 크리스천 세력이 얼마나 많은지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나는 한국아프간친선협회를 방기하고 절차를 밟아 법인체를 해체하려고 하였다. 그때 박은조 샘물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한국아프간 친선협회가 해체되면 “우리는 두 가지를 몽땅 잃는다. 아프간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큰 목표를 잃을 뿐만 아니라 이미 목숨을 잃은 두 분의 죽음을 헛되이 한다”고 말하고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한국아프간친선협회의 간판을 유지하는 가운데 아프간 전쟁난민들에게 한국인들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는 다른 사업을 강구해 나가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박은조 목사님의 말을 좇기로 했다. 박 목사님은 아프간에서 유학생 12명을 한국으로 데려와 그들을 전후 아프간과 한국을 연결하는 가교로 삼자는 계획을 말했다. 이 구상에 따라 아프간에서 12명의 유학생이 全州 비전대학으로 유학을 왔고 이제 절반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으며 나머지 6명이 더 높은 단계의 공부와 새로운 임무나 직장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아프간에 콩을 심어 전후 아프간 지역의 영양위기를 극복하자는 운동이 권순영 박사(재미교포)가 창설한 NEI를 통해 추진되고 있었고 이 사업은 한국의 세계로 CBMC가 NEI운동을 적극 도움으로써 활성화되고 있었다. 나는 이 사업이 갖는 의의에 적극 공감하고 세계로 CBMC와 한국아프간 친선협회를 아프간 돕는 사업에서 하나 되기로 합의, 조직적 통합을 이루하고 양쪽에서 이사를 선임, 조직통합을 이루었다. 통합된 한국아프간의 회장은 내가 맡고 부회장에는 세계로 CBMC의 신치호 회장이 맡았으며 사무총장에는 이형섭목사님이 맡았으며 사업본부장으로는 임신철 세계로CBMC회원이 맡았다.
작년 10월부터 아프간의 콩 사업은 지난 7년간의 권순영 박사의 눈물어린 수고와 노력 끝에 콩의 소개, 제배, 영농기법 훈련, 콩의 가공분양에서 아프간 정부당국을 승복시키는데 성공했고 이제 미국은 물론, WFP까지도 권순영 박사가 추진하는 콩사업이 갖는 의미를 지지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국내지지를 얻기 위해 조선일보에 1회, 동아일보에 1회씩 칼럼을 게재하였으며 Naver에도 콩 사업을 지원하는 Happy Bean 카페를 열었다.
지난 12월 16일 38회째 아프간을 방문하고 귀국한 권순영 박사로부터 지난 7년과 앞으로의 7년을 위한 구상 보고를 청취하고 이제 우리 정부가 적극 참여함으로써 아프간 전쟁이후의 한국과 아프간과의 좋은 관계를 만들 정책적 Agenda로 콩 사업을 발전시킬 필요성에 이사들의 전원일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날 총화를 계기로 창립이래 8년간 회장으로 활동한 이영일 회장 시대는 마감하게 되었고 年富力强한 신치호 회장 시대가 개막되었으며 임신철 사업단장이 사무총장직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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