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해산은 통일준비의 거보를 내딛은 것이다.

 

이 영 일 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1. 헌법재판소가 통일진보당에 대한 정부의 해산청구를 헌법재판관중 9인중 8인의 찬성으로 받아들였다. 1인의 반대가 있었으나 그것도 통진당의 존속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정당의 해산방법으로 법원의 판결보다는 유권자의 투표에 의한 청산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사표현이었기 때문에 통진당 해산은 헌법재판관들의 일치된 판단으로 보아도 틀림없다.

 

이번 헌재(憲裁)의 통진당 해산판결은 헌재가 그간 다루어온 수많은 헌법불합치판단이나 법률의 위헌판결과는 그 의의가 사뭇 다르다. 대한민국헌법질서-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정치세력의 존재를 거부함으로써 한국 통일을 위한 국론통일의 확실한 기준을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간 4.19혁명 이래 줄기차게 진행되어온 민주화의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민주화의 정치공간을 뚫고 들어오는 친북 적색분자들의 거점 확보 공작을 좌시하거나 덜 주목했다. 때로는 친북세력들의 공작활동에 대한 규제를 용공조작에 의한 민주화의 억압으로 간주하는 정치선동에 동조하기도 했다.

특히 좌익세력들의 준동을 민주화의 일환으로 눈감아주는 김대중, 노무현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는 친북좌익세력들이 부지불식간에 존립거점을 확대해 나가면서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생긴 정치적 영향력을 무기로 급기야는 야권통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반보수(反保守)통일전선의 고리에 전통야당을 끌어넣고 이를 기반으로 통일진보당은 국회에 의석까지 확보, 원내교두보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통일진보당의 원내의석확보는 북한 노동당이 1948년 국회프락치 사건 실패 후 반세기를 넘는 오랜 노력 끝에 혁명투입공작을 통해 얻은 나름대로의 값진 성과였을 것이다.

 

 

2. 우리는 1970년 조선노동당 제5차당대회가 대내적으로는 4대군사노선(전인민의 무장화(武裝化), 전 군의 간부화, 진 지역의 요새화, 군장비의 현대화)의 완성을 호언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인민민주의 혁명을 통한 남조선 해방을 공약했던 역사를 어느 순간 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남한에서의 인민민주의 혁명을 성취하기 위한 혁명투입공작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김대중 정권 성립과 동시에 대한민국 교육계에 조직거점을 마련, 이를 합법화하는데 성공했고 노동계 내부에 투입된 혁명역량의 조직공작에도 성공, 합법적 고지를 점령했다. 이어 노무현정부의 등장과 때를 같이하여 문화, 종교계에 까지 인민민주주의 혁명에 동조할 세력을 침투, 확보하였다.

 

그러나 교육계, 문화계, 종교계, 노동계에 투입된 조직역량은 반정부 통일전선의 우군(友軍)이나 동맹군은 될 수 있어도 한국사회전체를 인민민주의 혁명으로 몰아갈 통일전선의 정치적 지도부는 될 수 없었다. 통일진보당의 출현과 원내의석확보는 바로 이러한 정치투쟁의 일선지도부의 확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과의 통합정치협상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통진당의 원내교두보 확보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민주당(당시 당대표 한명숙)내에 존재하는 동조세력 내지 연대세력의 후원으로 야권통합에 성공, 통진당은 원내진출의 길을 뚫었다. 이들은 나름대로 혁명정세의 성숙을 기다리면서 내외정세변동기를 틈타 혁명투쟁의 봉화를 들어 올리려다가 이석기 일당의 일망타진으로 퇴조기를 맞았고 이번 헌재의 해산판결로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위한 정치투쟁의 남한 내 정치거점은 일단 붕괴되었다.

 

 

3. 박근혜 대통령은 작금의 정세를 통일의 준비기로 보고 통일이야말로 민족웅비의 대박이 트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통일 준비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통일준비의 대전제는 ‘어떤 통일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 즉 통일에 대한 국론의 통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통진당처럼 친북통일을 내밀히 추진하는 혁명정당이 민주헌법이라는 보호막을 쓰고 원내정당이라는 특권을 누리면서 대한민국의 강점을 약화시키고 약점을 극대화하는 선전 선동을 펼쳐나간다면 조국통일을 위한 국론의 통일은 기할 수 없다.

또 통진당 의원들의 비호 하에 그들의 동맹세력인 교육계, 종교계, 문화계, 언론계가 국론분열의 추동체가 된다면 그 속에서도 국론통일을 기하기 힘들어진다. 특히 통합진보당은 현 정부를 독재정권이라고 격렬히 비난하면서도 유엔총회를 비롯하여 전 세계가 규탄하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또 북한이 공화(共和)정체가 아닌 3대에 걸친 세습정권으로 변해도 여기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비판도 없었다.

