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취엔위엔치와 량치똥의 “패권전쟁”을 읽고
이 영 일 한중문화협회 총재
1.
미국경제가 패권을 중국에게 넘길 것인가. 2008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는 장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중국경제는 초기의 수출부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금융위기이전에 못지않은 경제성장을 보이는 가운데 총량GNP에서 일본을 앞지르는 제2의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중국을 미국에 버금가는 G2로 중국의 위상을 자리매김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중국의 두 젊은 경제학자가 2008년 금융위기이후 중국경제의 미래보고서라는 단행본을 출판하고 한국어판의 제목을 “패권전쟁”(覇權戰爭)으로 붙여 작년 말 21세기북스에서 출판했다. 일견 이 책의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제목에 붙은 패권전쟁(覇權戰爭)이 미중간의 패권을 다투는 전쟁이라기보다는 기축통화의 변경을 요구하는 폐권전쟁(幣券戰爭)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책 명칭은 출판사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부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과 제목이 전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과 궤도를 같이하는 명칭부여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의 두 분 저자중의 한분인 취엔위엔치(權元七)박사는 필자와 10여 년 동안 한중양국간의 현안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만큼 가까운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취엔 박사는 랴오닝성 둥베이(東北)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중국사회과학연구소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중국 국영기업체를 직접 운영하는 등 실물경제에도 달통하고 미국 하바드 대학의 방문학자로서 국제경제의 흐름을 몸에 익힌 현대 중국의 젊은 엘리트 학자이다. 또한 베이징 대학의 동북아전략연구중심의 이사장으로 왕지스(王緝思)교수와 제휴, 동북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엘리트이다. 량치똥 박사는 나와 개인적으로 친면은 없지만 랴오닝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베이징 사회과학연구원에서 도시경제학을 전공한 소장파 엘리트 학자로 알고 있다.
2.
이 두 분의 저서는 딱딱한 경제학교과서가 아니다. 이론을 나열하면서 통계표로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수리중심의 경제서적은 더더욱 아니다. 두 젊은 석학이 나름대로 가진 경제학의 이론과 지식을 동원해서 미국 발 금융위기의 시작과 과정, 그 배경을 날카롭게 파헤치면서 나름대로 전망을 도출하려는 진지한 논의를 대화형식으로 펼치고 있다. 두 분 학자의 대화이기 때문에 일반 경제학 저서에서 보이는 난해한 주석(註釋)이 붙지 않는다. 남의 이론을 인용하고 그 근거를 밝히는 것은 학자적 양심에서 당연하지만 주석에 신경을 너무 쓰다보면 자기 목소리가 약해진다. 그러나 이 책은 대화이기 때문에 중국의 두 젊은 석학이 갖는 자기주장, 자기식견, 자기목소리(本音)를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점에서 읽을수록 맛이 나고 한번 끌려 들어가면 빠져 나오기 힘들어 숙독할 수밖에 없다.
또 두 분 학자 모두 중국의 문화대혁명이후 중국공산당의 지도아래 성장한 젊은 세대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미국 발 금융위기를 어떻게 보고 평가하는가는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익한 준거가 될 것이다. 미국 발 금융위기에 관해서는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이러한 위기의 도래를 미리 예측했다고 해서 Paul Krugman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두 분 학자들은 미국 발 금융위기가 태동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이념적 배경을 조직적으로 분석하는 예리함을 이 책속에 담았으며 아울러 실질문제를 폭넓은 예시를 통해 밝히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 발 금융위기는 세계GDP의 12배 이상 되는 500조 달러 규모로 팽창된 금융파생상품을 그대로 방치하여 금융자산의 거품이 방만하게 부풀러 졌고 부풀었던 거품이 폭발하므로 말미암아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여기에서 오늘날 전 세계인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경제의 장기침체를 가져온 것이다. 두 분 소장 학자들은 비록 시장경제라고는 하지만 공산당이 영도하는 체제 안에서 낳고 성장하였지만 미국식 자본주의가 갖는 이러한 문제점을 적실하게 판단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3.
