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11년 한중문화협회보 제54호2면에 게재된 이영일의 중국교실에 게재되었음)
한중문화협회 총재 이 영 일

국가 간의 관계도 일기(日氣)처럼 흐렸다 개였다 하는 것 같다. 오늘의 한중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1992년 수교이후 한중관계는 가장 빨리, 가장 성과 있게 발전하였다. 한중관계 발전에 대한 중국식 표현에 의하면 단순 수교관계에서 협력적 동반자관계로,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또 이 기간에 경제협력도 괄목하게 성장, 양국 간의 수출입 합계가 2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 숫자는 한미교역총량에 한일 교역총량을 합한 것보다 더 많고 북한과 중국 간의 교역총량 35억 달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다. 한국에는 중국유학생이 8만 명에 이르고 중국의 한국유학생도 6만 여명에 이른다. 매 주 840 여 편의 여객기들이 한중양국의 주요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입 및 투자 순위 1위국이 중국이며 한국은 중국의 3위이다. 이것은 한중양국관계가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킨 결과였다.


수교초기에는 한국대사가 이임(離任)할 경우 중국의 국가주석이 송별연회를 베풀어 주기도 했다.(황병태 대사에게 장쩌민 주석이 연회를 베풀었다) 그러나 지금의 한중관계에서 이런 이야기는 흘러 간 옛 이야기처럼 들린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달라져서가 아니다. 한반도 문제에 임하는 중국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제2차 방문지로 중국을 선택하지 않고 일본을 택한 것은 잘한 것 같지 않다. 미국방문을 마치고 귀로 일본을 방문한다는 것은 한국외교의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중국은 성장한 만큼의 대접을 바라는 대국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유엔 상임 이사국이고 교역량도 일본보다 더 많고 6자회담 의장국이고 휴전회담 서명당사국의 하나인 중국을 일본보다 뒤로 선택한 태도가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결국 한중관계는 MB정권 중반이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천안함 폭침사건에서 중국은 한국 측의 원인발표의 수용을 거부했다. 연평도 포습사건에 대해서도 양비론으로 대응했다. 여기에는 중국 나름대로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자국의 국익 상 한반도의 안정을 원하는데 만일 천안함 폭침사건에서 한국 측 발표를 받아들일 경우 한미 연합방위 세력의 대북 보복을 허용해야하는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군함에 대한 공격은 유엔이 인정한 자위권행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연평도에 대한 포습(砲襲)은 명백한 국제법위반행위이다. 그러나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확전방지라는 명목을 내세워 북한을 문책하는 대신 남북한의 양비론으로 대응하면서 6자회담 당사국 회의를 열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국외교의 편의주의를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미국과 중국 간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제2차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 9.19 성명을 아직도 유효한 성명인 것처럼 양국 간의 공동성명에서 세 번이나 거론했다.


특히 최근 베이징에 들른 사람들이 흔히 듣는 이야기 가운데는 북 핵 불가피론이다. 북 핵을 불가피하게 보는 논거로 ① 만일 이라크가 북한처럼 핵무장을 했다면 미국이 침략을 자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자위수단으로 보유한 것은 이해할만하다. ②중국으로서는 인도나 파키스탄이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에 인접한 북한이 핵무장을 한다고 해서 특히 문제될 것은 없다. ③북 핵은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견해는 단순히 몇몇 학자들만의 견해가 아니라 중국을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공통적 견해처럼 들렸다. 중국은 북 핵을 이렇게 보면서도 왜 6자회담을 조속히 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현시점에서 북 핵은 이제 북한정권의 자위수단임과 동시에 중국의 동북아 외교에서 주요한 외교카드로 성격이 전환된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로 우려스럽다. 여기에 곁들여 중국인들은 MB정부가 앞선 정부들보다 북한에 대해 덜 부드러운 정책을 취하는 것이 한반도 긴장의 원인이라고 불문곡직 단정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견해의 부당성을 중국의 어느 분을 만나더라도 서슴없이 지적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한반도 긴장의 실질적 원인이며 한국의 대북지원이 인민에 대한 지원 아닌 선군정치 지원으로 전용(轉用)되고 있다는 사실이 남북협력의 현실적 장애임을 설명하고 중국이 남북대화와 협력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한국의 대북지원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해주는데 중국의 당이나 적십자단체가 앞장서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중국지식인들은 나의 설명에 공감하면서도 내심으로는 한반도상황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상황평가와 방침 쪽으로 태도가 기울어 있음을 절감했다. 이제 G2로 변한 중국은 한중수교당시의 중국은 이미 아니다. 우리가 변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 변했다. 현재 한중간의 정치외교관계는 경제관계나 사회문화관계가 도달한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와 통일을 달성하려면 한중간의 정치외교관계를 경제나 사회 문화수준만큼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고 요구된다. 정치외교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 한미관계를 손상시키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중미관계는 여러 면에서 충돌과 갈등이 섞여있지만 중국의 외교목표는 결코 반미동맹의 형성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목표를 중국이 설정할 경우 그 노선에 따를 국가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왕지스(王緝思) 베이징대 국제관계 학원 원장의 말은 옳다.(Foreign Affairs Mar/Apr.2011에 게재된 왕지스 논문 참조)


지금처럼 정치외교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필요한 것은 한중양국의 국민들 간에 서로를 존중하고 긍정케 하는 담론(談論)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민간외교를 통해 정치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터놓고 대화함으로써 서로 간에 이해(理解)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최근 김구재단(金九財團)이 베이징 대학 국제관계학원에 설립한 “김구포럼”은 좋은 이니셔티브다. 나는 이 포럼의 제1차 회의 시 한국 측 연사로 참여, 발제를 맡아 왕지스 교수와 토론한 바 있다. 최근 한중문화협회는 총칭(重慶)지회를 통하여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시(龜尾市)와 등소평(鄧小平) 중국지도자의 고향인 사천성(四川省) 광안시(廣安市) 간에 자매결연을 성사시켰다.


앞으로 자매결연을 기념하는 학술행사와 사진전을 추진할 방침이다. 한국에서 등소평의 개혁사상의 성과를 논하는 학술회의가 열리고 사진전이 개막된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가발전관을 논하는 학술행사와 사진전이 중국에서 열린다면 양국 간의 긍정적 담론형성의 전기가 될 것이다.


외교는 정부에서 시행하는 외교관시험 합격자들의 전유물이라는 발상을 이제 지양해야 한다. 한중양국 간에 이룩된 경제 사회 문화적 발전수준과 정치 외교적 발전수준간의 간극을 메우는데 민간외교를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적 외교적 전망이 어려울 때는 민간외교를 통한 해빙이 유용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접근에서는 흔히 활용되지만 우리 외교는 이 분야가 상상외로 취약한 것 같다. 우리 한국의 안보와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사려 깊은 연구와 체계적인 접근 정책의 개발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고 여기에 민간외교의 중요성이 가미된다면 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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