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해외개입축소균형전략의 의미를 살핀다.
이 영 일 전 국회의원
미국 시카고 대학의 존 미어세이머(John Mearsheimer)교수는 미국의 외교평론지인 Foreign Affairs지에 Harvard Kennedy School의 스테펀 월터(Stephen M. Walter)교수와 공동으로 집필한 논문(The Case for Offshore Balancing(July/Aug2016, Foreign Affairs))에서 미국의 새로운 대전략(Superior U.S. Grand Strategy)으로서 ‘해외개입축소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을 제안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국제정치학에서 현실주의학파(Realist School)에 속하는 석학들인데 그간 미국의 대외정책입안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학자들인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번 미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후보와 공화당의 도날드 트럼프(Donald Trump)후보가 미국 대외정책을 해외관여보다는 국내문제에 중점을 두자고 주장하고 있고 2016년에 4월에 실시한 미국 내 여론조사(Pew Poll)에서도 응답자의 57%가 다른 나라들의 문제보다는 미국의 국내문제해결에 치중해야 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미국의 대외정책이 차기행정부에서 크게 바뀔 조짐을 보이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학자들의 대외정책변경에 관한 견해에 관심을 갖지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미어세이머 교수와 월터 교수의 정책제안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고 제안된 정책관점 중 우리 한국이 유의해야 할 대목을 간추려 소개하면서 필자의 소견을 말하고자 한다.
1.
지난 25년 동안 미국의 대외전략은 흔히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추구로 불리는 전략(Grand Strategy)에 입각, 전개되어왔다. 물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강조하는 구호나 슬로간, 정책의 중점이 바뀌었지만 그 기저는 자유주의 패권이론에 입각, 미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 유일 최고의 패권(Hegemony)을 누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최근에 들어와서 자유주의 패권전략을 싫어하게 된 것은 지난 25년간 되풀이 된 정책실패 때문이다.
이 전략은 아시아에서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했고 중국이 인접해역에서 현상유지(Status Quo)에 도전하게 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를 합병하면서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악화되었다. 중동을 보면 미국은 지금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싸우고 있지만 승리의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이라크와 리비아에서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끝내고 시리아에서도 정권교체를 추진했지만 내전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이런 와중에서 이슬람주의운동은 대부분의 지도자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랍세계로 파급(Metastasis)되면서 이슬람국가(ISIS)를 출현시켰다.
미국이 주선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협상은 실패, 두개 국가방식으로의 해결이 어렵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약화되고 있으며 미국이 자행한 고문이나 기획 살인 등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로 말미암아 인권과 국제법의 옹호자로서의 미국의 이미지는 심각히 퇴색되었다.
미국이 이러한 실패를 거듭하게 된 것은 자유주의 패권추구라는 오도된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미국이 주요지역(Key Area)에서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요구에 부응하는 대신에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인권이 위협받는 곳이면 어디에서라도 미국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이 세계경찰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국제법(International Institutions), 대의정부, 시장개방, 인권에 기초한 세계질서를 수호하는데 미국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축복받은 나라였다. 한때 주미프랑스대사였던 장질 쥐세랑(Jean-Jules Jusseand)은 “미국은 북으로는 약한 이웃, 남으로는 더 약한 이웃, 동서양쪽으로는 물고기만 있는 대양을 끼고 있는”국가로서 자원은 풍족하고 역동적인 인구를 배경으로 세계최대의 경제대국, 수천 개의 핵탄두를 가진 대국이기 때문에 미국본토가 외부로부터 위협받을 가능성이 없는 국가라고 말했다. 이런 천혜(天惠)의 환경 때문에 미국인들은 세계를 자기들의 이미지에 맞게 재형성시키려는 저돌성을 벌였다.
미국은 이러한 돌출적 충동에 기초한 군사개입확대정책을 구사하지 않고도 미국의 힘과 안정을 유지하고 지구 최강자로 남을 전략을 만들 수 있다. 지금 양 교수가 제안하고 있는 해외개입축소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이 바로 그 대안이다.
2.
해외개입축소균형전략(이하에서 균형전략으로 약칭함)은 미국이 다른 사회를 미국의 가치에 맞게 재구성하려거나 세계경찰이 되겠다는 야심적인 생각을 접고 우선 서반구(Western hemisphere)에서 미국의 지배적인 지위(Dominance)를 유지하면서 유럽과 동북아시아, 페르샤 만(灣)에서 잠재적인 패자(Potential Hegemon)가 등장하는 것을 막는데 힘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 해외로 군사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고 새롭게 부상하는 세력에 대한 견제는 가능한 한 현지에서 도전받는 세력이 감당토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국가로서의 미국의 지위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고 미국본토만을 지키자는 것도 아니다. 이 전략은 미국을 가능한 한 힘 있는 국가, 이상적으로 말하면 서반구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지배력을 갖는 국가로 유지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고립주의(Isolationism)와 다른 점은 서반구이외에도 미국인의 피와 물자를 제공해야 할 지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바로 유럽, 동북아시아, 페르샤 만 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유럽과 동북아시아지역에서는 미국이 서반구에서 누리는 것 과같이 이 지역을 지배할 지역패권국가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경제적인 영향력도 충분하고 정교한 무기를 개발할 능력, 자기 힘을 지구상에 투사할 잠재력도 갖추면서 미국과의 무기경쟁에 더 많은 자산을 투자할 능력을 가질 국가의 출현에 관심을 갖는다.
