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위기와 한국의 대응
1. 문제의 제기
지금 미국의회는 공화당과 민주당간의 극한대립으로 연방정부를 폐쇄(Shut Down)시키는가 하면 세계경제를 볼모로 미국경제를 국가부도로 몰고 갈지 모를 위험한 게임을 펼치고 있다. 상원의 중재로 비록 3개월간의 시한부지만 연방정부의 폐쇄는 풀렸다. 그러나 미국의 여야대립은 쉽사리 해소될 전망이 보이지 않으며 현재의 분열상은 전문가들에 의하면 남북전쟁(The Civil War)이래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최근의 추세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0년대 말기까지 세계질서를 주도해온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미국이 아직도 그 기능과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지를 놓고 우려가 확산될 정도로 미국의 국가상황은 흔들리고 있다. 제2차 대전 직후만 해도 미국의 GDP는 전 세계의 절반이상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23%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또 미국은 냉전이후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미국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축적, 일극(一極)패권체제로 전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했으나 지금의 미국에서는 그러한 위용(偉勇)을 찾아 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다. 미국은 수년간 지속되어온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겹친 쌍둥이 적자 속에서 허덕이다가 급기야는 여야정치권의 대립으로 연방정부가 폐쇄되고 심지어 국가부도까지 걱정하는 나라로 변했다. 지금은 달러화가 기축통화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화폐를 계속 발행하는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로 현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경제의 안정 기반은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다. 이 결과 미국만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며 또 주도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신념은 대내외적으로 더 이상 수용되기 힘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미국의 방위공약을 국가안보의 주요 발판으로 삼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미국상황의 이러한 변화에서 초래될 제반 문제를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대국으로의 등장, 일본의 집단안보정책의 현실화,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장 등 한국안보의 제반 도전요소를 감안할 때 한국은 미국의 국력쇠퇴현상을 냉철하게 지켜보면서 대응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2. 한국이 걱정하는 몇 가지 우려들
가. 해외개입 반대여론 고조
지난 9월 10일자 미국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계속해서 해외개입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의 물음에 62%의 미국인들이 반대의사를 표시했고 다른 나라의 인권과 민주화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이 계속 개입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72%가 반대의사를 표했다. 해외개입에 대한 피로(疲勞)가 미국 국민들 간에 팽배하고 있으며 결국 화학무기를 사용, 비무장 민간인을 대량으로 살육하여 인류의 공분을 사고 있는 시리아에 대해서도 오바마 정부는 개입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물론 워싱턴을 움직이는 미국지도층들은 아직도 미국만이 오늘의 세계를 올바로 이끌 수 있고 이끌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국력신장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한 미국의 해외개입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며 미국이 직접 개입해서 해결 가능한 국제문제의 영역도 줄어들고 있다.
바야흐로 미국이 그간 세계정치에서 누리던 예외주의(Exceptionalism)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북핵문제는 10년을 끌어도 미해결상태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의 안보 공약은 확실하고 안보 공약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의지도 확실해 보이지만 공약을 이행할 미국의 힘(Strength)이 과연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이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나. 중국의 도전과 일본의 집단안보
최근 미국의 국력이 쇠퇴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중국은 미국에 대해 양국관계의 동격화를 요구하고 서로 간에 핵심이익을 존중하고 우려사항을 배려하면서 국제문제를 함께 협의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바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주창하는 신형대국관계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아직도 중국에 앞서고 있는 미국이 비대칭적인(Asymmetrical)양국관계를 대등관계로 바꾸자는 중국의 제안을 쉽사리 받아들일 리 없다. 미국은 오히려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정책을 내세워 중국의 영향력 신장을 견제하면서 세계에서의 패권적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중국의 국력이 지난 30여 년 간 획기적으로 증강되었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주변 국가들을 동원, 반미(反美)연합을 만들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도 동북아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한 외교적 노력의 일환으로 일본의 집단안보구상을 지지하고 이 지역에서 미국이 맡아야 할 부담을 상당부분 일본에 떠맡기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태평양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왜곡, 부정하면서 군사력 강화의 길을 걷는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행위가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현시점에서 아시아 지역 국가들 간에는 역사문제를 중심으로 반일연합의 형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본의 집단안보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자칫 미국에 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접근은 한국의 외교적 운신에도 큰 난제를 던진다.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안고 현안의 안보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은 실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 존 케리(John Kerry)국무장관의 새로운 북 핵 접근 방안
미국의 케리 국무장관의 행보는 국제사회의 새로운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국무장관 취임후 지난 4월 중순 한국, 중국, 일본을 순방하면서 동북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우선 그는 중국방문을 통해 북핵문제는 중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정의하고 아울러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진전시키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조치로 핵우산을 확대, 일본이나 한국의 핵무장을 억제하겠다고 말했다.
