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동북아시아공동체연구재단이 2016년 6월 16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남북대화 어디로”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이영일의 기조연설전문이다 

이제 자주 외교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이 영 일 

 1. 들어가면서 

 2016년 1월 6일 북한의 제4차 핵 실험과 뒤이은 탄도미사일 발사가 있은 직후 미국과 중국은 북·핵 처리를 논의했다. 2월 24일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중국의 왕이(王毅)외교부장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결의 내용을 협의한 후 양국은 북한에 대해 강도 높은 제재를 결의하되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수단인 만큼 한반도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협상도 병행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평화협정은 있을 수 없지만 제재에 병행하는 비핵화협상의 필요성을 인정, 제재와 협상의 병행이라는 접근방식에 합의했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대북 협상이 열릴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북한의 김정은은 7차당대회에서 당 규약을 일부러 개정, 핵·경제병진노선을 명문으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에 이를 폐기, 변경시킬 협상에는 쉽사리 응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을 협상으로 끌어낼 미끼는 북한이 오래 동안 주장해온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에로의 전환일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 북한만이 휴전협정(Cease-fire)의 서명주체로서 양자 간의 평화협정을 통해서 한국전쟁을 법적으로 종결하고 주한미군이 철수해야하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이 문제를 주제로 열리는 미·북양자회담이라면 북한도 응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서 검토해야할 또 다른 과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상태를 법률적으로 종결시키려면 현재의 휴전협정이 “정치적 수준의 새로운 협정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 계속 유효하다”고 규정한 휴전협정 5조 61항의 처리문제다. 

종전에 관한 국제법의 최근 흐름은 한반도의 경우 비핵화실현을 바탕으로 남북한 간에 전쟁상태가 종결되었음을 확인하는 유엔안보리의 결의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하 한반도 평화문제에 임하는 미중양국의 태도를 차례로 살펴보자. 

 2. 강대국들의 평화에 대한 태도검토 

 한반도가 포함된 동북아시아지역에는 1975년에 유럽에서 성립한 헬싱키 체제-구주안보협력회의(CSCE)와 같은 역내평화를 담보할 국제기구가 없다. 최근 카자크스탄 대통령이 제안하고 중국이 중심이 된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는 아시아 집단안보를 표방하고 있다. 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주석은 지난 5월 21일 상해의 CICA총회에서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 국가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아시아 집단안보론도 제기했다.
그러나 이 기구에는 한국은 가입했지만 북한은 회원이 아니고 동아시아 평화와 안보에 절대적 영향력을 갖는 미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어 아시아 집단안보기구로 볼 수 없다. 현재 동북아시아는 국제정치 환경이 집단안보기구를 형성하기에는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고 특히 미국과 중국의 이해충돌이 심각하기 때문에 집단안보기구논의는 현시점에서는 수사(修辭)적 수준을 넘어서기 힘든 실정이다. 그런데도 한반도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거나 평화체제를 안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과 중국 간에 북·핵 처리의 한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하 미중양국의 입장을 검토하기로 한다. 

가. 그간의 평화협정논의 회고 

1970년대부터 북한은 현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것을 미국에 요구해왔다. 북한은 휴전협정의 서명당사자가 미국과 북한이기 때문에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 이 협정으로 휴전협정을 대체해야 하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상태를 법률적으로 종결시키면서 주한미군도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한국을 배제한 평화협정주장은 다분히 선전적 주장이기 때문에 미국이 북측 제안을 수용할리 없었다. 
그러나 한국도 휴전체제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1996년 한미양국은 남북한과 미·중이 참가하는 4자회담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서명국인 중국을 회담 당사자로 포함시킨 점에서 진일보했다. 중국과 북한이 이를 수용, 1997년 12월 제네바에서 제1차 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회담에서 한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나 양국 간의 신뢰관계 조성을 위한 조치 등 지금까지의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을 요구한데 반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으로 내세웠다. 1999년 6차까지 진행된 4자회담에서 북한은 미군철수, 한·미 대규모 전쟁연습 중지, 한반도로의 전쟁장비 반입 금지를 주장했다. 중국은 자국의 입장을 '조선반도 평화협정 초안'을 만들어왔는데 내용인즉 전쟁상태의 종식 선언, 불가침·내정불간섭,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조치 등 일반적인 평화협정에 포함되는 사항들을 담았다. 
한국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한이 주당사자가 되고 미·중은 증인 자격으로 서명하는 '남북평화합의서'와 미·중이 합의서의 효력을 보장하는 내용의 '추가의정서'를 채택할 것을 주장했다.

