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당은 민주정당인가 아니면 혁명적 계급정당인가.
우석대학교 초빙 교수 이영일
한국정치는 지금 국민적 혐오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 정치만 제대로 굴러간다면 세계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을 만큼 모든 부면에서 미래가 밝은 나라인데 정치 때문에 나라의 앞날이 갈수록 어두워만 가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정치가 이렇게 저질로 타락한 데는 건국이후 민주화과정의 잘못된 유산이 아직까지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정치는 한국사회의 내적 성장의 결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해방과 더불어 민주정치를 실천할만한 아무런 준비가 없는데도 민주헌법이 만들어지고 이 헌법에 의거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공화정치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민주화를 향한 진통과 갈등은 당초부터 그 불가피성이 예견되었다.
주권은 헌법상으로는 국민에게 있었으나 실제로는 대통령에게 있었다. 대통령을 보필하는 관료가 주권을 행사했다. 여당은 대통령의 시녀로 전락했고 야당은 여당과 타협하거나 협력하지 않는 강경투쟁을 정의로운 것으로 생각했다.
4.19혁명으로 주권은 다시 대통령과 그의 하수인이었던 공무원으로부터 국민에게로 돌아왔다. 그러나 곧이어 발생한 5.16군사혁명으로 주권은 다시 혁명적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군부로 넘어갔다.
박정희 대통령 사후 다시금 민주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신군부가 정국을 주도하는 사태가 발생함으로 해서 주권행사의 주체는 또다시 군부실권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결국 한국의 민주정치는 5.18민주화운동과 6.8항쟁 등의 민주투쟁 끝에 1987년의 6.29선언을 끌어냄으로써 새롭게 개화했다.
이제 한국정치에서는 더 이상 비헌법적 또는 헌법외적 방법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시대는 끝장났으며 오직 합헌절차에 따라 국민의 자유선거로 정권이 형성되고 교체되는 제도가 확립되었다.
권위주의 시대의 특징이었던 야당탄압이나 언론통제는 사라졌고 정치자금이 의석수에 비례해서 각 정당에 고르게 분배되는 시대의 문이 열렸다. 이제 한국 민주정치는 민주화를 향한 변화의 시대가 아니라 민주화 선상(線上)에서 민주주의의 수준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정치발전의 시대에 진입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정치의 현실은 어떠한가. 권위주의 정권과 싸우던 강경투쟁의 낡은 전통에서 조금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강경도 보통 강경이 아닌 이른바 선명성을 내세운 극단적 강경, 초강경의 낡은 유산에 메어있다.
한국의 민주정치는 Bernard Creek가 정의한 것과는 달리 각 정당들이 정치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자기 몫을 분배받는 과정을 의미하지 못했다.
오늘의 한국정치에서는 아직도 전부(全部)냐 전무(全無)냐를 놓고 초강경투쟁을 벌여야 만이 야당이 사는 길이라고 맹신하는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국회의사당의 출입문을 해머로 때려 부수고 점거농성을 벌이고 의사당 출입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이는데서 야당은 존재이유를 찾고 있다.
이 투쟁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야당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추겼다. 야당 지도자로서 김대중 씨는 아무 쟁점이 없는 법안이라도 대화와 타협으로 통과시키는 것보다는 무슨 난관을 조성해서라도 여당으로 하여금 순리 아닌 방법으로 법안을 처리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유발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선명야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김대중 씨가 한평생 걸어왔던 투쟁의 역사였다.
권위주의통치와 맞서야 할 때는 이러한 투쟁방법도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권위주의를 넘어선 민주발전의 시대다. 독재자도 없고 야당을 속박하거나 얽매는 장치도 없다. 국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선거로 정권을 성립시키고 교체하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시대다.
또한 현시점은 여야의 차이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국가적 도전이 우리 앞에 나서고 있다. 우리를 엄습해온 지구적 규모의 경제난국, 북한이 매일 같이 조성하는 고강도 심리전 수준의 도전 상황은 어느 것 하나 초당적 대처가 필요치 않은 것이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야가 도전극복을 위해 지혜를 짜는 대신 정치권 전체를 갈등과 대립의 와중으로 몰고 간다면 이처럼 심각한 위기는 없을 것이다. 한국 민주정치발전의 어느 시기에 선명강경투쟁을 통해 야당이 얻었던 지지의 비축(reserve of support)은 이미 고갈된 지 오래다.
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10%대로 추락하고 있다. 국민들은 강경투쟁보다는 합리적 대안으로 토론과 타협을 통해 내외도전극복에 필요한 입법, 경제를 회생시킬 입법, 일자리창출에 기여할 입법, 국가안보를 강화할 입법을 바라고 있다.
야당은 마땅히 국민의 여망에 부응해야 그 존립의 의의가 빛난다. 강경투쟁으로 국회를 파탄시키는 야당은 체제내의 야당이 아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표결로서 국민의사를 관철시키는 것이 민주정치의 상궤이다. 야당이 이 길에서 벗어난다면 더 이상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정치의 야당은 아니다. 그것은 혁명정당이거나 계급정당일 뿐이다. 한국야당은 김대중 주의의 정치유산을 청산할 때 비로소 체제 안에, 역사 안에 있어야 할 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다. 여기에 한국 민주주의의 참된 승리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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