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집권기초는 단단한가?

 

 1.절대과반수지지를 얻은 대통령의 탄생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제 18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에서 보수-진보 양대 세력 간의 결사항전 분위기 속에서 전체 유권자 51.6%의 지지를 획득, 헌정사상 최초로 절대과반수의 지지를 얻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은 대선에서 전체유권자의 단순 다수의 지지를 얻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기 때문에 매 선거 때마다 대통령당선자의 평균득표율은 45%내외에 그쳤다.

 

절대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한 소수 지지의 대통령이 선출되어왔다.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야당후보보다 531만 표를 더 많이 얻었지만 전체유권자의 과반수에는 못 미쳤다.

 

일찍이 프랑스 정치사상가 루소는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국가지도자의 민주적 정통성은 주권자인 국민 개개인의 찬성을 전부 얻는 만장일치로 확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따라서 국민과반수+1이상의 찬성의사를 보유해야 국민전체의 대표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간 우리 학계에서도 전체 유권자 50%+α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 선출을 목표로 한국에서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지금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대다수의 국가들은 우리나라 등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모두 결선투표를 통해 50%+α의 지지로 대통령을 선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당들은 그간 단순다수제로 정권을 장악하는 타성에 젖었거나 정권을 장악하기 더 쉬운 방법이라는 정략적 이유로 결선투표제의 거론자체를 외면했다.

 

그러나 소수지지의 대통령은 항상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세력들로 인하여 언제나 정통성위기에 휘말렸다. 선거에 지고도 승복하지 않는 ‘정신적 대통령’이 나오기도 했다. 또 진보파들은 보수파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려들지 않았던 반면 진보성향의 대통령들은 보수층의 경멸과 무시에 치를 떨었다.

 

대통령들은 소수지지의 약점을 나름대로 보완해보려고 정치현실의 구체적 요구와 무관한 정치이벤트를 추구, 선호했다. 예컨대 양김시대의 남북정상회담, 노벨상 추구, “역사바로세우기”, 국민들의 상식적 기대에 어긋나는 반미선동, 사면권 남발, 구체적 과업 없는 해외나들이로 국력을 낭비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다르다. 절대 과반수 유권자들의 지지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집권과 동시에 정권안정화, 정권정통화의 기반을 구축했다. 그간 언론들은 박근혜 당선자가 획득한 지지의 의미를 단순다수지지의 연장선에서만 이해하면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48.4%의 포용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연한 지적이고 올바른 권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대과반수 지지가 갖는 정치적 함의를 정확히 이해하고 절대과반수가 형성되는 정치과정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비로소 박근혜 정부가 입각하는 집권기초의 안정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 박근혜 정부의 집권기초를 중점적으로 점검한다.

 

2.“생각하는 국민”들이 주도한 대통령선거.

 

제18대 대선정국은 노무현정부가 이명박 정부로 교체되기 직전의 상황을 연상시킬 만큼 정권교체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65%를 상회하는 분위기에서 전개되었다. 이 결과 처음부터 대세론을 타고 선두주자로 떠올랐던 박근혜 후보와 야당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는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줄어들었고 종반전에 이르러서는 누가 대선의 승자일지는 개표가 끝나봐야 알 수 있다고 말 할 정도로 박빙의 선거전이 지속되었다.

 

 특히 안철수 현상이 대두한 이후 박근혜 후보의 대세론은 날이 갈수록 빛을 잃었고 야당후보 단일화가 국민 공감의 이벤트로 성공했다면 선거결과는 전혀 달라질 수도 있었다. 17대 대선에서는 노무현을 싫어했던 유권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여러 가지 흠결에도 불구하고, 또 국가지도자로서의 품격이나 능력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여부를 따져보지도 않고 노무현반대가 곧 이명박 지지라는 ‘충동투표’ 분위기 속에서 이명박 후보를 선출했다.

 

이번 18대선에서도 유사현상이 대두했다. 야당의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가 2013년 한국이 직면하는 내외현실에 비추어 국가를 제대로 경영할 능력이 있는 인물인지를 깊게 따지지도 않고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정권교체라는 구호에만 현혹되는 ‘충동투표’분위기가 고조되었다. 특히 한국의 20대와 30대의 젊은 유권자들은 그들의 답답한 현실돌파의 수단으로서 정권교체를 선호하면서 충동투표로 치닫고 있었다. 모든 여론조사와 매스컴은 이를 예고했고 이번 대선을 계기로 갑자기 등장한 이른바 군소(群小)대학에서 근무하는 교수라는 이름의 정치평론가들도 매스컴을 통해 선거의 전망을 갈수록 답답하게 몰아갔다.

 

이러한 때에 일찍이 함석헌 선생이 “생각하는 국민이어야 산다”고 말한 바로 그“생각하는 국민”에 해당할 50대, 60대의 유권자집단들이 선거현장으로 몰려 나왔다. 이들은 한국현대사의 명암을 체험한 세대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변해버린 한국현대사의 내력을 바로 아는 세대들이다. 혼란과 무 경륜의 비극을 잘 알 뿐만 아니라 남북대치상태와 주변정세 속에 내포된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통찰하는 사람들이다. 20대나 30대가 갖지 못한 소중한 인생체험을 한국이라는 현장에서 쌓아온 사람들이다.

