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문화협회 총재 이 영 일
 
1. 들어가면서

한중문화협회와 중국국제우호연락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2회 한중민간우호포럼이 6월20일 중국 푸젠성 샤먼(福建省 厦門)에서 열렸다. 이영일 총재를 단장으로 한 한국대표단은 6월19일 오후 늦게 샤먼의 태평양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중국국제우호연락회는 샤먼 지회를 통해 6월20일 오전 9시30분 샤먼 시내 시티호텔 국제회의실에서 제3회 한중민간우호포럼을 개회했다. 양리포(楊歷波)샤먼지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베이징과 서울이라는 양국의 수도중심으로만 추진되어 오던 한중민간우호포럼이 주제의 성격에 따라 이제 지방도시에서도 개최하게 된 것을 잘 된 결정으로 지지한다고 말하고 그런 행사의 제1차 회의지로 샤먼이 선택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참가자 모두에게 따뜻한 환영인사를 표했다.

 

베이징에서 국제우호연락회의 亞洲담당 덩원징(鄧文慶)비서장은 해외출장중인 리자오싱(李肇星) 회장지시로 자신이 대리 참석했다고 밝히고 이어 준비된 개막기조연설에서 그간 한중문화협회가 한중친선을 위해 해온 여러 가지 활동을 평가하면서 특히 리자오싱 회장은 중국극빈가정 어린이심장병 수술지원, 중국유학생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지원활동에 큰 지지를 표했다고 말했다.
 
또 이번 행사는 이영일 총재가 양국의 首都만이 아닌 地方을 서로 오가면서 한중민간우호포럼을 갖자고 제안해서 이루어졌음을 상기하면서 특히 포럼주제가 중국의 양안(兩岸)관계와 남북한 관계인만큼 중국과 대만간의 교류 현장인 샤먼에서 열리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영일 총재는 중국국제우호연락회가 제3차 한중민간우호포럼을 중국현대사에서 가장 빨리 세계에 개방되었고 또 신 중국에서도 특구로 발전해온 샤먼 시의 지회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한국대표단을 열렬히 환영해준데 대해 사의를 표했다.
 
이어 이 총재는 한국과 중국 양국 모두 통일문제를 가진 분단국가라는 공통점에 유의, 이번 포럼의 주제가 결정된 것인 만큼 이 기회를 통해 현재 한국인들이 부러워할 만큼 교류와 협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중국과 대만관계(이하에서 兩岸관계로 표시)를 정확히 이해하고 학습하겠다고 밝혔다.

주제발표는 중국국제우호연락회의 가오잉(高吟)한국처장의 통역으로 샤먼 대학의 양안관계 전문가인 쑨윈(孫云)교수가 양안관계의 현황과 전망을 발표했고 뒤이어 한중문화협회 연구이사인 박하진(朴夏晉)박사(현 호남대학교 초빙교수)가 남북한 간의 경제 및 사회문화 분야 교류의 현황과 전망을 발제했다.

2. 주제내용 요약

가. 쑨원 교수(샤먼대학 교수로 양안관계 연구의 권위자)

①중국과 대만 간에는 1987년까지는 무관계(無關係)의 대치상태였으나 대만의 장징궈(蔣經國)총통이 중국대륙에서 국민당 군대로서 대만으로 건너온 老兵士들의 가족과 친척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인도적 배려와 이를 수용한 중국정부의 결단으로 처음으로 교류가 열리게 되었다.

②양안교류는 1987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데 그간 대만일부에서 분리, 독립 문제를 제기하여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마잉주(馬英九)국민당 총통이 집권하면서 부터는 하나의 중국원칙을 다시 견지해 나감으로 해서 교류의 실질적 장애는 제거되었고 현재 민간차원에서 다방면에 걸쳐 교류와 협력이 진행되고 있음
 
③1992년 양안 간 교역액이 57.5억 달러였으나 지금은 1453.7억 달러이고 인적 내왕에서는 1991년 대만에서 본토를 방문한 사람은 9600명이었으나 2011년에는 대만에서 본토로 514만 명, 본토에서 대만으로 166만 명이 내왕하고 있다.
 