이들은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경제정책이 글로벌화와 겹쳐지고 이 와중에서 실물경제의 도구이던 금융이 오히려 실물경제를 도구화하면서 금융카지노라고 부를만한 금융파생상품의 도박판을 만든 것이 금융위기의 세계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하고 미국의 Wall Street는 금융의 중심지가 아니라 금융도박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실물경제의 기초가 없는 금융이라는 가상경제가 만드는 부작용은 세계도처에서 부동산 버블을 몰아왔고 급기야는 기축통화로서 미국달러화의 기능위기까지를 몰고 왔다.
작년 7월 미 의회는 금융시장을 규제하는 Dodd-Frank Act를 통과 시켰지만 오히려 금융시장은 경직되어 가고 있고 미궁을 헤매고 있는 금융파생상품시장은 불안정성을 아직도 불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황이다. 미국경제가 지금 외형상으로는 살아나고 있는 것 같지만 작년7월 이래 9.8%를 웃도는 실업의 장기화, 주택시장의 침몰, 금융시장의 경직성과 불안정성, 대외경쟁력의 쇠퇴라는 4가지의 덧이 미국경제회복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Federal Reserve의 Quantitative Easing II나 오바마행정부의 Tax Cut Resolution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리고 언제까지 걸림 덧의 족쇄를 풀어 줄 수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2011년을 넘기지는 않을까 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가까운 원인에 대해서 취엔위웬치 박사는 “미국경제는 20세기 후반 클린턴 시절에 지식경제가 점차 도래하면서 제조업종의 해외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상경제가 과도하게 팽창했고 실물경제와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긋남이 심각한 정도에 이르자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거액의 재정적자 및 무역적자가 나타났고 이것이 쌓여 금융위기와 경제위기가 초래된 것입니다”(p.41) 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재미 한인경제학자 백순 박사는 “미국경제는 2차 대전 이후 강력한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으로 20세기 말까지 세계경제에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선진성의 위치를 지켜 왔다. 그러나 미국경제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동과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의 경쟁력을 뜨는 경제 국가들에게 빼앗기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4.
이와 관련하여 한국경제학계의 이론가의 한 사람인 안병직 박사는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의 불량 주택금융이 문제가 되어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금융시장의 운용을 위한 인프라가 마련되기 전에 새로운 금융기법이 폭주한 면도 있었다. 제가 보기로는 각 부문별로 세계화가 상당히 진행 되었고, 금융의 세계화도 많이 진전되었다. 한 나라의 금융위기가 민감하게 세계적으로 파급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금융의 세계화에 의해서 세계적 경제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적 및 국제적 금융 산업의 심화에 대응할만한 금융제도의 발달이 여전히 미진하다. 이것이 현재 전 세계적인 경제개혁의 과제 아닌가. 자본주의에 수정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제도적 심화로 나타날 것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인분석이나 배경분석에서는 국내학자들이나 중국의 두 분 이론가들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패권전쟁의 저자들은 미국경제의 회복전망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매우 비관적이고 미국경제의 등락에 연계되어 있는 유럽경제도 회복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동시에 두 분 학자들은 중국이 현시점에서 중국내부의 외자관리에 대한 제도적 장치 때문에 금융위기의 파급이 경제전면에 까지 미치지는 못하고 또 주요투자의 주체, 금융의 주체가 사실상 국가라는 강점 때문에 큰 위기를 넘기고는 있지만 부동산문제에 관한 한 중국의 버블도 반드시 위기를 모면하기 힘들다면서 국제금융위기의 교훈을 금후 중국경제의 내수 진작사업이나 부동산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5.
끝으로 두 분 학자들은 미국이 달러 발권력을 휘둘러 경제적 패권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이제 세계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파산시킨 직후와 같은 상황이나 프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의 성장에 제동을 걸었던 상황도 더 이상 아님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근면하게 노동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던 청교도적 삶을 되찾지 않고 내년 곡식을 미리 앞당겨 먹는 (寅吃卯糧:토끼해의 곡식을 호랑이해에 먹어치운다는 뜻)무책임한 소비, 많이 벌고 적게 저축하는 개인주의와 향락주의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여기에서 비롯된 경상수지 적자와 과도한 대외군사개입에서 조성된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를 미국이 해결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런 위기상황은 달러 발권력 조작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강력히 경고하면서 미국에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재조명, 실상에 맞는 처방이 필요할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세계금융위기의 현주소를 알기 쉽게 파헤친 이 책은 경제전문가나 비전문가 모두에게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적 양식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 이 서평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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