 나. 중국이 말하는 표본겸치(表本兼治)와 평화체제 

중국은 시진핑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2013년 1월 외교담당 국무위원인 양제츠를 내세워 한반도문제의 표본겸치론을 들고 나왔다. 북핵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증상치료뿐만 아니라 원인까지를 함께 다스리자는 것이다. 북한이 안심하고 핵을 포기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식을 한반도 비핵화과정에서 함께 다루자는 것이다. 지금 중단된 6자회담의 9.19합의는 이러한 요구를 십분 반영했지만 북한이 핵 포기를 거부함으로써 수포로 돌아갔다. 현시점에서 중국은 한반도가 포함된 동북아시아 평화체제의 일환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모색하자고 말하지만 중국의 내심이 담긴 평화체제개념은 나오지 않았다.

또 중국은 북한의 핵 포기라는 표현대신에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한다. 중국이 의미하는 한반도비핵화는 북한의 핵 포기뿐만 아니라 필요시 핵사용 능력을 가진 주한미군의 철수까지를 포함한 개념임을 암시한다. 그간 중국은 소련과의 갈등이나 일본의 재무장 가능성 차단이라는 중국안보목적에 필요할 경우에는 미군의 한국주둔을 역사적 사실로 긍정해왔지만 미중갈등의 최근 양상에서 보면 내심으로는 주한미군철수까지를 협상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상정한다.

최근 THAAD배치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서 이러한 의도를 규지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이 구상하는 평화체제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암묵적 조건으로 하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남북한이 통일수단으로서 무력불사용을 문서로서 합의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 합의의 효력을 보증하는 형식의 한반도 평화체제이다. 결국 중국의 목표는 자국과의 관계에서 한반도 전체의 완충지대화(Buffer Zone)일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이 주변 국가들을 상대로 친성혜용(親誠惠容)의 외교원칙을 내세우면서 펼치는 담론인 운명공동체론도 바로 이러한 의도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다. 아시아 재 균형론과 미국의 평화체제구상 

미국도 한반도의 휴전협정이 국제법이 생긴 이래 가장 오래된 휴전협정이란 점에서 변화된 환경에 맞게 새롭게 정의될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미국은 2003년부터 시작되었던 6자회담의 실패 이래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전제되지 않는 한 어떠한 협상도 무익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유엔의 안보리제재나 미국의 독자제재도 그것이 비핵화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북핵문제의 비군사적, 외교적 해결을 위해 중국의 주선으로 북한이 협상에 응해온다면 미국도 북한과의 대화에 응할 뜻을 밝히고 있다. 현재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한 어떠한 회담에도 응할 수 없다고 하지만 국제제재를 돌파하고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모든 협상을 거부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미국이 유엔제재를 통한 한반도의 비핵화유도상황의 진전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추구하는 아시아재균형전략의 일환으로 중국견제로 보이는 외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인공섬에 대한 영토권을 인정하지 않고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 베트남에 대한 무기 수출을 허용했으며 일본의 히로시마를 방문, 미일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한반도에 THAAD미사일 배치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가 유엔의 대북제재조치에 참여하고 있는 중국을 자극함으로써 대북제재에 대한 미중양국의 제재전선의 균열을 가져올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 핵문제를 미중관계의 맥락에서 활용하는 중국은 현시점에서 북한을 약화시킬 제재이익(制裁利益)과 자국의 국익을 면밀히 검토한다. 결론은 중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제재방식만을 따라간다면 북한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만 줄어들고 미국의 대중국견제망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우려다. 이러한 우려는 지난 6월 1일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의 친서를 휴대한 이수용 북한외상의 면담성사로 외교현실이 되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 포기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국익으로 추진되는 아시아 재 균형전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미국과 중국이 현시점에서 논의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는 엄격히 말해서 미중 양자관계에서 필요한 수준의 한반도 평화논의이다. 군사충돌이나 소요나 갈등이 줄어드는 현상유지(Status Quo),즉 미중양국의 안보정책에 종속시키는 평화다. 따라서 미중양국이 말하는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는 그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시킴과 동시에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도 포기케 하는 타협안으로서의 평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북한의 핵 포기라도 가시적 성과를 낸다면 다행일 것이다. 우리가 강대국들이 말하는 평화에 대해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3. 한국의 선택 