④2011년부터 양안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 경제문화협정을 포함한 10여개의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협정을 체결(교류는 하지만 하나의 중국원칙에 따라 국가승인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협력은 민간차원임)하였으며 양안관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교류로 인적 내왕의 중점이 점차 이동하고 있다.
 
⑤앞으로 양안관계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킨다는 전제에서 통일문제보다는 양안교류의 혜택이 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역점을 두고 추진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정부는 대만 서민생활의 질 향상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교류원칙으로는 先 經濟, 後 政治, 先易, 後難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나. 박하진 박사(호남대학교 초빙교수로 통일문제와 북한 문제를 강의)
 
① 남북한은 1970년대에 한국정부의 제안으로 인도적 차원의 분담고통해소를 겨냥,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해 교류협력 사업을 시작, 간헐적으로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졌으며 1988년 7월7일의 노태우 선언을 계기로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을 합법화하였고 동서독의 선례를 따른 남북한 기본관계 합의서와 유엔동시가입을 실현, 교류협력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갖게 되었다.

② 남북한은 이산가족의 간헐적인 상봉을 제외하고는 문화통합, 사회통합, 경제통합이라고 인정할만한 교류와 협력은 아직까지 없다. 한국의 일방적 대북지원이 있었을 뿐이고 북측은 한편으로는 남쪽의 지원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도발을 빈번히 자행, 항상 남북한간에 긴장상태가 가시지 않고 있다.
 
③남북한의 경제협력은 한국의 대북지원을 전제로 지금까지 추진되다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습 도발사건이 있은 후부터 일체의 대북지원은 중단상태에 있으며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의료지원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④남북한 협력이 중국의 양안관계처럼 발전하지 못하는 큰 원인은 개혁개방을 외면한 채 정권 3대 세습이라는 전대미문의 통치와 끝없는 대남군사도발로 한반도 문제에 외세가 개입할 여지와 명분을 주는 북한 행동 때문이다. 1948년 한국정부수립과 동시에 철수한 미군을 다시 한반도에 끌어들인 것도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이었으며 국제법규를 무시하고 감행된 핵과 미사일 개발도 외세개입의 근거를 제공한 것이며, 2010년 서해상에 미군의 항공모함을 불러들인 것도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이다.

3. 샤먼 관광

우리 일행은 샤먼이 모두 초행이어서 관광에의 호시심이 높았다. 첫날 예정된 금문도 관광은 토론시간이 길어져서 오후 배편을 놓쳐 다음날 방문할 구랑위(鼓浪嶼)를 먼저 방문했다. 샤먼은 아편전쟁 직후 개항된 5개항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도시의 역사가 긴만큼 도시 자체를 아름답게 가꾸는 능력도 탁월했다.

우선 개항이후 세계각국사람들이 몰려와 자기 나라 방식대로 집들을 지었기 때문에 만국건축박물관이라고 부를 만큼 멋진 서양풍의 주택들이 해안가를 수놓았다. 샤먼은 바다로 둘러싸인 호수도시이기 때문에 연안을 잇는 환상도로는 펑황수(鳳凰樹)의 꽃과 롱쉐이무(榕樹木)의 진초록 수림으로 어울려 화원도시나 미술도시로 불러도 좋을 만큼 잘 정돈된 깨끗한 도시였다.

먼저 개방되었다는 점도 있지만 중국과 대만 간의 교류현장인 점에서 도시를 가꾸는데 더 많은 정성과 노력과 정책적 배려가 깃든 것 같았다. 중국의 해안도로는 웨이하이(威海)나 옌타이(煙台), 다리엔(大連), 하이난다오의 산야(三亞)가 모두 아름다웠지만 샤먼만큼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바다와 육지와 멀리 어른거리는 섬들과의 조화까지를 내다보는 미학적 배려가 흠 뿍 담긴 것 같지는 않았다.