지금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표적인데 러시아는 이제 유럽에서 패자가 될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나토세력이 러시아를 견제할 만큼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페르샤 만에서도 이란이나 이라크가 지역패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이라크의 정권교체와 이란 핵협상 타결은 미국에 도전할 지역패권국가의 출현가능성을 줄였다. 따라서 미국은 이러한 지역에서 군사개입을 줄여 나가고 지역 국가 상호간에 균형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시아의 상황은 다르다. 미국은 중국의 인상적인 성장과 굴기가 미국의 지도력에 도전할 잠재적 패권추구의 환경을 조성하였으며 특히 이 지역에는 중국을 견제할 다른 강자가 없다. 물론 미국의 동맹국들이 있지만 서로 떨어져 있어 유효한 중국견제가 어렵다. 이러한 지역에는 미국이 직접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미국의 힘을 유지함으로써 중국의 패권추구를 막는 것이 균형전략이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은 미국이 지난날 해외군사개입에 끼어들지 않고 경제건설에 매진, 강대국 반열에 오른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제발전에 주력하여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미국은 중국이 이 지역에서 패자(覇者)로 등장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이 점은 미어세이머 교수의 평소의 지론과 일치한다)
3.
균형전략은 미국의 해외군사개입을 줄임으로써 현지국가들이 자국의 안전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냉전 이후 미국의 보호에 무임승차만 하는 동맹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NATO의 경우 군사비용의 76%를 미국이 부담해 왔는데 이는 배리 포슨(Barry Posen)교수가 “부자를 위한 복지지출”과 같다고 비꼴만했다.
또 균형전략은 테러위험을 줄이기도 한다. 자유주의 패권정책은 토양이 맞지 않는 곳에 민주주의를 심는다면서 군사적으로 점령하거나 현지 정치상황에 개입하였는데 이러한 행동은 민족적 분노를 유발한다. 저항세력들은 미국과 직접대결하기에는 너무 힘이 약하기 때문에 테러에 호소한다. 특히 미국은 정권교체를 통해 미국의 가치 확산을 추구함으로 해서 기존통치제도의 역할은 약화되고 폭력적인 극단주의자들이 판칠 통치부재 공간 을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 미국은 중요한 이해가 걸린 지역이 잠재적인 패권국가에 위협받는 경우에 한하여 해외에 미군을 주둔시켜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반미가 일어나지 않고 미군을 구세주로 여긴다. 그러나 위기가 해소되면 미군은 곧장 철수하고 현지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자유주의 패권논자들은 미국이 핵 비확산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해외개입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역할이 줄어들거나 주요지역에서 철수한다면 미국보호에 익숙한 국가들은 스스로 핵을 개발하여 자신을 보호할 길을 택할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이점에서 아직까지 핵무기의 확산을 완전하게 막을 수 있는 전략은 없는 셈이다. 모든 국가들은 공격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핵을 가지려고 하는데 미국이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추구하면 할수록 이러한 두려움은 더 커진다.
그러나 해외개입축소균형전략에 입각하여 미국이 군사개입을 줄이고 정권교체를 추진하지 않는다면 핵 확산논자들의 명분도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를 꼭 갖겠다고 결의한 국가들의 핵무장을 막아내기 힘들 것이다. 최근 이란 핵협상의 성공은 예방전쟁이나 정권교체보다는 잘 조절된 다자압력과 엄격한 경제제재가 더 좋은 방도임을 알게 해주었다. 만일 미국이 안보 공약을 축소한다면 취약한 국가들 가운데는 핵 억지력을 추구할지 모른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핵을 완전히 막는다는 것은 비용도 많이 들고 성공하지도 못할 것이다.
1945년 이래 10개국이 핵 문턱을 넘었지만 그렇다고 지구질서가 와해되지도 않았고 핵을 가졌다고 해서 약소국가가 강대국으로 변형된 일도 없으며 경쟁 국가를 공갈로 굴복시키지도 못했다. 핵 확산문제는 아직도 미국이 우려해야할 사항이지만 이 문제의 해법도 해외개입축소균형전략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4.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재균형전략에 따라 중국견제를 강화하는 미국을 상대로 평화적인 세력전이(勢力轉移)론을 내세우면서 우선 미국이 중국을 미국과 대등한 강국으로 대우하는데 합의, 양국관계를 신형대국관계로 발전시키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을 미국과 동일한 대국반열에 올리자는 주장에 난색을 표시하고 앞으로 세월이 흘러 결과적으로 대등해질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대등하다는 모자를 씌울 수는 없다고 말하고 상호간의 협력을 통하여 양자관계를 능력에 상응하게 전개시키자고 대응한다. 중국은 미국과 역량이 대등해지는 것이 목표일수는 있어도 21세기 안에 그렇게 되기는 힘들다고 미국 전문가(Joseph Nye 등)들은 말한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미국의 새 행정부를 누가 맡게 되더라도 해외개입축소전략을 추구하겠지만 중국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패자로 부상하는 것을 막겠다는 미국의 목표는 변할 것 같지 않다. 이점에서 한미동맹을 안보의 기본 축으로 삼으면서 중국과의 협력동반자관계를 유지하는 한국정부의 방침은 타당하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서가 아니라 해결해야할 협상의 과제로 정의하면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지혜도 우리에게는 필요한 방향이 아닐까. 함께 모색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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