또 전 세계 진보운동의 핵심가치인 반전반핵평화(反戰反核平和)를 외면하고 핵과 미사일 전력을 강화, 무력통일을 획책하는 북한에 대한 비판은커녕 오히려 북 핵과 미사일개발의 타당성을 내심으로 옹호했다. 여기에 곁들여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라거나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라고 폄하해왔다.

 

어찌 이뿐인가. 유엔감시 하에 실시된 자유총선거를 통해 탄생한 정부의 정통성은 부정하고 스탈린의 지령에 의하여 소련 군정사령관이 수립한 정권과 그가 지명한 사람이 정권을 잡은 북한을 마치 합법정부인양 왜곡하는 사람들이 누구였던가. 이러한 세력 들을 방치해두고서는 통일을 위한 국론통일을 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통진당의 영향권 하에서 국공립학교 교사들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주입하는 행위를 방치해도 통일을 위한 국론통일은 어려워진다. 특히 문화, 예술, 언론분야에서도 북한이 투입시킨 혁명가들이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라는 가면을 쓰고 국론분열활동을 계속하는 한 국론통일을 기할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번에 사법기관으로서의 헌재가 내린 통진당 해산결정이 정치차원에서의 국론통일 저해요인을 삼제(芟除)하는 것이라면 문화, 종교, 언론, 교육, 노동계에 뿌리내린 친북동조세력을 거세하는 일은 앞으로 정부와 국민들에게 맡겨진 몫이다.

 

헌재의 이번 판결은 정부와 국민들이 친북세력거세를 위한 투쟁의 훌륭한 지침이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의 자유를 최대로 보장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이용해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에게는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독일은 나치나 공산전체주의를 조금치라도 찬양, 고무, 동조하는 행위가 발생하면 이를 즉시 가장 단호하게 처벌했다. 이른바 방어적(防禦的) 민주주의를 철저히 실천한 것이다. 이로써 오늘날 독일은 통일을 달성했다.

 

 

4. 우리는 앞으로 통진당 해산을 계기로 세 가지 과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하나는 통일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통일준비에는 민간과 정부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만의 통일준비가 아니라 민간자율의 통일준비운동도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 앞에 나서는 가장 긴급한 통일준비의 과제는 통일에 대한 국론의 통일이다. 주변정세변화에 대한 국민적 합의형성, 통일역량에 대한 점검과 조정, 통일전망에 대한 가치관의 공유가 필요하다. 정부의 통일준비 위원회에서는 통일 미래상을 준비한다고 한다. 국론통일의 준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기대해볼만하다. 그러나 사회 각 분야에 투입된 북한의 공작거점을 색출하고 제압하는 데는 국민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를 고무하는 노력도 아울러 강화되어야 한다.

 

둘째로는 탈북민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제고되어야 한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뛰쳐나온 탈북동포들이 너나없이 한국사회에 정착, 성공하도록 지원하여 탈북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실감토록 해야 한다. 이 일은 정부와 국민이 합심하여 감당해야 할 일이다. 국론통일과 탈북민의 정착지원활동은 정부만의 과업이 아니다. 민간이 정부와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것이 민간통일준비위원회의 자율적 구성이 필요한 이유다. 통일의 주체는 엄격히 말하면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국민이다. 국민들이 배제된 정부만이 주체인 통일은 없다. 국내외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 모두가 주체가 되고 부모 형제와의 재결합의 날을 학수고대하는 탈북민들이야말로 통일달성의 실존적(實存的) 주체들이다.

 

셋째로는 국민 속에 잠재되어 있는 진보가치에 대한 희구가 건전한 진보세력의 대두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세습이 아닌 공화정체를 지지하고 반전반핵평화의 기치를 분명히 하면서 경제민주화를 통해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할 합리적 진보세력이 출현해야 한다. 독일과 영국 등지에서 성공한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 세력의 등장은 어느 면에서는 오늘의 한국사회가 당면한 시대적 요청 같기도 하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결정은 분명코 통일을 향한 우리의 국론통일과정에서 거보(巨步)를 내딛은 결단이며 동시에 반종북(反從北)건전 진보세력이 등장할 새로운 정치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우리 국민 모두는 뜻과 지혜를 모아 통일을 위한 국민적 합의기반을 넓히는 한편 한국정치도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세력간의 건전한 경쟁구도로 발전, 재편할 전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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