중국 쪽 해안에는 “1국양제(一國兩制)통일중국”이라는 초대형 현수막이 해안가의 절벽에 세워져 있고 배 타고 금문도(金門島) 해역의 소금문(小金門)옆의 따단도의 산기슭에는 “삼민주의(三民主義) 통일중국”의 대형글자 현판이 선명히 읽을 정도의 크기로 세워져 있었다. 중국도 분단국가의 하나임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4. 글을 맺으면서

중국이 본토와 대만으로 분단된 것은 외세가 개입해서가 아니라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內戰, 중국식 표현대로라면 내부혁명의 결과에 기인한다. 한반도처럼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으로 분단이 시작되고 고착되어진 국제형(國際型) 분단국가가 아니다.

내쟁형(內爭型)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통일문제 해결에 외세가 관여할 명분이 없다. 그러나 미국 국회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면서도 대만관계법을 만들어 양자관계에 개입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과 대만 간에 냉전 시에 치열하게 전개된 무력분쟁의 여파인 것으로 보인다.
 
양안 간에 요즈음처럼 경제통합, 문화통합이 추진되고 대만이 하나의 중국원칙을 지키면서 분리, 독립을 추구하지 않는 한 중국에서의 분단극복은 시간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것은 대만인들의 대 중국투자와 대만인들의 본토투자를 홍콩이나 마카오 사람들의 투자처럼 폭넓게 수용한 중국정부의 포용력이 합해져서 오늘날 양 지역 간의 교류는 활발해졌으며 이제는 개혁개방과 시장경제도입으로 G2의 반열에 오른 중국이 대만에 직접 투자를 추진하는 단계로 양자관계가 발전됨으로 해서 중국과 대만 간의 경제통합은 가속화되고 있다.

오는 7월부터는 그간 중국본토인들의 단체입국만 허용하던 대만정부가 이제는 개인 입국까지를 허용하기로 합의 했다. 이번 여행기간 중에 확인했지만 베이징, 샹하이, 샤먼에 주민등록증(中國語로는 戶口)을 가진 사람에 한해 15일간 체류를 허가한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부러워할만한 양안관계이다.

특히 양안 간에 청소년교류가 모색 추진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사태진전이다. 중국과 대만 간에 서로 기술과 자본이 투자되고 교환되는 상황역시 우리를 부럽게 한다. 북한에 사용처 한번 묻지도 않고 김정일 접견비로 십 수억 달러를 현찰로 내어주는 대통령이 있던 한국, 수십 조 원 상당의 무상원조를 제공하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폭침과 폭습을 당하고 있는 한국, 수천 명이 북한을 방문해도 북한주민 한명을 자유로이 못 만나고 지정된 사람과 장소만을 보고 와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의 양안관계는 부럽기만 하다.

모든 것은 중국이 개혁개방, 시장주의(市場主義)도입으로 잘 살게 된 데 그 참된 원인이 있음은 물론이다. 앞으로 남북한 관계도 더 큰 발전을 기약하려면 북한이 현재와 같은 궁핍에서 벗어나 세계경제발전의 진운에 보조를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지금 동북아시아라는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정 확보라는 중국의 국익을 보호할 전략적 고려에서 친북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계속해서 개혁개방을 거부한 가운데 북한주민들의 탈북행렬이 이어지고 세습독재정치 속에서 핵과 미사일노름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 중국의 부담이 된다면 중국의 친북정책도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을 찾는 한국인들의 연인원은 매년 6백만 명을 넘어서며 중국유학생들도 8만 명이상, 근로자들도 십 수만 명에 이르며 교역량도 년 2000억 달러로 북한의 연간 35억 달러와는 비교가 안 된다. 매주 수백 대의 항공기가 중국의 주요도시와 한국을 잇고 있다. 중국인민들의 실생활차원에서는 북한보다는 한국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중국의 외교정책이 앞으로 중국인민들의 실생활 상의 이익실현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면 한중관계의 비중은 북•중 관계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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