케리의 견해는 북 핵 해결의 주된 책임을 미국이 아닌 중국에 맡기고 미국은 이 지역에서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는데 주력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오늘날 중국내에서도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은 미국안보에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중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북한은 현시점에서 중국의 전략적 자산이 아니고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주장이 공론화되고 있다. 그러나 케리 장관의 견해는 북핵문제가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문제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된 역사적 관점을 크게 뒤바꿔 놓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을 요한다.
오늘날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볼 때 북 핵문제는 강대국들의 협력 없이는 해결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강대국들에게만 맡겨둔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은 지난 10년간의 6자회담이 우리에게 주는 산 교훈이다. 결국 최종적인 해결은 한반도 비핵화의 주체가 될 한국이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구상을 기반으로 하여 북핵문제를 남북한 간의 협상의 주제로 끌어내오고 이 노력의 성과와 더불어 강대국들이 참여하는 다자간협상이 열려야 비로소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외교의 새로운 도전이 있다.
3. 미국에 대한 전망
미국 언론들은 미국경제가 2008년의 금융위기로 조성된 불황의 늪을 벗어나 느리지만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인들이 자체로 생산한 것보다도 더 많은 소비를 하면서 외채를 빌려 쓰는 행태를 그대로 지속하는 한 미국경제가 활력을 되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들은 특히 미국의 민주정치가 경제를 살리는 구조개혁이나 투자증강보다는 오히려 당파적 이해에 묶여 미국경제를 자살로 몰아간다고 비판하면서 과연 미국의 이러한 정치체제가 오늘의 세계가 꼭 필요로 하는 변화를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미국정치인들이 미국에 활력을 불러일으킬 구조개혁보다는 정치인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지키는 데 치중, 세금인상이냐 감세냐 만을 따지면서 개혁을 외면하는 경직성(Sclerosis)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어 1979년 “일본을 1등국가”라고 예찬했던 에즈라 보글(Ezra Vogel)교수가 “일본의 정치체제가 일본의 진로를 가로막아 침체를 확대하는 길로 나가리라고 자기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사실을 상기하면서 오늘날 미국정치체제의 역기능이 미국이 당면한 위기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주장은 그것을 서방민주 국가들이 당면한 모든 위기의 원인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변화의 수용과 적응의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의 정치체제와 정치인들이 위기의 주요원인을 제공한다는 지적에는 공감이 간다.
앞으로 미국이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에 서둘러야 할 것 같다. 혹자는 미국이 운신의 폭을 줄여 신 몬로주의(Neo Monroeism)로 회귀할 가능성을 말하지만 이미 세계화의 틀에 묶인 국가로서의 미국은 그 길을 선택하기가 힘들 것이다. 또 정치상황이 변하거나 경제형편이 지금보다 나아진다고 해도 미국이 과거와 같은 외교패턴(일방적인 해외개입)을 지속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한국이 국방 자주화의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당위가 있다.
4. 글을 맺으면서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얽히고 있는 상황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가. 더욱이 미국의 역할과 힘이 축소되는 상황 하에서의 효과적인 대응방도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한국의 과제는 국론의 통일이다. 종북(從北)세력의 발호를 결연히 차단하면서 여야대화를 통한 타협과 조정으로 국론을 통일하는 것이다. 대통령제하에서 양당이 정치를 주도하는 국가에서는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 양당 간의 정치적 대결도 극단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늘날 미국정치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치가 국가발전과 국론통일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도 여야대립은 갈수록 극단화되고 타협의 정치가 실종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내각책임제 국가들에서는 소(小)연정이나 대(大)연정을 통해 정치적 타협이 가능할 기제(Mechanism)가 마련되어 있고 대통령제 국가라도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경우에는 유권자 50%이상의 지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타협이 성립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정치에서는 정치적 타협과 양보를 가능케 할 기제는 전무(全無)하고 타협의 정치는 오직 여야정치권의 정치력발휘에 의존할 뿐이다. 나날이 늘어나는 복지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정세변화에 잘 대처하려면 여야 간의 타협의 정치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 같다.
남북한관계도 상대방의 붕괴를 가정하기보다는 서로 공존하면서 신뢰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냉전 이래 지금까지 남북한은 믿고 의지할만한 파트너를 주변 대국들에서 구했고 이것이 동맹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탈냉전의 새로운 국제환경하에서는 바로 그 파트너가 남북한 당사자로 바뀌어야 할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핵문제의 해결도 이러한 파트너십의 새로운 형성 없이는 어느 경우에도 큰 진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산가족문제의 해결이나 남북한의 경협은 이러한 신뢰를 쌓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신뢰프로세스도 소극적 관점보다는 적극적 관점으로 그 지평을 넓혀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국내정치구조(Domestic structure)도 타협의 정치가 성립할 제도적 기제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 정계개편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할 과제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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