 

이번 대선이 무 경륜집단들의 충동투표 때문에 잘못된 선택으로 끝날 경우 어떤 불행이 우리에게 찾아올 것인가를 내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이들 침묵했던 다수가 행동하는 다수, 투표하는 다수로 표변했다. 이들의 궐기적 참여로 선거결과는 절대과반수의 지지를 얻는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더 이상 소수파 정부가 아니다. 불필요한 정치이벤트로 소수지지라는 콤플렉스를 메꿔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국민에게 약속한 국가안위에 책임을 지면서 경제난을 극복하고 국가의 위상을 21세기의 요구에 맞게 세워나가기만 하면 성공한 정부가 될 운명을 맞게 되었다. 충동투표를 이긴 이성투표의 승리이기 때문에 집권의 기초는 그 어느 때 보다 단단해졌다.

 

 3. 소위 원탁회의파들과 2013체제론의 결말

 

18대대선 정국에서 이른바 좌파의 지도부라고 알려진 원탁회의파들은 두 가지의 큰 과오를 범했다. 하나는 통일전선전술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이들은 대선운동의 시작과 더불어 정권교체를 목표로 이른바 진보진영과 중도보수, 그리고 젊은 유권자 층으로서의 20대, 30대 유권자들을 통일전선의 고리로 묶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이 추구한 통일전선은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여기에 박정희 대통령지지세력포함)로 주적(主敵)으로 하고 박근혜를 반대하는 제 세력을 우군(友軍)으로 조직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 중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안철수를 대선후보로 꼬드겨 출마시키고 종국적으로는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이었다. 백낙청은 안철수를 만나 대선후보로 나서는 것이 정권교체에 도움이 된다고 설득, 대선출마를 선언케 한다. 이어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단일화 고리에 엮어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후보단일화를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백낙청의 공작은 대선후보 등록전날까지 후보를 단일화한다는 통일전선전술의 가장 결정적 고리에 안철수를 붙들어 매는데도 성공했다.

 

안철수가 정치경험이 겨자씨만큼만 있었어도 단일화의 고리를 물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가(有家)와 무가(無家)가 단일화협상의 정치과정에 들어가면 무가(無家)는 필패하며 결국은 유가(有家)의 불쏘시개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망이 명중하려면 안철수가 어떤 요구를 해 오더라도 민주통합당은 이를 무조건 받아야 하며 그 결과는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통일전선전술의 묘미인데 이 원리를 잘못 파악하고 안철수가 내놓은 조건을 따지다가 국민공감의 단일화를 이루는데 실패한 것이다. 원탁회의 파들은 좌파를 지향하면서도 좌파전술을 정확히 익히지 못한 2%가 부족한 좌파분자들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둘째는 2013체제를 대선이후의 정국대안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른바 6.15선언 제3항의 정신을 살려 대선승리로 정권을 잡은 후 남북한을 연방제의 초기 단계인 연합단계로 진입시키자는 것이다. 남북공동선언 실천 남측공동본부장을 역임한 백낙청은 6.15선언에 남다른 애착과 집념을 지녔다.

 

 6.15선언 5개 항 중 4개항은 북측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며 김대중이 내놓은 안은 오직 김정일의 답방 한 항목인데 북측은 남측이 내놓은 답방을 거부함으로써 6.15선언은 사실상 폐기선언 없이 폐기된 문서에 불과하다. 오늘의 한반도 현실에 비추어 북한과의 연방제 실시를 위한 남북한 간의 체제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또 이러한 변화를 필요하다고 인정할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또 연방제 실시의 구체적 조건가운데 포함될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철수,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묵인을 지지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고려도 없이 백낙청 등은 2013체제를 들고 나와 그들의 숨겨진 의도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결국 충동투표로 흐르던 선거분위기를 “생각하는 국민”들의 선거궐기로 바꾼 것은 용공정권 출현에 대한 국민적 우려에 큰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대선이 끝난 후 좌파들은 일시적으로는 주춤한듯하지만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조만간 박근혜 정부의 강점을 약화시키고 약점을 극대화하는 심리투쟁에 곧 나설 것이다. 특히 한미 FTA집행과정이나 군작전권 이양시기에 나타날 한미관계의 변동기를 한미이간, 반미선동의 소재로 이용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4. 글을 맺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매우 특이한 인생경험의 소유자다. 대통령의 큰 딸로서 18년간 청와대에서 살았다. 양친을 잃고 청와대에서 내 쫓긴 후 35년 만에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의 주인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영국의 대처수상이나 독일의 메르켈 수상의 삶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우리가 갖는 많은 기대 중의 하나는 권력에 취하는 대통령이 결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의 중요성도 잘 알지만 그 권력의 무상함, 청와대 권력의 명과 암을 실제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가장 믿었던 자의 배신 때문에 아버지가 목숨을 잃는 끔찍한 현장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만사에 방심하지 않고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대결이 갖는 현실정치의 의미를 잘 터득했을 것이다. 한국정치에 미치는 북한의 작동이 무엇이고 북한 리더십이 겨냥하는 대남공작의 목표를 정확히 꿰뚫어볼 것이다. 연평도나 천안함 사건이 났을 때 우왕좌왕하는 열등성을 보이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통치철학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절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는 문제는 종북세력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생각하는 국민”들을 잘 조직화하는 것이다. 좋은 대통령을 선출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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