 가. 우리가 맞을 어려운 상황 

 한국은 현재로서는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여 대북제재를 통한 북한의 핵 포기유도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유엔안보리의 강도 높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대북제재전선에 균열이 생기고 또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협상이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핵의 현상동결이나 비확산으로 미중 간에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입장을 어렵게 한다. 정답은 한국이 주도하는 자주적 해결이지만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자주를 내세우면 미국과의 협력이 어려워질 수 있고 미국에만 일방적으로 끌려가면 한중관계를 어렵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강대국들과의 협력은 긴밀히 추구하면서도 모든 것을 강대국에만 맡기거나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자주적으로 대비해야 할 전략을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 출구전략과 Plan B를 준비하는 지혜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검토할 수 있는 출구전략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문제다. 인도적 지원의 중단은 북한의 지배층보다는 북한에서 변화를 주도할 장마당 세력과 주민들을 더 곤궁하게 만들고 이산가족들의 재회의 꿈을 차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문제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 핵개발에 필요한 물자나 자금이 북으로 들어가는 것은 철저히 차단해야겠지만 북한주민을 위한 식량이나 의료지원, 이산가족 상봉추진 같은 인도적 차원의 문제는 민간기구나 단체를 활용, 지원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나. 자주적 결단과 준비의 필요성 

다음으로 Plan B를 준비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비핵화가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해서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의 길을 강구하자는 것이다. 직접적인 핵무장이라기보다는 핵물질과 기술의 확보라는 핵무장 준비태세(Nuclear Hedge)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시화될 때 비로소 중국은 북한의 핵 포기를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다. 한국의 핵무장이 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져서 동북아시아가 중일(中日)양국 간의 핵 대결체제로 바뀌는 것을 중국이 가장 꺼리기 때문이다. 요즈음 중국학자들 가운데는 한국은 미국의 압력 때문에 핵무장을 엄두도 못 낼 것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둘째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남북한과 미중양국이 참가하는 ‘신 4자회담’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공동으로 반대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 한국이 ‘신 4자회담’을 제의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대화수요도 수렴하는 한편 대화주도권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담이 한국의 이니셔티브로 열려야 한국의 발언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중국학자들 가운데는 일본과 러시아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에 꼭 참여시킬 필요가 있는가에 회의를 표시한다. 남북한과 미·중만이 당사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한 관계의 전개형태로서의 대화, 교류, 협력, 제재 중 “제재”가 진행 중 임을 감안, 제재의 실효성 확보에 비중을 실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Plan B는 당분간 공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필수적으로 준비하고 구체화시켜야 한다. 현재 어떤 주변강대국도 우리의 분단을 아파하고 통일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자세로도 통일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이제 우리의 통일은 기다리는 통일이나 주어지는 통일이 아니라 쟁취하는 통일이어야 한다. Plan B의 집중적 개발과 준비가 절실히 요망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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